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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사회 :: Current Issues

행동하는 대학은 아름답다 - 서울에서 띄우는 편지 [객원필진 NorCalSpirit]

사진은 글 내용과 관계 없음 (사진 출처: 청주시의회)


오늘 오전 트위터로 이화여자대학교 학생들이 학생총회를 열고 ▲등록금 문제 ▲장학금 확충 ▲ 자치공간 확충 ▲ 수업권 문제 해결 ▲ 학점 적립제 도입 ▲비정규직 미화경비노동자들의 생활임금보장 등 6대 요구안 해결을 위해 학생총회를 열고 오는 4월 4일부터 8일까지 채플을 거부하는 행동을 결정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앞선 3월 24일 경희대에서는 학생총회를 통해 학교 측과 등록금 인상분 3% 가운데 2%는 학생들에게 돌려주고 나머지는 학내 비정규직 노동자 처우 개선 등에 합의했습니다. 경희대에서 학생들의 요구가 사실상 관철된 이후 수많은 대학이 앞다퉈 학생총회를 개최하며 등록금 문제와 학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를 공론화하고 있습니다.

대학마다 학생총회 열기, 왜?

각 대학에서 학생총회가 잇따르는 것은 상당히 놀라운 일입니다. 제가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던 6~7년 전만 해도 등록금 인상을 두고 학생총회를 하자 하면, 전체 학생 수의 10%인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총회가 성사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학생총회는 대학생들이 사회참여를 논의하고 실천의 향방을 정하는 학생들의 최고 대표기구였습니다만, 2000년대 들어 과격한 투쟁이라는 것에 거부감을 갖는 학생들이 많아지면서 학생들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집니다. 오히려 학교 안에서의 사회 참여, 등록금 투쟁 등이 학습 환경을 저해하는 요소로 비춰지며 비난의 대상이 되었지요.

그러던 학생들이 왜 다시 행동으로 뭉치기 시작했을까요? 실물 경제가 어려워 졌음에도 꾸준히 오른 등록금이 단연 문제입니다. 지금 한국은 생활 물가가 치솟아 가정마다 실질 소득이 상당히 낮아져 교육 등 가계지출 부담이 상당히 높아진 상태입니다. 물론 등록금은 예나 지금이나 꾸준히 올라왔습니다. 다만 지금의 등록금 인상은 부모가 자녀교육을 위해 기꺼이 부담할 수 있는 액수를 상당히 넘어섰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1년 학비 1500만원의 시대가 되었는데도 가계 형편이 어려워지니 학생들의 부담이 늘어나고, 학자금 대출로 학비를 마련하고, 아르바이트를 해도 갚아나가지 못하니, 대학생 때부터 신용불량자가 됩니다. 설상가상으로 취업 문마저 좁아졌으니, 대출금 상환하기가 어렵고, 그 후로도 결혼과 출산, 육아는 말하지 않아도 암담한 현실이 되겠죠.

현실과 등록금 문제, 2010년 윌러 홀 점거

현실의 문제가 되니 학생들이 다시 뭉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대학은 전문인력을 키우기 위한 양질의 첨단 교육을 하겠다는 명분으로 등록금을 올립니다. 학생들이 전도유망한 직업을 갖기 위해선 흔히 말하는 스펙(specification)이란 걸 갖춰야 하는데, 여기엔 학력, 외국어 실력, 컴퓨터 활용능력, 각종 자격증 등이 있습니다. 이 스펙 중 단연 대표되는 학력이라는 것을 얻기 위해 대학에 진학합니다. 등록금을 내지 않으면 학력이라는 스펙의 한 퍼즐을 끼워 맞출 수 없으니 학생은 약자의 입장에 놓이게 됩니다. 대학이 학생에게 아무리 높은 등록금을 책정한다고 해도, 학생은 학력을 얻기 위해서 이름 감수할 수 밖에 없는 굴레에 놓이게 됩니다.
작년에 버클리에서도 학교에서 수업료 인상안을 내놓아서 학생들의 투쟁이 격해진 일이 있습니다. 학생들이 윌러 홀(Wheeler Hall)을 점거하고 결국 UCPD와 경찰 헬기까지 동원해 사태를 수습했죠. 윌러 홀 점거는 60년대 말 자유언론운동(Free Speech Movement)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 언론의 주목을 받았지요. 최고의 명문 공교육 기관이라고는 하나, 13%라는 상식을 벗어난 수업료 인상안에 비싼 등록금을 참아오던 학생들이 떨쳐 일어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학생들의 시위가 진압됨으로써 학교는 다시 평화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변화된 현실을 마주했을 겁니다. 함께 공부하던 친구가 경제적인 이유로 갑자기 학교를 그만 둔다든지 잠시 학업을 쉬는 것을 보게 됐고, 전공 수업마다 보이던 학생이 갑자기 보이지 않는 일을 새삼스레 느낄 거에요.

학교는 질 좋은 교육을 위해 등록금을 올린다고 하는데, 등록금을 올리니 질 좋은 교육을 받아야 할 학생들이 일부 떠나고, 빚더미에 앉고, 인문·사회과학 등의 전공은 수업이 없어지고, 질이 더 나빠졌습니다. 내가 대학을 나와서도 답이 훤히 보이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생들이 어쩔 수 없이, 졸업장을 위해 개인의 성공을 위해 불만을 꾹꾹 누르고 있습니다. 그런 학생들을 호구로 생각해 그동안 대학들은 학생들의 의견을 무시해 왔지요. 한국의 한 학기 등록금이 평균 750만원이라고 합니다. 제가 학교에 다니던 2002년에 297만원(서울소재 사립대 문과)의 등록금을 냈으니 10년 간 등록금이 얼마나 가파르게 상승했는지 알 수 있겠지요. 다 큰 학생들한테 비상식적인 등록금 인상을 계속 들이대니, 상식적인 현실을 보는 학생들은 뿔 날 수 밖에 없습니다. 학생들이 다시 과격한 점거 투쟁 등도 불사하겠다 하니 말입니다.

대학, 네가 문제야!

“… 대학은 학문의 전당이었을 뿐 졸업하고 뭐가 되는 직업인을 양성하는 데가 아니었다. 어느 대학 어느 과가 더 출세에 유리하고, 돈을 잘 벌고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식의 이익을 추구하는 데가 아니었다. 사회적 부조리를 비판하고 약자의 편에 설 수 있는 지성을 길러내는 데지 개인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데가 아니었다. 특히 인문대가 그러해서 우리는 인문대를 대학의 대학이라고 자부하며 기고만장했었다. 오죽하면 대학을 상아탑이라고 불렀겠는가. 그만큼 잡스러운 욕망이나 더러운 실리로부터 보호받는다는 면이 강했다. 막 대학 문턱에 들어선 초년생에게는 대학은 진리와 자유의 공간이었고, 만 권의 책이었고, 그 안에 숨어있는 아름다운 문장이었고, 지적 갈등을 축여줄 명강의(名講義)였고, 사랑과 진리 등 온갖 좋은 것들이었다.”

– 박완서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中

최근 읽은 고 박완서 님의 글에서 본 구절입니다. 물론 1950년대의 대학과 21세기의 대학의 모습이 같을 수는 없습니다. 칠판을 분필로 한 바닥 채우며 필기를 하던 시절과, 최첨단 장비에 준비된 ppt파일로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교육이 같은 모습일 수 없지요. 하지만 대학의 사회적 의미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대학에서 학생들이 공부를 하는 목적은 겉으로는 개인이 부와 성공을 가져다 줄 직업을 갖게 하는 것이겠지만, 실은 사회 전반을 좋은 방향으로 바꾸기 위한 학문을 하는 것이지요. 이는 사회를 배우는 사회학이나 첨단 기술을 연구하는 공학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 대학의 모습은 대학생들에게 그러한 생각을 심어주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실제 디지털 문화를 선도하고 변화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스티브 잡스 (Steve Jobs)와 같은 디제라티(digerati: digital과 literati의 합성어로 디지털 변혁의 선봉에 선 지식인을 뜻합니다) 들은 대학교육이 사회 변화에 걸맞은 역할을 할 지식인을 키워내지 못한다 지적하기도 하지요.

실에 눈을 돌리는 대학생이 아름다운 이유

1955년에 버트런드 러셀과 앨버트 아인슈타인 등 당대 최고의 학자들이 핵폭탄 등 자신들의 연구의 성과물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느끼고 반핵평화를 촉구하는 ‘러셀-아인슈타인 선언’을 발표합니다. 이를 시작으로 2년 뒤 캐나다의 퍼그워시라는 어촌에서 퍼그워시 회의(Pugwash Conference)라는 것을 시작하지요. 내로라하는 학자들이 모여 반핵평화를 비롯 인구문제, 환경문제 등 현실문제에 대한 관심과 학문의 성과물에 대한 사회적 반성을 요구합니다. 현실적 파급을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발전하는 과학의 문제를 제기한 것입니다. 현실을 보지 않고 개인의 부와 성공을 위해 맹목적으로 달려오는 대학생들의 모습이 우등생의 전형이 되는 것이 부담스러운 것도 같은 맥락에서 사회적 반성과 현실에 대한 성찰을 필요로 합니다. 현실을 도외시하며 앞만 보고 경쟁하던 대학생들의 현실적 처지가 대학에 비해 절대 약자의 위치에 놓이게 하는 원인이 되었기 때문이죠.

지금에라도 자신이 처한 현실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행동하는 대학생들이 아름다운 이유는 자신이 살아가는 공간, 즉 사회를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바로잡고자 하려는 의지를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학업에 정진하는 우등생을 나무라고, 학업보다 현실을 중시하라는 이야기를 하려고 이 편지를 띄우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여러분이 주어진 공부를 하며, 어떻게 현실에 적용할 것이며, 왜 그래야 하는지를 생각하고,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를 판단할 수 있도록 현실에 관심을 갖기를 바랍니다. 나의 생각과, 현실에 대한 다양한 공부, 혹자는 괘씸하다 할지 모를 발칙한 상상이 허용되는 대학 생활을 마치고 내가 사회 어느 곳의 한 부속품이 되어 세상을 보지 못하고 내 일에만 파묻혔을 때, 젊음이라는 이름으로만 객관적으로 볼 수 있던 것들에 대한 뒤늦은 후회는 무엇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을 테니…. 세상을 큰 눈으로 바라보고, 그 안에서 행동하지 못했던 사람들만으로 사회가 채워지는 건 상상만으로도 암담합니다.

객원필진 소개: NorCalSpirit (twitter @norcalspirit)
※이 글은 2010년 정치학 (Political Science)을 전공하고 졸업하신 선배님께서 기고해 주셨습니다.

2001년부터 명륜동에서 세상을 바꾸겠다는 의협심으로 소주와 짱돌을 벗삼아 노닐다가 2004년부터 미군부대에서 나라 지킨다는 핑계로 2년간 영어를 배웠다. 2006년부터 캘리포니아에서 공부한다는 핑계로 나들이하다 2010년 버클리에서 정치학으로 B.A.를 받았으나 정치보다는 사람 사는 데 관심이 많다. 지금은 골방에 쳐박혀서 글쟁이, TV쟁이 된다는 핑계로 자발적 백수 생활을 즐기고 있다. 가끔 발칙한 발랄을 꿈꾸며 영원한 대학생이고픈 ‘피터팬 증후군’ 증세가 좀 심각하다. NorCalSpirit(Northern Californian Spirit)은 UC버클리의 자유언론운동(Free Speech Movement)와 60~70년대 반전평화정신, 인간에 대한 사랑의 의의를 잃지 않겠다는 자기 주문이다.

p.s. 너무 무거운 글로 후배님들을 만난 것 같아 미안합니다. 다음 기회엔 재미있는 글로 찾아 뵐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