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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문예 :: Literature

길이길이 남을 길_

늦깎이 유학생. 휴학. 군대. 복학.

나보다 적게는 2-3살, 많게는 5-6살 어린 동생들과 학교생활, 군생활을 해오다보니..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종종 다른이의 인생에 감히 '조언'이라는 이름아래 간섭을 하게되는 기회가 잦다. 소위말하는 '인생상담'을 통해 그들과 소통하며 느끼는 건, '사람에 따라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대부분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고민을 하고 비슷한 인고의 과정속에 성장해 나아가는구나...' 하는 것이다. 힘들어하는 후배들을 바라보며 선배로서, 그리고 형, 오빠로서 잔소리를 하다보면 문득 지금에 오기까지의 내 어린시절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곤 한다.

맹모삼천지교 (孟母三遷之敎). 아이의 교육 환경의 중요성을 인지, 그를 위해 잦은 이사도 마다않던 어머니가 있었기에 맹자라는 훌륭한 학자가 탄생할 수 있었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나의 어린시절도 이와 비슷한 점이 많았다. 은행원이셨던 아버지의 잦은 발령탓에 거의 매년 이사를 다녔는데, 그 때마다 어머니는 항상 당신 자식의 교육 환경을 최우선으로 여기시고 살 곳을 고르시곤 했다. 그 중에서도 제일 인상 깊이 남아있고 또 아직까지도 연락하며 지내는, 이른바 평생지기 친구들을 만난건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이었다. '93 Expo박람회의 성공적인 개최에 발맞춰 대전 유성구 전민동에 엑스포아파트라는 단지가 들어서게 되고 단지내 초등학교, 중학교가 배치되었다. 그 어린나이에도 참 신기했던건 주변 친구들 부모님들이 대부분 대학교수 내지는 대덕연구단지 연구원이었고, 때문인지 또래 친구들도 대부분 학구열에 불타는 아이들이 많았다는 점이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입학을 앞둔 겨울방학에 '수학의 정석 - 실력편'으로 공부를 하던 내 친구들, 특히 여자아이들은 별 무리없이 과학고, 외고에 진학, 서울대, 카이스트, 연고대를 거쳐 청년실업 100만이라고 세상이 떠들어대던 시기에도 척척 대기업/공기업에 입사해 인생의 탄탄대로를 걷고 있다. 아니, 정확히 이야기 하자면 '걷는 듯 했다.'

2007년 여름, 오랜만에 한국에 나가 초등학교 동창 모임에 참석한 그 자리에서 아이들과 나눈 수 많은 대화 속에서 참으로 많은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었다. 물론 그 탄탄대로속에서 행복을 만끽하며 인생을 즐기고 있는 이들도 많았지만 한켠으론 방황하고 힘들어하는 이들도 있었다. 물론 그네들의 '객관적인 지표'를 바라보면 인생이 고달프다느니 삶이 혼란스럽다느니 하는 소리를 듣게되면 측은한 마음대신 주변에 던질만한 돌을 찾고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되겠지만, 정작 그 친구들의(특히 군대라는 공백이 없는 여자아이들의) 마음속에서 나오는 무거운 마음들은 생각외의 것이었다.

가장 확신에 가득차 방심하는 찰나, 한 치 앞도 분간못할 안개로 가득차버리는 우리네 인생길_

내신관리 잘 해서 중학교 무리없이 졸업하고 우수한 성적의 연합고사로 원하던 과고, 외고 진학. 그 흔한 재수생활도 없이 원하는 명문대 혹은 의대, 법대 진학. 졸업 후 대기업 혹은 철통 밥그릇을 자랑하는 공기업에 바로 입사. 그로부터 직장인 3년차. 일사천리. 안정된 직장, 안정된 수입, 안정된 생활. 얼핏봐도 세상 모든것을 다 가진것 처럼 사는 이들에게 무슨 고민이 있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대표적인 고민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한 번도 넘어져 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일찌감치 지망했던 고등학교에 가지 못하는 벽을 경험했다면, 대학입시에 실패해 재수생활을 경험했다면, 취업난으로 하루하루 조바심으로 가득찬 생활을 경험해보았더라면..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이 혹시 내 길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 나에게 주어진 길이 어딘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궁금증, 불안함, 불확실함.. 등등..

내가 좋아하는 시 중에 Robert Frost의 'The Road Not Taken'라는 시가 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매 순간순간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고, 선택을 강요받는다. 그 선택이, 우리가 택한 그 길이 옳은지 옳지 않은지는 아무도 모른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각자의 선택에 대해 만족하기도, 실망하기도 하며, 때론 다른 길을 선택했었더라면 하는 후회의 감정에 부딪히기도 한다. 롤플레잉 게임처럼 save와 load를 반복해가며 살아갈 수 없는, 동시에 두 길을 갈 수 없는 우리네 인간의 한계성,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인생의 고뇌와 인간적 한계를 절감하게 된다.


앞만보고 승승장구하며 달려온 세월속에서 결여되어있던 그 무언가가 뒤늦게 엄습해오며 인생에 있어 크나큰 괴리감을 맛보고 있다는게 그들의 대표적인 고민이었다. 과감히 회사를 관두고 다시 준비해서 대학원이나 유학등 새로운 길, 제2의 길을 찾아 떠나는 운 좋은, 그리고 용기있는 이들도 있는 반면에, 고민만 한 가득이고 용단을 내리지 못한채 괴로운 하루하루를 반복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번에 넘어지면 크게 넘어질 것 같은데, 살면서 아직까지 넘어진 뒤 일어나는법을 터득해본적이 없다는게 그들이 결정내리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였다.

2년 남직한 시간의 공백을 메꿔야 하는, 병역의 의무를 띄고 있는 남자동생들에게는 굳이 강요하긴 힘들지만 이따금씩 진로에 관해 조언을 구해오는 여자동생들에게 내가 항상 교환학생, 어학연수, 배낭여행, 휴학 등을 권유해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앞만보고 냅다 달려온 삶 속에서 숨도 좀 고르고 뒤도 좀 돌아보고 하는 여유를 갖는다면 정말 좋겠다는 나의 말에 대부분의 아이들은 이렇게 대꾸하곤 한다.

'시간이 아깝지 않을까?'
'그 시간만큼 남들에게 뒤쳐지는것은 아닌지 무섭고 걱정이 든다.'
'오히려 스스로를 더 불확실한 미래로 몰고가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조금만 달리 생각해보면 어떨까? 앞서 예를 들은 친구의 고민처럼 훗날 스스로 쌓아온 성 안에서 딜레마에 빠지기 보다는 지금 한 번이라도 넘어져 보는거다. 지레 겁먹고 주저하기보다 차라리 실패를 경험하는 그 과정이, 특히 대학교, 20대, 인생의 초반을 걸어가고 있는 우리에겐 더욱더 소중하지 않을까? 학교에서 수업을 신청하고 들을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정해진 수순에 맞추어 효율적으로 수업을 듣고 제때 혹은 더 일찍 졸업하는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 수업 저 수업 들어보는것이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스스로에게 어떠한 길이 맞는지 시험해보는 어찌 보면 사회에 나가기 전 학생이라는 '마지막 행복한 신분'으로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고 생각된다. 처음부터 마음을 접어버리면 가능성은 ZERO다. 하지만 어떠한 방향이라도 일단 한 발자욱이라도 뗀 순간 그 길 끝에 있는 결과를 성취하게될 가능성은 0.0001%라도 생기게 되고, 그 일말의 가능성이 모든 상황을 뒤바꾸게 되는 계기가 되는 일들이 세상엔 수도없이 많이 일어남을 믿어 의심치않는다. 그리고, 지금, 바로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언제나 불확실성의 연속인

우리네 삶_

과거를 회상하며 미소짓되,
뒷걸음질 치지 않는 사람이 되자.

희망차게 미래를 바라보되,
맹목적으로 앞만 바라보지 않는 사람이 되자.

그리고,

오늘을 살자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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