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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사회 :: Current Issues

세조, 그는 조선의 야누스인가?

http://en.wikipedia.org/wiki/Janus

드라마 <공주의 남자>가 연일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조선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시나리오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늘 대중하게 어필할 수 있는 비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비극성은 주인공 커플의 두 아버지인 수양대군(훗날의 세조)과 김종서로부터 비롯된다. 그리고 수양대군의 이중성은 이러한 비극성을 배가시킨다. 세조, 그는 다정한 아버지이자 잔인한 군주였던 조선의 야누스였는가?

드라마 속에서 김종서는 선왕(문종)의 유지를 받들어 어린 왕(단종)을 보필하는 충신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에 반해 수양대군의 정치적 신념은 하나부터 열까지 권력투쟁으로 얼룩져 있으며, 왕권수호라는 대의를 앞세워 자신의 야욕을 채우려는 야멸찬 대군으로 그려지고 있다.

과연, 大虎 김종서는 조선의 둘도 없는 충신이었으며 수양대군은 권력에 눈 먼 파렴치한이었을까?

권력다툼이라는 거대한 게임에서 둘은 대척점에 서있는 장기 말들이었고, 왕권과 신권이라는 각기 상충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수양대군은 누구보다 이러한 대립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왕자였다. 자신의 할아버지 태종 이방원이 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켰을 때부터 왕권과 신권의 대립은 잔인한 도륙으로 항상 그 끝을 맺어왔기 때문이었다. 이 제로섬 게임에 대한 수양의 공포는, 적자가 아닌 왕자인 그의 위치를 고려해 봤을 때, 생사여부와 직결된 어마어마한 것이었으리라. 수양의 김종서에 대한 반감과 경계는 그의 공포감에서부터 이해되어야 할 것인데, 김종서에게는 수양과는 달리 선왕의 유지를 받들어 행한다는 정통성과 정당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수양의 공포가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정통성과 정당성을 교묘히 가로챈 신하(김종서)의 제거 이후 멈춰졌어야 한다. 수양은 끝내 칼을 내려놓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당당해질 수 없었다. 그가 적법하게 왕위를 계승한 단종을 몰아낸 순간, 그는 인간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이해 받을 수 없는 음험한 군주가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한편, 인륜을 저버린 숙부였을 지라도 세조는 제법 훌륭한 정책을 폈던 임금이었다. 6조직계제를 통해 왕권을 강화하였고, 중농정책(둔전 증설)을 펴서 백성들을 배불리 하였으며, 상평창을 개창한, 조선의 국가체제를 완성시켜간 임금이었던 것이다. 혹자는 왕으로써 수양의 업적들을 고려하여 그에게 정당성을 부여해주었고, 그리하여 정통성 대신 정당성을 획득한 세조는 일부 역사가들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조선의 국가체제는 과연 세조와 김종서의 운명의 대결로부터 비롯되어야만 했던 것일까? 조선 초 왕과 신하의 위계구조를 감안해보면 제2, 제3의 계유정난은 필연적으로 일어났을 것이라고 세조를 옹호하는 것이 합당한 것일까? 필자는 이러한 관점에 수긍할 수 없다. 계유정난, 즉 수양이 일으킨 亂은 성리학의 나라인 조선의 관점에서 보면 용서받을 수 없는 쿠테타에 불과하다. 만약 조선이 춘추전국시대의 한 국가였다면 세조는 조선의 마키아벨리였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의를 최우선시 하는 조선에서 수양은 조카와 형제, 수많은 공신들을 무참히 살육한 냉혈한에 더 가깝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를 인륜을 저버린 숙부가 아니라 냉혹한 카리스마를 지닌 군주이며, 시대적 상황이라는 미명 하에 그의 패륜을 어느 정도 정당화 해주기까지 하는 걸까?

흔히들 정치는 포용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성군은 관용을 베풀 줄 아는 도덕군자여야 하지, 세조처럼 권력상실의 공포에 시달리는 편집증적 환자여서는 안 된다. 그러나 현실에서 정치적 포용은 서로의 생존이 보장되는 정상적인 상황 하에서만 가능하다. 정치에서 정상적인 상황이란 정통성을 가진 자가 집권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문제는 이러한 정통성 없이는 정당성을 획득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세조는 기존의 헌정질서를 전복시킴으로써 정통성을 얻을 수 없었고, 그의 대안은 새로운 헌정질서를 통한 왕권강화였다. 그러나 정통성과 정당성 없는 왕권강화는 이루어질 수 없는 미몽이자 국가발전을 위시한 세조의 개인적인 권력욕에 지나지 않는다. 군주는 정치가이다. 권력만을 쫓는 자는 모리배이지, 정치가가 아니다.

군사독재 시절 헌정질서의 파괴로부터 비롯된 정통성의 부재를 오늘날 우리는 대한민국 정치사의 가장 큰 오점이라 여기고 있다. (헌정질서파괴는 배타적 특권층 형성으로 귀결되었다는 점에서 세조와 군사독재자는 매우 닮은 듯 보인다.) 그렇다면 세조의 헌정질서파괴 역시 군사독재보다 하등 나을 것 없는 조선역사의 오점이지 않을까? 실제로 훈구파 라고 불렸던 기득권층은 자연히 부패해졌고, 이러한 기득권층의 부패야말로 조선을 병들게 했던 사화와 붕당의 근본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일반적인 정치에 대한 정의, 누가 무엇을 언제 어떻게 가지느냐, 에 따르면 세조의 계유정난은 그의 재위기간(1455~68)동안 일어난 무력을 통한 권력다툼으로 종결된다. 정통성의 부재는 세조를 편집증적인 환자로 만들었고, 그가 정통성을 획득하고자 했던 모든 시도들은 무위로 돌아갔으며, 왕권을 강화시키겠다는 그의 정치적 정당성 역시 유약한 예종이 즉위하면서 산산조각 나버렸다. 그런데 왜 우리는 아직도 이 반란의 수괴를 뛰어난 국가 지도자로 바라보곤 하는가?

겨레의 작가 김동인의 소설 <대수양>을 한 번 보자. 소설에서 단종은 나약하고 무능한 왕, 즉 구한말 조선인들을 상징하고 수양은 이들을 구제할 수 있는 메시아로 그려지고 있다. 그렇다. 우리는 수양에게서 난세를 타개할 강력한 리더를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평가를 더 이상 허용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는 너무도 쉽게 세조의 정통성의 부재를 눈감아 주고 있다. 이 이야기를 민주주의 시대로 옮겨와 보자. 민주주의에서 정통성은 국민들로부터 비롯된다.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 선출된 자가 집권하여 국가를 운영할 때에 비로소 민주주의적 정통성과 정당성 모두 만족시킬 수 있다. 선거의 사대원칙을 무시한 선거나 군사 쿠테타로 집권한 정부는 정통성의 부재를 가시적인 사회복지의 개선이나 경제성장으로 얼버무려 스스로에게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이 얼마나 세조와 흡사한 모습인가.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면서, 비록 소수라 할 지라도, 누군가의 행복과 삶을 짓밟는다면 그 기틀은 리더가 바뀌는 순간 곧바로 무너질 것이다. 리더는 만인을 이끌어야 하며 그 과정에서 단 한 사람이라도 고의적으로 도태시켜서는 안될 일이다. 리더의 제일목표는 국가 혹은 사회발전이어야 하며, (자신의 권력을 위협할 지라도) 국가에 헌신할 수 있는 자들이라면 포섭하여 함께 발전을 도모함이 마땅하다. 이것이 리더가 행해야 할 정치인 것이다.

그러나 세조는 자신의 반대파라면 여과 없이 모두 숙청해버렸다. 세조의 정치, 즉 공포정치에는 역사가 증명하듯 한계가 있다. 리더가 공포정치를 행함에 따라 그는 점점 더한 공포감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 그 한계이다. 이러한 공포감은 어느 한계치에 도달하게 되면 혁명의 씨앗을 잉태하기 마련이다. 결국 리더는 사회안정이라는 그 자신의 정치적 목표에서 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점에서 필자는 세조를 오늘날 우리가 추구해야 할 참된 리더도, 조선이 원했던 군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형수의 무덤을 파헤쳐 부관참시까지 저지른 세조의 모습은 정신병을 앓고 있는 환자를 연상케 한다. 정녕 우리는 그를 조선의 야누스라 부르며 떳떳해질 수 있는가? 세조가 강요한 희생, 수많은 살인과 협잡, 은 발전을 위한 필연적인 것이었다, 라고 천명하는 순간 우리는 일제시대와 군사독재 시절 일구어진 피 비린내 나는 경제적 성장을 국가발전이라 여기게 될 것이다. 누군가의 친구와 가족의 목숨을 볼모로 한 경제성장은 국가발전이 아니지 않는가. 대한민국이 고도로 다원화되고 절차적인 민주주의의 원칙을 진정으로 고수하는 사회라면, 이제는 그 역사관을 바꾸어 새로운 리더상을 성립해야 할 때이다.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은 너무도 오랫동안 정의를 갈망해왔다. 정의로운 리더를 고대해왔다. 지금 대한민국이 필요로 하는 것은 야누스가 아니라, 정당성과 정통성이라는 천칭을 가진 유스티치아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