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천재 첼리스트, 자클린 뒤 프레

Posted by 만호
2011.09.15 17:38 EDITORIAL/문화 & 예술 :: Culture & Art
인간의 목소리와 가장 흡사한 사운드를 내는 악기가 첼로인것을 아시나요? 어떤 사람들은 첼리스트가 악기를 껴안고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첼로는 단순히 손을 움직여 켜는 악기가 아니라 악기를 품은 마음으로 연주하는 악기이다." 

여러분들은 유명한 첼리스트 하면 누가 생각나시나요? 제가 아는 분들은 고작 한국의 장한나, 1955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중국계 미국인 요요 마, 그리고 2007년 80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첼로의 '대부' 로스트로포비치 입니다. 로스트로비치가 죽음은 음악계의 큰 슬픔과 아쉬움을 불러왔고 한동안 큰 이슈거리였지요. 하지만 로스트로비치만큼의 재능은 가진 여성 첼리리스트가 더욱 더 짧은 인생을 살다가 사라졌을때의 그 슬픔은 얼마나 클까요?  

오늘은 수많은 사람들을 첼로의 매력에 빠지게 만들었던 한 비운의 여성 첼리스트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녀의 이름은 자클린 뒤 프레.

저는 그녀를 아름답지만 흐르는 시간에 어쩔 수 없이 꽃잎을 떨어트리는 꽃에 비유하고 싶네요.  

아름다운 꽃이 오랫동안 남길 원하시지 않나요? 하지만 그 꽃들이 멈추지 않는 시간에 흘러 금방 고개를 숙일때'아.. 조금만 더 볼 수 있다면..." 이라고 생각해본적 누구나 다 있을것 같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자클린 뒤 프레의 이야기를 들었을때 느낀것이 아름다운 꽃이 일찍 지는것을 보았을때 받은 느낌과 비슷했어요. 지금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이 이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시길 바라며 뒤 프레의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합니다.

http://hahamin.egloos.com/5162398

1945년 영국 옥스퍼드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자클린은 3살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첼로소리에 반해 관심을지게 됩니다. 5살때 선물로 받은 첼로를 시작으로 뒤 프레의 재능이 서서히 들어나게 되구요.  그녀의 재능은 1955년 길드홀 음악학교에서 다듬어지게 되고 어린나이의 그녀는 그녀의 재능으로 인해 음악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합니다.  1961년 16살의 나이로 런던에서 정식데뷔를 한 뒤 프레는 1965년 BBC교향악단과의 성공적인 '엘가 첼로 협주곡'으로 더욱 더 유명해지게됩니다. 마침내 1966년 뒤 프레는 첼로의 대부라고 불리우는 로스트로포비치에게 가르침을 받게되지요. 스승 로스트로포비치는 뒤 프레의 가늠할 수 없는 재능에 감동하여 뒤 프레에 대하여 이런 말도 했다합니다. "(자클린은) 내가 이룬 업적과 동등한, 아니 그 이상을 해낼 수 있는 젊은 세대의 유일한 첼리스트이다.” 이어서 1967년에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대니얼 바렘보이와 결혼을 하여 음악으로 이루어진 커플은 여러 듀오곡을 함께 연주함으로서 더 많은 관심과 인정을 받게됩니다.  그녀의 확실한 테크닉과 풍부한 포현력 그리고 열정적인 연주는 평론가로 하여금 "그녀는 나를 미치게 만든다" 라는 찬사를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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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까지의 뒤 프레의 음악가로서의 인생은 그녀의 재능이 준 행복으로 평탄하지요. 하지만 1971년 뒤 프레는 28살의 나이로 다발성 뇌척수 경화증이라는 희귀병을 얻게됩니다. 이 병은 근육이 서서히 굳는 병으로 말기에는 눈물을 흘릴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르게 된다고 합니다.  첼로를 연주하는것이 모든것인 뒤 프레에게는 청청벽력의 선고였지요. 몸을 움직일 수 없어 그렇게도 사랑하는 음악을 할 수 없다니.  어쩌면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선고가 아니였을까요?

뒤 프레의 병은 갑작스럽게 찾아온것이 아니였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단순한 근육통, 피곤함인줄 알았던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뒤 프레의 음악적 감각을 마비시키고 급기야 연주중에 활을 놓치는 실수를 하게 됩니다. 끝내 천재라고 불리우던 뒤 프레는 그녀의 음악성 자질에 대해 비평을 받게 됩니다. 뒤 프레는 쇼핑을 하기를 좋아했는데 어느 날은 쇼핑 도중에 몸이 마비되어 다른 사람이 도와주기전에는 몸을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지경까지 이루었다합니다. 이렇게해서 집에 늦게 도착하여 남편인 다니엘 바렘보임이 어째서 늦게 돌아왔냐 물으면 뒤 프레는 좋은 옷이 너무 많아 시간이 오래걸렸다, 라고 대답하였다 합니다. 그때야 비로소 뒤  프레는 자신에게 이상한 점이 있다는것을 깨닫고  자신의 병명을 알게되었는데 그때 그녀가 이렇게 말했다 합니다. "첼로를 연주를 할 수없던 것이 자신의 감각이 무뎌져서가 아니라 병에 걸려서이기 때문이라 다행이다." 그녀가 가진 음악에 대한 자존심을 느낄 수 있는 구절이지요?

끝내 1973년, 뒤 프레는 연주활동을 중단하고 걷지 못하는 자신의 몸을 휠체어에 의지하여 끝내 포기하지 못하는 음악생활을 제자들을 가르치며 시간을 보내지만, 그 마저 몸상태가 악화되어 불가능하게 됩니다. 그녀의 남편 대니얼 바렘보이는 더 이상 뒤 프레를 방문하지 않고 그녀의 친구들도 서서히 떠났습니다. 음악을 사랑한, 하지만 음악을 할 수 없는 첼리스트 뒤 프레는 병상에서 14년동안 자신이 과거에 연주한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1987년 런던, 42세의 나이로 자클린 뒤 프레는 자신의 남편 대니얼 바렘보힘가 보는 앞에서 숨을 거두게 됩니다.  자클린 뒤 프레.. 비운의 천재 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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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년만을 살기에는 너무 아까운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그녀. 정말이지 아름답지만 금방 지는 꽃과 갔았던 그녀..   그녀의 천재적 음악은 지금까지도 큰 호평을 받고 있으며 그녀가 사용하던 첼로는 또 다른 천재 첼로리스트 요요 마의 의해 사용되고 있다고 하네요. 

만약 그녀가 지금까지 살아있다면 어떠한 음악을 연주했을까요? 그녀의 비운이 그저 아쉽기만 합니다.


첼리스트: 자클린 뒤 프레
지휘자: 대니얼 바렘보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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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imsimhe
    • 2011.11.23 00:54 신고
    이럴때보면 삶은 공평하지 못할때가 분명ㅎㅣ 있는거 같아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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