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목욕탕

Posted by scorpiㅇ
2011.09.29 17:26 EDITORIAL/문예 :: Literature

그림 출처: http://yakdol.tistory.com/120


어릴 적 아빠 손을 잡고 쫄래쫄래 따라갔던 공중목욕탕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거대한 배불뚝이 아저씨, 삐쩍 골은 아저씨, 옆집 형, 문구점 아저씨, 한번도 보지 못한 새로운 사람들. 추운 겨울날 모두 옹기종기 모여서 탕 속에 몸을 녹이고 있었다. 모락모락 나오는 김을 보면 빨리 탕 속에 들어가고 싶기도 하고, 또 너무 뜨거우면 어쩌나 하는 마음도 들고. 결국 발만 먼저 담가보고 몸에 온기가 돌면 서서히 따뜻한 탕 속에 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그리곤 열기가 너무 뜨거워지면 얼른 나와서 냉탕에 풍덩 들어갔다. 몸이 찌릿찌릿. 개구리헤엄으로 여기부터 저기까지. 수영장 같다. 물이 튀는 게 거슬렸는지 열탕에 앉아있던 아저씨가 한마디 하면 왠지 머쓱해지고 서럽기까지 했는데. 그럼 아빠가 와 같이 사우나에 들어가자고 한다. 사방에 까만 나무가 박혀있는 이상한 방. 몸에 좋은 참숯이라고. 수증기 같은 것이 나니깐 왠지 열대 우림에 온 것 같기도 해. 코로 들이마시면 그래도 바짝 마르던 목이 좀 견딜만한 느낌이다. 모래시계에 모래가 다 내려가면 나간다고 하시는 아빠. 나도 같이 참을래. 아빠랑 같이 눈을 감고 흐르는 땀을 팔로 훔치면서 견뎌보지만 너무 더워서 결국 나 먼저 나와서 샤워를 한다. 아빠가 나왔다. 이제 비누칠 하고 씻고 나가야 한다. 우리 아빠 등은 항상 내가 비누칠 한다. “아빠 등은 너무 넓어” 하고 불평을 하기도 했었지. 그래도 다 하고 나면 왠지 나도 뭔가 한 것 같은 뿌듯함이란. 그리고 공중목욕탕을 나오고 나면 왠지 노곤노곤해서 잠이 들곤 했다.

그 때가 그립다. 마치 무슨 의식처럼 순서를 지켰고, 가끔은 그 순서를 깨고 내 마음대로 자유롭게 헤엄치던 그 때. 영원히 어린 아이일 줄 알았는데 어느새 20대 청년이 되어 타국에 와있다. 미국에 있는 좁은 샤워 부쓰는 불편파기도 하고 탕 속에 몸을 담가 피로를 풀고 싶은데 계속 서있다 보니 다리가 더 저릴 때도 있다. 그래서 나는 한국에 가면 항상 공중목욕탕을 간다. 아빠가 있을 때는 꼭 아빠와 함께. 조금 큰 후에 찾아간 공중목욕탕은 더 좁아졌고 나이 든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공중 탕 이용은 비위생적이고 외래문화가 들어오면서 자신의 알몸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인듯하다. 하지만 역시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대머리 아저씨와 틀니를 씻는 늙은이. 저 사람은 무슨 대기업 사장일까? 저 아저씨는 길거리의 노숙자인데 한 달에 한 번 하는 목욕을 오늘 하는 걸까? 모르겠다. 여기서는 그냥 다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한 인간일 뿐이니까. 훈장도 없고, 주홍글씨도 없다. 대기업 사장도, 거리의 노숙자도 다들 그냥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늙어가는 나약한 인간일 뿐이다. 탕은 항상 정직해서 물에 비친 내 얼굴에 주름들을, 쳐지는 내 몸을 보여주니까.

어릴 때는 정말 넓고 어떤 것도 막을 것만 같았던 우리 아빠 등이 작아 보인다. 내가 커버린 거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아빠가 작아진 걸까. 아니, 둘 다인가 보다. 아빠가 만들어 주신 울타리에서 항상 흡족하게 부족한 것 없이 살아온 나는 이렇게 커버렸고, 한 가정을 책임지던 아빠의 어깨는 이렇게 쳐져 버렸다. 맛있는 거 있을 때마다 내가 다 먹어서 그런가 보다. 아빠 일 하고 계실 때 열심히 놀고 자서 그런가 보다. 그냥 잘 커 주는게 선물이라고 해서 그냥 그렇게 살아서 그런가 보다. “아빠 어깨 무거워요?” 라고 물어보고 싶은데 너무 당연해서 왠지 그 말을 꺼내는 내 입이 부끄럽고, 콧등이 시큰거리고 말 하는 순간 목이 메일 까봐 못 하겠다. 왠지 낯간지러워. 새삼스러워. 이제는 직업병 때문에 등이 계속 굽고 팔이 굳어서 뒤로 돌리는 것도 잘 안 되는 우리 아빠. 괜찮냐고 물어보면 항상 괜찮다고 말하는 우리아빠가 가끔 무섭다. 어릴 적 무등을 태워주시던 외할아버지가 갑자기 파킨슨 병으로 걷지도 못하게 되신 것처럼 그렇게 될 까봐. 항상 괜찮다고 이까짓 거 하나도 안 아프다고 말씀하셨다던 친할아버지가 후두암으로 그렇게 가신 것처럼 그렇게 참기만 할 까봐. 끝까지 우리만 챙기고 자기 자신은 안 돌보시니까 그런 아빠가 무섭다.

하지만 "아빠 어깨에 진 짐 너무 무거우면 나눠서 들어요" 라고 말 하지도 못 한다. 항상 옆에 있게 해달라고 기도 하는 게 내가 하는 전부인 무능력한 나에게 화가 나지만 또 너무나 오랜 시간 보호 아래 있었기에 난 여전히 이기적이다. 아빠 힘들 때 차 운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일을 대신 해 드릴 수도 없다. 지금은 타국에 나와서 아빠 돈으로 사치를 누리고 있다. 그냥 이렇게 있으면 안 될 것 같은데 또 무력해 진다.  나중에 후회할 것 같다. 이렇게 있으면 나중에 너무 너무 후회할 것 같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말이라곤 아빠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그 말도 왠지 자라면서 빈도수가 줄어들어버렸다. 괜히 화를 내는 일만 늘어버린 나. 굳어버린 아빠 어깨가 괜히 싫어서 헬스클럽이라도 끊고 운동하고 마사지도 받아서 풀라고 다그치지만 결국 나때문인걸 안다. 아빠가 일해서 내가 미국에서 공부 할 수 있는거니까. 결국 화는 미안함으로 바뀌고, 다시 부끄러움으로 바뀐다. 하지만 부끄러워도 말 할걸. 아빠를 닮고 싶다고. 콧등이 시큰거려도, 목이 메여도 말할걸. 많이 많이 사랑한다고, 아빠가 최고라고 말 할걸. 그저 탕 속에 같이 앉아 있는 것만으로 아빠한테 내 말이 전달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이렇게 아빠랑 있으면 가끔 내 미래도 보인다. 내 미래의 모습. 나도 나중에 아빠가 되면 어린 아들과 함께 목욕을 하러 오겠지. 어릴땐 몰랐는데 탕에 가만히 앉아있는 사람들은 누군가의 아버지들의 모습이다. 내가 감히 상상할 수 없던, 아니 상상하려고 노력하지 않은 가장이라는 자리가 만든 사람들이다. 가만히 흔들리는 수면 위로 아빠 얼굴이랑 내 얼굴이 비친다. 아빠에게는 어릴적 아빠를 올려다 보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지 않은데 나는 그 때와 지금의 아빠가 왠지 내 투정과 응석에 적응해버린, 나 때문에 점점 기대치를 낮추게 된 그런 모습으로 보인다. 내가 어떤 모습이라도 사랑할 자신이 있다던 우리 아빠, 그래도 여전히 유쾌하시고 웃음이 많으시고, 그 웃음이 기억에 남는다. 이제는 사우나 열기를 견디다가 나보다 먼저 나오시는 아빠. 가끔 불편한 팔로 혼자서 타울로 등을 씻으시는 모습을 보면 내가 씻어드리고 싶은데 왠지 또 왠지 머쓱해서 그만 둔다. “아빠 등은 너무 넓어.” 열탕의 보글거리는 거품 소리에 내 목소리가 묻혔는지 아무 말씀 안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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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리
    • 2011.09.26 03:06 신고
    마음이 너무나 훈훈해지면서 한편으로는 아버지생각에 코 끝이 찡해지는 글이네요. 항상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타지에서 힘들지만 성실히 생활하는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목욕탕이 아니더라도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면 왠지 내 인생의 무게까지 다 떠맡고 있는것 같아서 항상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아버지의 사랑에 너무 익숙해져 문득문득 그 고마움이 생각날 뿐이어서 부끄럽습니다.
  1. 정말 공감가는 글입니다. 저도 잠시 옛날 생각에 빠지게 만든 글이네요. 나이 들면서 아버지가 목욕탕 가자하시면 약속있어요 혹은 오늘 바빠요 등의 핑계를 대면서 아버지랑 목욕탕 같이 안가본지도 꽤 몇년 흐른거 같네요 ㅎㅎ 방학때 한국 가게되면 아버지한테 공중목욕탕 가자고 한번 이야기 해봐야 겠네요. 가슴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글 감사합니다.
    • 저도 항상 핑계만 대며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는 아들이었습니다. 사춘기 때는 특히 더 그랬고요. 하지만 더 자라고 보니 그 때가 후회스럽습니다. 인생은 결국 끝이 있다는게 정말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스스로 부정했지만, 주어진 시간안에 서로 더 사랑하고 고마워하는 행복한 기억들을 많이 만드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박희원
    • 2011.09.27 15:42 신고
    도서관에서 몰래 눈물을 훔치고 있습니다. 엄마니까 내 할 일도 엄마한테 떠밀어버리고, 그게 사랑이라고 스스로 합리화하며, 이젠 내 속에 담아둬야 할 말들도 엄마한테 털어놓으며 내 곤혹감을 엄마한테 전가시키는 저는 참 못되먹고 이기적이고 염치없는 딸이지요.
    • 너무다 당연한 사실인데도 저도 까먹고 있습니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들이 다른 누군가의 아들 딸들이셨고, 우리도 결국 부모가 되는 것을요. 어머니라서 투정부려도 되는 줄 알았고, 내 기분이 안 좋으면 막말을 늘어놓으며 어머니 기분을 상하게 하면 비로소 내 기분이 조금 풀리지만 자식 걱정하시는 어머니 마음은 상처 투성이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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