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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사회 :: Current Issues

세종대왕과 지도자가 갈등에 대처하는 자세

태종 이방원은 그 아들 세종에게 묻는다. 아무도 죽이지 않고, 칼이 아닌 말로 설득하고, 모두를 품고, 오직 인내하고 기다리겠다는 그 어리석은 생각에 변함이 없느냐고. 모두의 진심을 얻어, 모두를 품고, 모두가 제 역할을 찾는 그런 조선을 만들겠다고 대답하는 세종에게 태종은 다시 반문한다. 권력의 독을 안으로 감추고, 오직 인내하고 참는 너의 길은, 친형제를 죽였고, 아내의 집안을 도륙했으며, 군주에게 반기를 드는 자와 잠재적으로 반기를 들 수도 있는 자들을 모조리 숙청했던 나의 길보다 훨씬 더 참혹할 것이라는 것을 아느냐고.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는 상반된 군주론을 가지고 치세를 펼쳤던 한 父子에 관한 이야기로 서막을 연다. 조선의 과학과 기술을 눈부시게 발전시켰고, 잡학으로 멸시 받던 지리와 역학에 대한 서적을 편찬하였으며, 북방을 개척하여 영토를 넓히고, 훈민정음을 창제한 천재군주, 세종. 이러한 그의 업적은 그의 괴물 같았던 아버지 태종이 다져놓은 정치적인 환경 때문에 가능했었다는 것이 학계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주지의 의견이다. 그 정치적 환경이란 군주가 권력을 독식하는 절대왕정, 오늘날의 민주주의에서는 결코 용납되지 않는 그런 환경이었지만, 사실 세종은 그의 아버지가 물려준 절대권력 때문에 늘 신하들과 갈등했던 군주였다.

세종은 칼을 내려놓고 중신들과 갈등하고 대립했었다. 칼을 들지 않았으니, 궁궐의 크고 작은 일들과 국가의 근간에 관한 모든 일들이 갈등으로 飛火됐다. 오늘날 여의도 정치에서 늘 볼 수 있는 그 갈등과 전혀 다르지 않는, 그런 정치가 육백여 년 전 구중궁궐에서도 행하여졌던 것이다. 이처럼 왕정이 되었든 민주정이 되었든 사회가 구성되고 그 사회의 가치들이 정치활동, 권력, 에 의해 결정 되는 한 갈등은 필연과도 같다. 필자는 지금부터 세종이 어떻게 갈등에 대처 하였고 그의 정치론이 어떻게 21세기 민주주의 대한민국 사회에서 통용될 수 있는지 논의해보고자 한다.

혹자는 21세기의 정치문화와 15세기의 정치문화를 비교하는 것이 무리라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그 이름만 다를 뿐이지, 흔히들 말하는 보수와 진보의 대결구도는 있었다. 조정의 중신들과 젊은 집현전 학사들의, 그리고 여당과 야당의 대결. 한쪽이 다른 한쪽과 싸워 그 자신의 이득에 부합하는 쟁점을 어젠다로 선점하여 감에 따라 권력을 공고히 하는 것, 이것이 군주정과 민주정 아래에서 공통으로 행해지고 있는 정치의 일면이라면 일면일 것이다.

이러한 권력논리에 따라 지금의 대한민국은 국방, 외교 그리고 경제에 이르기까지 정치가 포괄할 수 있는 모든 방면에서 갈등이 노골적으로 표출되고 있다. 분배와 성장 같은 먹고 사는 문제에서부터 민주주의와 탄압, 민족과 통일이라는 가치문제에 이르기까지 보수와 진보는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롭게 각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 갈등의 장에서 어느 한쪽이 승자가 되고 패자가 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왜냐하면 어느 한 쪽이 이 각축장에서 밀려나버린다면 우리 사회는 더 이상 그 다양성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통합은 민주주의가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기치이자 그 核이지만, 갈등 없는 통합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갈등은 사회통합의 필요충분조건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는 이 필요충분조건에 따라 잘 움직이고 있는가?

모든 군주와 대통령들에게는 그 자신들이 최우선으로 삼는 과제, 즉 어젠다(agenda)가 있다. 이 어젠다가 선거공약의 핵심이자, 당선 후에 정부가 추진할 정책으로 발전하게 된다. 일례로 2007년의 이명박 대통령의 어젠다는 (토목건설을 통한) 성장이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4대강 프로젝트를 포함한 모든 어젠다는 국민 대다수로부터 반발을 불러 일으키고 있고, 덕분에 국민과 정부는 그 어느 때보다도 격렬하게 갈등 중이다. 어젠다란 함께 협의해야 할 사항이나 주제이다. 즉, 갈등이 존재하는 사항 혹은 주제이기 때문에 협의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들의 효율성과 범국가적인 필요성은 차치하고서라도 정부가 어젠다를 다루는 방법은 협의가 부재되었다는 점에서 시대착오적이며 반민주적이다. 대통령의 정치력에 따라 대립과 갈등은 극복될 수도 있고 증폭될 수도 있다. 2009년 소고기 수입문제로 말미암은 정부와 국민의 반목은 4대강과 미국과의 최근의 FTA 조약에 이르기까지 그 여진이 더욱 거세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 이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력 결핍을 겸허히 인정하고, 조선 최고의 성군이었던 세종이 갈등에 대처했던 자세를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

훈민정음을 창제하는 기나긴 과정에서, 비록 正史에는 기록되지 않았을지언정, 많은 갈등이 있었을 것이다. 성리학의 나라인 조선에서 감히 대국에서 쓰는 문자 외에 독자적인 문자를 만드는 것 자체가 성리학의 질서에 반하는 일이라는 종래의 폐쇄적인 생각에 맞서 세종은 자신의 어젠다를 관철시켰다. 백성의 소리가 중국과 달라, 어리석은 백성이 끝내 제 뜻을 소통하지 못하는 것을 어여삐 여겨 창제하였으나, 단지 이뿐이라면 조정의 중신들이 반대를 할 까닭이 없었을 것이다. 훈민정음의 창제를 통해 세종은 자신의 최대 정치적 아군인 집현전과 더욱 그 관계를 돈독히 할 수 있었고, 그 집현전을 통하여 다시 왕권을 강화할 수 있었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훈민정음 창제는 일반백성과 군주의 소통을 보다 더 원활히 하기 위한 장치였을 테지만, 고을의 사또와 백성들의 소통 조차 거의 불가능했다는 조선의 상황을 고려해보면 훈민정음은 세종과 집현전의 정서적 교감과 소통, 동일한 이해관계 도모를 위한 장치였다. 즉, 훈민정음의 창제는 집현전이라는 자신의 정치적 지지자들과의 동맹을 위한 어젠다였다. 그렇기에 조정의 중신들은 자신들의 정적인 집현전을 견제하기 위하여 훈민정음의 창제와 반포에 있어서 세종과 대립각을 세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논리를 민주주의의 논리에 입각해서 살펴보면 지지자들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어젠다를 추진하는 것이야말로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책임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지금은 믿을 수 없지만) 이 대통령은 국민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 속에 당선 되었다. 그의 지지계층은 협소한 지역논리에 국한되어 있지도 않았고, 보수와 진보라는 고리타분한 정치문화에 합일되지도 않았다. 전통적으로 보수정당을 지지해온 유권자들이 아니라, 파국으로 치달은 민생고 속에 지친 서민이 그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대통령은 토목공사와 대한민국 주류계급의 특권을 위한 어젠다만을 추진해나갔고, 그 결과 자신을 지지해주었던 계층을 살피지 못하는 정치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이것은 정치적 오류이자, 책임의 정치를 구현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과오이다.

사진 출처: artnews.mk.co.kr

물론 갈등은 국론을 분열시키는, 사회불안의 기폭제와 같아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갈등 그 자체는 현대사회의 다양성을 유지해주는 건강한 것이다. 고려대학교 최장집 명예교수가 말했듯이 사회통합은 정치의 최종 목표는 될 수 있지만 시작이 될 수는 없다. 민주주의 사회의 궁극적 목표는 가장 이성적이고 평등한 방법으로 다양한 계층의 의견을 조율하고 타협점을 찾아내어 갈등을 사회통합으로 이끄는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사회통합이 어떠한 방식으로 도출되느냐는 것이다. 과연 대한민국의 대통령들은 칼이 아닌 말로써 상대를 설득하고 수많은 의견들을 조율하여 왔는가. 대한민국은 갈등을 타파해왔는가, 아니면 국민들의 다양성을 타파해왔는가.

한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익숙한 통합은 다름 아닌 3당합당일 것이다. 간략히 요약하면 판이한 정파성을 가진 세 정당—민주당, 민정당, 신민주공화당—이 합당하여 그 해 대선에서 정권을 창출해낸 사건이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가 알다시피 진정한 통합이 아닌 국민에 대한 배반이요, 모사꾼들이 획책한 권력놀음에 지나지 않는다.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갈등을 미봉하는 것과 갈등을 표면화 하여 논의를 통해 해결점을 모색하는 것은 명백히 다르다. 이러한 점에서 세종의 경연정치는 야합과 군화, 권력의 독에 의해 난자된 대한민국 정치를 타개할 수 있는 지표가 될 수 있다. 본래 경연은 신하가 임금에게 경서를 강연하는 일이다. 임금에게 경학을 가르쳐 유교정치의 이상을 구현하는 것이 그 목적이나, 차츰 과도한 왕권을 규제하는 기능을 맡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경연은 왕과 신하가 논쟁하는 자리였고, 그렇기 때문에 각기 다른 이해관계가 갈등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자리였던 것이다. 이토록 불편한 자리를 세종은 총 1898번 가졌다. 아버지 태종이 12번의 경연을 연 것과는 확연히 비교되는 수치이다. 세종은 1898번 자신의 반대파들과 첨예하게 대립했고, 번민했고, 갈등했다. 하지만 이 경연에서 조선의 세법이 개혁되었고, 법전이 편찬되었다. 학사들과 중신들은 서로의 이념을 무기 삼아 토론했고 협의했다. 500년 역사를 가진 조선의 근간은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 속에서 세워진 것이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민주화 이후 미봉된 갈등이 한국사회에는 산적해있다. 힘과 공포를 앞세운 탄압정치의 한계는, 마키아벨리가 지적했듯이, 계속해서 더 큰 공포를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한계에 다다른 국민과 정부의 갈등이 더 높은 산성을 쌓는다고 사회통합으로 수렴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현 정부가 직면한 갈등의 근원은 그들의 정당한 요구를 외면하고 묵살하고 폭력으로 맞선 데에서 기인한다. 협의와 설득의 정치가 지나치게 이상적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이제 세종의 정치는 불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묻는다. 어떻게 협의와 설득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강령을 저버리고 민주주의의 정의가 성립될 수 있겠는가.

11,492,389명의 신뢰와 기대를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대통령이다. 이 천백만 여명의 국민 중에는 월남전에 참전하여 죽음의 공포와 함께 청춘을 보낸 사람도 있을 것이고, 중동의 공사장에서 또 하나의 대한민국을 일군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회통합이라는 미명 하에 그들을 외면하기엔 그들의 희생은 너무나 크다. 요즈음처럼 정부가 갈등을 묵살해버리는 순간, 사회의 소외집단들이 만들어내는 정당한 균열은 표출되지 못하고 그들은 점점 더 정치적 기반, 나아가 삶의 기반마저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지난 몇 년 간 계속 되는 경제난에 우리 국민 스스로가 잊어버렸던 민주주의적인 가치들과 그로 인해 거리에서 소리 없이 절규하고 있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실재하는 희생자들을, 대한민국의 국민들을 이제는 보듬고 그들의 아픔과 분노를 이해하고, 그럼으로써 그들을 설득하여 다시 사회의 품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오백여 년 전 절대군주 세종 이도가 행하였던 民이 그 국가의 本이 되는 정치를 그리워한다. 국민 모두가 자신의 몫을 다 하며 한국인으로써 살아갈 수 있는 그런 대한민국을 꿈꾸며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