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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문예 :: Literature

이별, 그 후

(사진 출처: http://manzzang.tistory.com/66)


"6년 전 그와 헤어질 때는 솔직히 이렇게 힘들지 않았다.
그 때, 그는 단지 날 설레게 하는 애인일 뿐이었다.

보고 싶고, 만지고 싶고, 그와 함께 웃고 싶고,
그런 걸 못하는 건 힘은 들어도 참을 수 있는 정도 였다.
젊은 연인들의 이별이란 게 다 그런거니까.

미련하게도 그에게 너무 많은 역할을 주었다.
그게 잘못이다.
 
그는 나의 애인이었고, 내 인생의 멘토였고,
내가 가야할 길을 먼저 가는 선배였고, 우상이었고,
삶의 지표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이 욕조에 떨어지는 물보다 더 따뜻했다.

이건 분명한 배신이다.

그 때, 그와 헤어질 수 밖에 없는 이유들,
그와 헤어진 게 너무 다행인 몇 가지 이유들이 생각난 건
정말 고마운 일이었다.

그런데 그와 헤어질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고작 두어가진데,
그와 헤어져선 안되는 이유들은 왜 이렇게 셀 수도 없이
무차별 폭격처럼 쏟아지는 건가.

이렇게 외로울 때 친구를 불러 도움을 받는 것 조차 그에게서 배웠는데,
친구 앞에선 한없이 초라해지고 작아져도 된다는 것도 그에게서 배웠는데,
나를 이렇게 작고 약하게 만들어 놓고
그가 잔인하게 떠났다.” 

-그들이 사는 세상, 12회 (2008)


새벽 두시가 넘어가면 우리의 감성은 민감해진다. 모두가 잠들어버린 깊은 밤의 고요함과 하루의 피곤이 적당히 섞여 마음이 노곤해 지는 탓일까. 매번 아무 반응 없이 스쳐 듣기만 하던 노래 가사가 마음을 울리고, 별 생각 없이 읽게 된 문구에 한없이 공감을 하고, 어쩌다 들춰본 누군가의 사진을 보며 왠지 모를 감정들이 한꺼번에 다가옴을 느끼기도 한다.

조금 더 나아가, 혹시 마음에 누군가를 두고 있다던가, 이미 지나쳐버린 인연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는 시점이라면 새벽녘은 우리에게 더욱 더 치명적이다.

분명 사랑은 달콤하기 짝이 없는 것인데, 사랑에 다가가는 길은, 혹은 사랑을 지나쳐 오는 길은 우리가 인정하고 싶지 않을만큼 너무나 아프다. 어느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랑은 마약과도 같으며,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강렬한 감정” 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사랑은 우리에게 마약과 같이 위험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누군가에게 관심이 가고 마음을 줘 버리는 순간, 우리는 수많은 지키지 못할 말들을 내뱉게 된다. 물론 그 순간 만큼은 틀림없이 진실만을 전한다는 착각에 빠지고, 듣는 이 또한 곧이곧대로 믿어버릴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앞으로 영원토록 서로만을 바라볼 것이고, 서로에게 질려 버린다거나 감정이 사그라드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는 터무니 없는 말조차 뻔뻔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내뱉고, 또 당연하다는 듯이 믿어버린다. 언제 어떻게 무뎌질 마음인지 조금도 알지 못하면서 말이다.

(사진 출처: http://www.tccandler.com/blue-valentine-review/)

그렇게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 년간의 관계가 끝나 참혹한 이별이 찾아오고, 그 후엔 고독한 혼자만의 싸움이 시작된다. 그건 바로 미련, 집착, 시기, 그리고 질투와의 싸움이다. 우리는 구질구질함을 무릅쓰고 주변 사람들에게 눈물을 쏟으며 위로를 받기도 하고, 애써 태연한척 웃다가, 혼자만의 시간이 올 때면 다시 이별증후군에 휩싸인 채 우울한 나날을 보내기도 한다. 그(녀)의 험담을 하기도 하고, 너무 빨리 다른 인연을 만나 억지로 잊어보려고도 한다. 혹시나 다른 이성과 함께있는 그(녀)를 마주치게 될까 불안과 초조함에 시달리기도 한다. 또 한 번 추억을 뒤집어 엎고 아쉬움과 그리움에 눈물로 밤을 새운다던가, 미련조차 남지 않는 인연이라며 후회 막심한 나날을 보낸다던가, 헤어짐을 버텨내는 방법은 여러가지이다.

그렇지만 그 어느 방법도 쉽지 않다. 시간의 치유가 필요하고, 그렇게 마음의 상처가 아물 때 까지 묵묵히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인다고 해도 변하는 건 없다. 여전히 어렵고 여전히 시리다.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그에 따른 아픔은 우리가 당연히 거쳐야 할 배움으로의 과정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희망을 잃지 않고, 어디엔가 있을 운명의 상대에 한 걸음 더 다가갔다는 믿음과 함께 또 한번 일어서야 한다. 우리는 충분히 사랑스러운 존재이고, 또 그런 우리에게는 그만큼 더 멋진 미래가, 더욱 더 소중한 인연이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지금 이 순간 이별의 고통에 시달리고있을 누군가에게 위로의 마음을 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