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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사회 :: Current Issues

학교폭력: 무엇이 아이들을 이토록 잔인하게 만들었는가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중학교 때 일이다. 필자가 다니던 학교에는 늘 조용한 아이가 있었다. 그리고 그 아이를 괴롭히는 몇몇 반사회적인 아이들이 있었다. 그들이 피해자를 괴롭히는 이유 따윈 없었다. 그냥 스트레스를 풀려고, 재수 없어서, 혹은 쳐다봐서. 한 학급에 그런 아이들이 존재 했었다는 사실은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떠올리면 썩 유쾌한 기억이 아니다. 때묻지 않았을 것만 같은 14살 여중생들, 하지만 그녀들은 상상보다 더 대범했고 잔인했다. 화장실로 피해학생을 데려가서 손찌검을 하였고 급식 시간엔 실수인 척 하면서 그 아이 교복에 식판을 엎었다.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는 나는 가해학생들을 향해 그만 하라고 소리 쳤지만 돌아왔던 말은, “위선 떨지마” 이 한마디였다. “위선” 이라는 단어 조차 낯설었던 14살의 그날을 난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내가 그런 말을 들어서였기 때문만이 아니라, 교실 한가운데서 폭행을 당하는 아이를 누구 하나 나서서 말리지도, 내가 나섰을 때 거들기는커녕 그 상황을 애써 외면했던 황당한 기억 때문에.

사진 출처: http://cafe.naver.com/art7650/106

요즘 포탈 사이트의 일면 기사는 온통 “학교폭력”에 관한 기사들이다. 이젠 10대 청소년의 집단 성추행, 폭행, 살해, 절도 등의 기사들을 보고도 “놀랍지도 않다” 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아이들이 철이 없어서 욱하는 마음에 저질렀다고 보기엔 너무나 계획적이고 잔인한 소행에 소름이 끼친다. 아이가 아이다움을 잃어버린 사회가 되어버렸다. 청소년 폭력 중 가장 문제시 되는 집단인 중학생들의 비행은 급속하게 진행되는 신체발달에 비해 감정을 조절하는 뇌의 전두엽 발달이 미숙한 데서 기인한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청소년 폭력의 근본적인 문제를 찾기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일차적인 문제는 피해 학생의 어려움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하고 적절한 대응조차 못하는 담임교사 및 학교에 있다. 또한 자신이 겪는 심각한 피해에 대해 적절한 도움요청을 못하는 피해학생과 친구의 부족함을 약점 삼아 괴롭히는 가해학생 역시 문제이다. 이차적으로는 인간의 상상력에 도전하는 자극적인 미디어에 있고, 더 파고 들면, 그렇게 아이를 양육한 가해학생들의 부모의 문제이며, 맞벌이로 인해 아이와 충분한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하고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가족과 떨어져 직업 현장에서 보내야만 가정경제를 꾸려나갈 수 있게 만든 사회적 시스템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 글에서 누가 얼마만큼 더 잘못했나를 따지자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공통적으로 잘못한 것이 있다. 그건 바로 서로에 대한 “무관심”이다. 가해학생들이 괴롭힘을 당하는 친구 입장을 조금이라도 생각해 보았으면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부모의 관심은 남보다 우수한 성적과 명문대 진학에 쏠려 비교적 자녀의 인격적 성숙엔 무관심하다. 학교는 학생들을 명문대학교에 많이 보낼 수록 높은 명성을 얻게 되니 괜히 학교 명성에 타격이 갈만한 부정적인 사건을 적극적으로 다루길 꺼려한다.

http://photo.naver.com/view/2010121419101030881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때론 자기 몸 하나 제대로 간수하기 힘들 때가 많다.명문 카이스트 대학교를 졸업하고 대치동에서 수학강사를 하고 있는 아무개씨가 한 때 티비 프로그램에 출현해이런 말을 했다. "저는 무한 경쟁 시대에 살고 있어요. 연애 쪽에 조금이라도 정신이 팔리면 학원가에선 경쟁력을 잃어 퇴물이 되버리고 말거에요." 아무개씨는 이런 말을 함으로써 많은 여성들에게 비호감으로 전락했지만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을 씁쓸하게 만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그가 말한 것 처럼 무한 경쟁의 시대, 바로 적자생존의 사회에 살고 있다. 이런 치열한 경쟁사회가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낳았고,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는 남에 대한 “무관심”을 한층 가속화 시켰다. 이런 무관심은 학교 폭력에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학교폭력은 사람들의 눈이 전혀 없는 음지에서도 일어나지만, 매일 같이 생활하는 학급에서 공공연하게 일어나기도 한다. 한 학급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이라면 적어도 누가 누구를 괴롭히는지는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알고 있으면서도 사건을 수면 위로 들춰내지 못하는 건 굳이 고자질쟁이가 되면서까지 정의를 지키고 싶지는 않은, 남들에 대한 “무관심”이 한 몫 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 중에 옆집에 정확히 몇 명이 살고 있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솔직히 이야기 하자면 필자는 같은 아파트에 2년 째 거주하고 있지만 옆 집과 앞 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 잘 모른다. 가끔 벽을 통해 들려오는 소음이 그들의 존재를 확인 시켜 줄 뿐이다. 나에게 피해만 안주면 됐지 굳이 알고 싶지도, 알아야 할 이유도 없으니까. “사망한지 수 개월 만에 변사체로 발견, 사체 썩는 냄새에 이웃 신고” 우리는 지금 이런 기사의 주인공이 충분히 될 수도 있는 차갑고 살벌한 사회에 살고 있다. 

우리는 서로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건 가정에서 아이에 대해 관심을 갖는 거다. 최소한 내 아이가 몇 학년 몇 반인지, 누구랑 가장 친한지, 어떤 생활을 하는지 정도는 알아야 한다. 아이의 이전과 다른 행동들이 단순히 사춘기라서 그러는지, 아니면 정상궤도에서 벗어난 행동인지 항상 관심을 갖고 바라보아야 한다. 학교 선생님들도 예전처럼 절대 권력을 갖는 시대도 아니고, 점점 더 상궤에서 벗어나는 아이들의 무례함에 힘 빠지는 날들이 많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선생님들의 영향력이 약해졌다고 한들, 진정한 사랑과 관심으로 아이들을 대한다면 아이들도 그만큼의 사랑과 존경으로 대답할 것이다. 아이들의 성적에 집착하지 말고 아이들의 행동과 말에 관심을 기울여 주자. 학교 측도 학교 이미지에 피해가 갈까 폭력사태를 숨기는 경우가 있는데, 건강한 우리 미래세대를 위해 제발 정신차리자. 학우들도 마찬가지다. 친구를 괴롭히는 개인 또는 집단이 있다면, 그리고 그런 아이들에게 고통을 당하는 친구들이 있다면 모른 척 지나치지 말자. “누군가가 신고하겠지,” “아 내가 괜히 간섭했다가 일 크게 만들지 말고 모른척해야지” 라는 생각을 할 때, 괴롭힘을 당하는 친구는 누구라도 자기 대신 이 일을 어른들께 알리길 간절히 바라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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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시절 누구나 한번쯤 일탈을 꿈꾼다. 성인이 된 지금 떠올리면 창피한 기억들도 많고 지우고 싶은 일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성장하면서 누구나 겪는 성장痛이다. 누구에게나 시기와 질투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폭력은 사춘기 때 누구나 겪는 성장통으로 대변될 수 없는 심각한 범죄다. 필자는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이 세상에서 가장 인간답지 못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잔인하고 가혹한 형태로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친구들이 있다. 이제까지 학교 현장에선 학교폭력을 어린 아이들의 일탈 정도로 여기고 그때그
때 솜방망이 식 처벌로 일관하였으나, 이런 방법으로는 날로 지능화, 폭력화 되어가는 우리 아이들의 심각한 학교폭력을 방지하는 데는 역부족이다. 대통령까지 나서 학교폭력 근절을 지시하고 경찰이 직접 학교를 순찰하며 그 뿌리를 뽑겠다고 했지만, 그 실효성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의구심을 갖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얼마 전 대구에서 친구들의 집단 괴롭힘 때문에 자살을 선택한 한 남학생의 가족들은 아이가 그런 일을 당해왔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가장 예민하고 불안한 존재인 청소년 시절의 폭력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가족들에게도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되기 마련이다. 지금이라도 주위의 형제, 친척, 친구를 둘러보자. 그리고 그들이 학교에서 겪는 고충을 편안하게 들어 줄 수 있는 언니, 오빠가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 가정에서는 어려서부터 십계명에서 이야기 하듯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하고, 남을 배려하고 남의 고통에 공감하는 동병상련의 마음을 갖도록 가르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는 입시 위주의 성적지상주의 교육이 아닌 스포츠활동, 합창, 예술활동 등과 같은 단체활동을 활성화해서 아이들이 친구들과 즐겁고 편안하게 학교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인성교육에 힘써주었으면 하는 게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는 충격기사 앞에서 느끼는 필자의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