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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FICIAL PRESS/음주 Fantasy - 完 -

#4-4. 술자리 민폐남 심층 분석 2/2

술, 사람을 기쁘게도, 슬프게도, 웃게도, 그리고 울게도 만드는 인류의 기호품.  처음 술을 마실 때는 양처럼 온순하고, 조금 취하면 사자처럼 흉포해지고, 아주 많이 취하면 돼지처럼 더러워지며, 너무 지나치면 마치 사람처럼 행동하지만 원숭이처럼 허둥댄다는 탈무드의 이야기처럼 술은 인간의 역사에서 그 문화와 시기를 막론하고 뗄래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이어왔다.

보드카, 위스키 등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술들이 도처에 널려있지만, 한국인도 좋은 술 만들기와 술 잘 마시기로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들이다.  버클리오피니언의 세 번째 OP, 음주 Fantasy는 그런 한국인들의 술자리 문화 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판타스틱한 사례들을 모아 몇 가지의 시리즈로 나누어 재구성해보고자 한다. 


시대와 국경을 넘어 청춘 예찬에 빠질 수 없는 문화, 술. 앞서 음주 Fantasy 2부3부에서는 각각 여자와 남자 진상 분들에 대해 깊게 살펴봤다. 자, 남자들이여, 재밌게 글을 읽었으면 대가를 치뤄야 하는 법. 음주 Fantasy 4부는 그동안 언급된 내용을 바탕으로 남자 진상분들의 이야기를 좀더 보충하고자 한다. 더 나아가 제보자의 입장으로서 필자의 경험도 끄적여 보도록 하겠다. 조사 결과 최고의 술버릇 민폐남은 음담패설로 꼽혔다. 어느 정도 들이키고, 모두가 얼큰하게 취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타서 슬슬 19금 이야기를 하는 남자들. 주변 여자애들 표정은 봐가면서 해야죠.

# 사례 (제보자)

1. 음담패설의 종류도 다양하다. 남자들만 알아들을 수 있는 은어를 사용해가며 여자들 앞에서 형제애를 쌓는 언어의 대가부터 대놓고 맘에 드는 이성을 가늠하기 위해 "진실게임" 이라는 순수한 말로 포장해가며 사귄 이성의 수부터 같이 잔 이성의 수까지. 총각, 외로우면 야동을 보세요. 요즘 무료싸이트 많습니다. 필요하면 필자가 USB에 넣어 줄 수도.. (3학년 여자)

2. 물론 남자가 검은동물 이라고 해서 술자리 음담패설의 불명예를 다 지고 갈 필요는 없다. 필자는 아직도 여고 출신의 친구들과 만날 때마다 그녀들의 대담한 음담패설에 문화충격을 많이 받는다. 그 남자의 딱 벌어진 어깨부터 등짝 얘기까지 나오는 깨알같은 관찰력. 역시 여자는 섬세한 동물이다. (4학년 여자)

3. 하지만 보편적으로 여자들은 이성을 가늠하거나 꼬시기 위해 음담패설을 하지 않는다. 경험이나 공유 차원에서 이야기 할 뿐. 남자들이여, 행여나 사심을 품고 있는 그녀가 음담패설을 한다고 해서 흐뭇해하지 말자. 당신이 워낙 편해서 (남자로 안보이니까) 여자들의 특기인 주저리주저리 수다를 당신은 시간을 허비하며 들어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필자의 친구들은 필자에 대해 눈꼽 만큼도 관심이 없어서 음담패설을 했던 것이다.  (4학년 남자, 3학년 여자)

4. 반대로 여심을 사로잡기 위해 온갖 이미지를 만들어가며 순수한 척, 멋있는 척 다하며 자신의 연애경험 얘기를 하는 남자들도 진상 아닌 진상남으로 꼽혔다. "저는 진짜 키스도 안해봤어요", "여자친구를 위해 이러저러한 이벤트를 해주고 목숨을 바쳐서 잘해줬어요", "그녀를 위해 손만 잡고 잤어요" (2학년 남자, 졸업생 남자). 이러한 순정 코스프레 진상남들은 사실 속이 더 검다는 불편한 진실. 여자들이여 가슴 깊이 새기길 바란다.  (2학년 여자, 3학년 여자, 졸업생 여자)

5. 세 번째로 가장 많이 받은 표를 받은 진상남은 터미네이터로 뽑혔다. 그렇다. 당신들이 생각하고 있는 그 터미네이터. 무자비하게 주변에 있는 물건은 모두 파괴시키는 짐승남. 뭐가 그렇게 불만일 까.아마 그들의 손에 괭이만 쥐어주면 농민혁명이라고 봐도 무방하겠다. 이러한 파괴남들의 특징은 평소엔 항상 온화한 성격의 소유자이거나 활발하게 웃고 유머가 넘치는 사람이라는 거다. 제보자에 따르면 그들은 평소에 인정이 넘치는 사람이거나,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자기관리를 잘하는 사람들이다.하지만 술만 들어가면 그들은 곧 사람의 탈을 쓴 개, 말을 할 줄 아는 고릴라로 변한다고. 술자리에 불편한 사람이 자꾸 신경을 긁는 다거나, 오랫동안 품은 스트레스의 앙금이 알코올의 부름에 응답하사, 필터를 무시한 채 본능이 나오는 것이다. 평소에 쌓인 일을 그때 그때 풀지 못한 원인이 크다. 이러한 진상은 대개 가까운 지인이나 어른들의 따끔한 충고가 있어야 고쳐진다. 버릇을 고치기 힘들다면 아버지와 1:1로 술을 마셔보는걸 적극 권장한다. 그대보다 일찍이 인생의 고를 느끼며 힘든 사회 속에서도 인정을 베푸며 낭만을 찾았던 대한민국 아버지 세대들의 술문화는 그대가 경험하지 못한 여유와 낭만을 가르쳐 줄 것이다.  (1학년 남자, 4학년 여자, 졸업생 남자)

6. 네번째로 표를 받은 진상남은 술 마시고 우는 부류의 사람들로 꼽혔다. 과거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흘리거나 헤어진 애인 얘기를 하며 여린 모습을 보여주는 당신들. 술자리에서 공감을 얻어내는 전략 중 가장 백해무익한 것이거늘. "자기 힘든 얘기를 하면서 자꾸 피지도 않는 담배 같이 나가서 피자고 손을 잡더라구요". 얘기는 뻔하다. 성적고민, 이성문제고민, 그리고... life? 저기요, 그쪽만 대학생 아니거든요? (3학년 남자) 이성에게 모성애를 끌어내 어필을 하려는 건지, 나 이런 사람이에요 관심 좀 가져주세요, 라고 PR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그대는 점점 술자리 초대횟수가 줄어드는 걸 말초신경으로 느끼게 되리라.  (3학년 남자)

번외편으로, 필자가 생각하는 진상남, 아니 진상남녀는 바로 남 뒷담화를 까는 사람들이다. 입에 담기도 민망한 치부를 들추어내며 타인의 일상다사부터 아주 사소한 일까지 마치 아무렇지도 않다는 식으로 세세히 말해가며 공감을 얻어내는 것까지. 필자는 예를 들어 루이비통 가방을 메고 다니는 걸로 된장남의 반열에까지 올랐다. (필자는 연예인병에 걸려서 명품을 좋아한다. 소심한 필자는 바로 즉시 큼직한 가방으로 갈아탔다.) 하지만 남의 취향까지 지적해가며 깎아내리는 당신, 지금 당신의 일거수일투족도 누군가에게 평가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주길 바란다. 한국인이라면 빼놓을 수 없는 술문화의 꽃, 뒷담화. 이제 조금 더 성숙한 자세로 어른스러워질 필요가 있지 않나 조심스레 말을 꺼내본다.


# 그들에게 전하는 말


살면서 힘들거나 기쁘거나 슬플 때, 우리는 종종 술에 의지하며 지난 일을 안주 삼아 앞날을 이야기해왔다. 여유가 없는 각박한 시대에 세상이 원하는 건 치열한 경쟁과 야생만큼 잔인한 생존법칙. 물질주의사회에 찌들다 못해 병든 그대들의 노여움이 어쩌면 낭만이 죽은 21세기의 술자리문화를 반영하는 하나의 희극 일지도 모르겠다. 언젠가부터 대화를 필요로 하는 술자리가 마시기 위한 술자리로 변했다. 우리는 상대방의 이름도 알기 전에 게임을 한다. 상대방의 사람냄새를 맡기 전에 얼큰하게 취한 상대방의 술 냄새를 먼저 맡게 된다. 진상을 부리는 사람들을 떠나, 조금 더 어른답게 술 문화를 대하지 못한 우리들의 잘못이 더 크다고 필자는 감히 말한다. 필자의 아버지 말에 따르면 팔구십년대까지만 해도 포장마차와 새우잠을 겨우 잘만한 다락방에서는 어른이 되고 싶은 젊은이들의 노래로 낭만의 장이 열렸다고 한다. 심장까지 파고드는 추위와 집요하게 달라붙는 가난. 그래도 그들은 인정을 잃지 않으며, 언젠간 꽃을 피우겠다며, 술 한잔에 우정과 사랑을 걸었었던 때가 있었다고. 한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그대들도, 필자도, 대한민국 모든 젊은이들도 시험에 낙제하고 사랑에 무너지고 부모님의 늘어만 가는 주름살을 보고 가슴이 시려오는 그런 때를 모두 겪었을 것이다. 그대들이여. 그대들은 어쩌면 슬픔과 인생의 고를 달래기 위해 마시는 술을 더 고통스럽고 아파하기 위한 변태행각의 매개체로 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대들은 젊고 앞으로 수많은 일상다반사가 그대들의 숨통을 조이기도 하고, 기쁨에 몸서리 치게 할 때 도 있으리라.

하루만 지나도 안주거리로 전락해버릴 청춘의 한 페이지, 오늘, 바로 지금 이 순간. 필자 스스로에게도, 당신들에게도 물어본다.

오늘, 당신들의 하루는 어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