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의 봄 (3) : 지옥같은 수용소 생활

Posted by 안녕이야기
2010.11.16 16:56 SERIALS/1975년의 봄 - 完 -

Loung Ung의 이야기를 담은 책

Loung Ung (이하 Ung) 은 크메르 루즈의 참담함을 직접 몸으로 느끼고, 눈으로 목격했다. 그녀가 쓴 책 "First, They Killed My Father" 에서 우리는 당시의 생생하고 끔찍했던 모습들을 찾아볼 수 있다. 당시 10살남짓했던 어린 소녀였던 그녀에 경험을 빌려, 1975년의 봄으로 돌아가보기로 하자.

1975년 4월, 크메르 루즈가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 펜에 있던 시민들을 도시 밖으로 추방하기 시작했다. 도시안에 있던 사람들은 딱히 영문도 모른채 긴 행렬의 꼬리에 꼬리를 쫒아 걷기 시작했다. 어느새 시민들도 장갑차를 타고 다니며 총으로 무장했던 이들을 경계하기시작했다. 환영의 기쁨이 두려움과 공포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말을 듣지 않는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죽기도 하였다.

도시를 떠나, 며칠동안 그들은 걷기만 하였다. 중간중간에 몇번의 검문이 있었는데, 론 놀정부때 직책을 맡아서 일을 했던 사람들은 따로 구분해서 등록해야한다는 명목이었다. 물론 그들에게 내일은 오지않았다.

모두가 두려움에 떨고있었고, 말 한마디 한마디에도 조심을 다해야 했다. 눈에 띄는 특이한 행동들은 즉시 총살을 당할수있는 좋은 명분이었다. 이때까지도 시민들은 도대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전혀 알수가 없었다. 이런 상황속에서 론 놀 정부당시 군인이었던 Ung 의 아버지는 분위기를 어느정도 파악하였다는 사실을 그가 한 말에서 살펴볼 수 있다.

“The Khmer Rouge are executing people perceived to be a threat against the Angkar [크메르 루즈의 정부 명칭]. This new country has no law or order. City people are killed for no reason. Anyone can be viewed as a threat to the Angkar – former civil servants, monks, doctors, nurses, artists, teachers, students – even people who wear glasses, as the soldiers view this as a sign of intelligence. Anyone the Khmer Rouge believes has the power to lead a rebellion will be killed.”

"크메르 루즈는 앙카정부에 위협이 될만한 모든사람들을 죽여나가고있어. 이 새 정부에는 법도, 질서도 존재하지않아. 도시인들은 아무 이유없이 죽임을 당하고, 앙카정부에 위협일 될수있는 공무원, 종교인, 의사, 간호사, 예술인, 교사, 학생, 심지어는 안경을 쓴 모든 사람들마저도, 단지 지성인일거라는 이유에서 죽임을 당하고 있지. 누구든지 반란을 일으킬만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이면 무조건 죽임을 당하고 있는거야."

출처: Ung, First They Killed My Fater, p 54

오랜 여정끝에 사람들은 제각각 작은 마을에 도착하였다. 바로 이 마을, 아니 빈민굴이 더 적절한 표현일것이다. 이곳이 바로 크메르 루즈의 이상이 실현되기 위해 모두가 거주해야하는 곳이었다. 모두가 평등한 세상, 순수형태의 공산주의를 이룩하기 위해 극단적인 평등주의를 위한 조치들이 취해졌다. 사람들은 모두가 똑같은 색깔의 허름한 옷으로 갈아입어야 했고, 개개인의 이름들이 폐지되었다. 자본주의적인 사상을 가진 외국인들로 인해 불평등과 경쟁이 심화되어서 사회가 어지러워졌다고 생각하는 크메르 루즈는 이름역시 외국인들에 의해 도입된 제도이며, 모든 외국문화가 단절된 이 시점에서 이름마저도 필요하지 않는다고 판단한것이다.

“The Angkar has expelled all foreigners so we no longer have to refer to each other using fancy titles.”

"앙카는 모든 외국인들을 추방시켰다.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 서로를 현란한 호칭으로 부를필요가 없어졌다"

출처: Ung, First They Killed My Fater, P60

이 빈민수용소에서 사유제도는 엄격하게 금지되었다. 모든것이 Angkar 에서부터 나오고, Angkar 로 돌아갔다. 정해진 시간에 음식이 제공되었고, 나머지 시간들은 노동으로 채워졌다. 이렇게 철저하게 짜여진 사회안에서 범죄와 부정부패는 존재할 공간이 없다고 믿었다. 아이들은 학교에가서 쓸데없는 지식을 머리속에 집어넣을 필요가 없었고, 그저 열심히 일하는것만이 그들의 목적이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과연 철저하게 평등주의가 관철되었나? 그것도 아니다. 이 수용소안에선 일단 계급사회가 존재했으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사실인가.  1급계층이라 스스로를 칭한 크메르 루즈 핵심 단원들이 수용소의 지도자역할을 맡았고, 두말할것도 없이 그들은 안락하고 편안한 삶을 유지할수있었다. 2급계층에는 크메르 루즈의 지도자들을 도와 규칙들을 행사하던 캄보디아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스스로를 “base people” 이라 부르기도 했는데, 이들은 크메르 루즈가 권력에 부상할 당시, 도시에서 벗어나 자연속에서 이미 자급자족하며 살고있었기 때문이었다. 3급 계층이 바로 지금 끌려온 도시에살던 캄보디아인들이었다.

다시말해, 이 조그만 빈민수용소는  크메르 루즈의 이상적 사회의 실현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이자, Angkar 정권의 모순 그 자체인것다.

수용소에서의 생활은 끔찍했다. 사람들은 쉬지않고 일해야만했다. 게으름은 곧 죽음이었다. 하지만 음식배급은 갈수록 줄어들어갔고, 많은 사람들이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죽어갔다. 절급했던 사람들은 피폐해져갔고, 도시에서 살때 유지했던 인간의 존엄성은 모두다 떨쳐버린듯했다.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면, 뱀, 쥐, 귀뚜라미, 그 어떤것이라도 먹기시작했다. 어린 아이들은 특히 가혹한 환경에서 쉽게 낙오되어져갔고, 그런 사랑하는 아이들을 잃은 부모들도 하나둘씩 이성을 잃어 가기 시작했다.

"I have found the perfect food! Don’t know why I didn’t think of it before. It’s safe and it doesn’t taste bad either’ she says excitedly to Ma [Ung 의 엄마]"

"Wait, what is it? What is it?" Ma asks anxiously.

"Earthworms! They’re fat and juicy. You take the dirst off, cut them open, wash them, and cook them. It isn’t bad, cook ‘em like you do noodles… Here’s a little bowl."

"최고의 음식을 찾았어요! 왜 제가 미리 이걸 생각해내지 못했는지 몰라요. 이건 안전하고 맛도 좋은편이에요!" 그녀는 환희에 찬 목소리로 엄마에게 말했다.

"도대체 뭔데 그래요? 뭘 찾은거죠?" 엄마가 가슴을 졸이며 되물었다.

"지렁이요! 지렁이들은 살도 많고 즙도 많아서 씹는맛이 좋죠. 그냥 흙만 조금 털어내고, 배를 가른다음에 물로 씻고 요리하면 되요. 국수요리처럼 해서 먹으면 돼요. 여기 한접시 맛보지 않을래요?"

출처: Ung, First They Killed My Fater, P87

사랑하는 두 딸과 아들을 잃은 Chong 이라는 여인의 절규다.

당시 수용소의 모습

크메르 루즈의 무자비함은 수용소 밖에서도 이루어졌다. 1975년까지 프놈 펜은 상당한 문명적 기반을 갖춘 여느 도시의 모습을 띄고 있었다. 이 프놈 펜에 학생들이 와서 공부하던 고등학교가 있었다. 크메르 루즈는 이 고등학교를 그들의 잔악한 만행을 안전하게 치룰수 있는 시설로 바꾸어놓았다. Tuol Sleng 감옥이 바로 그것이다. S-21 이라는 암호명으로 불리우던 이 잔혹했던 감옥은, 옛 일제강점기 시절, 서대문 형무소 같은 역할을 하였다고 보면 될것이다. 학생들이 등교하던 정문으로 도시인이라는 죄명을 지닌 사람들이 들어왔고, 철저하게 기록되고 감시되었다. 감옥에는 2만여명의 사람들이 갇혀졌다. 사람이 너무 많아진 탓에, 나중에는 죄수들에게 달아주던 번호표를, 옷에다가 달지않고 쇄골사이의 살을 뚫어서 달아주기도 하였다.

학생들과 선생님이 모여 공부하던 교실은 감옥으로 개조되었고, 가학한 고문행위가 지속되었다. 현재까지도, Toul Sleng 의 어떤 교실에는, 그 당시 흘려졌던 핏자국이 지워지지않고 남아있어, 두려움에 떨던 희생자의 마음을 생각해볼수있게한다. 또한, 학교안이나 그 주변을 둘러보면 아직까지도 그 당시에 희생되었던 사람들의 뼛조각을 찾을수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고문받고 심문받으며 있지도 않는 죄를 자백해야만 했고, 심지어는 본인이 직접 죄를 범했다고 착각하는 정신적착란 현상까지도 일어났다고 한다.

아래는 감옥에서 지켜야 했던 몇가지 규칙이다. 크메르 정부의 불합리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1. You must answer accordingly to my question. Don’t turn them away.
2. Don’t try to hide the facts by making pretexts this and that, you are strictly prohibited to contest me.
3. Don’t be a fool for you are a chap who dare to thwart the revolution.
4. You must immediately answer my questions without wasting time to reflect.
5. Don’t tell me either about your immoralities or the essence of the revolution.
6. While getting lashes or electrification you must not cry at all.
7. Do nothing, sit still and wait for my orders. If there is no order, keep quiet. When I ask you to do something, you must do it right away without protesting.
8. Don’t make pretext about Kampuchea Krom in order to hide your secret or traitor.
9. If you don’t follow all the above rules, you shall get many many lashes of electric wire.
10. If you disobey any point of my regulations you shall get either ten lashes or five shocks of electric discharge.


1. 나의 질문에 무조건 대답한다. 무마하려 하지 마라.
2. 사실관계를 숨기려 이런저런 변명을 하지마라. 내 말을 반박하려 하지마라.
3. 멍청하게 굴지마라, 넌 어차피 크메르 혁명을 훼방하려했다.
4. 넌 나의 질문에 생각할 시간을 가지지 말고 즉시 대답해야만 한다.
5. 너의 도덕적인 부족함들이나 혁명의 의미에 대해서 얘기하지 마라.
6. 채찍을 맞거나, 전기충격을 당하는 동안 너는 절대 울어선 안됀다.
7. 아무것도 하지말고 가만히 앉아서 나의 명령을 기다려라. 아무런 명령이 없을땐 조용히 있어라. 명령이 떨어지는 즉시 아무소리말고 바로 실행해야만 한다.
8. 너의 비밀이나 반역행위를 감추기 위해 캄푸치아 크롬 (?) 에 대한 변명거리를 늘어놓지 마라.
9. 만약 위에 있는 규칙들을 어긴다면, 너는 아주 많은 전기채찍에 맞게 될것이다.
10. 만약 나의 규칙을 한 가지라도 어긴다면, 너는 10번의 전기채찍형이나, 5번의 전기충격형을 당하게 될것이다.

수 많은 희생자들의 사진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하겠다던 크메르 루즈의 염원은 사랑했던 사람들의 시체더미로 만들어졌다. 인간이었던 시절 가지고 있던 고귀함은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욕구들로 대체되었고, 노동과 배고픔, 질병과 죽음이 난무하는 지옥에서 사람들은 목적을 잃은채 하루하루를 연명해나갔다. 끔찍한 크메르 루즈 정권은 4년정도 더 지속이 되었다. 그 4년이라는 시간동안, Ung 도 가족들과 결별하는 아픔을 감당해야만 했다.

by 안녕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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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식민지 시절의 조선과 비교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완용이 구상한 "조선인에 의한 조선인 감시" 같은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사상으로 훈련받은 자들이 자신들의 동포를 감시하고 학살에 일조한 것은, 민족단일화론의 정합성을 차치하더라도 정말 안 좋은 사례들일 것입니다. 킬링필드에 대한 정보를 피상적으로나마 알고 있었지만, 이런 글들을 보며 새삼 그 현실의 잔혹함에 혀를 내두를 정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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