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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IALS/버클리생의 대학생활 200% 즐기기 프로젝트

[200%젝트] (2) 일상으로부터의 탈출, 내일로

버클리생의 대학생활 200% 즐기기 프로젝트 - [200%젝트]

(2) 일상으로부터의 탈출, 내일로


8. 찌는 듯한 더위에도 굴하지 않고 바깥에서 활발하게 돌아다니는 학생들의 청춘이 가장 잘 연상되는 달임과 동시에 여름 방학의 정점으로 여겨지는 달이다.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종강이 다가올수록 하게 되는 행복한 고민이 바로 방학 계획인데, 이런 야심찬 계획이 시간과 함께 스러져가고 반복되는 늦잠과 술약속이 일상으로 굳어지는 달이 바로 8월이기도 하다.

방학을 시작하며 많은 대학생들이 대표적으로 꼽는 청춘 로망엔 기차여행이 있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꿈도 꾸지 못하는 한국 대학생들만의 특권이 요새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자유 여행 패스 내일로이다. 대학생들에게 가격 부담도 적고 기간도 적절하여 안성맞춤인 프로그램이나, 여행 코스를 전부 스스로 짜야 하는 부담감이 있는 데다 날짜를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자유로움 때문에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방학이 끝나 버리는 경우도 다반사다. 그러나 버클리에 갇혀 자유로운 배낭 여행을 갈망하던 필자는 내일로를 꼭 가겠다고 벼르게 되었고, 지난 6, 그 꿈을 이루었다. 그리고 한국에 머물렀던 5주라는 짧은 기간 중, 내일로를 떠난 5일은 나머지 30일보다 훨씬 더 값지고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필자와 같은 유학생의 경우, 학기 중엔 한국에 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다가도 막상 귀국을 하고 나면 잦은 술자리와 식사 약속을 전전하다 방학이 끝나 버릴 때가 많은데, 귀중한 방학을 좀 더 의미 있는 시간으로 남기고 싶다면 내일로 여행을 떠나 보는 것을 추천한다.


(▲ 군산 경암동 철길마을 - 길게 뻗은 철도 위를 따라 걷는 소박하면서도 특별한 재미가 있다)


내일로란

내일로는 코레일에서 만 25세 이하에게만 제공하는 티켓으로, 구매 시 KTX를 제외한 모든 열차를 정해진 기간 동안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으며, 여름과 겨울에만 발매가 가능하다. 5일권은 56,500, 7일권은 62,700원으로 자신이 지정한 출발일로부터 그 기간만큼 기차를 이용하여 우리나라를 자유로이 돌아다닐 수 있게 된다. 티켓은 역에서 직접 발권 받을 수도 있으나, 스마트폰 코레일톡 어플을 다운받으면 편리하게 모바일 티켓을 이용할 수도 있다. 또한 내일로 홈페이지(http://www.rail-ro.com/)를 방문해 보면 내일로 관련 이벤트를 수시로 진행하고 있어 여행에 별미를 더하고 있다. 더불어, 여행 중 방문 지역의 기차역마다 비치된 도장을 찍기 위한 스탬프 수첩이나 여행 기록을 남길 수 있는 내일로 일지는 내일로를 더더욱 대학생들의 입맛에 맞게 디자인한 아이템이다


(▲ 순천 송광사 - 자연 속에 어우러진 절이 마음에 여유를 준다)


누구와 함께할 것인가

여행을 계획할 때 아마도 가장 중요한 항목이 아닐까 싶다. 누구와 함께하냐에 따라서 그 여행의 전체적 분위기나 테마가 천차만별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는 친한 친구와 같이 떠나게 되는데, 여행을 갔다가 서로의 모르던 모습을 겪고 틀어져 싸우게 된다는 말이 많은 만큼, 이런 경우엔 자신과 여행 스타일이 비슷한 친구를 선택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물론 서로 가깝고 편하기에 좋은 추억 여행이 될 수도 있지만, 유적지를 방문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과 그저 한적한 바닷가에서 바람 쐬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 같이 여행하면 일정에 마찰이 생길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니까.

혼자만의 시간을 갖거나 생각을 정리하고 싶은 사람들은 홀로 여행을 떠나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특히 내일로 여행에서는 게스트하우스를 많이 이용하는데, 여기서 다른 여행객들과 친해지기 쉽기 때문에 여행 내내 외로울 것을 걱정하지는 않아도 된다. 그러나 아날로그 여행을 고집하며 휴대폰을 끄고 외부와의 단절을 선언할 필요는 없다. 필자는 2년 전 안동 여행에서 그렇게 했다가 몇 시간 만에 다시 켜 버리고 친구에게 바로 전화해 심심하다고 징징거리곤 했으니. 하지만 절경을 마주하였을 때나 선선한 바람이 부는 밤바다에 앉아 있을 때는 페이스북 체크인에만 급급해하지 말고 가만히 그 분위기에 취해 보자. 혼자 하는 여행의 묘미는 바로 이런 사색에 잠길 수 있는 여유에서 오는 것이니까. , 여자라면 해가 다 지기 전에 숙소에 들어가고 가족에게 수시로 연락해 안전에 신경 써야 할 것이다. 외진 여행지로 가면 대중교통도 자주 없고 길거리 조명도 부족해 생각보다 으슥하기 때문이다.

이번 내일로 여행 때 필자는 조금 독특한 방식을 택했는데, 바로 모르는 사람들과 동행을 하는 것이었다. 혼자 또는 친구와 하는 여행과는 사뭇 색달랐던 이번 경험은, 몰랐던 사람들과 어색함을 깨고 친해지는 소소한 재미도 가미되었던 데다가, 새로움을 이용하여 일상에서 완전히 탈출할 수 있었던 좋은 선택이었다. 가족들은 위험할 수도 있겠다며 걱정하였으나, 요새는 기차여행 커뮤니티 바이트레인 카페(http://cafe.naver.com/hkct)에서 동행 구하기 게시판을 통해 많이들 이렇게 떠나는 추세이다. 기본적으로 이렇게 동행을 적극적으로 구하는 사람들은 성격이 활발한 경우가 많아 만나면 크게 어색하지도 않고, 오랜 시간 기차를 타고 이동할 때 서로에 대해 알아갈 시간도 넉넉해서 심심함을 줄일 수도 있다 (물론 초반에는 '돌아가며 서로에게 궁금한 것 물어보기'와 같은 아이스브레이킹 게임을 해야 했던 건 부정하지 않겠다). 친구와 함께하는 여행과 마찬가지로 성격 차이가 심하면 힘들 수도 있으나, 오래 알지 못한 사람들끼리는 은연중에 서로 지키는 선이 있는 데다, 평생 가깝게 지내야 하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 만한 친밀도를 유지하는 사이가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마음을 편하게 먹을 수 있는 듯하다. 필자가 이번에 동행한 그룹은 여자 두 명, 남자 두 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성격 조합이나 여행 취향도 굉장히 잘 맞았고, 운 좋게도 사회학과 전공인 분이 명소 설명까지 도맡아 해 주셔서 최고로 만족스러운 여행을 할 수 있었다.


(▲ 안동 하회마을 - 우리나라 전통 가옥의 아름다움을 시선 닿는 곳마다 느낄 수 있다)


어디를 갈 것인가

내일로는 말 그대로 자유 여행인 만큼 어디를 방문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본인에게 달려 있다. 5~7일 안에 전국을 돈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와 같이 지역을 크게 나누어 한두 지역 안의 도시 몇 군데를 꼼꼼히 보는 것이 효율적이다. 놀라운 것은, 어디를 정해서 가든 그 도시만의 특색과 매력에 빠져 충분히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좁은 땅 안에서도 도시마다 내세우는 개성이나 아름다움이 있는 덕분에 필자는 내일로 여행을 하는 매일매일을 색다른 기분을 맛보며 채워갈 수 있었다. 프랑스 파리나 미국 뉴욕도 물론 화려하고 좋지만 우리나라의 장소들이 갖고 있는 고유한 분위기는 그와 실로 미묘한 차이가 있다

동떨어진 오동도에서 외로이 전해지는 쌉싸래한 고독함

돌산공원의 적막 속에 홀로 은은하게 색을 바꾸는 돌산대교가 내뿜는 신비로움

테마가 가득한 순천만정원에서 수십 개의 바람개비와 함께 동심을 되찾은 듯 살아나는 발랄함.

경암동 철길마을의 빛 바랜 철도와 자연이 한데 어우러진 토속적 분위기에서 오는 아련함

해운대 새벽 바람이 바다 내음과 함께 잔잔히 싣고 오는 파도 소리의 평온함

직접 가 보지 않고서는 온몸으로 와닿을 수 없는 느낌들이다. 필자는 5일 동안 안동, 부산, 여수, 순천, 군산 다섯 군데를 둘러보았는데, 가는 장소마다 제각기 자랑하는 운치와 분위기가 가장 인상적으로 마음 속 깊이 남았다.

그러니 갈 곳을 정할 때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도시 5군데식으로 추천을 받아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려 하지 말고, 평소에 가 보고 싶었던 곳을 몇 가지 추린 후 거리가 적당한 곳에 위치한 다른 도시들을 함께 둘러보는 식으로 루트를 정하는 것을 추천한다. 이동 시간도 효율적으로 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동안 모르고 살았던 처음 가 보는 도시들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안동 월영교 - 20년간 본 야경 중 단연 으뜸이라고 감히 평한다)


무엇을 가져갈 것인가

어느 여행이든 그렇듯이 전날 짐을 싸는 것은 설레면서도 은근히 귀찮은 일이다. 더욱이 내일로는 주로 배낭을 멘 채로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짐을 최대한 가볍게 싸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람들이 무거운 옷을 잔뜩 들고 다녀야 하는 겨울 내일로를 기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평소에 2.6kg짜리 노트북과 함께 각종 교과서, 노트, 충전기까지 넣은 백팩을 거북이 등딱지마냥 메고 다니는 필자도 이번에 동행한 사람들 중 가장 짐을 많이 쌌다가 마지막 날 기상천외하게 무겁게 느껴지는 배낭에 기겁하고는 누가 몰래 돌을 넣었냐고 투덜대기도 했다.

확실히 여행을 다닐수록 피로해지는 만큼 짐의 무게는 중요하다. 옷은 최대한 가벼운 남방 류나 얇은 면 티 위주로 챙기는 것이 좋고 지갑도 무겁고 큰 것보다는 카드 목걸이에 옮겨 쓰는 것이 편리하다. 기초화장품 같은 경우는 샘플로만 챙겨가면 무게를 많이 줄일 수 있고, 대신 뜨거운 태양을 견뎌야 하는 만큼 선크림은 충분히 챙겨가자. 세면도구는 편의점에서 여행용 세트로 구매하고 속옷은 중간중간에 빨아서 입으면 짐을 많이 아낄 수 있다. , 길을 찾거나 대중교통 정보를 검색할 때 스마트폰은 필수이기 때문에 배터리가 순식간에 달아버리기 일쑤이다. 그래서 충전기와 멀티탭, 그리고 이동식 보조배터리는 종종 구세주처럼 느껴지곤 한다. 바닷가에 갈 일이 있다면 가벼운 슬리퍼도 챙겨가면 유용하다. 만약 취미가 사진 촬영이거나 추억으로 사진을 많이 남기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카메라만은 포기하지 말자. 필자는 망설이다가 결국 무거운 DSLR을 들고 갔는데, 아름다운 경치를 볼 기회가 너무나도 많았던 나머지 천 장이 넘는 사진을 찍고 돌아왔고, 카메라를 챙겨간 것을 단 1퍼센트도 후회하지 않았다. 가뜩이나 컴플렉스인 넓은 어깨가 더 넓어진 것 같은 건 기분 탓으로 돌리며.

 

(▲ 여수 오동도 - 멀리 떨어진 위치부터 인적 드문 분위기까지 쓸쓸함이 사무치게 느껴지는 곳이다)


어떻게 다닐 것인가

내일로의 가장 큰 단점은 아무래도 입석제라는 것이다. 기차에서 비어 있는 자리엔 앉아도 되지만 그 자리의 주인이 나중에 타면 어쩔 수 없이 비켜줘야 하기 때문에 자리 운이 많이 따른다. 이런 내일로 여행을 조금 더 편하게 하기 위해 기억해야 할 것이 몇 가지 있다. 우선, 기차에서 좌석 예매는 중앙부터 되기 때문에 끝부분인 1, 6호차에는 빈 좌석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휴대폰이나 카메라 충전이 급한 상황이라면 맨 앞자리나 끝자리 부근에 콘센트가 있는 경우가 많다. 만약 빈 좌석이 없다면 3, 4호칸 사이에 위치한 열차 카페가 가장 편한 자리인데, 성수기에는 열차 카페마저도 사람들이 꽉 들어차 있는 때가 많아 빨리 자리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새마을호 5호차는 평일에 자유석이기 때문에 비어 있는 자리에 먼저 앉으면 그 좌석은 내릴 때까지 본인 것이 된다는 것도 기억해 두면 좋다.

내일로는 티켓 가격도 저렴하지만 혜택 또한 많아 발권역에 따라 무료숙박이나 관광지 할인, 투어버스 제공 등 다양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어차피 온라인으로 구매하면 꼭 자신의 출발지점에서 발권하지 않아도 되니 코레일 홈페이지에서 미리 살펴보고 자신의 여행 코스에 가장 많은 혜택을 줄 수 있는 역에서 발권하는 것이 좋다. 필자는 순천역에서 발권하여 순천, 여수에서는 무료로 숙박을 하였는데, 이러한 숙박 시설에서는 다른 내일로 여행자들도 많이 만날 수 있어 더욱 재미를 더할 수 있었다.

 

(▲ 여수 돌산공원 - 조명 색이 천천히 바뀔 때마다 마음이 절로 편안해진다)


이제 길어만 보였던 여름방학도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껏 여행을 생각만 해 보고 떠나길 망설였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내일로 티켓을 끊어서 집 밖으로 나가자. 매일 똑같았던 일상으로부터 떠나자집을 떠나 있는 일주일은 긴 시간이 아니나, 당신의 방학 중 최고로 값진 시간으로 돌아올 테니까. 1분밖에 남지 않은 군산행 기차 출발 시각에 맞추려고 기사 아저씨가 전속력으로 밟는 택시 안에서 스릴을 느끼기도 하고,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광안리 밤바다에서 홀로 술을 기울이는 궁상을 떨기도 하고, 네 명 이하로는 태우지 않는 하회마을 부용대 나룻배 할아버지에게 네 명까지만 봐 달라고 애교를 부리기도 하고, 시간 맞춰 도착한 순천만이 예정보다 일찍 닫아 이루 말할 수 없는 허탈함에 사로잡혀 보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내일로 여행을 하는 일주일은 일상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던 다이나믹한 순간들로 빼곡히 채워진다. 편하게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하며 다니는 여행보다 힘들고 답답해 보이겠지만,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이런 "고생스러운" 사건사고 조각들이 쌓이고 쌓여 웃음이 절로 나오는 추억 한 편을 완성하는 게 아닐까. 그리고 그것이 바로 청춘 내일로 여행만의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