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EDITORIAL/과학 :: Science & Tech

휘어진 사과 心

<http://www.wallstreetotc.com/iphone-6-sales-started-in-22-countries-by-apple-release-in-115-nations-by-year-end/29756/>


올해 9, 아이폰6가 모든 애플 팬들의 기대 속에 출시됐다. 이미 전부터 유출된 스틸 샷과 스펙 설명 등으로 인해 기대감이 최고조로 형성되었던 지라 세간의 관심은 폭발적이었다. 애플은 4.7인치의 대형 디스플레이, 6.9mm의 얇은 두께, 그리고 방수 방진 기능을 앞세워 대대적인 아이폰 홍보에 들어갔고, 물론 반응은 뜨거웠다. (진정한 애플 팬이라면 누구나 선주문을 하지 않던가.) 다만, 출시 이후 시간이 지날수록 기대감을 품었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물음표를 띄우고 있는 모양새다.

 

이거 진짜 좋은 거 맞아?”

 

신제품의 품격

 

전자기기를 평가할 때 기본은 역시 스펙이 아닐까 한다. 얼마나 좋은 부품을 내장하고 있는지, 얼마나 화려한 기술력을 자랑하는지는 어떤 전자제품을 볼 때나 평가 기준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아이폰 6의 스펙은 실망스러운 점이 없지 않다.

 

가장 말이 많은 부분은 진화하지 못한 1GB ram 이다. 가면 갈 수록 무거워지는 어플리케이션들을 감당할 수 있을까 의문이 생기기도 전에 튕김 현상이 반복된다는 구매자들의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출시된 지 일년이 된 아이폰 5가 채택한 것이 1GB ram 이었고, 올해 4월 출시된 삼성의 갤럭시 S5 3GB ram을 장착하고 출시 됐다. (심지어 삼성은 2012년도에 선보인 S3때부터 1.5 GB ram을 장착했었다.) IT 업계에서 1년이란 영겁의 시간임을 감안할 때 어플리케이션 개발자들이, 또 많은 스마트폰 사용자들이 1GB 이상의 넉넉한 메모리를 기대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핸드폰에 무한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커뮤니티들에선 ram과 같이 내장되어 있는 부품 이외에도 여러 하드웨어적인 문제들을 지적하고 있다. 유튜브에서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는휘어지는 아이폰 6 플러스가 대표적이다. 맨손으로 가하는 가벼운 압력으로도 기기가 완전히 구부러져 파손되는 영상은 기술적 역량을 벗어난 슬림화와 경량화가 낳은 참사라는 지적과 함께 빠르게 퍼지고 있다. 기기 채로 엿가락 마냥 쉽게 구부러져 파손되는 모습은 아이폰의 내구성에 의문을 품게 만드는데 부족하지 않은 듯 보인다. 여기에 삼성을 위시한 LG, 하이네켄, 프링글스 등의 회사들이 공식 트위터로 휘어짐 현상을 풍자하는 게시물을 올리며 비난과 조롱이 뒤섞인 여론몰이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아이폰의 휘어짐 현상이 이슈가 되자 美 컨슈머 리포트에서 내놓은 내구도 실험 결과 발표 자료


혁신이 사라졌다

 

스펙이 전자기기 평가의 기본이라면, 결정타는 디자인일 것이다. (성능이 전부라면 노키아보다 블랙베리가 잘 팔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단순히 예뻐서아이폰에 끌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았던가? 아이폰 4S의 액정비율은황금비율이라 불릴 만큼, 애플 회사와 팬들의 아이폰 디자인에 대한 자부심은 누구도 건드릴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랬던 애플이삼성 카피캣이라는 말을 듣고야 말았다. 그토록 자랑스러워 하던 디자인을 버리고 삼성의 갤럭시 시리즈를 따라 하지 않았냐는 것이다. 각진 모서리가 다시 둥그런 모양으로 바뀐 것. 두 개의 동그랗던 음량 버튼이 일자형 버튼으로 바뀐 것. 파워 버튼의 바뀌어 버린 위치까지 갤럭시 노트 시리즈의 디자인과 흡사한 점이 많은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공교롭다. 삼성의 영향을 받았든, 단지 큰 화면에 대한 필요성에 의해 바뀌었든, 그 동안의 고집을 내려놓고 바꾼 야심 찬 디자인이 갤럭시와 많이 닮았다는 점은 항상 혁신과 차별화를 앞세워 오던 회사입장에서도, 또 그 철학을 지지하던 팬 입장에서도 썩 유쾌한 일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새로 탑재한 NFC 와 방수기능과 같은 신기능마저 삼성을 필두로 한 안드로이드 진영에서 짧으면 반 년, 길면 3년 전부터 구현했던 기술이라는 지적이 나오며 아이폰 6가 찬란했던 아이폰 시리즈 역사상 처음으로 혁신에 뒤쳐진 오점으로 남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앱등이’(애플의 열혈 지지자), ‘삼엽충’(삼성의 골수 팬)도 아닌 필자의 견해로는 애플이 더 이상 스마트폰 시장을 홀로 지배하는 구도를 이어가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The Next Big Thing

 

사실 애플은 스마트폰, 태블릿 PC, 일체형 PC 등의 많은 시장을 홀로 개척하고 지배해왔다. 전반적인 IT 업계의 냉소적인 반응에도 불구하고 경영진은 성공의 확신과 함께 아이패드를 내놓았고, 터치스크린과 접목된 PC라는 새로운 기술적 패러다임을 가져왔다. (아직도 태블릿 PC에 있어서는 Lenovo, 삼성 등의 후발대가 뒤쳐진 양상이다.) 매킨토시의 일체형 PC 디자인이 비효율적이고 촌스럽다는 일각의 목소리에도 고집을 지킨바 2010년 이후 가장 스타일리쉬한 PC 디자인이라는 타이틀까지 거머쥔 게 애플이었다. 아이팟을 만들던 시절부터 세계 최대의 IT 공룡이 되기까지 애플의 테마는 혁신그리고 진화였다. 가장 빠른 기술도입과 세대가 지날수록 진화하는 스타일.


바로 그 속성이, 애플의 정체성이 흐려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생각이다. 아이폰 5의 출시가 신호탄이 아니었을까 한다. 아이폰의 황금기였던 4S 출시 이후의 첫 신제품으로 가장 많은 관심을 받았던 아이폰 5. 하지만 단순히 화면이 길어졌을 뿐이라는 냉소주의적 반응과 디자인이 고급스러워졌다는 상반된 반응에 부딪혔었다. 4S의 성공신화가 너무 압도적이어서인지는 몰라도 이미 눈부신 변화의 테마는 잃어버린 것 같아 보였다. 이번 6의 출시는 단지 늦어버린 실종신고와 같다 할까.

 

삼성의 새로운 슬로건은 The Next Big Thing 이다. 단순한 광고를 넘어 이제 자신이 트렌드세터로 부상했음을 전제로 둔 캐치프레이즈다. 갤럭시 기어가 비슷한 컨셉의 i-Watch 를 앞지른 것이 상징적이다. (현재 기술수준의 i-Watch 와 갤럭시 기어의 실용성은 여전히 의문스럽다만.)

 

그저 삼성 좋아하는 한국인이 삼성이 최고라는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다. 애플의 혁신을 목견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고백하자면 맥북으로 이 글을 쓰고 있는 사람으로서, 애플이 다시금 이전의 모습을 되찾았으면 하는 생각일 뿐이다.

 

오히려 소비자 입장에서는 잘 된 것 아니겠는가. 애플의 경쟁사들이 동등한 위치까지 치고 올라 온 지금이다. 필자의 맥북 구입이 후회스럽지 않기를 바라며 또 한 편으로는 사과 로고든 아니든, 더 좋은, 더 놀라운 제품이 시장에 나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