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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정보 :: Information

기승전잠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잠이란 그림의 떡이며 쉽게 증오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필자부터도 내가 이놈의 잠만 없었어도 A+ 받는다” 라고 변명하며 시험기간만 되면 잠을 웬수처럼 여기곤 했다.


치열하게 공부하는 UC Berkeley에서 잠은 더욱 더 악랄한 적이다. 특히 미드텀을 하루 앞둔 자에게 잠이란 결코 쉽게 허용되지 않는다. 필자만 해도 친구들과 새벽 두 시 도서관이 문을 닫은 뒤에도 24시간 운영하는 SLC(Student Learning Center)나 집, 스터디룸 등에서 해가 뜨는 것까지 보며 공부를 하다 초췌한 몰골로 시험을 치러 가곤 했다. 시험이 끝나도 제대로 자는 법은 없다. 쌓인 스트레스를 푼답시고 불금, 불토를 보내느라 어김없이 새벽을 지새운다. 이런 수면 패턴이 반복되어 습관이 된 것일까. 평소 새벽에도 항상 몇 십 명씩은 기본으로 페이스북 온라인이고 단체 카톡방은 도무지 조용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는 항상 깨어있다.

 

우리, 이래도 괜찮은걸까?



잠을 제대로 자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수면이 건강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굳이 따져 보지 않아도 모두들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수면은 다른 일들에 너무도 쉽게 밀려 뒷전이 되곤 한다. 잠자는 시간을 활용하면 시간을 벌 수 있다고 여기는 것 일지도 모른다. 이런 모습을 보면, 우리는 아직 수면의 위력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UC 버클리의 심리학자 매튜 워커에 따르면 거의 모든 정신 질환들은 어떤 식으로던 수면 장애와 상당히 연관이 되어있다고 한다. 통념적으로는 정신 질환이 수면 장애를 유발한다고 생각했지만, 매튜 워커는 연구를 통해 그 반대가 사실임을 입증했다. 충분하지 못하고 올바르지 못한 수면 습관이 쌓여 정신 질환을 유발하는 것이다.

 

또한, 많은 연구 결과에 따르면 수면 시간이 짧고 수면의 질이 낮을 수록 식욕이 증가하여 비만이 될 확률이 높다고 한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게 되면 우리 신체에 배고픔과 배부름을 알려주는 호르몬인 그렐린과 렙틴이 정상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고 뇌의 올바른 사고와 판단을 방해해 달고, 짜고, 자극적인 고칼로리 음식을 폭식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사실 미국 대학에서 흔히 사용되는 ‘freshman 15’ 이란 용어도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밤을 새어 공부를 하다가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공부하는 것보다 더 큰 열정을 쏟아 기어코 풋힐까지 레잇나잇을 먹으러 언덕을 오르는 필자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이 밖에도 집중력과 판단이 흐려지고, 면역력이 떨어지고, 스트레스 조절이 어려워지는 등 수면 부족이 초래하는 문제점들은 셀 수 없이 많다. 이 만큼이나 수면이 중요하다는 소리다. 워렌 버핏도 그의 직원들에게 종종 이렇게 말하곤 했다고 한다.


 

당신, 집에 가서 잠 좀 자고 내일 아침에 다시 만나게.”

 

그렇다면 과연 당신은 제대로 자고 있는가? 과연 당신은 올바른 수면 습관을 가지고 있는가? 비록 올바른수면 습관에 대한 정의를 정확히는 모르더라도, 이 글을 읽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아마 고개를 저을 것이다. 당신이 평소 잠에 대해 미처 잘 알지 못했던 점들에 대해, 우리의 수면 습관에 대해 재고해보고자 한다.

 

필자는 가끔 이런 상상을 하곤 했다. 잠도 저축이 가능하다면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많이 자서 저축해 두었다가 바쁠 때 딱히 더 자지 않아도 피곤하지 않도록 꺼내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흥미롭게도 필자와 같은 생각을 했던 교수가 있다. 미국 윌터 리드 육군연구소의 트레이시 러프 박사가 긴 연구 끝에 잠도 저축인출이 가능하다고 밝힌 것이다.

 

트레이시 박사는 지원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일주일 동안 실험을 진행했다. 한 그룹은 평소 수면시간보다 더 잘 수 있도록 허락되었고, 다른 그룹은 평소 수면시간만큼만 자게 했다. 그 다음주에는 두 그룹 모두 일주일 내내 모두 하루 3시간씩 부족하게 수면하도록 한 뒤 각각 업무실행능력을 평가했다. 결과는 충분한 수면을 저축해둔 그룹이 다른 그룹에 비해 수면부족에서 회복되는 능력이 훨씬 빠르고 업무실행능력 또한 월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론적으로 충분한 수면을 저축해두면 향후에 있을 수면부족에 대처하는 능력이 향상된다는 것이다. 잠이 저축되는원리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아 연구단계에 있다고 한다. 정말 트레이시 러프 박사의 연구결과처럼 수면도 저축과 인출이 가능하다면 무작정 며칠밤을 새는 것보다 계획적으로 한가할 때 잠을 조금씩 더 자두었다가 필요할 때 좋은 컨디션으로 집중해서 빨리 일을 끝내는 것도 좋은 방법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러프 박사는 우리에게 평소에 조금씩수면시간을 늘려두는 것이 나중에 수면부족에 대처하는 능력을 향상시켜준다 말했다. 그렇다면 그 저축할 수 있는 조금의수면은 어디까지를 말하는 것일까? 만약 한계가 없다면 하루에 일주일의 잠을 몰아서 취한 뒤 맑은 정신으로 밤을 샐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연달아 있던 시험이 끝난 뒤나 정신 없이 바쁘던 한 주가 지난 뒤 주말에 밀린 잠을 몰아서 잔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실제로 필자는 겨울잠을 청한 것 마냥 죽은 듯이 오랫동안 자고 일어나곤 한다.

 

하지만 필자의 굳은 믿음을 배신하는 연구진의 결과가 나왔다. 미국 텍사스 사우스웨스턴 의학센터의 연구에 따르면, 잠을 한꺼번에 보충하는 것은 별로 효과가 없으며 오히려 주말에 밀린 잠을 자는 것은 월요일 아침에 더 큰 피로감을 초래한다고 한다. 이는 한꺼번에 잠을 더 자는 것이 우리 신체의 24시간 생체시계를 교란시키고 늦춰지게 해서 수면 패턴을 뒤죽박죽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간의 뇌는 정말 수면이 부족하고 졸리게 될 시 자동적으로 더욱 효율적이게 휴식을 취하게 되기 때문에 굳이 수면 시간을 늘릴 필요가 없다고 한다. 굳이 부족한 잠을 보충하려고 한다면 늦게까지 자는 것보다 평소 수면시간보다 일찍 자는 것이 더 좋다는 결론이다.

 

사실 필자도 지금 새벽 3시가 넘어가는 시간에 이 글을 쓰고 있다. 이제 늦게 잠드는 것이 습관이 되어 딱히 바쁜 일이 없더라도 일찍 잠들면 왠지 불안한 기분이 들기까지 한다. 사실 밤을 새는 것 외에도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수히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밤을 샌다. 밤을 새며 뜬 눈으로 지새는 이는 열심히 사는 자’, 일찍 편안히 잠자리에 드는 이는 노력이 부족한 자라는 인식을 우리도 모르게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