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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사회 :: Current Issues

그 겨울 불었던 바람


짧은 글을 시작하며


사실 나는 사석에서 정치얘기 꺼내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지난 1월 가장 중요한 국내 이슈가 뭐라고 생각하냐는 지인의 질문에 이청용과 구자철의 부상이라는 답을 했을 만큼. 이유야 여럿 있겠다만 내가 떠들고 다닐 만큼의 식견을 갖추지 못했다는 생각에서 말을 줄이는 이유도 있고, 불필요한 마찰을 (고깃집에서 죽일 듯 노려보며 정치토론을 하는 30대들의 모습이 바람직해 보이진 않더라) 피하려던 얄팍한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칼럼에서만큼은 정치얘기를 꺼내보려고 한다. 지식인의 칼럼보다는 정치기사 몇 줄 읽은 대학생 패션논객 냄새가 날듯하지만 하고 싶은 말이 있기 때문이다. 미리 말해두자면 궁극적으로 정윤회 씨 비선실세논란과 관련된 글이 되겠다. “국정농단 사건”에서부터 “문건유출 사건”까지 좌우스펙트럼에 따라 읽는 방법도 각양각색인 이 사건을 나는 이 글에서만큼은 “비선실세논란”정도로 일컬을 생각이다.

 

파트타임 공직?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장차관급 고위공직에 마치 편의점 알바 자리이듯 사람들이 들락날락했다. 인수위 출범부터 시작해 최대석 전 대통령직인수위원, 이동흡 전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황철주 전 중소기업청장 후보자,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한만수 전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등 셀 수 없이 많은 고위공직 후보자가 낙마하며 뉴스에 인사실패 소식을 올렸다. 심지어 정권 첫 17개월 동안 김종훈 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 김용준 전 국무총리 후보자 등 총 9명의 장관, 총리직 후보자가 낙마하며 사상최악의 인사라는 오명까지 덮어쓰게 되었다. ‘인사참사’라는 단어가 심심찮게 들릴 만큼 말 많고 탈 많았던 지난 2년이었다.

 

사실 야당의 네거티브식 인사공격과 정부발표라면 뭐든 비난하고 보는 온라인 ‘모두까기인형’들의 책임도 분명 있겠으나 근본적인 원인제공이 청와대였음은 부정 못할 사실이다. 공직기강비서관실의 철저한 검증을 거쳐 발표에 이름에 올렸을 후보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청문회에서 너무나도 쉽게 지난 과오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십 수번의 실패를 지켜보며 사람들은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도대체 왜 반복된 실패와 비난에도 청와대는 인사검증을 철저히 하지 않는가? 어째서 인사발표가 이리도 쉽게 나는 것인가? 그리고 앞서 가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말을 빌리자면, 최고위 공직자 인사가 이리 부실하다면 차관급 이하 공무원들에 대한 인사는 얼마나 졸속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가? 이러한 청와대 인사시스템에 대한 불신은 작은 범위에서는 청와대, 넓게는 공직자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빌미가 된다. 행정부에 대한 국민불신을 키울 나비의 날갯짓이 될 여지가 충분하지 않나.

 

박근혜 정부에 대한 불통 논란은 이번 1월 신년 기자회견과 함께 그 어느 때보다 불거졌다. 여당 내에서도 “답답해 기자회견을 보지 않았다”는 말이 나왔다는 것은 최대조력자여야 할 여당 인사들에게까지 인사문제에 관한 소통이 일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렇다면 상식적으로 이어질 질문은 하나다. 뭐 때문인데, 대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많은 평론가들과 정치권 인사들은 청와대 비선실세논란의 시발점이 된 청와대 보고서에서 찾는다.

 

청와대 기밀 찌라시

 

지난해 11월 29일 세계일보는 <청와대 비서실장 교체설 등 VIP 측근 동향>이라는 제목의 청와대 감찰보고서를 입수했다고 보도한다. 이 문건이 바로 이른바 ‘청와대 문건 유출사건’의 ‘문건’이 가리키는 핵심이며, 제목의 VIP측근이란 바로 오래도록 박근혜 대통령의 배후실세라는 의혹을 받아온 정윤회 씨다. 보고서의 내용은 상당히 자극적인데, 세계일보는 당시 보도로 안봉근, 정호성, 이재만 비서관을 포함한 10명의 인사가 정기적으로 정윤회씨와 만나 국정을 논하였다고 전했다. 해당 문건은 ‘문고리 3인방’(박근혜 대통령과 만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세 명의 비서관을 거쳐야 한다는 뜻에서 붙은 별칭)이라 불리는 세 비서관의 실명을 명시했으며, 해당 사조직이 후한 말 조정을 지배한 ‘십상시’와 같이 국정을 주무른다는 뜻으로 그들을 십상시에 빗대기도 했다. 보고서 제목에 명시되어 있듯 해당문건은 세 비서관이 정윤회 씨의 지시로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을 교체하려는 계획을 세웠다고까지 분명히 적었다.

 


해당 문건이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에게까지 전달되었다는 내용이 덧붙여짐과 함께 세계일보의 보도는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보고서의 내용이 야당이 오래도록 공격해왔던 비선실세의 존재를 드러냄과 동시에 청와대내 사조직의 기형적인 권력 독점을 암시(명시된 세 비서관은 행정직책상 대통령비서실장보다 분명히 아래이며 비서실장 인사권을 당연히 쥐고 있지 않다)했기 때문이다. (야당은 정부 출범초기부터 이재만 비서관, 박지만 회장, 정윤회 씨를 가리키며 이른바 ‘만만회’ 비선라인이 존재하지 않냐는 의혹을 줄기차게 제기해왔고, 비선 의혹은 4월 16일 세월호 사태 당시 7시간 동안 대통령이 공식 일정을 비우며 증폭되었다.) 논란이 커지자 야당은 청와대의 책임을 물으며 강하게 비난했고 여당마저 검찰조사를 지켜보자며 청와대를 옹호하지 않은 채 물러섰다.

 

이러한 상황에 청와대는 대변인을 통해 유출된 문건을 세간에 근거 없이 나도는 풍문을 짜깁기한 ‘찌라시’로 규정했다. 청와대는 문건의 유출과 왜곡된 보도로 국기를 문란시킨 책임을 묻겠다 발표하며 세계일보 상대 고소를 잊지 않았다. 정치권 인사들부터 일반 국민들까지 청와대 발표를 곧이 고대로 믿어줄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유출된 문건이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작성한 명명백백한 청와대 보고서였기 때문이다.

 

시나리오 쓰고 있네

 

정치권을 벗어나 전국민의 이목이 쏠린 가운데 일련의 액션들이 취해졌고 여러 ‘찌라시’들이 퍼즐조각처럼 이어지기 시작했다. 청와대 권력 암투설, 비선실세 의혹, 잇단 인사실패 원인 및 청와대 불통논란까지 점들이 이어지며 하나의 잘 맞아 떨어지는 내러티브가 완성되었고, 그 동안 청와대와 검찰은 여론을 무시한 ‘마이 웨이’수사로 일련의 결론을 내린다. (이 글의 목적은 이 두 사뭇 다른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 보고자 하는 탐정놀이 욕구에 기인한다.) 이 흥미진진하고도 불쾌한 퍼즐 맞추기는 유출된 문건의 작성의도를 묻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감찰 보고서의 작성은 많은 경우 견제의 의미다. 문제가 있음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인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를 견제하기 위해 누구에게 보여준다는 뜻인가?

 

<사진 출처: 아이엠피터>

 

많은 사람들이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위의 관계도에 집중했다. 정치권과 언론은 박근혜 대통령을 둘러싼 인물조직도를 바탕으로 하나의 잘 가다듬어진 시나리오를 내놓으며 박근혜 대통령 배후에 두 권력 라인이 있다고 추측했다. 바로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씨 세력과 ‘비선실세’ 정윤회 씨 세력. 시나리오에 따르면 유출문건의 시발점은 대통령의 혈족과 정치가신 간의 알력다툼이었다. 정윤회 라인의 문고리 3인방이 박지만 라인 인물들의 대통령 접근을 차단함에 따라 박지만 라인 측이 조응천 당시 공직기강비서관을 이용해 정치공세를 감행하려 했다는 것이다.

 

이 시나리오상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은 문고리 3인방, 즉 정윤회 라인이 대통령비서실장 교체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 핵심권력인 김기춘 비서실장을 포섭하려 했다. 그러나 그들의 기대와 달리 김기춘 비서실장은 해당 보고서를 묵살해 버리고, 오히려 문건을 보고하고 작성한 조응천 당시 비서관과 박관천 경정이 청와대에서 쫓겨나는 역풍을 맞으며 일련의 사건들이 일단락 된다.

 

마치 ‘왕좌의 게임’과 같은 전개다. 다만 위 시나리오가 조금의 설득력이라도 갖기 위해서는 등장인물들이 왜 박지만 라인 혹은 정윤회 라인에 속해있는지, 그리고 정윤회 씨는 어떻게 비선실세가 된 것인지에 대한 납득이 필요하다. 그렇겠지, 하고 고개를 끄덕일만한 인물은 얼핏 보기에 현직 대통령의 친동생인 박지만 회장뿐이기 때문이다.

 

등장인물 소개

 

가장 먼저 ‘민간인’인 정윤회 씨가 어떻게 핵심정치권력자로 지목되었을까. 박근혜 대통령과 정윤회 씨의 인연은 수십 년 전 197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4년 8월 육영수 여사 사망 직후 정윤회 씨의 장인 최태민 목사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위로의 뜻을 담은 편지를 보낸다. 퍼스트레이디가 된 10대의 박근혜 대통령은 이 편지를 계기로 75년 3월 최태민 목사를 청와대로 초청하여 친분을 맺게 되는데, 향후 20여 년간 동반자 및 조력자 격으로 최태민 목사를 곁에 둔다. (대한구국선교단 창단부터 육영재단 고문활동까지 긴 기간 박근혜 대통령과 최태민 목사는 함께 활동했고 신뢰는 두터웠다. 77년 중앙정보부의 최태민 목사 비리의혹 수사자료를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보고받았을 때 박근혜 대통령이 최태민 목사를 직접 옹호한 이력까지 있을 정도.)

 

그렇게 친밀했던 최태민 목사는 94년 노환으로 사망한다. 그리고 4년 뒤 98년 박근혜 대통령이 대구 달성군 보궐선거로 정계에 입문할 당시 ‘실장’ 타이틀로 함께 등장한 인물이 바로 최태민 목사의 사위 정윤회 씨다. 정윤회 씨는 '박근혜의 전 보좌관' 정도로 보도되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공식적인 직함을 가지고 전면에 나서는 인물이 아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월간지 신동아가 2012년 10월호에 실은 정윤회 씨 관련 기사엔 정윤회 씨가 인터뷰 당시 자신을 '박근혜 의원의 비서실장'으로 소개했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2007년 대선 경선 때 정윤회 씨를 단순히 '전직 입법보조원'이라 설명한 것과 겹쳐보면 정윤회 씨가 공식적으로 등록된 것보단 조금 더 중요한 인물이었던 것으로 미루어 볼 수 있겠다. 신동아 보도에 포함된 측근 증언은 조금 더 확실한 정황을 드러내는데, 1998년부터 “2012년까지 그대로 이어져오는 박 의원의 보좌진 세팅에 (정윤회 씨가) 관여”했다는 것과, “1998년부터 2004년까지 (정윤회 씨가) 공식 직함 없이 비서실장으로, 무보수로, 박근혜 의원실에서” 일하며 “의원실 내부를 종합적으로 컨트롤”했음을 밝힌다. 박근혜 대통령과의 개인적인 친분, 가족사, 그리고 명함 없는 의원실 내부 권력까지 정윤회 씨가 비선실세라 불릴 여지는 충분해 보인다.

 

그렇다면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은 어디서 등장하고, 그들은 왜 정윤회 씨와 그리 가깝나. 인터뷰 발췌 내용에 그 해답이 있다. 1998년부터 2012년까지 무려 14년간 그대로 이어져 왔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의원시절 보좌진. 그 보좌진의 핵심이 바로 안봉근, 정호성, 이재만 세 인물이며, 그들을 소위 ‘스카웃’해온 장본인이 정윤회 씨다.

 

박지만 EG회장과 조응천 전 비서관 또한 수년 전 인연이 닿은 사이다. 검찰 출신인 조응천 전 비서관이 과거 박지만 회장의 마약수사건을 맡았던 담당검사였기 때문이다. 안면을 틀 시간은 충분했을 것이다.

 

등장인물들의 인연고리들은 시나리오의 개연성을 의외로 높여놓는다. 하지만 문서 하나 둘러싼 논란 가지고 모두를 엮은 이야기를 풀어나가기에는 말 그래도 시나리오 쓰고 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다른 암시가 있었는지에 주목하게 된다.


쉿, 그들을 놀라게 해서는 안돼


다른 사건들은 마치 3D 영화처럼 특정 프레임으로 바라볼 때 그 실체가 명확히 드러난다.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과 그와 일하던 민정수석실 파견 경정들의 경질이 정말 정치공세 실패에 따른 역풍이라면, 이는 박지만 라인의 청와대내 패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문건 작성자인 박관천 경정은 경찰청 주요보직으로 내정되었던데 반해 결국 도봉서 정보과장으로 이동하는 좌천성 발령을 받았다.) 그리고 이 패배의 영향은 청와대 내부로 국한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미지 출처: 중앙일보>

 

감찰 보고서의 보고 이후 행정부, 군, 국정원 등 둥지를 가리지 않고 박지만 라인 쪽 인물들이 밀려나는 그림이 그려졌다. 먼저 박지만 회장과 가까운 사이인 백기승 국정홍보비서관이 5월 사임했으며 박지만 회장과 육사 동기인 이재수 기무사령관은 10월 1군 부사령관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모두 이유가 불분명했던, 시점이 애매모호했던 인사였다는 점에서 특정 세력, 즉 정윤회 라인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고 있다.

 

<사진출처: 중앙시가매거진>

 

거기에 지난 1월 번진 이른바 KY 수첩 파문 또한 청와대내 기형적 권력체제의 잔상을 드러냈다. "문건 파동 배후는 K, Y. 내가 꼭 밝힌다.” “두고 봐라 곧 발표가 있을 것"이라 적힌 김무성 대표의 수첩이 사진으로 보도됨과 함께 나온 이 이슈는 불과 몇 주전 터진 비선실세논란과 맞물려 크게 번진다. 유출된 청와대 문건 속 ‘십상시’에 속한 음종환 전 청와대 선임행정관이 사석에서 청와대 문건유출 사건의 배후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유승민 의원을 여러 차례 지목했다는 의혹이 불거지고, 사건의 중심에 선 음 행정관과 이준석 새누리당 전 비대위원(김무성 대표에게 위 발언을 전한 인물)간의 자질구레한 진실공방이 이어진다. 다만 그들 싸움의 논점, 즉 음 전 행정관이 누구에게 소리를 질렀는지, 이준석을 여자 및 방송 문제로 협박했는지, 혹은 K, Y 이름을 어떤 취지로 꺼냈는지조차 문제의 핵심과는 사뭇 동떨어져 있을 것이다. 이 사건의 핵심은 친박과 비박의 충돌이란 해석이 지배적이지만, 맞춰오던 시나리오에 충실한 이 글이 주목할 곳은 진실공방도중 족족 드러난 힌트들이다.

 

먼저 볼 것은 정치권 인사들의 반응이다. 김무성 대표가 발언 내용을 전화로 보고받을 때 그의 옆에 있던 새누리당 인물들은 통화가 끝나기도 전에 “그거 음 씨 아닙니까”라고 물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여당 대표와 그 주위의 국회의원들이 비서관도 아닌 행정관 하나의 이름을 꿰고 있었다는 뜻이다. 음 전 행정관의 행정직책 이상의 파워를 실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음종환 전 행정관은 어떻게 이런 위치에 있는 것일까. 가장 명료한 답은 바로 ‘문고리 3인방’ 정호성 제1부속 비서관과의 학연 및 지연이다. 음 행정관과 정 비서관은 고대 정외과 대학원 동기로 각별한 교분을 쌓은 것으로 알려진 데다 17대 국회부터 같은 보좌관으로서의 친분을 다져온 막역한 사이이다. 청와대내 최고실세와 친하다는 뜻이다. 거기에 그의 커리어도 한 몫 한다. 음 행정관은 권영세 현 주중대사 (최근 차기 대통령비서실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 등 핵심 친박 의원들의 보좌관으로 일했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 공보팀에서 일했던 한 인사는 인터뷰를 통해 "(음 행정관이) 친박계 핵심 보좌관으로 언론대응과 네거티브 대응에 핵심 역할을 했다"면서 "특히 음 행정관은 박 대통령 보좌관들과 밀접하게 소통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 입성자체도 현 정부 초 홍보수석을 맡았던 이정현 새누리당 최고의원과 함께 했다. 비록 행정관의 직급일지라도 가장 영향력 있는 친박 의원들, 가장 영향력 있는 청와대 인사들과 친분이 두터운 인물이라는 것이다. ‘십상시’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것이 놀랍지 않다.

 

수첩파문 이슈를 접한 유승민 현 원내대표는 안봉근 당시 제2부속 비서관(1월 23일 국정홍보 비서관으로 보직을 이동했다)에게 항의 전화를 건다. 홍보수석실 산하 홍보기획비서관실 소속의 음 행정관이었지만 대통령비서실장도, 홍보수석도, 홍보수석실 비서관도 아닌 제2부속 비서관에게 전화를 건 것은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정치권 인사들 또한 청와대내 사조직 커넥션을 강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한 이유다.

 

음종환 전 행정관은 나아가 전화인터뷰로 그의 입장을 밝히며 몇 가지 단서를 흘렸다. MBN이 독점 공개한 음 행정관 인터뷰 중 그는 자신과 친하게 지내던 동료직원들을 청와대에서 나가게 만든 조응천 전 비서관 및 박관천 경정의 응징을 위해 자신이 발벗고 “뛰어다니느라” 힘들었다 밝혔다. 거기에 “박관천 배후에 조응천”이 있다는 사실을 피력하려다 말이 와전되어 곤란하다고도 덧붙였다. 공교롭게도 KY발언이 새어 나온 술자리는 12월 18일, 박관천 경정에 대한 영장이 청구된 날 저녁으로, 마치 수사관의 임무완료를 자축하는 뒤풀이의 인상을 준다. 청와대가 예민한 시기, 평일 저녁에 홍보실 행정관이 일반적으로 자리할 곳은 아니었다.

 

덧붙여 KY 배후지목설을 부인하며 그는 조응천 전 비서관이 정계에 진출해보고자 “유승민 의원 같은 분들한테 줄대고” 다니는 모양새를 꼬집었는데 그 말을 이준석이 전 비대위원이 잘못 전한 것이라 해명했다. 그 해명의 진위와 관계없이 문제가 되는 부분은 그의 정보력이다. 조응천 전 비서관과 정계인사들의 만남은 알려진 사실이 아니었다. 추후 유승민의원의 부분적인 시인으로 비로소 알려진 비공개일정이었던 것이다. 청와대내 감찰업무를 책임지는 공직기강비서관의 비공개일정을 홍보실 행정관이 모두 꿰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울 정도로 거꾸로 잡이다. 홍보실 직원이니 귀를 닫아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특별한 루트 없인 가질 수 없는 정보력이라는 뜻이다.

 

발언의 시점 또한 주목을 요한다. 본래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을 뿐이었던 조응천 전 비서관이 피의자 신분으로 재조사를 받은 것은 26일. 음 전 행정관이 “박관천 배후에 조응천”이 있음을 주장했다는 술자리보다 일주일 이상 시간이 지난 시점이다. 이는 음 전 행정관이 미리 정해져 있던 검찰의 수사방향을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이미 수첩파문 이전부터, 특히 12월 31일 조 전 비서관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야당은 검찰 수사를 결론이 정해진 ‘짜맞추기’라 공격해왔다.) 음 전 행정관의 말처럼 그가 KY가 아닌 조 전 비서관을 배후로 지목한 것이라 해도 문제가 되는 이유다. 문제발언의 진위여부는 밝혀지지 않은 채 음 행정관은 면직처리 되었다.

 

에필로그

 

작년 12월 23일, 여야는 1월 9일에 청와대 비선의혹과 관련한 국회운영위를 열기로 합의한다. 야당은 1월 2일 민정수석이 출석하지 않으면 운영위를 보이콧하겠다는 발언을 시작으로 문고리 3인방과 민정수석의 국회출석을 강하게 요구하지만 여당의 “관례가 아니”라는 입장과 청와대의 “여야 합의가 요구되는 문제”라는 태도에 9일 오전 8시, 운영위 개최 2시간 전까지도 여야합의는 이루어지지 못한다. 9시경 야당은 민정수석 불참 시 운영위 파행은 물론 “국회 의사일정에도 중대한 차질”이 생길 것이라 으름장을 놓기에 이르며, 같은 시각 국민일보는 정호성, 안봉근 비서관 대신 김영한 민정수석이 출석하는 것으로 (청와대-여당 간) 의견접근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보도를 낸다. 결국 오후 2시 46분 극적으로 김영한 민정수석 출석에 대한 여야합의가 이루어지지만 김영한 수석은 출석을 거부하고 3시 사의를 표명해버린다. 다음날 10일 오전, 김영한 수석은 면직 처리된다.

 

<사진출처: 일요시사>

결국 이렇게 많은 사건과 잡음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에 대한 최소한의 질의도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당연히 ‘문고리 3인방’ 세 비서관 중 누구도 국회출석을 하지 않았고, 아무도 그들에게 묻고자 했던 것을 묻지 못했다. 오히려 김영한 수석 면직 처리가 발표된 10일 저녁, MBN에서 김영한 수석이 지난 5일 이미 청와대에 사표를 제출했으나 청와대에서 보류했던 사실을 밝혀 보도함에 따라 문고리 3인방 비서관들 대신 당시 사건과 직접적 관계도 없는 민정수석(청와대 유출문건 작성 당시 수석은 홍경식 전 민정수석)을 세워 총알받이로 삼으려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낳았다. 거기에 지난 7개월 간 민정수석의 대통령 대면보고가 없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김영한 전 수석이 비서실장의 지시만 받는데 대한 국정의 소외감 때문에 국회출석 건을 빌미 삼아 수리되지 않던 사표를 던지고 나온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게 되었다. 청와대 불통논란에 불을 붙인 이른바 김영한 수석 ‘항명파동’이다.

 

글을 마치며

 

검찰 수사는 ‘비선실세’ 존재 및 유력 인사들의 ‘권력암투’를 철저히 부정하고 있다. 유출된 문건은 근본적으로 찌라시지만 유출자들은 처벌하겠다는 기존의 입장 역시 변하지 않았다. (수사 역시 조응천 전 비서관과 박관천 경정 등이 출세에 대한 야욕으로 허위보고서를 썼다는 식의 방향이다.) 청와대 가이드라인을 그대로 따른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하는 이유다.

 

하지만 그 누구의 말이 맞든 정치, 언론계에서 나온 증언 및 정황상 증거들은 대통령을 둘러싼 두 개 세력의 구체적 존재를 암시한다. 거기에 조응천 전 비서관이 정윤회 라인 내부의 꾸준한 연락 사실을 밝히며 정윤회 씨 비선실세설에 무게를 실었다.

 

작년 4월 (공직기강비서관으로서) 비선 및 ‘십상시’ 모임에 관한 조사를 하던 중 정윤회 씨의 통화 요청을 받았고, 이를 무시하자 이재만 비서관에게서 '정 씨의 전화를 받으라'며 따로 전화가 걸려왔었다고 밝힌 것이다. 그래도 전화를 받지 않은 조 전 비서관은 바로 다음주 경질 통보를 받았다며 이를 문고리 3인방의 작품이라 말했다. 조 전 비서관의 해석이 옳든 아니든 정윤회 씨와 이재만 비서관이 굉장히 짧은 주기로 연락했다는 사실은 자명해졌다. 정윤회 씨가 지난 몇 년간 정치권 및 청와대 사람들과 일절 연락한 적이 없다 주장해왔던 것과 배치되는 사실이다. 이 거짓말의 확인은 본의 아니게 길어진 글을 하나의 귀결로 이끌어준다.

 

청와대 내외부의 비공식적인, 직함과 관계 없는 기형적 권력구조가 특정 부서들의 일부 기능, 특히 인사시스템을 철저히 왜곡 및 마비시킨다는 것이다. 실제로 조 전 비서관은 2013년 10월과 11월 사이 청와대로 파견될 경찰관 1명의 검증을 부정적으로 결론짓자 안봉근 비서관이 전화를 걸어 '책임질 수 있느냐'고 물어왔다고 전했다. (이후 14년 7월 조 전 비서관과 일하던 민정수석실 파견 경찰관 10명이 한직 발령을 받았다고 한다.) 핵심 비서관이 정무수석실의 기능인 인사검증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고 봐도 무방해 보인다. 조 전 비서관은 한창 인사검증이 이루어지고 있을 때 청와대 공식인사발표가 나버리는 경우까지 있었다고 폭로했다. 잇단 인사참사를 낳은 청와대 인사검증부실이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청와대에 친박 의원 보좌진 출신들이 여러 보직에 위치해있다는 사실은 그 하나로 큰 문제가 되진 않는다. 다만 그 인물들 사이가 지나치게 특별해지고 사조직화 되어 대통령의 귀를 막고 있는 것과 같은 그림이 그려진다면 말은 달라진다. 지금이 그런 꼴이지 않나. 과장을 보태 고려무신정권의 정방 정치마냥 청와대 여러 부서기능이 특정세력에게 휘둘리고 있는 정황이 드러났다. 대대적인 청와대 내부 개편발표가 기대되었던 신년 기자회견 자리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다시 한번 문고리 3인방에게 힘을 실어주자 모두가 분통을 터뜨리게 된 이유다.

 

국민을 위해, 국정을 위해, 그리고 근면성실한 공무원들의 자존심을 위해서도 인사참패는 되풀이되지 않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청와대가 건전한 인사시스템을 회복해야 한다. 시스템 실패의 문제점이 보이는 만큼 청와대 내부 물갈이의 신호탄이 터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자기 자리에 충실한 인물들이 제 직함에 맞는 업무에 충실해 21세기형 행정을 되찾을 수 있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