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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FICIAL PRESS/그 남자, 그 여자의 고백 - 完 -

(1) 연락, 그리고 기념일

 


하루 24시간을 매일 붙어있을 수 있는 게 아니기에 떨어져있는 시간 동안 네 연락이 나에겐 곧 애정이었고 관심이었고 사랑이었어. 아마 너는 이해할 수 없을 거야. 지금까지도. 나조차도 어쩔 땐 이해할 수 없거든. 그 얇고도 질긴 연락이라는 줄다리기를 내가 너무 힘들어서 이러다간 네가 나를 점점 싫어하고, 실망하고, 더 귀찮아하게 될까 봐, 우리 사이가 겉잡을 수 없이 멀어질까 봐 견디고 견디고 애쓰며 버티고 버티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아픈 손을 놓고 힘을 풀었는데, 그게 내 사랑까지 함께 놓아버린 거였나 봐. 단 하나, 정말 궁금한 게 있어. 처음엔 누가 등 떠민 것도 닦달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 좋다고 24시간도 부족하듯이 했던 나와의 연락이 왜 사귄 지 4개월쯤 돼서 서로에 대해 알 거 다 알고 편해지고 나니 의무처럼 변해가야 하는 걸까.


얼마 전 페이스북에서 찾은 몇 줄의 글. 20대 여성이 연인과 연락문제로 헤어지게 됐다면서 올린 다소 짧은 글. 연락 문제로 여러 번 다퉈도 발전이 없었다는, 그래서 결국 이별하게 되었다는, 그런 흔한 이야기. 내 이야기 같은 이야기.



다들 비슷한 연애를 하는가 보다. 너도 늘 나한테 따졌지 왜 연락 안 하냐고. 그래도 최소한의 연락은 늘 했다고 생각해어딜 가면 간다, 술 마시고 있다, 늦을 것 같다 등등. 근데 나도 나의 일이 있고 너도 너의 일이 있는데 하루 종일 문자하고 전화할 순 없잖아. 나는 연락 안 하면서 너한테만락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너는 마치 연락의 빈도가 감정의 크기와 비례하는 것처럼 말해. 남자의 연락이 처음보다 줄어드는 게 상대에 대한 마음이 식은 반증이라는 것처럼. 근데 말이야, 솔직히 너랑 나처럼 사귄지 꽤 된 커플이 처음처럼 24시간 동안 폰 붙들고 있지 않은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거 아니야? 처음엔 우리가 서로 몰랐으니까, 그러니까 너에 대해 더 알고 싶고 궁금한 게 많았어. 그 때는 너도 그랬을 거라 믿고. 이제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잘 알게 되었으면 처음처럼 연락을 하지 않는 건 당연한 거잖아. 그 당연한 게 왜 너를 서운하게 만드는 걸까. 우리의 문자 내용은 거기서 거기, 늘 하는 말만 되풀이할 뿐인데. “나 밥 먹어” “친구랑 있어” “나 지금 일해 이 뻔한 행동보고는 하루를 마무리하며 전화로 두런두런 전해도 되는 이야기일 텐데. 하루 종일 뭐 하는지, 누구랑 있는지, 분단위로 보고하길 바라는 너를 모르겠어. 


너는 이런 나의 모습을 보며 변했다고 말해. 근데 연락의 빈도는 변했을지 모르지만, 너에 대한 내 감정은 결코 변하지 않았어. 그리고 네가 문자를 하면 내가 문자를 씹는 것도 아니고, 만약에 내가 연락이 없으면 네가 먼저 줄 수도 있잖아? 나는 네가 생각이 나면 먼저 전화를 하고 문자를 하는데 너는 그냥 나를 기다릴 뿐인 것만 같아. 먼저 건네는 인사엔 그리도 인색한 네가 일기장 검사하는 선생님마냥 내 문자빈도에 답답해할 때, 나도 같은 답답함을 느낀다. 우리가 항상 같은 연락 레퍼토리로 싸운 이유겠지. 생각이 나면 연락을 줘. 서로 답답하지 않도록. 우리의 연락이 숙제가 되지 않도록.



그리고 기념일. 기껏 5분 대기조로 문자를 보내며 화해를 해놓으면 다시금 우리 사이를 틀어놓는 그 많은 기념일들. 100, 200, 300, 1. 그런 날들에 너랑 함께 있는 것만으로 난 행복하고 감사했어. 그 행복함과 감사함이 너에게 많이 비치지 못했다면, 그건 아마 모든 기념일을 무사히 챙겨야 한다는 부담감이 더 도드라져 보였기 때문이 아닐까. 경제적 부담감에 기념일 마다 조금 더 색다른 걸 준비해야 한다는 압박까지, 우리가 같이 보낼 시간은 끝없는 문제집이었음을 인정해야 할 테니. 기념일 전에 네가 말을 아껴도 무엇인가 기대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 그냥 지나치면 서운해 하는 것도 보이고. 정말 중요한 날을 그냥 특별함 없이, 아무 일도 아닌 듯 흘려 보내는 건 잘못됐겠지. 나도 우리의 특별한 날이 특별하도록 멋을 부리고 싶어. 근데, 그러기엔 기념일이 너무 많다. 일주일 간격으로 찾아오는 쓰잘데기 없는 데이들, 우리들만큼은 그냥 서로에게 감사하고 즐겁게 데이트 하면 어떨까. 이렇게 너에게 말한다면 서운해할 게 너무 눈에 보여서 솔직히 말하지 못했어. 다만 지나고 나서야 글로 남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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