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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FICIAL PRESS/세월호, 그리고 그 후

목숨 값을 매기려 하지 마십시오




목숨 값을 매기려 하지 마십시오

2016학년도 수능이 약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한국에서 수능은 큰 의미가 있는 날이다. 초, 중, 고 12학년의 교육과정을 한 번에 시험하는 자리이며, 앞으로 다닐 대학을 위한 자격 요건을 충족하는지 평가하기 위해 학생들의 수학능력을 검증하는 자리이다. 명문대를 가기 위해,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혹은 미래의 더 나은 직장을 위하여 제각기 다른 목표를 가지고 있는 50여만 명의 수험생이 이 하루만을 바라보며 달려왔다. 한국에서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저 하루의 시험을 위해서 매일을 새벽같이 일어나 아침 보충 학습을 하고, 학교수업이 끝나고 11시까지 야간 자율 학습을 하고, 그도 모자라 다시 새벽까지 학원을 가거나 집에서 과제까지 끝내고 2시쯤이나 되어야 잠이 들었던 학생들의 수고를. 수능 하나 때문에 매년 우울증에 걸리는 학생들도 많고, 더 심각해지는 경우 성적비관으로 자살하는 학생들까지 종종 매스컴에 자리를 차지한다. 또 한편으로는 재수, 삼수 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이며, 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대학과 학과를 위하여 다시 공부하는 데에 일년이란 시간과 막대한 돈을 쏟아 붓는다. 한국 사회에서의 입시는 공부하는 학생에게는 인생의 가장 큰 부분이며, 그만큼 많은 노력과 시간 투자를 요구한다. 공정한 입시정책이 없다면 이러한 노력은 물거품이 되며 조롱거리가 될 것이다. 그런데 만약 어떠한 사고의 영향을 받았다는 이유로 특정한 학생들만은 이러한 평가를 건너 뛰고 소위 말하는 명문대에 바로 합격할 수 있다면 과연 이것이 공정한 처사이며, 모든 사람들의 찬성을 받을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든다.


(사진1: 세월호 침몰사고 피해학생의 대학입학지원에 관한 특별법안)


실제로 한국에선 이런 일이 일어났다. 바로 세월호 사건 이후 발의된 특별 법안인데, 그 중 한 단락에 단원고 학생들의 특례입학에 대한 부분이 포함되어 있다. 이 부분에 대한 많은 논란과 논쟁이 있었으나 아무 소득 없이 현재 원안대로 진행이 되어버린 상태다. 필자는 이러한 특례입학이 사고로 희생된 아이들의 목숨 값을 이용하여 얻은 부당하고 전혀 정당성 없는 이득이며, 세월호 사건 생존자 학생들은 이 특례입학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단원고 특례입학 전형은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희생된 아이들을 이용하여 부당이득을 취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단원고 특례입학은 정시입학 전형이 아닌 수시전형이다. 수시 전형 중에서도 특별 전형으로써, 정원 외 합격으로 쳐진다. 농어촌 전형도 있고 지역균형선발이란 전형도 있는데 왜 단원고 특례입학에 대해서만 논란을 만드느냐는 말이 많다. 이는 단원고 특례입학이 다른 기회균등 제도와 비교했을때 분명히 다른 점이 있기 때문인데, 그것이 바로 최소 등급이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른 기회균등 전형은 최소등급이 있어 최소한의 학력 기준을 맞추지 못하는 응시생들은 탈락이 된다. 다시 말해, 최소등급이 없다는 말은 수능을 친 후 5등급 6등급 혹은 9등급의 결과를 맞는다고 하더라도, 서울대든 연세대든, 어느 학과든 마음대로 진학할 수 있다는 말이다.


(사진 2: 단원고 특별전형 수시 경쟁률)


          또한, 세월호 특별전형 역시 응시자끼리 경쟁을 하게 되는 것은 마찬가지기 때문에 아무런 경쟁이 없는 것은 아니라 하지만, 웃기게도 사실상 경쟁률이 역전되는 현상이 나타났다각 대학교에서 특별전형을 만드는 바람에 지원 자격자보다 모집인원이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남들은 모든 것을 걸고 공부를 해도 갈까 말까 한 서울 소재의 대학을 최소한의 학력 기준도 없고 경쟁조차 없이 입학한다. 다른 수험생들과의 비교를 통한 형평성 문제와 공정성을 꼬집어 보자면 이러한 특별전형은 공정한 절차를 밟아 대입을 준비하고 있는 학생들을 우롱하는 처사이다.


서울대 세월호 특별전형의 명칭은 ‘기회 균등’이다. 과연 기회 균등이라 불릴만 할까. 앞서 말한 것처럼 이 특별 전형은 기회의 균등을 위한 제도라기보단 특권부여를 위한 제도로 볼 수 밖에 없다. 단원고는 원래부터 1등급, 2등급 학생들이 존재하지 않던 학교다. 때문에, 이 학생들이 오로지 세월호 사태로 인해서 서울대 혹은 소위 "인서울 (in-Seoul)" 대학교에 갈 기회를 잃었다고 보긴 어렵다. 수능과 내신의 평가, 그리고 정시와 수시라는 두 가지 기회를 다른 학교의 고등학생들과 똑같이 부여 받았는데, 어째서 단원고 학생들의 대입 전형 과정이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서 기회의 침해를 받았다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 이러한 비정상적인 특례가 전체적인 입시 정책의 형평성에 관해 볼 때 어떻게 기회의 균등이 되는지 모르겠다. 오히려 이러한 특별 전형은 정당한 전형으로 올라온 다른 수험생들의 기회와 노력을 빛 바라게 하고 있다. 굳이 이 특별전형을 내 마음대로 명하자면 음서 혹은 천거 전형 아니면 세월호 특권전형이라고 칭하는게 옳겠다. 세월호 사고에 대한 보상으로 유래가 없는 입시 특혜를 받았으니 말이다. 더 실망스러운 점은. 단원고 학생들과 사고 대책위원회의 이중적인 태도이다.


유가족과 사고 대책 위원회(이하 대책위)는 사고로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 아이들의 목숨 값을 저울질하고 있다. 특례입학은 대책위에서 먼저 나온 얘기였지만, 대책위에서는 자신들이 특례입학을 원한 적이 없고, 자신들은 보상보다는 진상규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며 그 말을 부인하고 있다. 아마 어처구니 없는 특례 입학정책 때문에 여론이 돌아설까 무서워 거짓말을 한 것일테지만, 기록에 남아 있으며 결론적으로 대책위에서 요구한 것이 맞다. 특례입학에 대한 논의가 대책위에서 사고 후 한 달 뒤 이루어졌으며, 그 것에 대한 특별 법안도 새정치민주연합 유은혜 의원의 발의로 시작되었다 (사진 1). 현재도 부정만 할 뿐 그 특혜를 거두려는 의지는 전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애초에 학생들이 자신의 실력에 맞는 학교를 지원했다면 그런 추궁이 거둬졌겠지만, 단원고 학생 중 상당수가 지원한 아주대, 단국대도 낮은 등급의 학교가 아니며, 심지어 한신대나 성결대도 2, 3등급 정도의 내신이 필요한 곳이다. 단지 세월호에서 생존했다는 이유만으로 노력 없이 이런 대학의 입학 자격이 생긴 것이다. 2등급으로는 원서도 내기 힘든 연세대, 고려대를 차치하고서라도 특별전형에서 최소등급을 요구하는 성균관대와 홍익대의 전형 지원자 수를 보라. 다른 학교에 비해서 지원자 수가 확연히 적은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모습은 사고로 친구들의 목숨값으로 대학 입시에서 이익을 극대화하겠다는 꼼수로 밖에 안 보인다.


(사진 3: 단원고 학생들의 특별법을 위한 도보행진)


특례입학의 기본적 골자는 아이들의 정신적 충격으로 인한 수학능력의 저하이며, 그것에 대한 보상이다. 하지만 이런 정신적 충격을 어떻게 정량화 할 것인가가 의문이다. 친구를 잃은 슬픔이 더 클까, 부모님을 잃은 슬픔이 더 클까? 만약 부모님을 잃은 슬픔이 상대적으로 더 크다면, 우리 사회는 이를 경험한 모두에게 대입 특별전형으로 최소등급 없는 특혜를 주어야 할까? 또한, 일상생활이 불가능 할 정도의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면 단원고 생존자들은 어떻게 그 많은 시위와 행진을 성공적으로 진행하였는지 의심스럽다. 학습 과정을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세월호 사태가 정신적인 부분에서 장애가 된다면 수학능력이 없는 것이므로, 오히려 대학 입학 자격을 주어선 안 될 일이다. 실제로 정신적 문제가 크다면 사고를 일으킨 회사 측으로부터 정신적인 치료에 대한 금액을 보상받아야 할 일이지 특례입학으로 ‘특혜’를 받을 일이 전혀 아니다. 사고에서 생존했다는 것이 사회에 이바지를 했다거나 영웅적인 일도 아니며, 전공에 대한 그 사람의 특별한 능력도 아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이유로 학생들이 특례를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세월호 생존자들은 피해자이다. 보상을 받아야 할 일이지 특혜를 받을 이유는 하등 없다.


일본의 경우도 대지진 이후 이런 특례입학 처사는 없었다. 도시가 파괴되고 세월호 사태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지만, 생활지원과 학비 지원 정도가 고작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또다른 예를 들자해도, 성수대교 참사 때 대입 특례를 받은 무학여고 학생들은 없었다. 대구 지하철 참사 때도 마찬가지다. 보상금은 있었지만, 사고를 겪은 고등학생을 위한 대학 특례 입학은 없었다. 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사상자들의 목숨은 아깝지 않은 것인가? 국가의 총체적 부실로 일어난 성수대교 붕괴 때 친구들의 죽음을 경험한 무학여고 학생들은 특례 없이는 대학입시에 실패할 정도의 슬픔을 받았는가? [1] 국가와 교육기관에서 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조치는 학년 유예를 통해 사건후 정상적 학습을 받을 수 없던 고등학교의 1년 과정을 한 번 더 제공하는 정도면 충분하다.


수능의 목표는, 비록 현재는 아이들을 학벌의 기준 아래 줄 세우는 꼴로 변질하긴 하였지만, 원래 첫째로는 대학과정을 수학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있는지를 평가하는 시험이다. 한국 대학의 성적 평가는 절대평가가 아닌 상대평가를 하는 가닥으로 방향이 잡혀있는데, 과연 이러한 특례로 명문대를 들어간다고 해서 이 아이들이 전공 과정 속 다른 일반 전형 학생들과 경쟁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또한, 수준 미달이 되는 이들이 입학한다면 매 조별 과제마다 마찰이 생길 것이고 결론적으로 정당하게 자신의 실력으로 입학한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는 꼴을 보게 될 것이다. 세월호 대책위의 상식 밖의 요구와 세월호 사건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유익을 확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의 친구들과 자식들의 죽음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 혹은 단원고 학생들의 죽음은 그토록 고귀하여 국가적, 범국민적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다른 일반적 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은 그런 보상이 필요 없는 개차반 취급을 하자는 것인지 싶다. 물론 그러지 않기를 소망하지만 이러한 사고는 예전에도 꾸준히 일어났으며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럴 때마다 특별법을 제정하여 천문학적 보상과 대입 특혜를 줄 것인가. 세월호 사고로 잃은 단원고 학생들의 목숨은 고작 생존한 자녀들의 무자격 대입을 위해 희생된 것이 아니다. 비정상적이고 비이성적인 팔자고치기식 정책은 그만 포기하고, 단원고 생존자들이 남들과 똑같은 형평성 맞는 대입기준 아래 떳떳하게 평가 받고 꿈을 향해 달려갔으면 좋겠다.




[1] 연평도 포격사건 이후에 서해 5도 학교에 대한 특례조건이 있긴 하였지만 도시 자체가 포격을 당한 준전시 사태라 교육 환경 자체를 잃은 경우이며, 이 경우 최소등급이 있어서 수준 미달의 학생들이 명문학교에 들어가는 경우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