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EDITORIAL/문예 :: Literature

공백


정신이 없다. 방 안에 홀로 앉아 멍하니 알 수 없는 무력감에 빠져든다.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을 던져본다. ‘난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지?’ 이 공허함과 허탈함은 점점 더 내 머릿속을 장악함과 동시에 어떠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으로부터 빠져나오려는 시도조차 불가능하게 만든다. 계속해서 돌아가는 시계의 초침을 따라가다 보면, 문득 불안하다가도 무언가를 시작할 엄두가 나질 않는다. 그저 켜져 있는 컴퓨터의 모니터만을 바라보며 나약한 나를 위로하고 있을 뿐이다.

외롭다. 친구들과 어울려 웃고 떠들 때 만큼은 그 외로움을 잠시나마 외면할 수 있지만, 내면에 존재하는 외로움을 웃음과 태연함 뒤에 감춰둘 뿐이다. 예전에는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내 속에 쌓아두기만 했던 고민거리를 입 밖으로 터놓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순간적인 해결책이다. 십년지기 친구일지라도 라는 사람이 될 수 없기에, 내 외로움은 언제까지나 나 혼자 짊어지고 가야 할 내 짐인 셈이다.

노래를 틀어본다. 아무래도 지금 이 기분에 신나는 노래는 어울리지 않는다. 갑자기 듣고 싶은 곡이 떠올라 이를 듣기 시작한다. 노래가 끝날 즈음에 이어 들을 비슷한 분위기의 다음 노래를 떠올려 보지만 이보다 더 마음에 드는 노래는 야속하게도 생각나지 않는다. 결국 똑같은 노래를 무한 반복하고 있다.

부모님의 전화를 받는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정겹고 익숙한 목소리에 23살의 나는 아이처럼 다시 나약해지지만 최대한 멀쩡한 척 전화를 받는다. 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여봤자 부모님 마음만 불편해질 뿐, 변하는 것은 없겠지. 그래서 나는 애써 태연하게 대답한다. 전역 후 부푼 마음과 걱정을 안고 미국행 비행기에 오를 때 부모님께서 흘리신 눈물을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분들의 눈물이 책임감이 되어 나를 엄습한다.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기 위해서는 나의 나약한 자아를 또다시 꾸짖고 극복해야 한다. 



밥을 먹는다. 물론 식욕은 없지만 그래도 제시간에 끼니는 때워야 할 것 같으니 억지로라도 먹어야겠지. 부모님은 늘 밥은 잘 챙겨 먹느냐는 말로 통화를 시작하셨다. 그러므로 억지로 먹을거리를 찾아본다. 직접 요리를 하기에는 번거롭고 나가서 사 먹는 건 질릴 때가 되었다. 대충 배를 채워줄 음식이 없는지 냉장고를 열어 위 칸부터 아래 칸까지 훑어본다. 괜히 집이 최고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며 간단하게 한 숟갈, 두 숟갈 떠본다. 왠지 모르게 숙제를 하나 끝낸 듯한 기분이 든다.

책을 펴본다. 지금 내 기분과는 상관없이 책은 지극히도 현실적이다. 내 감정이 어떻든 아랑곳하지 않고 내가 해야 할 일을 알려주고 있는, 건조하다 못해 무심한 책을 보며 괜스레 야속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이 순간에도 경쟁자의 책장은 넘어가고 있다는 말이 떠올라 조급해지지만, 모르겠다. 일단 지금은 공부할 기분이 아니다. 마음 한 구석의 불안함을 억누르며 책을 덮는다.

그렇게 한참을 울적한 기분에 빠져 있다 문득 나 자신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 종일 무엇을 했나 되돌아보지만 오늘 하루 일과는 한심하기 짝이 없다. 의무감 때문에 수업에 가고, 캠퍼스를 오고 가다 만나는 친구들과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고, 집에 돌아와 무의미하게만 느껴지는 수많은 고민에 빠져있고... 같은 환경에서도 활기차고 즐겁게 지내는 친구들을 보며 스스로를 나무란다. 억지로라도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선다. 역시 뭐라도 나가서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잠시나마 해야 할 일을 해본다시간은 벌써 훌쩍 지나있지만 역시 얼마 하지도 못 했다. 그래도 하루 중 그나마 생산적인 시간을 보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인적이 드물어진 길을 지나 터벅터벅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온다.



침대에 눕는다. 내일도, 모레도, 그다음 날도 오늘과 다를 것이 없을 거라는 생각에 가슴이 턱 막힌다. 나의 먼 미래를 보려고 그 아무리 노력해봐도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게 현실이다. 내가 바라는 미래만을 그려보고 상상해볼 뿐이다. 그리고 내가 바라는 미래가 실현된다면 그때는 진정 행복할 수 있을까를 스스로에게 묻는다. 역시나 확실한 답은 얻지 못한다. 그저 더 이상 방황하지 않기 위해 확실한 목표를 정해 놓고, 그곳에 다다르면 행복할 것이라고 믿어보려는 것이다. 머리가 또다시 복잡해진다. 내일도 내일의 할 일이 있을 테니 쓸데없는 고민은 그만하고 일단 눈을 감아본다. 계속해서 스며드려는 잡념들을 애써 무시하며 점점 잠에 빠져든다.

정신없이 바쁘게 살다가도 문득 내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달려가고 있는가에 대한 회의감이 들 때가 있다. 비단 나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늘 행복하고 걱정 없어 보이는 주변의 누군가도, 마음 한편에는 나의 것과 비슷한 공백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그 공백의 존재를 깨닫는 순간 우리는 한없이 작아지고 무기력해진다. 그리고 이런 자신의 모습을 부끄럽게 여기며 다른 이들로부터 숨기려 할수록 스스로의 나약함을 더욱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당신의 마음속 공백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아도 된다. 당신의 공허함을 안으로 숨기든 밖으로 표출하든, 당신 주변의 사람들도 한 번쯤은 비슷한 불안과 혼란을 느낀다. 아니, 어쩌면 오늘 당신이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눈 그 친구도 당신과 헤어진 뒤 집으로 돌아가서 당신과 같은 마음을 느끼며 혼란스러워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니 굳이 그 마음 덩어리를 풀어보려고, 혹은 공백을 메꿔보려 할 필요는 없다. 이 글은 당신에게 해결 방법을 제시하는 글이 아니다. 그저 당신은 혼자가 아님을 알려주는 글이다. "혼자라는 생각은 혼자만의 생각"이라는 노래 가사처럼, 다른 누군가도 당신과 비슷한 외로움을 느끼고 있음을 알린다. 그리고 이 글을 다 읽을 즈음 당신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안해졌기를 바란다.



'EDITORIAL > 문예 :: Literatur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십 년 후, 서울  (4) 2015.10.21
The Interns  (1) 2015.10.15
Her. Hatred.  (0) 2015.05.01
Above  (0) 2015.04.29
The Power of Being Choiceless  (0) 2015.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