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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사회 :: Current Issues

'강남 유학생' 왜 줄어드는가?

미국의 학기가 끝나는 5월 말이면, 서울 강남 일대가 들썩인다. 방학을 맞은 유학생들이 이곳으로 몰리기 때문이다. 우선 월세가 급등한다. 그리고 학원이 붐빈다. 미국 고등학교, 또는 대학에 재학 중인 유학생들은 이곳에서 대학과 대학원 입시 준비를 한다. "입시 준비는 역시 '한국식 사교육'이 최고"라는 평판 때문이다.

미국 대학, 대학원 입시를 준비하는 학원이 성황을 이루는 배경에는 냉정한 시장 원리가 있다. 기본적으로 '수요'가 워낙 많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따르면, 2007~2008학년도 미국 내의 해외 유학생 중 한국인 유학생의 수는 1위인 중국, 2위인 인도를 바짝 추격하는 3위다. 한국 전체 인구가 인도 인구의 약 23분의 1이고, 중국 인구의 27분의 1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인 유학생의 수가 얼마나 많은 것인지를 실감할 수 있다.

한국이 그토록 많은 학생을 미국으로 유학 보내는 이유는 다양하다. 한국의 교육시스템이 안 맞아서, 다양한 문화를 접해보고 싶어서, 영어를 배우고 싶어서 등.

그러나 실제 유학생들이 가장 많이 드는 이유는 '유학생에 대한 고정관념'이다. 유학을 하면 무조건 좋은 직장을 얻고, 고국에 '금의환향'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여기에 한국 정부 역시 한몫한다. 이명박 정부는 '해외 일자리 도전'을 청년 실업 극복 방안으로 제시했다. '해외 일자리'를 얻는 데는 아무래도 유학생이 유리할 것 아닌가.

그러나 '유학생에 대한 고정관념'은 그저 관념일 뿐이다. 현실과는 아주 동떨어져 있다. '해외 일자리' 얻기 역시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많은 유학생들이 품은 꿈은 그저 환상일 뿐인가. 그것 역시 아니다.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다채롭고 복잡하다. 우선 첫 번째 사례를 보자.

#1. 김형락 씨, 뒤늦게 미국 유학 와서 학부 졸업 후 현지 취직

2007년도에 편입해 2009년에 UC버클리 경제학과 통계학 복수전공으로 졸업한 김형락 씨 (27). 그는 현재 미국 오클랜드에 있는 현지 회사(Hanin Federal Credit Union)에서 사무직(Loan Officer)로 일한다.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바쁠 때는 회사에서 살다시피 한다는데, 김 씨는 아무리 일이 많아도 정해진 퇴근 시간에 '칼퇴근'할 수 있다. 또한 한국처럼 상하관계가 엄격하지 않고 자기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 게다가 한국에서 일하는 친구들에 비해서 연봉도 1~2만 불 더 받기 때문에 그는 지금 그가 하는 일이 즐겁다. 그는 몇 년 후 지원 예정인 MBA 과정에 지원할 생각인데, 국내기업보다는 미국 현지기업 경력이 더 유리하다. 그러니 회사 생활에 대한 만족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김형락 씨는 국내대학을 다니다가 군 복무 이후인 스물 네 살에 미국 유학을 결심했다. 가장 큰 동기는 '아메리칸 드림'이다. 능력에 따라 대우받고, 상사 눈치 볼 필요 없는 문화.

꽤 성공적인 사례다. 문제는 모든 유학생이 김 씨처럼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김 씨도 처음부터 취업에 성공한 것은 아니다. 졸업 전 학기 중 대기업 세 군데를 지원했지만 다들 '석사 이상'의 학력을 요구하였고, 탈락의 고배를 마시며 진로를 한창 고민하던 중 학기 후에 지원한 회사에서 제의를 받아 취직에 성공했다. '만약 취직을 못 했다면 한국으로 돌아갔을 것이냐'라는 질문에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라고 웃으며 얘기했다.

#2. 김지헌 씨, 미국 학부 졸업 후 한국으로 돌아와 대기업 취직 예정

학부 순위 상위10위 안에 드는 소위 '명문대'를 졸업한 김지헌 씨(24, 가명). 그는 지난 2009년에 경제학 전공으로 졸업했으나 현지 취업에는 성공하지 못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김 씨는 어렸을 때 제3국으로 이민을 간 후 대학 입학과 함께 미국 유학생이 됐다. 졸업 후 약 10여 곳에 지원하였지만, 인터뷰 제의가 들어온 곳은 고작 두 곳이었고, 그 두 곳마저도 인터뷰 후 별다른 연락이 없었다. 그는 고민 끝에 결국 한국에 돌아왔고, 올 8월부터 한국 기업에서 일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영주권이나 시민권 없이는 미국에서 취직을 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더 도전해 볼까 하다가 지쳐서 그만뒀다. 또 미국에서 일하게 되면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자주 보지 못한다는 점도 내가 한국으로 돌아오는 결정을 내리는데 한 몫 했다. 한국에서는 꽤 알아주는 기업에 취직했지만 미국보다는 연봉이 1~2만 불이나 적다. 무엇보다도 걱정되는 것은 한국 내에 존재하는 직장상사와의 상하관계이다. 외국에서 오랫동안 생활한 내가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또한, 한국은 주로 퇴근시간이 지나고도 일을 해야 하는 날이 많다고 들었는데…. 쉽지 않을 것 같다."

김지헌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에게는 유학이 그리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았다. '그래도 유학을 다녀오면 영어라도 잘하게 되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유학을 통해 영어는 많이 배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영어는 대학에서보다는 어릴 때 훨씬 많이 배웠다. 대학에 가서 한국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외국인들과 어울릴 기회가 많지 않다. 게다가 영어가 내가 취업을 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한국 회사에서 일하면서 고난도의 영어를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한국 대학을 졸업하고도 영어 잘 하는 친구들이 많으므로 큰 장점이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미국 대학에서 학사 학위를 받은 것도 국내에 있는 외국기업이 아닌 이상 크게 인정해 주지 않는 거 같다."

김형락 씨와 김지헌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유학의 결과는 극과 극이다. 그렇다면 누구의 말이 옳은 것일까?

▲ 유학생을 위한 학원이 밀집한 서울 강남역 일대 풍경. ⓒ연합뉴스

현지취업의 높은 벽…눈 높은 유학생

미국 대학들은 그들이 외치는 '열린 교육' 구호에 걸맞게 외국 학생들을 많이 받는다. 많은 외국인을 유치하기 위해 그들이 펼치는 마케팅은 대기업 뺨친다. 미국 대학 입시를 준비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Welcome'이라는 환영 메시지와 입학설명 메일을 수없이 받아 보았을 것이다. 그들은 실력 있는 유학생들에게는 가끔 파격적인 제의도 한다. 하지만, 졸업할 때쯤 취직하려고 손을 내밀면 태도가 180도 달라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때의 느낌은 '당황'을 넘어 '배신'에 가깝다.

그렇게 환영하던 미국은 정작 취업을 시도하는 유학생들에게는 냉담하기만 하다. 현지 회사들은 영주권이나 시민권이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유학생들의 지원서조차 받지 않을 때도 있다. 최근 미국의 경제 위기와 오바마 정권 출범으로 유학생들의 취업은 더 어려워진 것이 현실이다.

미국에서 취업하지 못하게 되면 한국으로 돌아와야 하는 게 대부분의 한국 유학생 실정이다. 그들이 '유학파'라는 자신감으로 무장한 그들이 한국에서 그들의 눈높이에 맞는 직장을 구하기란 미국에서 직장을 얻기만큼이나 어렵다. 최근 국내 대기업들이 유학생을 파격적인 조건에 고용하는 사례가 늘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미국 현지 기업의 제의보다 연봉이 약 1~2만 달러나 차이가 나는 수준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정부가 국내 청년들에게 강조하는 것처럼 '눈을 낮춰' 국내 기업에 취업하는 것은 어떨까? 작년에 미국대학 졸업 후 국내 기업에서 일자리를 잡아 일하고 있는 오재준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3. 미국에서 어렸을 때부터 쭉 생활한 오재준 씨 (24, 익명)

그는 작년 미국 주립대에서 환경 경제학 전공으로 학부를 졸업하였지만 경제난 속 좁은 취업의 문을 뚫지는 못하였다. 그리고 그는 주저 없이 가족이 있는 한국으로 돌아와 지금은 어느 국내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오랫동안 미국생활을 한 그가 한국에서 일하면서 느낀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 한다.

"한국에 와서 처음에 직업을 찾을 때 힘든 점이 너무 많았다. 아는 사람도 많지 않고, 학연과 인맥의 공백이 너무 컸다. 또한 인터뷰를 할 때면 어눌한 한국어 때문에 노골적인 무시도 많이 당했다. 취직하고도 문화적 차이는 계속 느꼈다. 예를 들자면 회사일이 끝나고도 회식을 꼭 참가해야 하는 것이 나에게는 매우 생소하면서 불편했다. 왜냐하면 미국에서는 일이 끝나면 전적으로 나만의 개인적인 시간을 갖는 건데 한국에선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취직생활이 1년이 넘으면서 차차 적응해 나가고 있는 오 씨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조언을 하고 싶다고 했다.

"나처럼 한국에서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다면 졸업 후 미국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왜냐하면, 인맥과 학연 없이 한국 주류에 끼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한국에서의 생활은 미국생활과 많이 달라서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에 온 지 1년이 되었기 때문에 적응은 되었지만, 아직도 국내의 학연과 인맥의 공백은 아쉽다.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하여 내년에 서울대에서 MBA를 할 예정이다. 물론 미국에서 하고 싶은 욕심은 있지만, 계속 한국에서 생활할 것을 생각하면 한국 대학원이 나에게 더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강남 유학생이 줄고 있다. 왜?

유학생을 만난 이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게 있다. 그들은 언제나 당당하고, 남들보다 앞서 간다는 자신감을 느끼고 있다. 고국을 떠나 멀리서 공부하면서 어려운 고난들을 혼자 잘 헤쳐나간 만큼, 자신들의 결정에 뚜렷한 근거와 강한 확신도 있다.

하지만 앞서 소개한 김 씨와 오 씨의 사례에서 보았다시피, 유학은 더 이상 장밋빛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다. 취업전선에서는 남들보다 앞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오 씨의 경우처럼, 유학 생활을 오래 했다면 언어와 인맥의 벽에 막혀 '눈을 낮춰' 취직하는 것마저 힘들 때가 있다. 미국에서의 취업은 더욱 쉽지 않기에 '당당한' 유학생들은 이미 진퇴양난에 빠져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서울 강남 지역의 유학생 수는 지난 4년 동안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다 ⓒ교육개발원

조기 유학 열풍의 진원지인 강남에서 조기유학생 수가 매년 줄어들고 있다고 하는 기사가 나온 적이 있다. 학업에 관한 정보력에는 누구에도 뒤지지 않는 게 강남 학부모들이다. 그런 강남에서 나타난 뚜렷한 감소 추세만큼 유학생 앞에 놓인 현실을 잘 보여주는 것도 드물다. 강남 일대가 유학생들로 들썩이는 풍경 역시 '한때'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런 추세에도 불구하고, 이미 많은 수가 유학을 떠났다. 일자리 문제에 관한 한, 진퇴양난에 빠져 있는 이들에게 활로는 없을까. 앞서 소개한 김형락 씨가 유학생들에게 전하는 충고다.

"미국으로 유학을 왔다면, 대부분 미국에서 일할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처럼 유학생이 넘쳐나는 때는 남들보다 더 눈에 띌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예를 들어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는 클럽활동이나 깊은 학구열을 나타내는 복수전공을 하는 게 좋다. 그래도 학부 졸업 후 취직은 쉽지 않다. 그 때 낙심하지 말고 석사 혹은 박사 과정을 알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석사나 박사를 마치고 난 이후에는 유학생들에게도 주어지는 기회가 많아진다."

그러나 이런 충고를 받아들이기에는 부담이 따른다. 석사, 박사 과정을 이수하는 데는 만만치 않은 시간과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애초 학자나 연구자를 꿈꾸지 않았던 유학생이라면 더욱 그렇다.

OECD의 통계를 보면 약 만 명의 한국인이 미국에서 유학하고 있다고 한다. 결코 적지 않은 숫자다. 그리고 이들이 학업을 마친 뒤 마주칠 현실 역시 만만하지 않다. 미국 현지 취업과 국내 취업이 모두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리고 어느 쪽에 취업하건, 줄곧 현지에서 교육받은 사람보다는 더 힘든 적응 과정을 거쳐야 한다. 남들보다 더 힘든 길을 택해서 꿋꿋이 걸어가는 유학생들에게는 격려를 보낼 일이다. 아울러 막연한 환상에 젖어 유학을 결정하려는 이들에게는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