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숲, 대신 전해드립니다 - 익명의 위험성

Posted by 이뜬리
2016.02.15 18:21 EDITORIAL/사회 :: Current Issues







최근 Facebook 페이지 중 하나인 우리 캠퍼스 내의 익명 소통의 장, "UC Berkeley 대신 전해드립니다" 또는 "벜대전"에 버클리 캠퍼스 앞 버스 정류장 근처의 흡연 행태에 대한 비판글이 올라오며 신입생/편입생 논란 이후 다시 한 번 온라인 상의 논쟁이 벌어졌다. 이와 같은 "대신 전해드립니다" 페이지의 설립은 비단 대학교들 뿐만 아니라 한국의 타 고등학교, 대학교, 더 크게는 지역 등의 많은 커뮤니티 내에서 발생하고 있는 현상으로, 익명성이 보장된 소통이라는 점에서 많은 이용자들의 흥미와 지지를 얻고 있다. 하지만 익명성이라는 양날의 검은 언제나 그렇듯 어느 정도의 분란과 논쟁의 여지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대신 전해드립니다" 페이지들 역시 익명성의 문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실정이다. 본 글의 취지는 "대신 전해드립니다"라는 소통의 공간이 갖고 있는 잠재력과 위험성에 대해 재고해보는 시간을 갖고, 조금 더 성숙하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해당 페이지를 이용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필자는 "대신 전해드립니다"의 익명성 소통 방식이 한국 내 대부분의 대학교 뿐만 아니라 유학생 커뮤니티 내에서도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현상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UC Berkeley 뿐만 아니라 기타 한국 대학교의 "대나무 숲" 혹은 "대신 전해드립니다" 페이지를 돌아다니며 올라오는 글의 유형을 알아보고자 노력했다. 물론 페이지의 수 뿐만 아니라 각 페이지에 올라오는 게시물 수가 워낙 방대해 필자의 의견이 모든 페이지의 성격을 대변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관찰을 통해 "대신 전해드립니다" 혹은 "대나무숲"에 올라오는 게시글의 유형이 대부분 크게 세 가지로 나뉠 수 있음을 발견했다.

첫 번째 유형은 넋두리형 글이다. 대부분 자신이 처한 곤란한 상황이나 일상에서 오는 스트레스, 고민 등을 익명으로 페이지에 게시하여 불특정 다수의 조언을 구하거나 위로를 받고자 하는 게시글로,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 자신의 신원을 밝힐 필요 없이 폭 넓은 의견을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대학생은 고민이 많다. 우리는 하루하루 학교 생활, 성적, 수강 신청, 인간관계, 연애, 또는 금전 및 취업 등 수많은 문제들을 맞닥뜨리고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개인적 문제들은 아직은 어른이라 불리기에는 어리숙한 우리 대학생들이 혼자서는 감당하기 벅찬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을 주변의 누군가에게 대놓고 공유하기에는 너무 민감한 주제라고 생각될 때가 많다. 또, 각자의 개인적인 문제들을 쉽게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도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익명성이 보장된 SNS에서 나와 같은 문제로 고민하고 있을 또래들과 소통하고자 하는 욕구는 당연히 존재한다. 따라서 필자는 "대신 전해드립니다"나 "대나무숲"의 가장 큰 순기능은 바로 익명성이라고 생각한다. 근 몇년간 사람들 간의 소통 단절이 너무나도 흔한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우리 세대에서 이렇게나마 자유로운 소통의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은 꽤 의미가 있는 일이다.

두 번째 유형은 호감표현형 글이다. 캠퍼스에서 호감이 있는 상대를 발견했을 때 그 사람이 누군지 또는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문의해보기도 하고, 상대방에게 호감은 있지만 자신이 없어 쉽게 표현을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혼자만의 외침을 하는 경우도 종종 보인다. 

마지막 유형은 문제제기형 글이다. 익명성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의 가장 유용한 기능임과 동시에 가장 큰 문제점도 내포하고 있는 유형이다. "벜대전"을 예로 들자면 편입생 관련 글과 흡연자 관련 글로 인하여 순간적으로 많은 논란이 일었던 사례가 있다. 마찬가지로 한국 대학교에서도 대나무숲에 게시된 글로 인해 대대적인 논란이 발생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일례로 2015년 4월 모 대학교 중간고사 기간 중 집단 부정행위에 대한 고발글이 해당 대학교 내 익명성 게시판에 올라오면서 실제 부정행위를 한 학생들이 처벌받은 바가 있다. 또, 다른 대학교에서는 선배들의 부당하고 강압적인 후배 교육에 대한 고발이 해당 대학교 대나무숲에 올라오며 해당 대학교 학생들과 다른 누리꾼들의 질타를 받은 사례도 있다. 가장 최근 필자가 발견할 수 있었던 사례로는 한 대학교 학생이 과다한 신입생 OT비용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며 문제를 제기한 게시물이었다. 


(출처: YTN)

 

이러한 부분이 "대신 전해드립니다"와 "대나무숲"의 양면성이다. 부정 행위에 대한, 혹은 가혹 행위 및 잘못된 문화에 대한 고발은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루어지기가 힘들다. 그 고발이 옳건 그르건, 한 집단 내에서의 문제점을 외부로 노출시킨 구성원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은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만약 위와 같은 사례에서 고발이 실명으로 이루어졌다면 아무리 많은 제 3자들이 해당 고발자를 지지했다 해도 글쓴이의 사회 생활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을 것이다. 따라서 "대나무숲"과 같은 플랫폼이 제공하는 익명성은 폐쇄적인 집단 내의 부당한 행위 및 문화를 외부로 노출시킬 수 있는 창구라는 긍정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필자가 지적하고 싶은 문제는 바로 이러한 문제제기식 유형의 게시물들이 건설적인 해결방법으로 이어지느냐, 혹은 비판 또는 비방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애매한 곳에서 그치느냐이다. 익명성의 그늘은 문제제기를 더 쉽게 만들어주지만, 그 문제제기에 대한 책임감을 잃게 만든다. 만약 누군가가 허위의 정보를 토대로 타인의 욕을 한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질 수 있을까? 악의를 가진 제보자가 복면을 쓴 채 누군가를 공격하게 되면, 그 제보는 SNS라는 커뮤니티의 불특정다수 앞에 무방비로 놓이게 된다. 대나무숲 자체가 한 커뮤니티 내에서 이용되는 공간인만큼 특정인을 지목하지 않더라도 해당 구성원들이 피고발자를 유추하기는 쉽고, 근거 없는 의심 역시 증폭되는 것은 한 순간이다. 현재 익명 제보 페이지들에는 이에 대한 예방책 및 안전 장치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익명성에 대한 위험성은 항상 존재하고 있다.

덧붙여 "벜대전"을 비롯한 대부분의 "대신 전해드립니다"나 "대나무숲" 페이지들에서는 관리자 역시 익명이기 때문에 게시 이전의 스크리닝에 있어 객관성 및 형평성이 보장되는지 우리는 알 방법이 없다. 익명 게시글이 올라가는 페이지 특성상 무조건적 비방 및 인신 공격성 글을 방지하기 위해 게시글에 대한 사전 검토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관리자들 역시 해당 커뮤니티의 구성원일테니 그들이 관리하는 플랫폼을 통해 발생하는 문제제기에 있어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만약 관리자 자신과 연관된 사건사고에 대한 문제제기형 글을 제보받았을 때, 해당 관리자들이 과연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을 지 의문이 든다. 관리자들 역시 익명성의 그늘 안에서 보호받고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무책임해질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필자가 짚고 넘어가고 싶은 문제는 과연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익명성 소셜 커뮤니티가 실제 이용자들이 자신의 커뮤니티에서 경험하고 있는 문제들의 해결방안으로 이어갈 수 있는지다. 물론 위의 부정행위 사례에서는 익명 고발이 크게 이슈화되어 해당 학생의 처벌로 이어졌다. 하지만 "후배 군기 잡기" 사례의 경우, 해당 대학 관계자는 "온라인에 유포된 게시글이 익명으로 올라와 진상을 확인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현재 학과 내에서 이런 관행은 거의 사라진 것으로 알고 있다" [1] 라고 해명했다. "벜대전"에서만 보더라도 한차례 논란이 되었던 편입생 비판 게시물이나 캠퍼스 근처 흡연과 관련된 글 역시 일시적인 소동만 일으켰을 뿐 그에 마땅한 아무런 개선 방안이나 대책 마련이 없이 끝나버렸다. 

지금까지 야기한 문제들은 모두 익명성을 기반한 문제들이다. 하지만 "대나무숲"과 같은 인기 플랫폼의 가장 중요한 성질인 익명성을 빼버린다면 그들이 가진 순기능 역시 사라질 것을 인정한다. 따라서 익명성이 보장된 공간에서 건전한 문제제기가 이루어지고, 그 문제들의 해결로 나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이용자들의 의식 개선이 우리 앞에 놓여진 가장 중대한 과제이다. 논란이 된 글들을 보면 "문제가 있으니 개선하자"라는 의도보다는 공개적인 비판을 위한 의도가 강하게 느껴진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자기 자신이 드러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와 책임감이 있다면, 남들의 비판도 존중하고 참고할 필요가 있다. 비록 게시물 작성자들은 자신의 신상을 감출 수 있지만,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 인원 전체에게 본인만의 의견을 공개한다는 점에서 일정 수준의 책임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 또, 올라오는 글을 읽는 이용자들 역시 "대나무숲"이나 "대신 전해드립니다"가 진흙탕 싸움판이 아닌 커뮤니티 발전을 위한 자유로운 의사표현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인지하고 이에 걸맞는 의식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필자 역시 UC Berkeley의 학생으로서, "벜대전"이 학교 내 한인 커뮤니티의 발전을 위한 공간이 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출처:

[1] 연합뉴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11/10/0200000000AKR20151110059300065.HTML?867f3f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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