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잔의 술 - 그 달고도 쓰라린 기억에 관하여

Posted by 레오정
2016.03.16 14:05 OFFICIAL PRESS/콜라보 인 더 한칼



수많은 젊은이들이 신나게 춤을 추고 있는 클럽에서 다같이 소리지르며 하늘 높이 들어올리는 짜릿한 테킬라 한잔. 햇빛 눈부신 날 한적한 공원 정자 아래서 노인들끼리 장기를 두며 벌컥벌컥 마시는 시원한 막걸리 한 잔. 지치고 힘든 날 일을 마친 직장인들이 신세를 한탄하며 회사 근처 곱창집에서 곱창 구이 한 점과 함께 입 속에 털어넣던 쓰디쓴 소주 한 잔. 친구들에게 원망과 고마움을 동시에 느끼며 두 눈을 질끈 감고 마셨던 지독히 맛없던 젊은 날의 생일주 한 잔. 하루를 마무리하며 홀로 의자 등받이를 한껏 젖히고 앉아 잔잔한 음악과 함께 즐기는 차디찬 맥주 한 잔. 술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하기에는 수없이 다른 모습으로 인생의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한 잔의 술"은 우리네 삶에서 떼놓을 수 없는 존재임에 틀림없다. 이번 <콜라보 인 더 한칼>에서는 누구나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잊지 못할 한 잔의 술에 대하여 두 칼럼니스트의 서로 다른 기억을 여러분들과 공유해보고자 한다.


내 인생의 술 한 잔을 떠올렸을 때, 수많은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해보았을 만한, 새벽과 함께 취해가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친구들과 나누었던 담백하고 진솔한 이야기의 기억들은 두 시가 훌쩍 넘은 지금 이 시각에도 피곤한 나를 슬며시 웃음짓게 만든다. 미래에 대한 걱정 같은 무거운 주제부터 음담패설이 뒤섞인 남자들의 끝날줄 모르는 여자 이야기까지, 동네 거리 한켠을 지키고 있던 주황색 비닐 포장마차에서 이모님이 끓여주신 얼큰한 어묵탕과 함께 들이킨 추억들은 마치 우리가 쌓아온 세월처럼 늘어만 간다. 하나둘씩 얼굴이 벌개져갈 때쯤, 취한 친구들을 택시에 태워보내고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기분좋게 '갈 지'자로 천천히 걷다보면 어느새 집 앞에 도착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렇게 기분 좋은 아련한 추억들 역시 성인이 되면서 갖게 되는 셀 수도 없이 많은 술자리에 희석되어 단순한 그리움 이상의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못했고, 그저 그렇게 친구들끼리의 평범한 술자리로 마음 속에 자리잡고 말았다. 그렇게 익숙함 이상의 무언가를 찾아 기억을 더듬어 갈 때 머릿속에 스쳐지나간, 시간이 지나도 절대 잊지 못할 것만 같은 그 때 그 시간의 술 한 잔은, 친구들도 사랑하는 연인도 아닌 나의 아버지와 함께한 한 잔이었다.


주황빛 노을과 함께 어둠이 스멀스멀 차가운 도시를 덮어갈 무렵, 집 앞 조그만 카페에서 한참을 책 한 권에 푹 빠져 있다 서서히 지쳐갈 때 쯤 주머니의 전화가 울렸다. 여지없이 친구 놈들 중 한 명이 술 한 잔 하자고 불러낼 법한 시간이기에 별 기대 없이 꺼내든 휴대폰에는 아버지의 번호가 찍혀 있었고, 집에 언제 쯤 들어오냐는 평범한 퇴근 시간의 안부 전화임을 예상하며 전화를 받았다. 어디냐는 아버지의 첫 마디에 이어진 말은 내 인생 처음 들어본 "아들 술 한 잔 할까?" 라는 말이었다. 당황스러움과 어색함에 말을 더듬으며 나는 알겠다고 대답하였고, 집 근처 지하철역에서 만나기로 한 후 서둘러 가방을 챙겨 카페를 나섰다. "왜?" 라는 질문에 사로잡혀 걷다보니 어느새 지하철 역 앞에 다다라 있었다. 느슨하게 맨 넥타이에 외투를 한 팔에 걸치고 저 멀리서 걸어오는 그를 보았을 때, 아버지와의 술자리가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아 어디로 향해야 할지 고민하면서 가방과 외투를 빼앗듯이 받아들었다. 그의 옆에 서자마자 술과 담배 냄새가 뒤섞인 익숙한 그의 향기가 훅 풍겨왔고, 발그레한 아버지의 얼굴에서 이미 술을 꽤나 드시고 오셨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무엇이 먹고 싶으냐는 질문에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 가장 좋아하는 삼겹살을 말했고, 오늘 하루 어땠냐는 평범한 부자간의 대화를 나누며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우리는 동네의 한 삼겹살집으로 향하였다.


희뿌연 고기 굽는 연기와 사람들의 정겨운 복닥거림으로 가득한 가게 안으로 들어가 앉아 삼겹살 2 인분과 소주 한 병을 주문하는 그 순간에조차 나는 아직 무슨 얘기를 어떻게 해야하나 걱정하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장남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버지는 나에게만큼은 항상 엄하고 무섭기만 한 존재였고, 갓 성인이 된 후까지도 심하게 혼나고, 때때로 맞기도 했던 기억들은 그 때까지도 가슴 한 켠에 트라우마로 남아있었다. 회사에서 회식이 있거나 할 때면 거나하게 취해서 집에 들어온 아버지는 사춘기 소년이었던 나에게 잔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던 듣기 싫은 설교를 계속 반복할 뿐이었고, 그런 그를 속으로 원망하며 집에 돌아올 때면 곧장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나오지 않기 일쑤였다. 단둘이 있으면 어색하기만 했던 그런 그가 술병을 들었을 때, 나는 마치 갓 전입 온 이등병인 양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아 두 팔을 뻣뻣히 들어 술을 받았다. 상사와의 술자리를 대하는 부하 직원처럼 경직되어 있었고,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삼겹살 한 점에 평소 느끼던 쓰디쓴 알코올의 맛조차 느끼지 못하며 소주를 한 잔씩 털어넣었다. 일부러 고기 굽는 일에 열중한는 척 하는 나를 바라보며 아버지 역시 별말없이 서로의 잔을 비워갈 뿐이었다.


출처: <http://www.22st.net>


그렇게 초록색 빈 소주병 두 개가 서서히 식어가는 삼겹살 옆에 놓였을 때쯤, 아버지는 꽤나 취해있었다. 사실 스무 살이 되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을 때부터, 나는 아버지보다 술을 잘 마시는 편이었고, 둘 모두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내가 취한 모습은 마지막까지 보여드리고 싶지 않았기에, 그렇게 맨정신으로 나는 가만히 취한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을 말 한 마디 없이 그렇게 먼 곳을 바라보시던 아버지는 내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병을 들어 자신의 잔에 스스로 술을 따랐고, 황급히 잔을 든 나에게 천천히 술을 따라준 후 풀린 눈빛과 살짝 혀꼬인 발음으로 물었다. "아빠도 힘들다. 아들은 아빠가 어렵니?" 라고. 누가봐도 앞뒤조차 맞지 않는 이 한 마디 말을 듣고, 나는 차마 곧바로 잔을 들 수 없었다. 술기운을 빌려서야만 간신히 털어놓을 수 있었던 그 말은 분신과도 같이 너무나 당신의 모습을 똑닮아 지금 자신의 앞에 앉은 아들로 하여금 또다른 차원의 삶의 무게를 느끼게 하고 있었다. 특히나 자식에게만큼은 언제나 말 그대로 슈퍼맨이고 싶은 당신일 것임을 알기에, 아버지가 스스로를 벌거벗김이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프게 다가왔다. 그리고 아들인 내가 그도 아파하고 힘들 수 밖에 없는 한 사람임에 대한, 그리고 그 고통을 얼마나 이해하는지, 아니 얼마나 이해하려고 했는지에 대한 물음을 나 자신에게 던졌을 때, 무력함과 죄책감에 고개를 떨구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나는 아버지를 따라 잔을 들었고, 독한 맛조차 잊고 싶지 않았던 그 투명하게 빛나던 소주 한 잔을 나는 최대한 천천히 들이켰다. 쓰지만 달콤했고, 쓰라리지만 간지러웠고, 아프지만 행복했다.


그 한 잔이 지독히도 아름다웠던 그 밤 아버지가 마신 마지막 술이었다. 이제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그 무렵, 그는 힘겹게 손을 들어 "여기 소주 한 병 더 주세요"라며 주문을 했고, 말리려는 나를 앉으라는 한 마디로 제지했다. 나의 그 자그마한 소주잔을 다시 한번 채워주며 이미 취한 아버지는 자신의 빈 잔을 들었다. 챙그랑 하고 울리는 그 청량한 잔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나는 술을 들이켰고 그는 빈 잔을, 그의 한숨을 들이켰다. 빠르지도 않은 또 느리지도 않은 자신만의 속도로 나에게 술을 따라주셨고, 얼큰히 취한 아버지를 바라보며 흐르는 생각에 잠겨 한 잔 한 잔 그의 고민들을 받아 마셨다. 그렇게 몽롱하고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던 그 밤도 서서히 깊어만 갔다. 몸이 따뜻하게 달아오르며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된장찌개의 김도 사라져갈 때 쯤 아버지를 부축해 집으로 향했고, 걱정하는 어머니의 잔소리와 함께 그를 눕혀드렸다. 홀로 방으로 들어와 지친 몸을 뉘었을 때, 여전히 가슴에 남아있던 그 한 마디를 떠올리며 오랜 시간을 뒤척였고, 아들과 아버지가 아닌 남자 대 남자로서 느낀, 부모님을 향한 존경 그 이상의 뜨거운 감정에 혼란스러워하다 지쳐 잠에 들었다.


기쁨을 나누기 위한 술자리이건, 슬픔을 위로하기 위한 술자리이건, 그 시간 술과 함께 한 수많은 감정들 역시 다음 날 아침이면 몰려드는 머리가 깨질 듯한 숙취와 함게 사그라들게 마련이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술의 신 디오니소스가 헤라 여신의 저주를 받아 광기에 차 여기저기를 방랑하게 되듯이, 술 역시 지나치면 우리의 건강을 헤치고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기분 좋게 취하는 것과 어지러움을 느끼기 시작하는 것의 경계는 딱 술 한 잔 차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생각해 본다. 그 날 밤 집 근처 허름한 고깃집 구석진 테이블 위에 아버지의 마지막 술 한 잔이 없었다면 아버지는 언제쯤 나에게 그 말을 해주었을까 하고 말이다. 그만큼 입 밖으로 꺼내기에 많은 용기가 필요한 말이었기에, 하지 못했다면 또 스스로 가슴에 묻고 아파했을 말이었기에, 한 잔의 힘을 빌린 그의 선택이 나는 고맙고 또 고맙다. 그렇게 우리는 마음의 간격을 좁혀갈 수 있었고, 아버지와 단둘이 하는 술자리는 언제나 나에게 즐겁고 의미있는 기억이 되었다. 또 아버지에게 내가 먼저 "술 한 잔 하실래요?" 라고 물으며 새로운 한 잔의 기억을 만들겠다고 다짐하며 세상만사에 지친 모든 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마시자 한 잔의 추억.


출처: <http://tandol.egloos.com>


어두운 조명 아래 조금은 비좁은 테이블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사람들과 왁자지껄 떠드는 술자리만큼 힘든 하루를 마무리하기에 좋은 방법은 없는 것 같다. 친구의 새로 산 외투 자랑부터, 얼큰히 취한 친구가 늘어놓는 무거운 정치 얘기까지, 술을 더 맛있게 해주는 안주거리들이 각기 다른 사람들의 입에서 쉼없이 흘러나온다. 분위기에 취해 술 한 잔을 더 따르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며 꽤나 자주 받는 질문을 누군가가 또 던진다. "술 잘 드세요?" 그러면 내 대답은 늘 한결같다. "아니요, 좋아해요!" 


주변만 둘러보더라도 술에 대한 입장은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내 지론은 이렇다. 술은 기쁨은 배로 늘려주고, 슬픔은 반으로 줄여주며, 따분하고 지루한 시간들을 빨리 가게 해준다. 그래서 나는 "한 잔하자" 라는 이 한 마디를 굉장히 반겨 듣는다. 누군가에게는 간단히 주고받는 인사치레 정도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그 한 마디가, 그 사람이 나와 자신의 희노애락을 공유하고 싶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침대에 걸터 앉아 연인과 나누는 산미가 살짝 풍겨오는 와인 한 잔은 그들이 나누는 달콤한 행복을 담고 있고, 면접에 떨어진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 나누는 포장마차 아래 소주 한 잔은 그들의 씁쓸한 고뇌를 담고 있으며, 일요일 저녁 끝나가는 주말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가족들과 옹기종기 거실에 앉아 치킨과 마시는 청량한 맥주 한 잔은 가족 안에서만 느낄 수 있는 포근한 편안함을 담고 있다. 이렇게 우리 라이프 패턴 속에 촉촉히 적셔져 있는 "술."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든, 싫어하는 사람이든 술에 대한 '특별한'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다. 누군가에게는 그 특별한 기억이 웃음으로 가득 채워진 가볍고 즐거운 술자리일 수도, 누군가에게는 술에게 정신을 빼앗겨 저지른 실수 때문에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나 같은 경우에는 술, 그리고 같이 마셨던 사람들에게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받은 기억들이 가장 특별하고 선명히 가슴에 남는다.


다소 많은 나이로 미국에서 공부를 시작했을 때 너무나 많은 장애물들이 나의 앞길을 가로막았었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던 당당하던 나의 모습은 영어 한 마디를 내뱉을 때마다 생기는 막연한 두려움에 점점 사라져가고 있었고, 힘든 하루를 보내고 나면 늘 달려가 안길 수 있었던 가족과 친구들이라는 활력소는 머나먼 타지에서, 나와 닿을 수 없는 곳에서 자신들의 삶을 나 없이, 달라진 것 하나 없는듯이 잘 이어나가고 있었다. 아직도 또렷이 기억이 나는 순간이다. 유학생들에게 더 냉혹하고 무례한 것으로 정평이 나있던 교수의 수업을 들었을 때의 이야기인데, 수업 시간에 이해를 하지 못한 부분을 묻기 위해 그 교수의 오피스를 찾아갔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질문을 하는 나에게 교수는 내 발음을 지적하며 발음부터 연습하고 질문을 하러 오는 것이 예의라며 난데없는 꾸중을 주었다. 자존심은 바닥 끝까지 추락했고 오피스에서 나오자마자 한국에 돌아가야겠다고 결심을 했다. 분노와 창피함으로 기분이 엉망이 되었고 미국이라는 땅에서 한없이 초라해지는 내 자신이 싫어졌다. 


그렇게 한없이 자기연민과 혐오 사이에서 헤매고 있을 무렵, 때마침 미국에서 사귄 친구들이 내게 술 한 잔하자며 연락을 해왔고 나는 두 말할 것 없이 그에 응했다. 어떻게 이 곳 생활을 정리하고 돌아갈까를 고민하며 술을 들이키고 있는데 친구들이 무슨 일이 있냐며 걱정스런 얼굴로 물었다. 사실 고백하자면, 나는 그들을 진심어리게 친구로 생각하지는 않고 있었다. 빠르게 생활에 적응하기 위하여 한국인 친구들은 사귀지 않고 있었고, 볼 때마다 아직은 생소하게 느껴지던 그들의 파란 눈과 갈색 머리만큼 그들의 가치관과 문화관은 내가 가지고 있는 그 것들과 많이 달랐다. 그래서 그들에게 한 번도 나의 속마음을 편히 털어본 적이 없었는데 그 날 마신 와인은 조금 더 독했나본지 그간 내가 미국에서 느꼈던 것들을 토해내게 하고 진짜 '나'의 모습을 드러내주었다. 나의 진지한 얘기를 장난기 하나 없는 얼굴로 들어주는 그들을 바라보자니 그들의 눈이 파란지 초록빛인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나를 걱정스레 바라봐주는 그들의 눈빛은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 보여주던 눈빛과 다를 바가 없었고, 나를 걱정해주며 내뱉는 조언들과 격려들 역시 비록 언어가 다를지언정 그 안에 담겨져 있는 따스한 감정이 한국에 있는 나의 가족들의 따뜻함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그 날 끝없이 와인잔을 기울였고 마지막 한 병을 끝낼 무렵 알 수 없는 정착감과 소속감이 나를 위로해주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지금까지도 서로를 또 하나의 가족이라고 칭하며 든든하게 의지할 수 있게 되었다. 꼭 술 덕분에 정체성을 찾았다거나 진정한 친구를 사귀었다고 거창하게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술이 없었다면 그 날 그렇게 솔직하게 나를 드러낼 수 있었을까? 옆에 있어주는 사람들의 고마움을 그렇게 쉽게 깨달을 수 있었을까?


출처 : <http://www.bachelorvegas.com>


옆에 있어주는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을 술로 인해 깨닫게 된 또 하나의 기억이 있다. 조금 더 특별히 좋아했던 사람과 평범하게 이별을 한 적이 있다. 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생소한 느낌의 슬픔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이별을 전해준 핸드폰을 여전히 한 손에 꼭 쥐고 눈물을 흘렸다. 몇 시간이 흐른 뒤, 가까스로 울음을 그치고 한 첫 행동은 위로받을 수 있는 친구들의 연락처를 검색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때 그들에게 평소에는 설레는 마음으로 주고받았던 그 한 마디를 꺼냈다. "술 한 잔 하자." 다소 이른 저녁 시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토 하나 달지 않고 부름에 달려와준 친구 두 명은 나를 실내 포장마차로 인도했다. 한여름 밤이였지만 조금 서늘한 밤공기를 염려한 주인 아저씨가 튼튼히 쳐놓은 비닐문을 걷고 들어가서 등받이도 없는 빨간 원통의자에 우리는 쪼르르 앉았다. 기본 안주로 나온 당근을 아무렇지 않게 씹으며 아무렇지 않은 척 덤덤히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한 마디 한 마디가 끝나기 무섭게 친구들은 위로의 말과 함께 내 술잔을 채웠다. 그들이 따뜻한 배려의 말들도 쌓이고 알싸한 소주병도 질세라 무서운 속도로 쌓여갔다. 주량의 한계를 향해 뛰어가고 있을 때에, 술은 창피함도 잊게 하는지 나는 양복군단 아저씨들 사이에서 더 이상 흘릴 수조차 없을 것 같았던 눈물을 다시 쏟아냈다. 내가 왜 이 술자리를 특별히 기억하는지는 여기에 있다. 이상했다. 친구들과 술 한 잔을 나누기 전, 혼자 방에서 쏟아낸 눈물은 너무나 날카롭고 차가워서 상처를 더 깊게 후벼팠는데, 친구들의 품에서 흘린 눈물은 조금 더 따뜻하고 둥그런 모양으로 내 안의 상처를 감싸안아 주었다. 과연 술이 없었으면 내가 부끄러움도 잊은 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속시원히 울 수 있었을까? 술의 힘을 받아 한바탕 징징거림을 쏟아내자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시원한 소주로 칼칼한 목을 씻어내고 내가 우는 와중에도 친구가 꿋꿋이 추가한 매운탕 속 라면사리와 함께 또 한 번 들이켰던 소주 한 잔은 괜시리 뜨듯해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물론 술이 언제나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나은 상황만을 제시해주는 것은 아니다. 취중진담이라고 한다지만 어쩔 때는 정말 생각해본 적도 없는 남에게 상처주는 말들이 술술 흘러나오기도 하고, 술에 취해 가눌 수 없는 팔다리가 한없이 원망스러울 때도 있으며, 아무리 만족스러운 술자리를 가졌을지언정 다음 날 느끼는 숙취의 고통은 다시는 술을 입에도 대지 않을 것이라며 자기 자신에게 지키지도 않을 다짐을 하게 한다. 하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의 술에 대한 끝없는 탐닉은 왜 술이 하늘이 내려준 최고의 선물이라 칭해지는지 보여준다. "나는 술을 마실 때 생각하고 생각할 때 술을 마신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술에 관련된 명언이다. 사고의 휴식을 위해 마시는 술도 즐겁지만 지금 휴대폰을 꺼내 소중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그들과 함께 호흡하며 마시는 술 한 잔을 오늘 밤 즐겨보는 것을 이 글을 읽은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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