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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문화 & 예술 :: Culture & Art

폭풍의 눈 속으로: 프랭크 스텔라의 회고전을 기념하며


[1]


"Art is not escape, but a way of finding order in chaos, a way of confronting life." Robert Hayden


       우리는 정신없이 살아간다. 매 순간이 폭풍우 속을 걷는 기분이다. 쉴 틈이 없고 나 자신을 이유 없이 재촉한다. 그런 나에게 위로가 된다고 생각했던 것들마저 독이 된다고 느껴질 때, 예술은 우리를 다독여준다. 나보다 더 많은 혼돈과 카오스를 겪었을 예술가가 창작의 고통을 이겨내고 탄생시킨 작품은 마치 폭풍의 눈처럼 묘하게 고요하고 정적이다. 수많은 작품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위로의 말을 품고 있지만, 돌아오는 11월부터 샌프란시스코 De Young Museum에서 열리는 프랭크 스텔라의 회고전을 기념하며 그의 예술관을 소개하고자 한다.


[2] J. M. W. Turner, Snow Storm: Steam-Boat off a Harbour's Mouth, 1842


       예술이 주는 고요함에 있어서 프랭크 스텔라만의 특징이 있다면 그것을 형태의 반복을 통해 시각적으로 구현했다는 것이다. 윌리엄 터너의 폭풍우 그림이 격동적인 상황을 아름답고 평온하게 표현한 데서 고요함을 느끼게 한다면, 프랭크 스텔라는 회화 자체를 의도적으로 단순하게 만들고자 했다. 아무런 구체적인 오브제가 존재하지 않고, 작품이 은유적이지도 않다. 기존의 예술작품들이 작품 이면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다면, 프랭크 스텔라는 이 기존 관념에 완전히 반하는 시도를 하고있는 것이다. 이런 그의 작품의 단순성이 프랭크 스텔라의 의도를 알지 못하는 관람객에게는 무의미해 보일 수 있다. 대중들이 현대미술을 어려워하는 이유들 중 한 가지 역시 현대미술이 단순히 보기에 좋은 '잘' 그린 그림보다, 기존 예술의 관습에 도전하는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작품이 많기 때문이다. 프랭크 스텔라의 작품들도 처음에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혼란스러울 수 있는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지만, 그가 의도한 바를 알고 그의 작품앞에 직접 서서 찬찬히 살펴본다면 그가 얼마나 많은 고민끝에 그의 작품들을 탄생시켰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3] Frank Stella, Die Fahne Hoch!, 1959


"All I want anyone to get out of my paintings, and all I ever get out of them, is the fact that you can see the whole idea without any confusion...

...What you see is what you see." Frank Stella


       기존의 전통적인 회화에서의 중요한 과제는 관객이 그 속을 걸어 들어가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 공간의 환영을 창조하는 것이었다. 실제보다 더 아름답고 고귀한 풍경과 인문을 구현해내고자 하는 경쟁이었다. 화가들은 이 공간의 환영을 창조하기 위해 눈속임 기법 (trompe-l'ceil)으로 화면 뒤에 마치 공간이 있는 것 같은 요소들의 배치에 집중했다. 또한, 과거 회화는 캔버스 안의 형태들을 관계적으로 구성했다. 어떤 배경에 어떤 인물들이 존재하게 그릴지, 배경과 인물들 사이의 관계는 무엇이고 인물들 간의 관계는 무엇인가가 회화를 구성하는 본질적인 요소였다. 


       프랭크 스텔라의 Black Painting 시리즈는 이러한 기존 회화에 대한 규정들에 정면으로 맞서고자 했다. 그는 일정한 패턴을 비 관계적으로 (non-relational) 반복하여 사용함으로써 환영의 공간을 회화에서 밀어냈다. 비 관계적인 구성은 회화면에 그려진 형태들의 관계나 그 관계에서 발생하는 의미들을 최소화함으로써 회화 표면에 주목하게 하고 대상을 전체로서 경험하게 한다. 대상을 전체로서 경험한다 함은, 관객이 작품을 보았을 때 보이는 것이 다이고, 그 이면에 숨겨진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기존 회화의 재현성에서 벗어나 순수하게 시각적인 것이다. 끊임없이 요동치며 수많은 이해할 수 없는 문제들이 뒤엉켜 있는 현실과 달리 우리는 프랭크 스텔라의 작품에서 완전한 질서와 단순함을 느낄 수 있다. 그의 회화의 큰 스케일에 압도당하며 이 세상에 오직 나 자신과 내 앞의 작품만이 존재하는 것 같은 마음의 평온함이 찾아온다. 그의 작품을 봄으로써 복잡한 현실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4] Frank Stella, Portrait Series, 1963


       또 하나의 두드러지는 특징은, 그의 작품들이 회화의 2차원적인 특징을 벗어나서, 3차원의 실제 공간을 수용했다는 것이다. 그는 다양한 형태의 두꺼운 캔버스나 카드 보드, 나무와 같은 다양한 소재로 회화의 기본이 되던 사각형의 캔버스를 대체했다. 이들은 두껍기 때문에 벽으로부터 돌출되어 관람객이 서 있는 공간을 침투하고, 이는 실제 공간에 대한 인식을 요구하면서 오브제를 보는 것만이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상황 자체를 '경험'하게 한다. 이러한 회화와 조각의 융합은 모더니스트들이 주장하던 예술 장르 간의 확고한 구분에 반하는 것이었고, 그의 작품 앞에 섰을 때 자신이 서 있는 공간과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게 하는 힘이 있고 이는 작품과 관람객 사이에 감정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형성한다.


       프랭크 스텔라는 굉장히 학구적이며 이론적인 고민을 많이 한 예술가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감성적인 예술가라기보다는 자신의 예술에 대한 논리를 작품으로써 표현한 학자에 가깝다. 지금 이 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예술작품들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파악하고 오랜 시간 굳혀져 온 관습들에, 심지어 후기에는 자기 자신의 이론들까지에도 끊임없이 도전했다. 그의 이런 지속적인 예술에 대한 고뇌와 당시 미술계의 격동을 거쳐 나온 그의 초기 작품들은 역설적으로 너무나도 단순명쾌하다. 마치 휘몰아치는 폭풍 속에서도 폭풍의 눈은 너무나도 고요하듯이, 우리는 예술과 마주했을 때 잠시 폭풍의 눈 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다. 그의 작품 앞에 섰을 때, 그 어느 것도 확신할 수 없는 끊임없는 혼란 속에 지쳐 살아가는 우리는 그 모든 생각을 잠시 제쳐둔 채 나약하고 무지한 인간 존재를 위로받을 수 있는 것이다.


       운이 좋게도 버클리 주변에는 프랭크 스텔라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 많다. SFMOMA에는 꽤 많은 그의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고, De Young Museum에서는 2016년 11월 5일부터 2017년 2월 26일까지 큰 규모로 그의 회고전을 개최한다. 그의 작품들은 사진이나 글로만 봐서는 그 깊이를 느낄 수 없는 작품들이기에 직접 가서 체험하기를 바란다.


프랭크 스텔라전 정보:

https://www.sfmoma.org/artist/Frank_Stella

https://deyoung.famsf.org/exhibitions/stella





출처:

[1]: https://www.pinterest.com/pin/82683343135016974/

[2]: https://en.wikipedia.org/wiki/J._M._W._Turner

[3]: https://collection.whitney.org/object/2964

[4]: https://kr.pinterest.com/surrealsunday/tribute-to-frank-stella-striped-hamlet-minimalis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