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학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Posted by #252636
2016.10.10 00:17 EDITORIAL/사회 :: Current Issues


       얼마 전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맨부커상 국제 부문을 수상한 한국의 작가 한강. 그전까지는 여러 서점의 베스트셀러 랭킹 그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다가 이 수상 소식이 들려온 직후, 그녀의 연작소설 <채식주의자>가 단번에 1위에 오르면서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동안 대외적으로 잠잠했던 한국 문학계에 한국 문학 작품의 수상 사실은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을 터. 출간 이후 판매량이 3만 부에 그쳤던 책이 수상 후 3일만에 32만 부를 돌파해버리는가 하면, 한강의 다른 소설들도 덩달아 판매량이 급증하며 베스트셀러 차트의 반을 독차지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미디어에서 이토록 긍정적인 반향에 초점을 맞추어 보도하는 것과 달리, 사실상 많은 한국인들이 작가 한강이 아닌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에게 그 영광을 돌렸다. 생각해보면 뭔가 이상하다. 한국 문학계에서는 책 전체도 아닌 3부작 중 달랑 2부 하나에 대해서만 이상문학상을 수여한 것을 끝으로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작품이건만, 왜 9년 후 영문 번역본으로 펴냈을 때는 외국인들의 넘치는 관심을 받게 된걸까. 심지어 그 관심도 어째서 해외에서는 작가 한강에 주목하는데 한국에서는 번역가인 데보라 스미스에게 집중되어 있느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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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채식주의자>가 2007년에 발표되었을 때 한국의 대중은 이 소설을 다소 극단적이고 기이하다며 소수만이 호평하는 데에 그쳤다. 한국 문단에서도 지금의 유명세와는 크게 상반되는 반응을 보이며 2부 '몽고반점'에 한해서만 이상문학상을 수여했다. 그도 그럴것이, <채식주의자>는 이전까지 대중에게 익숙했던 화려한 서술 방식과 전지적 관점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구성 자체도 한국 문학에 흔치 않았던 연작 소설일 뿐만 아니라, 한강만의 독특한 문체로 최대한 단순한 문장과 여러 시점에서의 표면적이고 사실적인 상황 표현을 통해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전달하고자 했다. 향간에서는 일본의 개성파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와도 비슷하다는 평을 받으며, 첫 발간 당시에 한국의 기존 문학과는 차별화되는 스타일을 선보인 작품이라는 인상을 남겼다. 그래서였을까, 이 불편한 소설을 어떻게 소화해야할지 난감해하던 당시의 한국 사회에서 <채식주의자>의 진가를 알아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사실 한국뿐만이 아니었다. 한 인터뷰에서 작가 한강이 직접 말하기를, 2007년 첫 출판 당시 영문 번역본을 영미권 출판사 여러 곳에 제안했을 때 모두 거절당했다고 한다 [1]. 어찌보면 그녀의 소설이 시대를 앞서도 한참 앞서갔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 마침내 한국이 아닌 해외에서부터라도 이 작품이 예술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분명 작가 한강이 직접 써낸 원본 자체에 우리가 지나쳐온 보석이 틀림없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맨부커상 심사위원장은 <채식주의자>에 대해 "잊히지 않는 강력하고 근원적인 소설"이라 평했고 [2], 뉴욕타임즈에 실린 기사에서는 "컬트적인 국제적 베스트셀러"가 됐다며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산문과 믿을 수 없을 만큼 폭력적인 내용의 조합이 충격적"이라고 전했다 [3]. 종합적으로 봐도 인간 내면에 자신도 모르게 존재해 온 폭력성을 거부하는 과정에서 한 사람의 인생이 무너지고 결국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이토록 무덤덤한 말투로 창조한 작품으로서는 전례 없는 명작임이 틀림없다. 그리고 그 창조의 뼈대가 되는 언어는 영어도 불어도 아닌 한글이었다. 한글로 풀어냈기 때문에 완성된 한국 문학으로서의 가치가, 영문 번역본에서는 부분적으로 빠질 수 밖에 없는 어떤 가치가, 분명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10년 가까이 지나쳐온 그 가치가 과연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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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가 다른 한국 문학 번역가들과 다른 점은 단연 한국의 언어 그대로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채식주의자>가 가진 한국 문학으로서의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엿볼 수 있다. 데보라 스미스는 '코리안 보드카' 대신 '소주', '코리안 망가' 대신 '만화' 등의 단어를 한국적인 정서가 고스란히 드러나도록 소리나는 그대로 영어로 써냈다. 단어의 의미보다는 그 단어가 담아내고 있는 느낌을 표현하는 데에 더 집중했던 것이다. 그러나, 당연히, 영미권에서 자란 그녀가 전달할 수 없는 한글만의 느낌도 있다. "그녀의 흰 뒷모습을 삼킨 방문을 바라보았다"는 대목에서 '삼켰다'는 단어는 단순히 영어의 'swallow'라는 단어로 대체하기 힘들다. '삼켰다'는 말에는 'swallow'보다 한층 어둡고 서늘하며 거대한 무엇인가가 덮치는 듯한, 그 단어만의 정서가 녹아있으니 말이다. 꾸준하게 등장하는 음식 이름들도 마찬가지다. '호박죽'이 주는 텁텁하면서도 달큰하고 부드러운 맛, '국밥'이 가진 따뜻하고 포근한 만족감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완벽히 이해할까. 주인공 영혜의 아버지가 "먹어라. 애비 말 듣고 먹어."라고 할 때, 그 말투에서 느껴지는 가부장적이지만 가슴 뭉클한 정은 또 한국만의 오랜 유교적 정서를 벗어나서 과연 어디까지 느낄 수 있을까. 한강은 작가로서 한글의 이런 느낌을 단어의 소리와 이미지만으로 영향력있게 전달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개인적으로 한강의 그런 능력이 가장 돋보인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 


"국밥 위로 어른거리던 , 녀석이 달리며, 거품 섞인 피를 토하며 나를 보던 눈을 기억해. 아무렇지도 않더군.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어."


       추상적인 단어는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있는 그대로를 담담히 전하는 영혜의 말투. 그러나 그 속에 깊이 뿌리박혀 영혜의 영혼까지 흔들고 있는 공포. '국밥'에서 느껴져야할 따뜻함을 차갑게 식혀버리는 '거품 섞인 피'와 '두 눈'. 분명 '아무렇지도 않았다'고 쓰여있지만 전혀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지 않는다. 충격적이고 숨이 턱 막힌다. 쓰여있는 문자 그대로를 뛰어넘어서 사람의 마음을 매만지는 것이 작가의 재주가 아니면 누구의 재주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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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세세한 감정들을 누구보다 잘 느낄 수 있는 한국 독자들은 이 소설을 읽은 후 이상하게도 오히려 그 공감 능력에 있어 훨씬 불리해야 할 영미권 독자들보다도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그 원인이 무엇인지 딱 짚어 말할 수는 없겠지만, 영어로 번역해도 분명히 남아있는 한국 문학의 특수성을 간과했다는 사실을 무시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한 인터뷰에서도 언급했듯이, 결국에는 데보라 스미스도 <채식주의자>가 가진 원작으로서의 개성과 고유의 문체에 눈길이 갔기 때문에 이 작품을 번역하기로 결정한 것 아닌가 [4]. 한국 독자들에게 유달리 그 감명이 크지 않았던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함부로 단정지을 수는 없으나, 이제는 많은 한국의 독자들도 깨닫고 있다. 문학을 문학으로서 즐기지 않고 한글과 한국 문학을 편협된 시선으로 바라보며 평가를 내리려는 잣대부터 들이밀고 보는 태도에서는, 절대 해외 독자들의 그것처럼 처음 접하는 신선한 문학 장르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인정하는 넓고 깊은 시야가 나올 수 없다. 문학 자체를 감상하고 이해하려 하기보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할 첫 한국인 작가가 고은일지, 한강일지에만 관심이 쏠리는 우리 사회 전체가 이미 한국 문학을 그 값어치 이하로 취급하고 있지는 않나 생각해봐야 한다.


[9]


       데보라 스미스는 한국 사회의 '노벨상 집착증'을 비판하며 "한국 문학은 보물창고" [5] 임을 당부했다. 한국 문학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세계 곳곳의 모든 문학은 각 작가가 살아온 사회 속에 스며든 문화를 각자만의 언어로 조각한 독특한 보물창고이다. 한글날이 달리 특별한 게 아니다. 우리가 사는 우리 문화를 표하는 수단을 조금 더 세심하게, 애정을 가지고 들여다보는 건 어떨까, 되뇌이는 날일 뿐이다. 번역본이 위대해서가 아니라 한글이 품은 정서가 영미권, 유럽권 등에서 상을 휩쓸어 오기에 충분한, 이미 하나의 보물이었기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 작품이 결국은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되기까지 몇 년이 걸렸을지언정 한국 문학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보물이 아니었던 적이 없었다. 이제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 문학을 접할 때 무슨 상을 받았든, 어떤 위치에 있든, 그 작품 자체를 온전히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겼으면 한다. 문학을 문학으로서 대하는 것보다 당연한 자세가 또 없지 않은가.





출처

[1]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6/17/0200000000AKR20160617148600005.HTML

[2] http://www.iworld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193997

[3] http://m.ny.koreadaily.com/read.asp?art_id=4007230

[4] http://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023110&g_serial=963119

[5] https://www.youtube.com/watch?v=eisPnHl06JM

[6]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5/19/0200000000AKR20160519097651005.HTML

[7] http://www.focus.kr/view.php?key=2016061500173009165

[8] http://www.southbankcentre.co.uk/whatson/2015-man-booker-prize-readings-93258

[9] https://www.google.com/url?sa=i&rct=j&q=&esrc=s&source=images&cd=&cad=rja&uact=8&ved=0ahUKEwjrzNzp1s_PAhUM4GMKHVUUBEQQjRwIBw&url=https%3A%2F%2Ftwicopy.org%2Fgriong%2F&bvm=bv.135258522,d.amc&psig=AFQjCNGv1KwApOVkD9RB_dAlgntaf4lxnQ&ust=147616966978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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