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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문화 & 예술 :: Culture & Art

[500일의 썸머] 운명을 믿으시나요?


"이 영화는 한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이다. 미리 말해두지만, 이건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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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 영화 <500일의 썸머 (500 Days of Summer)> 속 내레이션의 일부다. 인트로의 가장 마지막 대사이기도 하며, 영화의 전체적인 테마를 담고 있기도 한, 이 칼럼의 지표가 되어 줄 두 문장이다. 그리고 이건, '로맨틱 코미디'라는 허울 좋은 장르 이름에 속아 달달하고 사랑스러운 커플의 500일간의 연애기를 다뤘겠거니 하는 생각으로 이 영화를 보려는 사람들에게 대놓고 던지는 경고라고 해석하면 되겠다. 이 영화는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만남과 반복되는 우연, 착각, 기대와 실망, 그리고 이별과 새로운 시작을 담은 이야기다. 과연 '운명'은 존재할까? 라는 질문 역시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주인공의 입을 통해 들리고, 내레이터를 통해 들리고, 영화를 보는 관객의 머릿속에 울린다. 한번 보면 여자 주인공이 '썅년'으로 보이고, 두 번 보면 남자 주인공이 '썅놈'으로 보이고, 세 번 봐야 비로소 둘의 입장이 모두 이해되고 득도하게 된다는 영화 <500일의 썸머>를 소개하며, 과연 사랑은 무엇인지, 운명은 존재하는지에 대한 고찰을 늘어놓아 보겠다. 


       사실 필자가 영화든 책이든 예술 작품이 성공적이라고 여기는 기준은 과연 그 작품이 오락성에 취해 한번 재미있게 보고 말 작품인지, 아니면 시간이 흐른 뒤에도 떠올라 다시금 찾게 되는 작품인지다. 오랜만에 다시 봤을 때 전엔 보이지 않았던 포인트들이나, 놓쳤던 깨달음을 얻게 한다면 금상첨화겠다. <500일의 썸머>는 그런 영화다. 영화를 볼 때 나의 상황이 어떤지에 따라 다른 캐릭터에 공감하게 되고, 다르게 해석하게 되는 영화. 그렇기 때문에 누가 나빴는지에 대한 해석이 이토록 분분하고, 시간이 지나 영화를 다시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아닌가 싶다. 2009년 개봉한 이래 잔잔하지만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이 영화는, 한국에서 '조토끼'라는 별명을 얻으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조셉 고든 레빗이 연기하는 남자 주인공 톰과 자칫 생소할 수 있는 이름의 조이 데샤넬이 연기하는 여자 주인공 썸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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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의 경우, 영화를 처음 보고 난 후에는 톰의 입장에 감정 이입을 하고 사람들이 왜 썸머를 '썅년'이라 부르는지 이해한다며 분노했었다. 하지만 최근 다시 본 영화 속의 썸머는 과거의 내 기억 속에 남은 썸머보다 더욱 여리고 상처 많은 여자였다. 더욱 깊게 들어가기에 앞서 먼저 영화 줄거리에 대해 간단하게 풀어 써보자면, 직장 동료로 우연히 만나게 된 톰과 썸머가 '연애' 아닌 연애, '썸' 아닌 썸을 타다가 헤어지고, 각자 새로운 인연을 만나는 500일간의 기록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단어는 연애도 아니고 썸도 아닌, "우연"이다. 둘은 말 그대로 우연히 같은 직장에서 일하게 되었고, 우연히 같은 시간에 함께 탄 엘리베이터 안에서 우연히 같은 노래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그 우연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차이가 생긴다. 썸머는 그 우연을 그저 재미있는 우연으로 넘긴다. 하지만 톰은, 우연에서 '운명'을 느낀다. 어떻게 그 많은 인구 중에 둘이 같은 회사에서 일하게 됐을까? 심지어 자기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지도 않은데! 썸머를 만나기 위해 그런건가? 어떻게 그 시간에 엘리베이터를 타게 됐을까! 자신이 1분만 더 일찍 탔다면? 늦게 탔다면? 이게 운명이 아니면 무엇인가!


       같은 상황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톰에게 썸머는 드디어 자신을 찾아온 자신의 "the one" 혹은 "운명의 반쪽"이지만, 썸머에게 톰은 그저 "재미있는 사람"이었을 뿐이다.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호감을 표시하는 톰에게 썸머는 둘이 친구로 지내자는 제안을 하고, 톰은 쿨한 척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둘은 그렇게 친구가 되고, 그게 현실이다. 하지만 그 상황을 두고 톰은 착각을 한다. 우리는 현재 친구로 지내지만, 서로 호감이 있으니 곧 연인으로 발전할 사이라고. 사람이 착각을 하게 되면, 그 착각을 따라 기대를 하게 된다. 사이가 가까워질수록 서로에게 자신의 존재가 큰 의미가 되기를 바라는 기대, 혹은 상대방의 감정이 자신이 가진 감정만큼 크길 바라는 기대. 지금 앞에 있는 상대는 전의 상대들과 다를 것이라는 기대. 혹은 '바램'일 수도 있겠다. 이번만큼은 다르길 기대하고 바라는 마음. 그러나 기대가 있으면 실망도 있는 법. 톰은 점점 썸머에게 친구로서 할 수 있는 이상의 기대를 하게 되고, 썸머를 구속한다. 그리고 썸머가 바라던 것은 자신과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한참의 아픔 끝에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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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도 썸머의 입장은 이런 것이지 않을까 싶다. 명백한 친구로서의 선을 넘으며 자신이 먼저 그 의미를 퇴색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썸머는 끊임없이 톰을 상기시킨다. "사실 난 가볍게 만나는 게 좋아. 진지해지긴 싫어." 연인으로서의 관계를 성립시키고 나면, 서로 자연스레 '남자친구'나 '여자친구'라는 "레이블"에 걸맞은 대접을 기대하게 된다. 그 기대에는 책임이 따르고, 책임감이 부담스러워지면 대개 관계를 끝내게 되는 것이다. 양쪽이 모두 식은 관계라면 끌어봤자 아무것도 득 될 게 없으니 오히려 합리적인 끝이겠지만, 한쪽이 먼저 식은 관계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채워지지 못한 기대는 실망을 남기고, 반복되는 실망은 상처를 남긴다. 상대의 변화가 내 마음에 대한 배신으로 느껴지고, 남들은 다를 것이라는 기대를 한 자신에게도 실망하게 된다. 그런 상처를 지속해서 받다 보면 자연스럽게 썸머와 같은 사람이 되는 것 아닐까? 사랑하고 싶고 또 사랑받고 싶지만, 책임감의 족쇄 안에서 서로를 구속하고 질리게 하고 싶지 않고, 상대가 먼저 변하게 되면 또다시 받을 상처가 두려워 애초에 관계의 정의를 내리고 싶지 않게 되는 사람. 가벼운 만남이라고 생각하면 상대방에 대한 내 마음 역시 가벼워질 거라는 착각을 하고 싶은 사람.


       하지만 애초에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갈대와도 같아서, 아무리 이성적으로 관계를 유지하고자 해도 가슴에 바람 한번 불면 순식간에 감정적으로 변해버리는 법이다. 그래서 사람은 변한다. 철옹성 같던 썸머도 사랑에 흔들리고, 꿈 쟁이였던 톰도 냉정해진다. 따지고 보면 세상 사람들에는 두 부류가 있다. 성별과 관계없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톰과 같은 부류이거나 썸머와 같은 부류다. 톰처럼 이 세상에 내 반쪽이 되기 위한 운명의 상대가 존재하고 그 사람을 만나기만 한다면 자신이 그 사람을 아끼는 만큼 아낌 받고 무슨 일이 있어도 서로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으며 영원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진 부류와, 썸머처럼 인연은 운명이 아니라 우연일 뿐이며 서로의 노력으로 발전되고 유지되는 것이기에 언제든 누구든 변할 수 있는, 장담이나 약속을 할 수 없는 관계라는 깨달음을 가진 부류. 영화의 끝부분에 등장하는 작은 반전도 역시 이 분류의 예시가 된다. 아무리 사람이 변한다 해도, 돌이켜보면 한쪽 부류에서 다른 부류가 되는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 두 부류 사이에 완벽한 접점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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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두 부류는 전혀 합쳐질 수 없다. 애초에 한쪽은 너무 이상적인 사랑을 좇고 있고, 다른 한쪽은 너무 현실적인 사랑에 얽매여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로 다른 환경에서 너무나 오랫동안 각자의 인생을 살며 서로 다른 경험을 해 온 남자와 여자가 만나 갑자기 호감을 느끼고 서로를 알아가고자 하는데, 어찌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꼭 들어맞기만을 바랄 수 있을까. 연애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열쇠는 "사랑"하는 감정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거라고 믿으며 상대의 가치관을 자신에 들어맞게 바꾸려 드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공존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닌가 싶다. 접점을 만들어 서로 같아지려 하기보다는, 때로는 이성적으로 때로는 현실적으로, 서로를 존중하는 것. 물론 이 공존 역시 따지고 보면 이상적인 결론이고,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톰과 썸머가 운명을 믿고 믿지 않는 것을 반복하며 끝없는 이별을 겪고 새로운 인연을 찾게 되는 것이다.


       결국, 사랑은 그저 착각으로 시작되어 생긴 기대감이 지속해서 충족되었을 때 생기는, 애정이 증폭된 감정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연인들과 다를 바 없는 연애를 하던 중, 일부의 연인은 서로에게 특정한 확신을 하고 결혼이라는 궁극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게 바로 "운명"인 걸까? 그들은 수많은 사람의 틈바구니 속에서 만유인력의 힘으로 서로에게 꼭 맞는 인연을 만났고, 운명적으로 서로 사랑에 빠져 결혼이라는 정착까지 하게 된 걸까? 현실적인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이상적으로 서로에 대한 확신을 주는 인연은 따로 존재하는 걸까? 아직은 <500일의 썸머>를 두 번 밖에 보지 않은 관객으로서, 또는 톰과 비슷한 부류인 '운명론자'로서, "운명"에 대한 질문은 독자들 스스로의 판단을 위해 열어두고 싶다. 당신은 운명을 믿는가?





출처:

[1] http://movie.phinf.naver.net/20160609_268/1465448526366Lib2y_JPEG/movie_image.jpg

[2] https://t1.daumcdn.net/cfile/tistory/141DA24850DEB92425

[3] http://scontent.cdninstagram.com/t51.2885-15/s640x640/sh0.08/e35/13113905_1722619417952386_579391684_n.jpg?ig_cache_key=MTI0MjA5Mjc5MDA2ODU3MzAyMA%3D%3D.2

[4] http://feelgrafix.com/data_images/out/28/961432-500-days-of-summer.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