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회화 사이의 긴밀한 관계: 음악이 보이다

Posted by 희씨
2016.10.28 12:55 EDITORIAL/문화 & 예술 :: Culture & Art



[1] Claude Monet, The Water Lily Pond, 1919


모네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드뷔시의 음악이 떠오르곤 했다. 미묘한 색감들이 뒤엉킨 붓질들이 드뷔시의 안개같이 모호하면서도 오묘한 음정의 화성 진행을 상기시킨다. 모네의 그림과 드뷔시의 음악이 동시대에 탄생한 예술 작품이며 둘이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받았다는 것은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고, 이 사실은 회화와 음악의 상호연관성에 대한 나의 호기심을 증폭시켰다. 평면의 캔버스 위에 점과 선, 미묘한 붓 터치와 색감으로 이루어진 회화와 다채로운 음색을 가진 음정들과 공백의 조화인 음악은 매체부터 재현되는 방식까지 인간의 서로 다른 감각을 자극하는 예술의 형태이다. 연관된 것 같으면서도 동떨어진 회화와 음악. 소리를 그림으로, 그림을 소리로 표현하는 것이 가능할까?


시각적 경험과 청각적 경험이 상호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으며 고대부터 회자되어 온 주제이다. 이를 표현하려 한 예술가들도 예전부터 존재해왔다. 앞서 언급한 드뷔시는 모네와 터너의 인상주의 회화에 영향을 받아 기존의 관습적인 멜로디 진행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음색의 느낌을 극대화함으로써 회화와 같은 이미지와 분위기를 느끼게끔 음악을 만들었다. 또 다른 예로 근대 인상파 음악의 선구자인 무소르그스키 (Modest Petrovich Mussorgsky)는 자신의 절친한 친구인 빅토르 하르트만 (Victor Hartmann)의 때 이른 죽음을 추모하며 개최한 추모 전람회에 전시된 작품 열 점에 영감을 받아 각각의 작품을 음악적 묘사로 승화시켜 열 곡의 피아노 연작인 <전람회의 그림>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시각과 청각의 상호연관성을 인지하고 그것 자체를 소재로 하여 예술 작품을 만들고자 한 시도는 20세기에 추상 미술이 등장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뜨거운 추상의 대표주자로 잘 알려진 칸딘스키 (Wassily Kandinsky)는 음악 일부분이나 음악적 주제를 시각적 예술로 표현하는 데에 큰 흥미를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2] Wassily Kandinsky, Composition VIII, 1923


“Color is the keyboard, the eyes are the harmonies, the soul is the piano with many strings. The artist is the hand that plays, touching one key or another, to cause vibrations in the soul.” - Wassily Kandinsky


칸딘스키는 구체적인 형태나 형체를 알아볼 수 있는 사물을 그리기를 거부하고 선, 색깔, 모양, 질감 등을 배치하여 리드미컬한 시각적 체험을 끌어냈다. 그는 위의 작품과 같이 Composition (작곡)이나 Improvisation (즉흥곡)과 같이 음악적 요소를 나타내는 제목들을 붙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점은 칸딘스키가 Synesthesia라는 신경학적 현상을 경험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Synesthesia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동으로 어떤 감각에 자극이 주어졌을 때 다른 영역의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감각 간의 전이 현상을 말한다. 이는 모든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현상은 아니며 우리가 소리에서 색을 떠올린다거나 냄새에서 색을 떠올리는 것은 관습화된 아이디어가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것인 경우가 많다고 볼 수 있다. Synesthesia를 평생 지속적으로 겪는 사람들을 Synesthetes라고 일컫는데, 가장 흔한 타입의 Synesthesia인 Grapheme-color synesthesia를 겪는 사람들은 각각의 글자와 숫자가 색깔과 1대1 대응을 하기 때문에 흑백의 글자와 숫자를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인식한다고 한다.


[3]


Synesthesia의 더 쉬운 예로는 소리에서 색채감각이 생기는 ‘색청’이 있다. 이 때 들리는 소리의 음정이 변화하면 느껴지는 색감도 변하는데, 저음은 어두운색, 고음은 밝은색이 보이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이처럼 칸딘스키는 이미지와 소리의 연관성을 일반 사람들보다 훨씬 예민하게 직접 느낄 수 있었고, 그의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이러한 공감각적 체험을 재현하는 The Yellow Sound와 같은 실험적인 퍼포먼스를 만들기도 했다.


화가들이 음악을 회화로 표현하고 싶어 했을 뿐만 아니라, 음악가들 역시 회화를 음악으로 표현하고 싶어 했다. 1950년대에는 존 케이지 (John Cage), 모튼 펠드만 (Morton Feldman)과 같은 음악가들이 추상표현주의 회화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존 케이지의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인 〈4분 33초〉는 세 개의 악장으로 되어 있고, 각 악장의 악보에는 음표나 쉼표 없이 TACET (연주하지 말고 쉬어라)라는 악상만이 쓰여 있다. 이는 작곡가에 의해 만들어진 음악이 아니라 당시 콘서트홀에서 4분 33초 동안 연주자와 청중이 우연히 내는 비음악적인 소리가 음악이 되는 곡이다. 펠드만의 경우에는 단순히 회화의 느낌을 소리로 표현해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소리를 피그멘트와 같이 물질적으로 존재하여 형태를 바꿀 수 있는 물체로 여겼으며, 음악이 구성되는 방식 자체에 추상표현주의 회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반영하여 설계하였다. 이러한 펠드만의 미학은 음악과 회화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었다.



추상표현주의 회화의 대표주자인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은 사전에 결정된 스케치를 따라 정해진 형태를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폴록이 움직이며 흩뿌린 페인트가 우연성에 의해 캔버스에 안착하는 그대로를 보여주었다. 여기서 ‘우연성’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케이지와 펠드만과 같은 음악가들의 작품은 모든 음정이 정해진 악보를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연주자에게 연주 방법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들은 연주자에게 자유로움과 융통성을 부여하여 결과적으로 각각의 연주자들의 연주가 합쳐질 때마다 매번 유일무이한 작품이 탄생하게 하였다.



악보 자체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려는 시도들도 눈에 띄었다. 이러한 형식은 Graphic Notation이라 불리는데, 오선지 위에 악상기호로 표현하는 전통적인 기보법과 달리 관습적인 음악적 기호들의 범위에서 벗어난 시각적 상징 (Visual symbols) 음악을 표기하는 것이다. 아방가르드 작곡가들이 처음 시도한 Graphic Notation 1950년대 실험 음악 (Experimental music) 작곡가들의 작품에서 두드러졌고, 이들의 실험적인 악보들은 실제로 칸딘스키나 몬드리안의 추상회화를 닮았다.


[4] Earle Brown, "December 1952"




[5] Piet Mondrian, Farbkomposition A, 1917




[6] John Cage, Fontana Mix, 1958




[7] Wassily Kandinsky, Diagram 17, 1926




[8] Jackson Pollock, One: Number 31, 1950



[9] Paul Klee, Fugue in Red, 1922



인간의 오감은 서로를 자극하여 공감각적인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 우리는 잭슨 폴록 그림의 즉흥성과 우연성에서 재즈를 들을 수 있고, 바흐의 푸가를 듣고 파울 클레의 그림을 떠올릴 수도 있다. 시각적 형태와 소리가 과학적으로 어떻게 1대1 대응을 하는지, 그러한 대응이 가능하긴 한지의 여부를 알아내는 것은 매우 복잡한 과정일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러한 사실들보다도 예술가들이 그들의 예민한 감각으로 서로에게 영감을 받아 각자의 분야에서 표현하려 한 시도들이 존재하고, 그것의 결과물인 예술작품들에서 우리 또한 그 연관성을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술가들이 음악의 한 부분이나 특정한 음악적 모티프를 시각예술로 옮기려 한 시도들이 존재해 왔기 때문에 예술의 역사 속에서 줄곧 신선한 음악은 진보적이고 새로운 회화의 장르를 탄생시키는데 영감을 주어왔다. 음악이 있기에 회화가 변화해 왔고, 회화가 있기에 음악이 변화해 온 것이다. 마지막으로 추상회화를 똑 닮은 악보는 어떤 음악으로 재현되는지 보자. 듣기에는 난해하지만 흥미로울 따름이다.







출처:

[1] https://www.flickr.com/photos/32357038@N08/11101928043

[2] https://www.ibiblio.org/wm/paint/auth/kandinsky/

[3] https://en.wikipedia.org/wiki/Synesthesia

[4] http://blogfigures.blogspot.com/2012/03/earle-brown-december-1952.html

[5] http://www2.fiu.edu/~andiaa/cg2/chronos.html

[6] http://music.nebrwesleyan.edu/music013/jcfm.html

[7] https://artmuseum.mtholyoke.edu/object/untitled-drawing-diagram-17

[8] https://www.sartle.com/artwork/one-number-31-1950-jackson-pollock

[9] http://www.podcastscience.fm/20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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