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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문예 :: Literature

혼자이거나, 함께이거나




혼자 밥 먹는다고 하면 놀랄 때는 언제고,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혼자 사는 삶에 이상하리만치 잘 적응하기 시작했다. 5년 전 즈음만 해도 “혼밥”, “혼술” 등 홀로 생활하는 사람들은 마치 사회적 차원의 필수적인 무언가가 결핍되어 보듬어주어야 할 구제의 대상으로 여겨지곤 했다. 방송 프로그램들을 보면 혼밥족들은 마치 치열한 취업 경쟁과 88만 원 세대로 불리는 잿빛 그늘에 놓여 어쩔 수 없이 혼자의 삶을 걷게 된 이들처럼 묘사되었다. 당시 대중에게 ‘자취’의 이미지는 한두 평 남짓한 고시원 방에 텅 빈 냉장고를 열어 별로 남아있지도 않은 반찬 한두 가지에 라면 한 봉지를 끓여 먹으며 먹는 즐거움을 잊어버린 삶이었다. 부모님과 통화하며 “나는 잘 지내요, 걱정하지 마세요”라는 말로 알 수 없는 죄책감을 감추려는 삶이었다. 물론 미디어의 취지야 그게 아니었겠지만, 의도 없이 드러난 사회의 시선은 그러했다.


그런데 불과 몇 년 사이, 세상이 변한 건지 우리가 변한 건지, 무언가 변해도 참 많이 변했다. 어느 순간 TV를 켜면 각종 방송 프로그램의 화두는 ‘혼자’가 되어있었다. 연민과 안타까움으로 바라보던 개인의 일상이 공감 포인트가 되었고, 사는 공간도 삶의 방식도 다르지만 “나 혼자서 삽니다”라는 공통점 아래 많은 이들이 묶여있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혼자 떠나는 여행, 혼자 하는 술/야식 파티, 혼자 살 집을 스스로 짓는 과정까지, 우리는 혼자 하는 일들 속에서 숨겨진 가치와 재미를 발견하고 위로를 얻으며 ‘혼자’의 의미를 지독한 외로움에서 즐거운 고독으로 탈바꿈해 놓았다. 나조차도 그렇다. 더이상 식당에서 누군가 혼자 밥을 먹고 있는 모습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관에도 종종 혼자 가서 몇 달을 기다려온 영화를 즐겁게 보고 오며 타인의 시선이 어땠는지 살필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자취하는 친구들을 떠올릴 때면 허름한 방 안의 누추한 모습이 아니라 밤늦게까지도 좋아하는 기타를 마음껏 치며 하루를 즐겁게 마무리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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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그렇지만, 나 역시 예전에는 누군가와 어울리는 게 좋아야 하고 옳은 것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혼자 밥을 먹느니 대충 굶거나 걸어 다니면서 먹을 수 있는 간식으로 해결하고자 했고, 무언가를 같이 할 친구가 없을 때면 불안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내가 혼자라는 사실을 누군가 알아챌까 일부러 바쁜 척하던 때도 있었고,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라는 말이 “나 어디 아파”라는 말 같아 꺼내기를 망설였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사실 그때 나는 혼자라는 사실이 불안했던 게 아니라, 아리도록 부정적으로만 들리던 ‘혼자’라는 단어의 의미가 내 자의식을 흔들어놓았던 것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분명 내가 읽은 수많은 자기계발서나 위인전, 우화의 교훈들은 사람이 재산, 인생은 더불어 사는 것, 첫째도 사람 둘째도 사람이라고 누누이 강조하곤 했으니 ‘혼자’라는 말이 좋게 들릴 리가 없었다.


그러나 TV 속 프로그램의 트렌드와 함께 나의 가치관 또한 나도 모르는 사이 조금씩 변해갔다. 가족과 떨어져 살기 시작하면서 그 아늑한 울타리에서 천진난만하게 뛰어놀 때는 몰랐던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 계기였을까. 그 어떤 베스트셀러도 알려주지 않은 세상의 이면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앞으로 너는 절대 가까워질 수 없을 것만 같은 사람과 같은 수업을 듣는다는 이유로 일주일에 두세 번, 하루에 최소 몇 시간을 함께해야 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손가락질당해도 고자질할 부모님은 네게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어. 노력해도 되지 않는 일이 하나둘 늘어날 거고, 그럴 때마다 너는 쌓여가는 스트레스를 얼굴도 못 보는 소중한 가족들에게 전화기 너머로 풀게 돼. 가족에게 풀기 미안할 때는 친구에게 풀겠지. 아, 그래서 말이야, 친구들은 함께 웃고 즐거워하던 존재에서 너의 일상의 푸념을 들어주는 존재가 되어버리고, 네 이름을 가장 따뜻하게 불러주는 사람은 아마 네가 목 빠지게 기다리던 문밖의 택배 기사님일 거야. 몰랐겠지만, 세상이 원래 그래.” 이런 고달픈 생활 중에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 전에는 몰랐었다. 다른 누군가를 통해 바라보는 나, 누군가의 시선과 기준에 비추어 마주하는 내가 아닌, 진짜 나와의 1:1 만남. 한동안 참 어색하고 불편한 일이었지만, 나와 가장 친한 친구가 되는 것은 꽤 매력적인 일이었다. 혼자 소설 한 권에 빠져 보내는 주말 오후나 혼자 보는 흑백영화 한 편으로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나 자신에 대해 하나씩 배워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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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변화의 와중에도 세상은 더 크고 중요한 배움을 선물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혼자만의 시간이 소중함을 깨달았다고 해서 사람은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세상 누구보다 우선 나 자신과 친해지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어우러지기 위한 전제조건이지 대안이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한다. 결국, 혼자냐 함께냐 하는 고민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균형의 문제였다. 타인에 의지해 나를 판단하지 않는 법을 배우며, 남의 말에 귀를 닫아버리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기대기에 앞서 나 자신에게 먼저 물어보는 습관이 생겼다. 내 판단에 자신이 있다면 나를 신뢰하게 되었고, 내가 틀렸음을 알게 되면 과감히 포기하고 반성할 줄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과 비교했을 때의 나는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나 자신과 함께하기에 나는 적당히 오래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북적거려야만 성공적일 것 같았던 삶이 혼자여도 행복하고 함께여도 행복한, 이 또한 영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은 삶으로 좀 더 조화롭게 그려졌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고 누가 말했던가. 이제는 이 말도 재해석이 필요한 시점이지 않을까 싶다.

당신은 당신이 있기에 혼자가 아니다. 일차적으로 그렇고, 필연적으로 그렇다. 당신은 당신일 뿐이다.





이미지 출처:

[1] http://img.etoday.co.kr/pto_db/2016/08/20160819103302_924477_550_310.jpg

[2] http://68.media.tumblr.com/bbbf17783b3ff858d3a9053cf7d7f981/tumblr_inline_mpbnptUVKQ1qz4rgp.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