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I die tomorrow

Posted by 희씨
2017.04.10 17:32 EDITORIAL/문예 :: Literature




늦은 밤, 한 여자가 고통을 호소한다. 옆의 남자는 안절부절못한 채로 그녀를 부축하며 밖으로 나간다. 여자는 점점 더해가는 고통에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남자는 조심스레 그녀를 차에 태운 뒤, 교통 위반 딱지 따위 신경조차 쓰이지 않는 듯 액셀러레이터를 밟기 시작한다. 드디어 도착한 병원에서는 마치 준비한 것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간호사들과 함께 여자가 분만실로 들어간다. 뒤따라 들어간 남자는 아파하는 아내를 본다. 아파하는 그녀를 위해 그가 해줄 수 있는 건 온 힘을 다해 그녀의 손을 잡아주는 것뿐. 긴 산통이 지나고 한 생명이 세상의 빛을 본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양가 부모님들은 이 순간만을 기다려 온 듯 서로를 부둥켜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그녀는 아이의 얼굴을 보며 마치 지금까지의 고통을 잊은 듯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같은 날, 같은 병원 3층 중환자실에도 많은 가족이 모여 있다. 숨소리도 나지 않는 적막한 병실. 침대에는 한 할머니가 누워 계신다. 몸에 연결된 호스의 개수가 당신의 고통을 대변하는 듯, 셀 수 없이 많은 수의 호스가 당신의 몸에 연결되어있다.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목사님이 들어오신다. 할머니의 가족들은 기다렸다는 듯 목사님을 맞이한다. 할머니의 마지막 예배가 시작된다. 모든 가족이 할머니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할머니를 보내 드릴 준비를 한다. 점차 줄어드는 심박 수. 하지만 아직 못다 한 일이 있는 듯 할머니는 마지막 시간을 붙잡고 계신다. 갑자기 문이 열리고 한 여자가 오열하며 들어온다. 미국에 사는 할머니의 큰딸이 엄마가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고, 첫 비행기를 끊어 미친 듯이 병원을 향해 온 것이다. 큰딸이 당신의 손을 잡자, 기다렸다는 듯 할머니의 눈에서 떨어지는 한 방울의 눈물과 함께 심장박동기의 미세한 떨림 마저 멈춘다. 옆에 있던 의사는 할머니의 호흡기를 떼고 사망 선고를 한다. 모든 가족의 오열과 함께 밤이 지나간다.




[1]



모든 사람은 태어난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죽는다. 위에 묘사한 소설 같은 일들이 오늘도 세계 방방곡곡에서 무수히 일어나고 있다. 세상에는 삶과 죽음에 관련된 너무나도 많은 격언이 있고, 우리는 오늘도 그 삶과 죽음 사이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가 삶과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사뭇 다른 것 같다. 하나는 그 일이 시작되기 전부터 무수히 많이 이야기되지만, 또 다른 하나는 단순하게 그 주제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조차 터부시된다.

우리는 한 생명이 언제 태어나는지 알고 있다. 산부인과를 처음 방문한 후, “2개월입니다.”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나면, 부부는 남은 8달간 아이의 새 삶을 준비한다. 아이의 이름을 짓고, 옷과 신발을 사고, 산모를 위한 산후조리원을 예약한다. 그 시간부로 그들의 인생은 온전히 그 아이를 순산하는 것에 모든 초점을 맞추게 되고, 다른 것들은 사소한 일이 된다.





[2]





그러나 우리는 언제 죽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어떤 이는 자신의 인생을 다 채우고 자연사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병에 걸려 치료로 여생을 보내다 죽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자신이 죽을 거라고 예상하지도 못한 날에 사고로 죽기도 하고, 어떤 이는 세상이 준 삶이라는 선물을 스스로 포기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에 대한 준비에 소홀하다. 언제 올지 모르는 막연한 “죽음”이라는 단어 앞에 우리는 언제나 낙관적이다. 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걸 알고 있지만, 모두에게 오는 죽음이 나에게는 한참 남았을 것으로 추측하며, 죽음에 대한 준비를 미룬다.


죽음을 아는 것과 죽음을 경험하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다르다. 그리고 죽음을 경험하는 것은 남은 시간에 대한 생각을 송두리째 바꿔 놓는다. 나 역시 죽음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나에게 죽음은 너무나 먼 이야기였고, 가끔 SNS를 통해 들려오는 부고 소식은 “많이 속상하겠다.” 라는 생각 이상을 주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 2016년 내가 만난 세 번의 죽음은, 죽음에 대한 내 생각을 180도 뒤집어 놓았다.

처음은 같은 학교에 다니던 A라는 형이었다. A형과 그의 룸메이트 둘이 밥을 먹다가 A형이 잠깐 화장실을 가겠다고 일어났다. 그리고는 10분이 지나도, 20분이 지나도 나오지 않았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룸메이트 형은 화장실로 뛰어갔고, 바닥에 쓰러져있는 A형을 발견했다. 심장마비로 쓰러진 A형은 응급실로 옮겨졌지만, 다시 일어날 수 없었다. 처음 이야기를 전해 들은 뒤 나의 반응은 “개소리하지 마”였다. 워낙 장난을 잘 치던 A형과 주변 친구들의 이미지 때문에, 나는 당연히 나를 놀라게 하기 위한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더욱이 그렇게 젊은 형이 죽는다는 것은 내 머릿속에 없는 선택지였다.


하지만 며칠 뒤, 내가 맞이해야 했던 건, 처음으로 뵙는 A형의 부모님 앞에, 까만 정장을 입은 나의 모습이었다. 처음 경험하는 상황에 도저히 무슨 말을 건네야 조금의 위로라도 드릴 수 있을까 고민하는 찰나, 어머님께서는 내 손을 잡고 환하게 웃어주시며, “와 줘서 고마워요.”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어찌 자식 잃은 부모의 슬픔을 짐작이나마 할 수 있을까 싶지만, 감히 표현하자면, 세상에서 가장 큰 슬픔을 애써 감추는 태연한, 그래서 더욱 슬픈 미소였다. A형의 죽음은 나에게 너무 큰 충격이었다. 물론 누구나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20대의 죽음이라니.


나는 사실 고인이 죽기 전날, 우연히 학교에서 친구들과 벤치에서 떠들고 있는 A형을 보았다. 그러나 내가 가야 하는 교실과 반대 방향이어서 귀찮은 마음에 “다음에 인사하지” 라고 생각하며 A형을 지나쳤다. 그렇게 나는 고인과의 마지막 인사를 놓쳤고, 그 형과의 마지막 대화가 기억나지 않는다. 그 날 따뜻한 인사라도 건넸다면, 형과의 마지막 인사는 기억할 텐데.




[3]



가까운 형의 죽음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나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나와 고등학교 3년간 같은 수업을 들었던 너무나도 가까운 친구 B였다. B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며, 장례식에 참석해 줄 수 있냐고 했다. 너무 슬퍼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친구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도착한 장례식장에서, 몰라볼 정도로 수척한 내 친구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말이 없어진다.” 라는 표현이 무슨 뜻인지 처음으로 느꼈다. 그 순간 내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은 그 상황에 부적절했고, 나는 진심으로 친구를 안아주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무 말도 내뱉을 수 없었다. 죽음 앞에 나는 무력했고, 죽음을 위로하는 일에 나는 서툴렀다.


그리고 다음 달, 기말고사 준비가 한창이던 무더운 여름날,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가장 빠른 한국행 비행기 표를 알아봐달라는 연락이었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저녁, 집에 도착해서 나는 할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5월 20일. 할머니는 하늘의 부름을 받아 다시 볼 수 없는 곳으로 긴 여행을 떠나셨다.


나에게 할머니는 부모 그 이상의 존재였다. 내가 태어날 때부터 지금껏 우리 부모님은 항상 맞벌이 부부였다. 그러한 덕에, 나는 태어날 때부터 10살까지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고, 내 모든 어릴 적 추억의 모습에는 할머니가 항상 함께했다. 아직도 내 모습 여러 곳에서 할머니의 향기가 남아있는 것을 자각할 때면 “내가 참 할머니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언제나 항상 “행복이 우선이다”라고 하셨던 가르침. 어릴 적 밥투정을 부릴 때면 만들어 주셨던 김부각. 그리고 처음 버클리에 입학했을 때 보여주신 세상을 다 가진 듯한 미소. 이 모든 것을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다니. 사실 1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한국에 가면 할머니가 있을 것 같고, 이젠 더는 할머니와 이야기할 수 없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다.


할머니는 마지막 순간까지 나에게 가르침을 주셨다. 소중한 이들 모두 언제든 내 옆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나 역시 언제든 하늘의 부름을 받으면 응답할 수밖에 없다는 것 말이다. 물론 언제나 죽음을 두려워하며 살라는 것은 아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현재를 살지 못하는 것만큼 바보 같은 짓은 없으니까. 하지만 죽음에 대해 먼일이라고 치부하며 생각지도 않고 사는 사람의 오늘과 언제든 죽음이 올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더욱더 현재에 충실히 하는 삶을 사는 사람의 오늘은 같은 24시간이지만 다른 시간일 것이다.




[4]




모든 대학생이 시험 3일 전쯤 공통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다. “일주일만 시간이 더 있었으면 정말 시험을 잘 볼 수 있을 텐데”라는 말. 나도 같은 느낌을 느낀 적 있다. 그리고 그다음 시험에 미리 준비해서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을 때의 성취감 역시 느껴봤다.

우리 인생도 같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인생에 “다음”이라는 것은 없다. 마지막에 후회한다고 할지라도, 시험을 봤을 때의 그것처럼 “다음 인생에는 미리 잘 살아야지” 따위의 후회를 해도 아무 소용 없다는 의미다. 그러나, 미리 그것을 깨닫고, 지금부터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죽음을 생각하면서 다가오는 오늘을 소중히 산다면, 마치 미리 시험을 준비 한 자처럼 “이번 인생은 후회 없었어.” 라며 행복하게 인생이라는 우리의 긴 여행을 마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미지 출처:

[1]: http://news.donga.com/List/Series_70040100000123/3/70040100000123/20121009/49953992/1

[2]: http://ibjc.tistory.com/2071

[3]: http://www.sangjomagazine.com/sub_read.html?uid=1634&section=sc6

[4]: https://pixabay.com/ko/%EB%8F%84%EB%A1%9C-%EC%8A%A4%ED%8A%B8%EB%A0%88%EC%9D%B4%ED%8A%B8-%EB%AF%B8%EB%9E%98-%EB%B0%A9%EB%B2%95-%EC%88%B2-%EC%8A%AC%ED%94%88-%EC%99%B8%EB%A1%9C%EC%9A%B4-%EA%B3%A0%EB%8F%85-%EC%9E%90%EC%97%B0-569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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