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끈한 추억 한 그릇

Posted by #252636
2017.04.21 15:34 EDITORIAL/문예 :: Literature





다른 모든 생물에게 음식은 그저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원에 불과하지만, 우리 인간은 재료를 준비하는 것에서부터 요리하고 먹기까지의 전 과정을 하나의 문화와 예술로 생각한다. 살기 위해 매일같이 해야 하는 일치고는 무엇을 먹느냐, 어떻게 먹느냐, 누구와 먹느냐 등 생각보다 많은 열정과 시간, 돈을 쏟는다. <요리 인류>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면서도 느꼈지만,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모든 창의성과 문명은 자연히 우리가 하루도 빼놓지 않고 고민한 결과물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만큼 음식은 우리 인생에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할 수밖에 없고, 문화 요소로 자리 잡으면서 꽤 깊은 의미를 지니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음식을 떠올릴 때면 꼭 그때 함께 먹었던 사람들이나 그 날의 에피소드, 그 장소의 분위기가 함께 생각나지 않는가. 어머니를 생각하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깃국과 흰쌀밥이 떠오르고, 소꿉친구를 생각하면 들뜬 마음으로 함께 군것질하던 떡볶이와 순대가 그려지듯이 말이다. 살면서 추억이 하나 둘씩 쌓여갈 때마다 우리는 그때 그곳에서의 감정을 종종 음식으로 기억하는 것 같다. 그래서 문득 음식을 둘러싼 열기가 뜨거운 요즘, 우리 인생에 요리가 갖는 의미가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1]



각종 요리 서바이벌과 먹방 프로그램뿐 아니라 요리 앱과 레시피 블로그까지 넘쳐나는 시대지만, 어떻게 보면 정작 우리는 먹는다는 행위가 주는 순수한 기쁨으로부터 멀어져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냄새도 맛도 느끼지 못하는 화면 속의 음식을 보면서도 먹을 때 못지않은 환희에 사로잡히곤 하니 말이다. 그런 원기능으로부터의 일탈 덕분에 이제 식도를 타고 우리 안에 들어온 음식은 맛 이상의 형태를 지니며 더 오래, 더 깊이 우리 안에 남아있다. 여행을 다녀와도 그 추억의 절반은 음식이 차지한다. 가끔 미술관에서 본 풍경화와 긴 의자에 걸터앉아 멍하니 쳐다봤던 성당 돔의 천장도 생각나지만, 때로는 아침에 우연히 발견한 동네 빵집의 에그 샌드위치와 기차역 앞에 서서 순식간에 먹어치운 소시지도 생각난다. 그러나 사실 그 음식들을 생각하면서 진정으로 그리워하는 것은 단순히 그 음식의 맛이라기보다 그때 내가 느낀 감정들이다. 함께 돌아다니느라 지친 기색이 역력한 옆 사람 얼굴에 옅게 피어난 미소가 그립고, 소시지보다 케첩이 맛있다며 감탄하던 그 엉뚱한 순수함이 그립다. 입속에 없는 기억 속의 그 음식들이 아직도 맛있는 이유는 이처럼 그 음식과 함께 생생하게 떠오르는 순간의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 음식을 먹었던 환경이나 분위기와 음식을 먹었을 때 내가 느낀 감정까지 전부 ‘맛’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기억은 늘 맛과 동반되고, 소중한 추억이 소중한 맛을 만든다.





[2]



한 사람이 간직하는 추억 이상으로 음식은 주는 이와 받는 이 두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체로서 더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함께 먹으러 간 사람과 공유하는 추억의 음식은 두 사람의 정을 이미지화하지만, 동반자가 아닌 요리사로서 음식을 만들어준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더욱 많은 이야기가 오간다. 영화 <심야식당>의 특별한 공감 포인트도 바로 이 점이 아닐까 싶다. 도쿄 번화가 어느 뒷골목에 자리한 영화 속의 조용하고 작은 밥집은 메뉴에 없지만, 손님이 원하는 요리로 그들의 허기와 마음을 달래준다. 화려한 레스토랑에서 나올법한 음식들과는 거리가 멀지만, 손님이 가져온 재료로 손님의 이야기를 나누며 요리 하나하나에 배려와 위로, 응원을 담아낸다. 누구나 원하면 언제든지 찾을 수 있는 소박한 음식들이지만 한 손님만을 위한 것이기에 그 손님에게만큼은 특별한 음식이다. 결국 <심야식당>의 단골손님들이 찾는 것은 맛있는 음식이 아니라 맛있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주인의 마음씨이다. 누구나 한 번쯤 해보는 평범한 고민과 평범한 일상인데, 그만큼 평범한 요리에 모두의 이야기를 꾹꾹 눌러 담는 것이 더없이 특별한 맛을 만들어내는 비법인가보다.






[3]



그리고 우리에게는 이 특별한 맛을 누구보다 잘 내는 분이 아주 가까이에 한 분씩 계신다. 언제나 최고라고 자부하는 우리 어머니 손맛 말이다. 먹고 싶다고 말만 하면 순식간에 뚝딱 한 상 차려주시는 어머니 요리에도 언뜻 보기에는 밋밋하거나 투박해 보일지 몰라도 <심야식당>의 음식들 못지않게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흔히 어머니의 정성이 들어있는 고깃국이나 어머니만의 김치를 떠올리는데, 나는 생뚱맞게도 콩나물국이 제일 먼저 생각난다. 참 단순한 요리지만 감기에 걸릴 때마다 어머니가 끓여주신 콩나물국을 찾게 하는 엄마만의 특별한 맛이 있다. 폐렴에 걸려서 기침을 달고 살던 어릴 적 그때, 약에 취해 정신도 못 차리던 나를 조심조심 앉혀놓고 천천히 먹여주시던 엄마 모습이 눈앞에 선하게 그려진다. 그 모습을 떠올릴 때면 뭉클하게 퍼지는 포근함에서 나는 그 특별한 맛을 찾아온 것 같다. 엄마한테 남다른 레시피가 있는 것도 아니고, 사실 콩나물국은 엄마보다 할머니가 더 맛있게 끓이신다고 동생은 늘 받아치는데도 말이다. 그런데도 엄마의 콩나물국이 더 그리워지는 걸 보면 나는 아직도 그날 그 뜨거운 한 그릇에 담겨있던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며 떼쓰는 어린아이인 듯하다. 병을 얻은 건 난데 나보다 더 핼쑥해져 가던 엄마를 보면서 내가 받아온 사랑을 다시 떠올릴 수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맛있는 콩나물국은 어디서도 먹을 수 있지만, 직접 고춧가루와 깨소금을 뿌려서 밥을 말고 후후 불며 떠먹여 주시던 그 깡마른 손등은 어디서도 볼 수 없으니 말이다. 저마다 떠오르는 어머니의 음식이 다 다르겠지만, 음식보다 더 그리운 어머니의 포근함이 담뿍 들어있었기에 우리는 그 음식을 그때도 유달리 맛있게 먹고 지금도 생각만으로 행복해할 수 있는 것 아닐까.





[4]



받아서 먹기만 한 요리들을 생각하다 보니, 반대로 내가 처음으로 누군가를 위해 요리했을 때 느꼈던 벅찬 감동도 새삼 떠올랐다. 내가 정성을 다해 만든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깨달은 것은 물론, 그 이후로도 남을 위해 요리하는 일은 늘 다른 사람에 대한 내 관심과 정이 어떤 것인지 스스로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내게 이런 중요한 경험을 선물한 사람은 매번 티격태격하며 싸우기 바빴던 동생이었다. 엄마가 안 계시던 그날따라 동생은 축구를 하고 와서 배가 고팠는지 ‘누나, 스파게티 먹고 싶어’라며 엄마가 종종 간식으로 해주시던 오일 파스타를 찾았다. 듬직한 누나가 되고 싶은 마음 반, 나도 조금 뺏어 먹고 싶은 마음 반으로 나는 레시피도 없이 엄마가 부리던 마법을 기억해내려 애쓰며 냉장고를 뒤지기 시작했다. 열한 살과 아홉 살이 고른 재료는 베이컨과 햄, 버섯뿐이었지만, 동생은 햄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마냥 신이 나 있었다. 나도 처음에는 어른인 척 혼자 요리를 한다는 생각에 설렜지만, 막상 시작하고 나니 갈수록 무섭고 걱정되며 완성된 음식의 맛에 대한 자신감이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분명 엄마는 참 쉽고 간단하게 했던 것 같은데, 내 손으로 직접 하려니 냄비에 따르는 물도 엄마가 따르던 그 물과는 달라 보이고 미끌미끌한 양송이버섯 껍질을 벗겨내는 일이 썩 유쾌하지만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올리브 오일도 너무 많이 부어서 결국 파스타보다는 국수 튀김에 더 가까운 요리가 탄생했지만, 신기하게도 동생은 양 조절까지 실패한 그 파스타를 맛있다며 모두 해치워버렸다. 그 이후로 동생이 가끔 내 오일 파스타가 먹고 싶다고 할 때면 나는 늘 그 날 양 볼이 번들번들해지도록 맛있게 먹어준 동생 얼굴이 생각난다. 그래서일까, 아직도 그 어떤 오일 파스타보다 동생이 먹어주는 그 조촐하고 미끈거리는 베이컨 파스타가 제일 맛있어 보이는 것 같다.





[5]



예일대학교의 심리학 교수인 폴 블룸 (Paul Bloom)의 말을 빌리자면, “대상에서 얻는 즐거움은 ‘우리가 그 대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달려있다.” [6] 이것이 우리가 음식과 감정을 함께 기억하는 이유이다. 우리의 미각, 시각, 청각은 그다지 객관적이지 않아서 그 대상 자체의 특성보다 우리가 그 대상을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따라 다르게 느끼고 기억한다. 다시 말해 어떤 대상에 대해 사전에 가지고 있던 이미지가 그 자체로 강력한 힘을 발휘해서 ‘맛있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전에 그러한 이미지를 만드는 요소는 음식 자체보다 음식을 둘러싸고 있던 사람과 장소, 분위기와 그 모든 것들에 대해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다. 그래서 적어도 그 음식을 먹는 순간이 차지하는 인생의 조각만큼은 그 요리가 우리 삶에 다분한 의미를 지닌다. 우정, 사랑, 배려, 위로. 그 의미가 무엇이든지 간에 한 번쯤은 생각해보고 되새기며 가끔은 그 맛이 너무 그리워서 다시 찾아 나서거나 부탁하거나 직접 만들어보는 수고를 기꺼이 해보기 바란다. 그렇게 어느 때보다도 먹을거리가 넘쳐나는 시대에, 넘쳐나는 음식만큼 우리 머릿속 맛의 기억도 늘어가길 바란다.




출처:

[1] https://i.ytimg.com/vi/ETiWJyWgeFA/maxresdefault.jpg

[2] https://loxstockandbarrel.files.wordpress.com/2013/07/2eaa4-dsc05845-1-2.jpg

[3] http://cfile5.uf.tistory.com/image/2530C54455BD9B41302BEB

[4] http://recipe.ezmember.co.kr/cache/recipe/2015/11/10/779be676ddccb35ceed005d63a53e4b71.jpg

[5] http://www.chadorri.com/wp-content/uploads/2015/11/20151121_010.jpg


[6] http://home.sogang.ac.kr/sites/albatross/albatross01/keypages/_layouts/List_LAYOUTS/List2010/DispForm.aspx?List=478855b3-206d-4b39-8600-1e7f0dbf240f&ID=51&page=&lk=&lst=-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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