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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문예 :: Literature

스물 넷,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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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물 넷. 주위 친구들이 하나 둘 명함을 가지게 되었다. 누구는 군사학교를 졸업하고 임관을 했고, 누구는 대학병원에서 레지던트 생활을 시작했으며, 누구는 회계법인에 막 둥지를 틀었다. 오고 가는 인사와 축하가 정신 없이 지나가고 나면 나는 종종 일상의 표정으로 가리고 있는 의식의 저변에서 침식되는 자존감과 발아하는 불안감을 발견했다. 그런 순간을 마주할 때마다 이룬 것 없는 내가 심술궂은 사람마저 되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들어 멈칫거렸다.



2. 사람들은 성공한 이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고, 대게 그 스토리의 주인공은 청중의 사연을 알지 못한다. 때문에 여러 강의를 접하다 보면 인생의 기수가 되라는, 달리는 말의 고삐를 주도적으로 쥐라는 식의 두리뭉술한 조언만이 남는 경우가 잦다. 클리셰의 오글거리는 속성을 차치하더라도 내게 썩 와 닿지는 못했던 것이, 요즘의 나는 말을 모는 기수 보다는 달리고 있는 말 쪽에 조금 더 자신을 투영하게 되는 것 같다. 말의 뜀박질이 주는 동력을 당연시 하며 앞만 내다보는 기수보단 영문도 모르고 죽어라 뛰고 있는 말 쪽에. 아마 남들이 뛰는 만큼 뛰는게 얼마나 숨가쁜 일인지 깨닫고 있는 게 하나의 이유일 것이고, 방향성에 대한 확신 없이 뛰기 시작해버린 내 모습과 겹쳐 보이는 게 두 번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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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어릴 때—몇 살이라고 정의하지는 못해도, 내가 열심의 필요를 자각하지 못할 때—나는 내가 밝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뿌리 모를 확신을 갖고 있었다. 장래희망으로 대통령을 적어내는 타입의 꼬마는 아니었지만 나는 어른들이 말하는 소위 ‘큰 인물’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나의 맹랑한 미래설계와는 상관 없이 당시의 내 또래들이 맞닥뜨렸던 과제는 대동소이한 몇 가지의 시험으로 요약되었고, 숫자로 된 결과들의 선명함은 그 뒤를 내다보는 시야를 가렸다. 변호사, 외교관, 연구원. 진로를 묻는 어른들에게 임시로 댔던 답은 수십가지 있었으나—다행히도 이유까지 묻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기실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으며 내가 미래 커리어에 대해 확신했던 것은 피를 잘 못 보는 내가 의사가 될 일은 없겠다는 것 정도에 불과했다.



3-2. 10대의 이유 모를 확신이 20대의 이유 모를 불안으로 변모하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대로의 데뷔를 자축하며 대학교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주위의 사람들은 몰두할 한 가지를 정하기 시작했고, 몰두하는 사람들은 대개 성과를 냈다. 여름 인턴, 논문 발표, 앱 개발 등에 대한 얘기들이 돌았고, 숫자 아닌 결과물들은 역설적으로 비교를 쉽게 만들었다. 점수의 차이보다는 경력의 차이가 눈에 더 쉽게 들어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동안은 성취하는 사람들을 보며 은밀히 느끼던 불안과 위화감이 그들의 노력을 흉내 낼 자신이 없는 스스로의 나태함에 기인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나는 일거리를 찾아가며 이루어 내는 부류의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아마 바로 이때 느꼈던 불안이 내가 스스로를 길 잃은 말에 투영하게 된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 이력서에 무엇이든 얹고자 하는 조급함에 일단 앞으로 뛰고 보게 된 것이 발단이었다.



4-1. 바쁘다는 말이 익숙해진, 제법 일개미로써 손색이 없는 20대가 되었다고 느끼는 요즘 되돌아보자면, 나의 고질적인 불안의 발현점은 아마 몰두할 노력의 부재보다는 몰두할 대상의 몰자각에 있지 않았을까 한다. 말하자면, ‘어떤 일’을 못할 것 같은 불안을 마주할 때, ‘일’을 찾는 노력보다 ‘어떤’ 일인지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었어야 했던 것 같다. 한참을 이리저리 뛰어다닌 대가로 내 비즈니스가 제법 ‘비지’해졌음에도 쫓아내지 못한 불안의 존재에 비로소 어렴풋이 찾아 온 깨달음이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보다 의미 없는 일을 하는 것을 스스로 더 절망적으로 간주했던 것이다. 사실 이미 전공에 인턴까지, 특정 방향으로 이력을 쌓아 올린 내가 이제 와 새출발을 선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새로이 깨달은 꿈—만약 그런 게 있다해도—을 향한 신밧드의 모험을 시작할 용기도 시간도 갖지 못했지만, 바로 이 굳어져버린 방향성에 대한 적은 확신이 불안을 싹 틔운 것 아닐까 생각해본다. 로맹 모네리가 그린 ‘낮잠형 인간’의 주인공처럼 내 진정한 꿈을 찾은 게 아니라, “야망을 가진 것처럼 보여야할 의무”감에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닐까 하는, 그런 종류의 불안.



4-2. 복수전공자로, 컨설팅과 엔지니어 자리를 동시에 두드려보고 있는 나를 내 룸메이트는 부럽다고까지 표현했다. 이미 회계를 진로로 잡은 내 룸메이트는 내게 지원할 곳 많아 좋겠다며, 자신은 원서 넣을 곳조차 몇 없어 불안하다 토로했다. 그 말에 나는 쓴 웃음을 지었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스물 넷의 나이에 아직 여러 업계를 들여다보고 있음은 나의 다재다능함 보다는 우유부단함의 반증인 것 같았고, 분야별로 미달하는 전문성이 내 허영심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한가지에 몰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마음을 애써 숨기며 바빠 죽겠다는 말로 순간을 웃어 넘겼다. 모두 각자만의 이유로 각자만의 불안이 있음을 다시금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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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내 불안의 기원을 특정한다 해서 내 일상—설명회, 지원서, 그리고 인터뷰—이 크게 변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원인을 안다고 당장 해소할 수 있는 종류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다만 내 불안을 애써 무시하고 숨기기에는 이것이 내 일상의, 내 감정의 큰 부분을 너무나 오랜 시간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했다. 이성을 향한 호감, 상사를 향한 불만 등에는 수만가지 이유를 댈 줄 알면서, 스스로의 불안은 불가해한 침입자 마냥 외면하려 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반면교사삼아 내 감정을 이해해보고자 했다.


6. 성공한 사람들의 강의는 불안을 이겨낼 대상으로 말하기는 해도, 마주볼 대상으로 삼지는 않는다.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의 정의는 다각적이고 흥미롭지만, 그만큼 포괄적이고 비주관적이다. 결국 자기 자신의 불안을 이해하고 인정하기 위해서는—그래서 자기 자신을 조금 더 이해하기 위해서는—자신의 과거와 마주하고, 언제부터 녀석이 따라다니게 되었는지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갖는 수 밖에 없다. 어차피 당장 떼어놓지 못하는 녀석이라면, 조금은 더 친해져 보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해본다.





사진 출처:

(cover) http://www.cogito.or.kr/news/articleView.html?idxno=1124

(1) https://brunch.co.kr/@lomob/18

(2) https://brunch.co.kr/@jinnewww/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