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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국제 :: Worldpost

대화할까요 우리? ¿Hablam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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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일주일 전, 과제에 치여 밤을 새우고 머리나 식힐 겸 웹툰을 보러 네이버에 접속했던 필자는 수십 초간 그저 멍하니 메인 화면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백발의 할머니와 옷이 갈기갈기 찢긴 중년의 남성이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 사진을 보고 놀란 게 먼저지만, 어쩌면 그 아래 위치한 제목이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스페인 카탈루냐 독립 투표 강행, 경찰의 폭력진압에 부상자 속출’을 골자로 하는 제목에서, 2017년에 그것도 유럽인 스페인에서 엄연한 공권력인 경찰이 시민을 상대로 폭력을 행사하였다는 사실이 어찌 놀랍지 않았겠는가. 애초에 카탈루냐는 왜 독립 투표를 진행해서 이 사단을 만들었고, 경찰은 대체 무슨 생각과 근거를 들어 총구를 자국민에게 겨눴던 걸까. 이 글에서는 딱 봐도 수많은 사연이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을 것만 같은 카탈루냐 독립 사태를 간략하게나마 파헤쳐 보고 투표를 강행한 카탈루냐주 정부와 폭력진압을 지시한 스페인 중앙정부의 잘못을 함께 분석하려 한다.

 

 

 

카탈루냐, 너는 누구냐

 

카탈루냐가 왜 독립 투표를 추진했는지를 제대로 알아보려면 카탈루냐라는 동네와 스페인이라는 국가에 대해서 알아보는 것이 먼저 일터. 카탈루냐(Cataluña)는 스페인을 이루고 있는 17개의 자치 지방 중 하나이다. 간단하게 우리나라의 경상도/전라도 정도의 스페인의 지방자치 구역이라고 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이 사태를 단순하게 경상도가 독립 투표를 추진한 것으로 이해했다면 큰 오산이다. 우리나라는 본디 단군 할아버지를 시작으로 한 뿌리에서 뻗어져 나온 단일민족으로 이루어진 국가이다. 역사적으로 고구려, 백제, 신라와 같이 여러 경쟁국의 형태로 갈라져 지낸 적이 있지만, 근본적으로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한민족의 국가인 것이다.

 

반면에 스페인은 유럽 지역의 특성상 각기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는 여러 민족이 하나로 통합된 형태이다. 대표적으로, 수도 마드리드가 위치한 카스티야 지방과 바르셀로나가 위치한 카탈루냐 지방은 중세 시절 각각 독자적인 왕국이 오랜 기간 존재해 오며 극명하게 다른 문화가 발전해왔다.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그 문화의 차이는 좁혀지지 않아 흔히 우리에게 스페인어로 알려진 카스티야 지방의 Castellano와 카탈루냐 지방의 언어 Catalan은 둘 다 스페인의 공식 언어로 인정받으며 지방에 따라 독자적으로 다른 언어가 사용되고 있다. 결국, 스페인이라는 같은 꽃다발에 들어있어도 장미는 장미, 안개꽃은 안개꽃으로써 분명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왜 독립을 하고 싶은 거니?

 

그렇다면 왜 수많은 자치 지방 중 유독 카탈루냐가 독립을 원하는 것일까? 앞서 말한 오랜 기간 동안 존재해온 문화적 정체성 차이도 한 이유가 될 수 있겠다. 외국인의 시선에서 볼 때 스페인 하면 관광업이 제일 발달한 카탈루냐의 바르셀로나를 먼저 떠올릴지 모르겠으나, 스페인 내부적으로는 버젓이 존재하는 수도 마드리드가 위치한 카스티야의 문화를 주류로 여긴다. 고로, 현 스페인 체제에서는 카탈루냐의 정체성은 어쩔 수 없이 비주류로 여겨질 수밖에 없고 따라서 역사적으로 오랜 세월 독립국으로서 지켜온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카탈루냐인들에게는 자존심에 금이 가는 상황인 셈이다.

 

이런 문화적 상황과 더불어 정치-역사적으로 카탈루냐 지방은 원래 끊임없이 자치권과 독립을 주장해 오던 곳이다. 우선 15세기 카스티야의 이사벨 여왕과 아라곤(카탈루냐)의 페르난도 국왕이 스페인 왕국을 연합체제로 이룩한 후에도, 카탈루냐는 자치권을 보장받으면서 독립적인 지위를 유지해왔지만 17세기 말 왕위 다툼에서 밀려 자치권을 상실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왜 최소 300년도 더 전에 상실한 자치권과 독립적 지위를 오늘날까지도 카탈루냐는 목놓아 요구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 필자는 1930년대 말 스페인의 프랑코 독재 정권이 카탈루냐를 무자비하게 탄압했기 때문이라고 예상한다. 1930년대 초 스페인의 제2공화국이 선포되면서, 카탈루냐는 잠시나마 다시 자치권을 인정받게 되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프랑코 독재정권이 들어서면서 자치권이 강제로 박탈되었고, 그도 모자라서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카탈란어 사용 금지와 카탈루냐 지방 대통령이 처형되는 등 여러 아픔을 겪게 된다. 즉, 이 30여 년의 독재정권 아래서 다른 어떤 지역보다도 카탈루냐에서는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이 피와 눈물을 흘려야 했고 어차피 탄압받을 바에는 차라리 카탈루냐의 정체성을 당당하게 계승하는 게 낫다는 생각에 다시금 독립에 대한 열망을 가지기 시작되었으리라 짐작해볼 수 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필자가 보는 카탈루냐 독립운동의 가장 핵심 이유는 경제적인 데에 기인한다고 본다. 카탈루냐는 스페인 전체 면적의 6%에 불과하지만, 16%의 국민이 거주하며 총 20%의 국내 총생산을 담당한다. [각주:1] 한 마디로 스페인 국가 경제의 ‘축’이다. 문제는 이렇게 작은 지방이 많은 부를 벌어오는데, 스페인 중앙정부가 대우를 못 해줘도 너무 못 해준다는 것이다. 벌어오는 건 20%인데 지방자치 재정 지원은 전체의 지방자치 자금의 9%에 그치고, 카탈루냐인들에게는 타 지방 대비 훨씬 높은 세율을 부과한다. [각주:2] 그리고 카탈루냐에서 거두 어간 엄청난 재원으로 상대적으로 경제가 약한 다른 지방에 재정적 지원을 해주는 것이다. 중앙정부 입장에서야 마땅히 해야 할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카탈루냐인들에게는 분명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억지로 스페인이라는 울타리에 가둬두고 돈은 돈대로 뜯어가니 어떻게 화가 안 나겠는가. 차라리 스페인으로부터 온전히 독립하고 벌어오는 부를 자주적으로 쓰는 것이 낫겠다고 여기기 충분한 상황이다. 실제로 카탈루냐는 독립된 국가로 인정될 경우 유럽연합 (EU) 내 12개국보다도 경제 규모가 큰 상황이어서, 경제적으로만 보면 독립하는 게 득이라고 사료될 수 있다.

 

 

 

근데 꼭 그랬어야만 했니?

 

이제 어느 정도 카탈루냐가 독립을 왜 원하는지 알겠지만, 여전히 카탈루냐주 정부의 독립 투표 강행의 타당성에 대한 의문점은 사라지지 않는다. 물론 무력으로 독립을 주장하는 것보다 투표라는 평화적인 방법을 선택했다는 점은 칭찬해주고 싶지만 결국 중앙집권 형태의 스페인 헌법하에서 불법적으로 투표를 진행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특히 이미 2014년 독립 투표에 대해서 스페인의 단결을 명시하는 헌법 제2조를 근거로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이 나왔던 전례가 있었던 만큼, 투표를 강행하는 것이 헌법에 반한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을 터. 이미 법적으로 스페인이라는 국가의 일원인 만큼 독립을 하려면 반드시 합법한 절차에 따라서 국민이 요구하고 국제적인 승인이 있어야지만 독립을 할 수 있다. [각주:3] 고로, 막무가내로 국민투표를 진행하고 그 결과가 설령 100% 독립 찬성인들 독립을 추진할 수 있는 합법적인 근거가 전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카탈루냐인들 입장에서는 원하지 않게 예속된 스페인 헌법이 답답하게 여겨졌을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이 문제를 합법적으로 해결해 나갈 수 없다면 독립은 언제까지고 저 먼 세상 이야기일 뿐이다.

 

또한, 카탈루냐주 정부는 이 무리한 투표 진행을 하겠다는 딱 한치의 앞만 본듯하다. 이미 투표 직후부터 카탈루냐는 엄청난 사회적, 경제적 혼란으로 고통받고 있다. 앞서 서문에서 간략하게 말했듯이, 이 투표를 저지하기 위해 중앙정부가 경찰과 투표장으로 향하던 많은 시민과의 유혈 충돌 사태로 부상자가 수백 명에 이르렀다. 뿐만 아니라, 각종 대기업이 카탈루냐의 독립에 대한 불안감으로 인해 바르셀로나를 떠나고 있는 상황으로 이미 스페인에서 세 번째로 큰 은행인 카이사르 방크, 에너지 기업 페노사 등 여러 회사는 투표 직후 법인 본사를 카탈루냐에서 다른 곳으로 이전하겠다는 공식 발표를 낸 상태다. [각주:4] 아무리 카탈루냐가 스페인 경제의 20%를 담당한 들, 기업으로서는 20%를 포기하고 80%를 바라보는 것이 맞지, 굳이 무엇하러 스페인 전역에 있는 80%의 고객들을 외면하겠는가. 그뿐만 아니라, 유럽연합의 공용화폐인 유로(Euro)에 기반을 두고 있는 카탈루냐 경제라서 혹여나 독립에 성공하더라도 유럽연합의 일원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면 무너지는 것이 순식간이라는 많은 경제학자의 예측이 쏟아져 나오면서 외국 기업들도 너나 할 것 없이 떠날 채비를 하며 대규모 경제 대탈출(Exodus)이 코앞으로 다가와 있다 [각주:5].

왜 때렸니…

 

카탈루냐주 정부의 무리한 투표 강행이 이 모든 사태의 시발점이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전 세계인들을 경악에 빠트린 주원인은 분명 스페인 중앙정부의 무력진압이었을 것이다. 이미 3년 전에 위헌으로 판결이 난 국민투표가 진행된들 어차피 법적인 효력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텐데 왜 굳이 경찰들을 앞세워서 투표하러 가는 시민들을 탄압해야만 했던 걸까? 카탈루냐주 전역에 설치된 2135개의 투표소 중 1300여 개에 대해서는 강제 봉쇄 조치를 취하고 그나마 열려있던 나머지 투표소를 이용하려던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곤봉과 고무탄으로 저지하는 것이 21세기 민주주의 국가에서 과연 일어날 수나 있는 일인 걸까?

 

물론 중앙정부 입장에서는 끊임없이 독립을 요구하며 스페인 내 사회적 혼란과 갈등을 야기하는 카탈루냐가 아니꼬웠을 수는 있다. 아무리 하지 말라고 말해도 결국 본인들 맘대로 투표를 강행한다니. 혹시나 국제적인 여론이 카탈루냐에 호의적 이기라도 하면 스페인 정부로서는 상당히 난처한 상황일 것이다. 국가 경제의 1/5를 눈뜨고 코 베이듯 내어줘야 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력을 동원한 진압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어디까지나 중앙정부에 부여된 공권력은 최후의 순간에만 무력으로 발현되어야 한다. 특히 그 무력의 끝이 자국민을 향해있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이번 투표의 경우 여러 가지 법적 근거를 내세워 투표를 무효화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했다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절대 정부가 최후의 수단을 내세울 시기가 아니었다. 중앙정부의 성급한 무력진압으로 인해 300여 명의 부상자가 속출했고, 스페인이 민주주의 국가의 수치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쓴 이 시국에, 중앙정부는 진지하게 그들에게 주어진 공권력의 의미를 다시 새기고 그에 따르는 책임감의 무거움을 되새겨봐야 할 것이다.

 

 

끝으로…..

 

필자가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스페인에서는 독립을 선언하겠노라 주장하는 카탈루냐 주 정부와 ‘불량’ 자치 주를 무력을 동원한 각종 수단으로 진압할 수 있다는 헌법 155조를 내세우는 스페인 중앙정부 간의 팽팽한 대치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독립을 갈망하는 카탈루냐도, 독립을 저지하고픈 중앙정부의 입장이 모두 이해가 가지만, 결과적으로 성급한 투표 진행과 무력진압으로 피해를 본 이들은 평범한 시민들이다. 특히 투표 직후부터 흰옷을 입고 ¿Hablamos? (대화할까요?) 가 적힌 종이를 들고 나온 거리로 나온 시민들 생각한다면, 더 이상의 무리한 사태 진행은 멈추고 시민들이 원하는 바대로 백지상태에서 대화로 상황을 풀어나가는 것이 맞지 않을까? 즉각적인 무력 충돌보다도 차근차근 문제를 평화롭게 해결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인슈타인의 말을 인용하며 글을 마쳐본다.

 

 

평화는 힘으로 유지되지 않는다.그것은 오직 서로 이해할 때만 가능하다.

--아인슈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