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EDITORIAL/사회 :: Current Issues

脫北, 행복과 불안감이 찍은 낙인


행복이란 무엇일까? 한국의 주입식 교육에 허덕거리며 살았던 필자는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다. 생각해 볼 필요성 조차 느끼지 못했다. 2006년 여름, 새터민 들이 모인 한 새터민 대안학교에서 조교로 일하기 전까지는… 행복이란 무엇일까? 그 학교 교장 선생님께서 진행하시는 수업의 첫 번 째 숙제였다. 새터민들 삶이궁금해 들어간 이 학교에서는 국영수만큼이나 이 철학 수업 또한 상당히 중요했고 학생들도 그 시간에는 즐겁게 수업에 임하곤 했다. 필자는 조교로 일하며 철학수업의 숙제를 채점 하였다.

다시 한번 물었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나는 새터민 친구들이 쓴 숙제를 보고 놀랐다. 모여서 좋아하는 연예인 이야기하고 컴퓨터 게임 가지고 싸우는 이 친구들을 보면서 그저 북한에서 넘어왔지만 여전히 어리고 철없는 꼬맹이들 정도로만 생각했다. 만나기 전에 상상속에 있던 까무잡잡하고 잔인하며 눈빛에는 독기가 서려있는 괴물들에는 가깝지도 않아서 안심하기는 했지만 또 보통 남한 학생친구들과 비슷해서 실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숙제들을 보며 이 친구들이 겪었던 수많은 고통과 아픔의 깊이를 알지도 못하면서 필자는 너무 어리석었다. 탈북 과정에서 부모를 잃은 아이, 사람이 앞에서 죽어가는 것을 목격한 학생, 탈북 동료가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던 형님들까지 숙제에는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의 이야기들 자유가 억압되고 인권이 유린되는 북한 사회의 이야기들, 자유 없이 인권 없이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이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그 땐 반동분자들이 공개처형 당하는 모습이 그저 재미있고 즐거운 것인 줄 알았어” 한 형님이 한 말씀이다. 눈가리개 없이 묶여있는 아버지, 그 아버지를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는 초등학생 정도의 어린 아들, 그 아이에게 강요해 직접 총을 쏘게 하고 그 모습을 지켜보고 조롱하는 군인들 이러한 상황은 그들이 보는 공개처형의 모습들 중 하나라고 했다. 많은 것을 잃었고 희생했지만 지금은 북한 사회를 벗어나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자체만으로도 행복하다고 했다. 또 다른 아이는 아직 북에서 살고 계신 어머니가 곧 자신과 아버지를 찾으러 올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하였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그저 이 숙제가 그저 우리가 해왔던 여러 숙제들 중 하나인줄 알았다. 부모님이 게임기를 사주셔서, 시험을 만점 받아서,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가서, 혹은 여행을 갔다 와서 라고 적혀있어야 할 수북한 숙제 공책들엔 내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그러한 이야기들이 그리고 거기서 이 친구들이 찾은 이유와 희망들이 그들의 행복이라고 적혀있었다.

대한민국의 새터민들은 탈북 과정이 각자 다 다르겠지만 보통 남한에 오게 되면 ‘하나원’에서 대한민국에 적응할 수 있는 교육을 받는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선거, 시민의식 등등 대한민국에서 적응 할 수 있는 교육을 10주 간 받는다. 이 교육이 끝나면 그들은 곧장 대한민국 사회로 뛰어들게 된다. 2004년 기준으로 정착지원금, 1인 입국자는 3390만원, 가족의 경우 2인은 4555만원, 3인 5511만원, 4인 6466만원 정도로 20개월동안 분할 지급된다. 현재 새터민 정착지원금이 증액되고 있는 추세이긴 하지만 살 집과 사회에 적응하며 맞는 일을 찾기에는 적은 액수다. 게다가 이 돈을 북에 있는 가족에게 탈북할 자금을 마련해주기 위해 보내거나 중국과 같은 외국에서 도망자 신세로 떠돌고 있는 가족에게 보내는 경우들이 많아 빈곤과 차별에 허덕이고 있는 새터민들이 많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이와 같이 보통 새터민들이 남한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억압받고 차별 받는다고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남한 태생이다. 새터민들은 지금 이 자유의 땅에서 날아 오르려고 막 날개짓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일부 새터민들은 탈북해 보지 않은, 그 생사의 길을 넘나들어보지 못한 대한민국 국민들이 자신들을 마치 대표하는 양 이야기하고 오히려 ‘사회 소수자’, ‘탈북자’ 라는 낙인을 찍어 자신들의 행복을 망치려고 하는 것 같아 보여서 이런 사람들에게 ‘당신들이나 잘 챙기시오’ 라고 비꼬곤 한다. 물론 모든 새터민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새터민들이 자신들이 인간으로서 그리고 어엿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대한민국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평등한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누려 마땅할 행복이 더 클 수 도 있다는 것, 그리고 그 행복을 한국이 다시 앗아가지는 않을 거라는 것을 기억했으면 한다. 또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는 옆집에 이사 온 새로운 이웃들을 도와줄 미덕이 있어야 한다.

돈의 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또 새터민들이 자신들의 삶에 만족하고 행복하다고 해서 그대로 방치해도 되는 것도 아니다. 새터민들이 각자 선택한 지역사회에서 같이 살아갈 수 있는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맞춤형 지원이 필요하다. 처음 탈북자들을 우리나라 사회에서 맞을 때에 그들이 어떤 특수한 목적으로 왔는지 검사하고 조사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탈북자들의 인권을 탄압하고 유린된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강도 있게 조사하게 되는데 그 자료로 그들이 우리 나라 지역사회에서 맞춤형 지원을 받으며 아울러 살아갈 수 있게 돕는 것이 어려운 일인가? 그들이 하나원에서 나와 사회에 적응했다고 국가가 판단을 하여도 평생을 대한민국을 살아온 국민들과 많은 세월을 전혀 다른 사회에서 살아온 국민들은 분명 차이가 있다.

천안함 사태와 연평도 포격사건, 그리고 김씨의 3대 독재 세습으로 인하여 남북관계가 세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새터민들이 2만명이 넘어가는 이 시대 대한민국 사회에서, 새터민이라는 단어는 너무 멀지만 가까워질 단어다. 물론, 대한민국 국민들이 안보의식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해져야 하고 탈북자들을 받아 줄 때에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해야 겠지만, 그들이 대한민국에서 시민권을 받은 이상, 그들이 경험해보지 못한 대한민국 자본주의 사회라는 벽 앞에 그들이 또 한번 낙담하고 무릎 꿇는 일이 없게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