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최정윤

Posted by 희씨
2017.12.01 18:47 EDITORIAL/문예 :: Liter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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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

열아홉의 나는 달을 사랑했다. 쳇바퀴 돌 듯 굴러가는 반복적인 일상의 흐름 속에 지친 채, 불 꺼진 깜깜한 방을 더듬어 찾아간 침대에 몸을 뉘고 나면 밤하늘이 내게 쏟아졌다. 제주의 밤하늘이었다. 어두운 듯 태양의 빛을 살짝 머금고 있는 검은 하늘에 끝없이 펼쳐진 별들의 발자국, 그리고 외로운 달을 바라보는 것은 내 하루의 마지막 일과였다. 달빛이 나를 감싸 쉬이 밤잠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그다음 날 하늘에 달이 없으면 묘연한 그 행방을 고민하다 잠이 들곤 하는. 나는 달에 많은 것을 말하고 많은 것을 보였다.

2.

참, 돌이켜보면 그랬다. 열아홉의 나는 나의 밤하늘을 살짝 들췄을 때 내 머리 위로 쏟아지는 핑크빛 구름, 따사로운 바람, 무지갯빛 오로라 따위의 아름다움을 사랑했다. 아름다움이 뒤얽혀 있는 나의 세계, 나의 스물. 그때부터였는가, 나는 스물이라는 숫자를 꽤 동경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십 대라는 굴레에 종속되지 않는 어른의 영역. 세계의 팽창, 허락된 자유와 같은 사탕발린 유혹들이 내 귓가를 적셔왔고, 나는 이따금 달에 스물은 어떨까, 하는 유치한 질문을 던지며 그 세계를 스케치했다.

3.

술은 맛없었다. 홍대 어느 클럽에서 마신 테낄라였다. 어둡고 담배 연기 자욱한 이곳에서 시끄러운 음악에 맞춰 춤추는 영혼들이 내 앞에 허다했다. 개중에는 술에 떡이 돼 어느 남정네에게 아예 몸을 맡긴 여자도 있었다. 그들 무리에 어설프게 발을 디딘 채 손에는 코로나 한 병을 쥐고 살짝살짝 몸을 흔들다 보니 문득 회의감이 들었다. 이것이 내가 상상해오던 스물인가, 나는 이것을 위해 부모님께 통금을 2시로 늘려달라고 생떼를 부린 것인가. 뭔가 이상했다. 1월 1일 그날의 달은 초승달, 눈이 휘어지게 웃고 있는 것이 꼭 나를 놀리는 것만 같아 서둘러 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4.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인가 싶다. 지난 한 달간 내가 마신 술이 몇 병인지 셀 수 없다. 단발적인 관심과 대화, 인스턴트식 만남으로 인해 혼자 있는 시간이 외로워지는 것을 느낀다. 그러면서도 매일 밤 새로운 사람을 만나러 친구들과 떠나고, 카톡에는 얼굴도, 만난 곳도 기억이 안 나는 이름들이 쌓여간다. 정말 우습다, 같잖은 일상마저 술잔에 띄워 삼켜버리는 나의 모습이. 과음한 뒤 속을 게워내는 것은 일상이 되었다. 문득 내가 속을 게워냄과 동시에 열아홉의 내가 갖고 있던 순수함, 스물에 대한 환상, 달에 고백하던 그 시절들을 함께 게워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너무 어지러워 더 이상 서 있을 수가 없었다. 화장실 바닥에 풀썩 주저앉은 나는 방까지 어찌어찌 기어가 깨질 것 같은 머리를 부여잡은 채 잠이 들었다.

5.

나는 이제 클럽에서 마시는 테낄라가 쓰다고 느끼지 않는다. 귀가 터질 듯한 음악 소리도, 슬쩍 내 허리에 손을 올리는 남자도 막지 않는다.

6.

“졸업했으니 이제 진짜 성인인 거야.”

아빠는 졸업식 날 내게 꽃다발을 안겨주며 말씀하셨다. 성인. 술 앞에 내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하는 내가 성인이라니. 순간 나는 스물의 내가 흘려보내고 있는 스물의 시간에 대해 생각해본다. 핑크색도, 따사롭지도, 무지갯빛도 아니다. 채색되지 못한 시간에는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5월의 졸업식 날, 내가 입은 하얀 드레스의 끝자락이 바람에 나부꼈다. 안녕, 6년을 살아온 제주.






7.

스무 살의 내게 늦은 봄바람이 불어왔다. 정말 잘생겼고, 한없이 착하고 자상하며, 특히 나를 바라볼 때의 눈동자가 예쁜 사람이다. 그의 눈은 내가 사랑하던 제주의 밤하늘, 그리고 그 안의 별들을 빼닮아 영롱하게 반짝인다. 그런 그의 눈은 매일 내게 백 마디 말보다 더 진솔한 진심을 내게 속삭인다. 그렇게 나는 늦봄의 끝자락을 붙잡았다. 스물의 사랑인 것이다.

8.

그는 술과 담배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나는 술과 클럽을 끊었다. 사랑은 좋은 것임이 분명하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두 사람의 선이 접점을 지나 하나로 그어지는. 나는 그와 있을 때 마치 예쁜 꽃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는 내게 매일 사랑한다는 말과, 달콤한 눈빛과, 진심 어린 걱정과, 따듯한 웃음소리를 들려주며 나를 쓰다듬는다. 예쁘다는 말로는 부족한 매일이다, 정말 아름답다.

9.

날이 더운 줄도 모르고 서울 곳곳을 그와 함께 돌아다닌다. 그와는 더운 날 뜨거운 햇볕을 받는 것마저도 좋다. 청계천에 갔던 유난히도 더운 날, 나는 그날 나를 휘감았던 감정을 잊을 수 없다. 이전의 내가 어느 봄날 아빠와 자전거를 타며 내 살결에 부딪히는 바람의 느낌과 봄의 냄새에 취하는 것에서, 혹은 주말 아침 늦잠을 자는 내 좁은 침대에 낑겨 들어와 엉덩이를 토닥이는 엄마의 숨소리를 듣는 것에서 행복을 느꼈다면, 이것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나의 연인이 내게 안겨주는 행복이었다. 이렇게 스물의 나는 그에게서 새로운 것들을 배워나간다.

10.

그와의 시간이 다채롭게 나의 하루를 채워갈수록, 그리고 그 하루들이 쌓여갈수록 나는 그와 헤어지면 어떡하지, 하는 막연한 두려움에 휩싸이는 날들이 많아졌다. 헤어짐이 두려운 것은 아무래도 바래어진 좋았던 시간의 파편들, 그 날카로운 단면이 내 심장을 찔러오는 것이 얼마나 아픈 것인지 경험해봤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피도 안 나고 외상도 없는 탓에 사람들은 내가 아픈지 모르지만, 사실 이별을 경험한 이는 공허함이라는 공간 속에 외로이 던져진 채 과거의 시간을 매만질 뿐, 흐르는 시간에 실재하기 어려워한다. 나는 그래서 그에게 자주 헤어짐에 대해 토로했다. 내가 얼마나 그 감정을 무서워하는지, 그 느낌을 두려워하는지. 그럴 때면 그는 나와 눈을 맞추고, 커다란 손으로 나의 작은 손을 꼭 잡아주며 말했다. 걱정하지마, 정윤아.

11.

대학 진학을 위해 미국으로 떠나는 날, 나는 인천공항에서 정말 많이 울었다. 아침 7시부터 나를 배웅하러 먼 길을 달려온 그도 잘 참는가 싶더니 끝내 눈물을 보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시야에서 사라진 이후로 그 자리에서 몇십 분을 하염없이 울다가 힘겹게 무거운 발걸음을 돌렸다고 한다. 나는 그에게 당부했다. 내가 함께하지 못한 오빠의 하루를 달에 말해놔줘, 내가 그날 밤 그 달을 바라보며 오빠의 하루를 묻고 나의 하루를 말해놓을게. 떨어져 있어도 우리가 바라볼 밤하늘의 달은 같은 달일 테니 우리 달을 바라보며 서로를 생각하고 서로를 그리자.

떠나는 사람보다 남아있는 사람이 더 힘든 것이구나, 긴 비행시간 동안 나는 앨범에 가득한 우리의 사진을, 동영상을, 대화를 세 번쯤 곱씹었던 것 같다.






12.

엄마 아빠의 어린 딸은 뒤도 한 번 돌아보지 않은 채 “빠이”라는 말과 함께 기숙사로 쏙 들어갔다. 어릴 적부터 기숙사 생활을 해온 나인지라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는 것이 어렵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제 대학마저 졸업하고 나면 내가 부모님과 한집에서 부대끼며 살 날이 얼마나 더 남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살짝 슬퍼졌다. 사랑받는 사람으로 자라라며 보듬어주시곤 하던 부모님의 품을 나는 너무 일찍 떠나온 것은 아닐까?

문득 며칠 전 ‘아이구, 우리 정윤이가 언제 이렇게 컸을까’ 하며 나의 발을 주물주물 하던 엄마의 손길이 떠올랐다. 그러게 엄마, 나는 어쩌다 이렇게 금방 커버린 걸까. 큰 건 맞을까? 난 몸만 컸지 생각은 아직 어린 애 같은데.

13.

대학에서 나는 극심한 외로움에 시달렸다. 내가 이전에 알던 나 자신과는 너무나도 다른 사람이 된 것만 같은 이질감이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술만 있다 하면 달려가는 신입생들이 한심하게 느껴지는 와중에도, 선배들을 알아가며 매일 다른 사람들과 밥 약속을 잡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새로운 인연들과 대화를 하고, 술을 마시고, 노래방을 가는 등의 행위는 나의 외로움을 일시적으로밖에 해소해주지 못하는 일회성의 즐거움에 지나지 않았다. 이전의 나는 아무리 환경이 변하고, 주위의 사람들이 변하더라도 특유의 친화력과 밝은 에너지로 무리의 중심이 되던 사람이었는데. 온종일 침대에 누워 한국만을 그리워하는 내 모습이 무섭도록 대조적이다. 대학이라는 공간이 싫어진다.

14.

열아홉의 내가 대학에 목매던 시절이 자주 떠오른다. 하루에도 몇 번씩, 친구들과 함께 ‘대학가고 싶다’라는 말을 되뇌곤 했다. 인간은 경험하지 못한 미지의 것이 가지는 환상성에 눈이 멀어있는 것만 같다. 불완전한 나의 미래가 대학 진학과 함께 규정될 것이라고 굳건히 믿어왔는데, 이런 생각을 가져온 나 자신이 부끄러워질 정도로 나는 너무 안일하게 살아온 것만 같다. 나는 그토록 원하던 스무 살이 되었지만, 미래가 규정된 더 나은 사람은커녕, 바라던 대학에 진학했음에도 불구하고 온갖 걱정들에 사로잡힌 채 나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한 비겁한 사람이 되어가는 나의 모습을 발견한다. 이것은 내가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종류의 방황이었다.

달이 보고 싶었다. 나는 아직 어리고 달이 보고 싶은데, 내 방에선 더 이상 달이 보이지 않는다. 간판의 인위적인 불빛들, 거리의 인공적인 불빛들만이 나의 잠을 깨울 뿐. 달이 보고 싶다. 엄마도 아빠도 보고 싶다. 남자친구도 보고 싶다.

보고 싶다.

15.

대학이 꽤 정직한 공간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난 후로 나는 많이 행복해졌다. 자신의 선택으로 결과가 얻어지는 곳이 바로 대학임을 깨달은 것이다. 내가 아침 수업을 빠지겠노라 마음먹으면 그 누구도 막지 않았다. 다만 나는 그날 수업 내용이 무엇인지 당최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않겠노라 마음먹으면 나는 그날 밥을 혼자 먹었다. 혼밥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고, 나는 점차 혼자 밥 먹는 날들이 늘어갔다. 그와 동시에 나는 내가 예전의 나로 돌아오고 있음을 느꼈다. 웃는 날이 많아졌고, 침대에 누워있음에도 외로움에 눈물 흘리기보다는 편안함에 줄곧 낮잠을 청하곤 하는. 낯설고 바쁜 대학에 첫발을 내디딘 후로 여유를 가지게 된 것이다.

16.

스물. 어느새 한 달 뒤면 내가 오래간 꿈에 그려온 스물을 등지게 된다. 아직 이 시간을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데 어느새 12월인 것을 보면, 내가 온갖 경험과 감정에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는 사이 시간은 쉼 없이 달렸나보다.

예전만큼 술을 많이 마시지는 않는다. 가끔, 좋은 자리가 생기면 마다하지 않고 나가지만 스무 살 초반의 내가 그랬듯 날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일상은 이제 내게 없다.

남자친구와는 여전히 좋다. 5개월이라는 떨어져 있던 시간이 무색하게 그는 여전히 나를 아껴주고 나를 사랑해주는 좋은 사람이며, 15일 후면 그 예쁜 사람의 얼굴을 나의 손가락으로 더듬을 수 있게 된다.

언제나 그랬듯 부모님은 나를 응원한다. 통금을 훌쩍 넘긴 새벽 세 시에 살금살금 집에 들어왔을 때도, 택시에 토를 하는 바람에 13만 원을 물어준 날에도, 대학에 간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한국 가고 싶다며 울며불며 전화한 날에도 부모님은 스무 살 딸의 철없음을 사랑으로 보듬어 주셨다.

밥은 여전히 혼자 먹는다. 내가 선택한 일이므로 외롭지 않다. 다만 거기서 거기인 버클리의 한정적 메뉴들에 이따금 얕은 짜증이 밀려올 뿐이다.

어느 날 저녁, 기숙사로 돌아가다가 달을 마주쳤다. 내 방 침대에서 보이지 않았을 뿐, 달은 언제나 밤하늘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열아홉의 내가 동경하던 바로 그 달이었다. 스물의 나는 여전히 달을 사랑한다.






사진출처:

[cover]: http://image.ytn.co.kr/general/jpg/2016/1214/201612140112066877_t.jpg

http://www.civicnews.com/news/photo/201708/8865_14225_2514.jpg

[1] http://www.pictame.com/tag/배경화면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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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12.10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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