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나

Posted by 썰킴
2018.02.21 11:42 EDITORIAL/사회 :: Current Issues

[커버포토]


UN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7% 이상인 사회를 고령화 사회, 14% 이상인 사회를 초고령화, 또는 고령 사회라고 부른다. 대한민국은 2000년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지 17년만인 지난 2017년, 공식적으로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빠르게 늙어가고 있고, 노인 인구는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이다.

이와 동시에 우리의 기술력은 날이 갈수록 젊어지고 있다. 2G 폴더폰에서 스마트폰으로, 은행 방문 업무에서 온라인 뱅킹으로, 전화 주문에서 앱 주문으로. 모든 일 처리들은 간편해지고, 세상이 젊어질수록 우리는 그 시간 동안 업무와 일 처리 대신 여가와 행복을 삶에 채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편리해진 사회가 마냥 반갑지만은 않은 이들도 있다, 바로 노인층이다. 기술의 발전이 계속될수록 그들은 점점 소외되기 시작한다. 일례로, 맥도날드에 새로 도입된 무인 키오스크는 신용카드 고객들을 위해 더욱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주문하기 위해 긴 줄을 서지 않아도 되며, 터치스크린으로 빠르게 원하는 메뉴를 정하고 주문할 수 있다. 맥도날드는 점포 증대와 효율성 증진을 위해 앞으로 무인 키오스크를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만약 어쩌면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의 햄버거 가게에서는 모든 고객이 스스로 주문을 해야 한다면, 터치스크린이 익숙하지 않은 노년층들은 어떻게 햄버거를 구매할 수 있을까?

은행의 발전 역시 마찬가지이다.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는, 은행 업무를 보기 위해서 가까운 은행에 들러 모든 업무를 볼 수 있었다. 물론 은행은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었고, 정말 외딴 시골이 아닌 이상 내가 원하는 은행과 편하게 거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모든 은행은 경제적인 이유로 점포 수를 줄이는 대신 모바일뱅킹의 효율화를 추구하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카카오 페이로 대표되는 모바일뱅킹 전문 은행도 문을 열었다. 많은 지역 어르신들에게 은행 선택의 1순위는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점포가 있는 곳”으로 바뀌었고, 그들은 가장 기본적인 경제 활동에서 마저 소외되어가고 있다.

노인층의 소외는 온전히 기술 발전 때문만은 아니다. 젊은 세대의 노인을 향한 시선은 노인층의 소외를 더욱 증폭시키는데 한몫을 한다. 맥도날드의 새로운 주문 시스템을 사용할 줄 몰라 소외를 느끼기도 하지만, 어린 학생들의 따가운 눈총 또한 노인층들이 소외감을 느끼는 이유다.

이번 겨울 방학, 필자는 어렸을 때부터 함께 살아온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 스타벅스를 방문했다. 처음 카페를 들어간 순간은 3000원이 넘어가는 커피 가격에 화들짝 놀라셨지만, 분위기와 맛 두 가지 모두 만족하시며 나와 함께가 아니었다면 방문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하셨다. 왜 평소엔 이런 곳에 안 오시냐고 여쭤보자,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 들려왔다. “젊은이들 눈치가 보여서….” 라는 것이 그 대답이었다.

할아버지 할머니께서는 골프를 좋아하시는데, 어느 날부터 골프 후에는 땀을 식히기 위해 맥도날드에 들어가 아이스크림콘을 드시는 것이 당신들의 등산 루트가 되셨다고 한다. 어느 날, 등산을 마치신 두 분께서 산 아래 맥도날드에서 아이스크림을 드시는데, 교복을 입고 지나가던 학생들이 ”무슨 노인들이 맥도날드에 오냐”며 할아버지 할머니를 이상한 사람 취급했다는 것이다. 그 날 이후로 할아버지 할머니의 등산 루트는 하산 뒤 바로 집으로 가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물론, 모든 젊은 세대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대다수의 대한민국 젊은 청년들은 노년층을 공경하고, 배려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노년층은 아직도 이러한 비극적 일화들을 자주 겪고 있으며, 이러한 상처는 그들의 단단해 보이는 표면을 깨버리는 송곳이 되어 버린다. 위의 일화는 너무나도 충격적인 이야기이지만, 노인층에는 당연한 일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다른 말로, 그들은 소외되어 가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다. 아마 기술의 진보에서 도태된 것 역시 비슷한 이유는 아니었을까? 젊은 세대에게 모르는 것을 물어보았을 때 마주했을 따가운 눈총. 그것이 오히려 무지의 불편함보다 아프고 힘들어서 그들에게로 하여금 이러한 선택을 하도록 강요한 것은 아닐까?

필자는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국가적 차원에서는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력 사이에서 노인층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더욱 친절한 안내 서비스를 제공했으면 한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자주 다니는 노인정 또는 동사무소에서 매주 혹은 매달 간단한 앱 사용법, 휴대폰 사용법, 컴퓨터 사용법에 대해 알려드린다면, 그들이 마주하는 기술의 높은 벽을 조금이나마 낮출 수 있을 것이다. 단 10분의 친절한 교육이 그들이 맞닥뜨린 어두운 터널 속 한 줄기의 빛이 될 것이다.

또한, 가정에서 더는 그들의 소외를 빠른 기술 발전에 책임 전가하지 않아야 한다. 젊은 세대들 스스로 소외당하는 이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 해야 한다. 나아가, 자녀들에게 노인은 멸시의 대상이 아니라 공경의 대상이라는 가정교육 역시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할아버지 할머니 두 분이 손을 잡고 스타벅스로 데이트를 나서는 것도,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맥도날드를 가시는 것도, 따가운 시선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더욱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았으면 한다.  



[1]



효도는 생각보다 훨씬 단순하다. 명절날의 두둑한 돈 봉투 보다는, 평소에 할아버지 할머니 말에 귀 기울여 주는 것. 그리고, 우리에겐 사소하고 당연한 질문들에 조금 더 친절히 답해드리는 것.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그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우리가 그들의 힘이 되어드리는 건 어떨까. 20년 전 그들은 우리에게 셀 수 없이 같은 말을 반복하며 한글을 가르쳐 주었고, 흘리는 음식을 닦아주며 우리에게 밥을 먹여주었다. 이제는 우리의 차례이다. 언제나 할수 있다고 생각되는 일들이 언제든 이젠 할 수 없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어쩌면 우리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던 코맥 매카시의 제목을 비웃어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진 출처:

[1] http://www.4000hanmaeum.com/02/05_news/02_2.php



이 댓글을 비밀 댓글로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