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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사회 :: Current Issues

점프.


*점프 : 위수지역 이탈을 뜻하는 비속어

 

3 12일 월요일, 강원도지사는 국방부 장관을 만나 위수지역 폐지안을 철회하겠다는 대답을 기어이 받아냈다. 절망적인 소식이자 당연한 결과였다. 최문순 강원도지사와 송영무 국방부장관이 웃으며 악수하는 아래의 사진. 필자는 이 사진이 우리나라의 현주소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위수지역 밖으로 못 나가지 말입니다

 

위수지역이란 군인들이 외출이나 외박시에 이동할 수 있는 한정된 범위를 뜻한다. 보통 해당 부대에서 한 두시간 정도 거리의 범위로 정해지며, 육군의 경우 시나 군 등의 구체적인 행정구역의 경계로 정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정기휴가는 이런 위수지역의 제한을 받기 않은 것이 보통이지만 군인의 외출과 외박은 항상 위수지역이 정해져 있다. 여기서의 제한이란 부대장과의 손가락 약속 같은 것이 아니라, 위반 적발 시 무단이탈 (군형법 제79조 의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로 징계 당하는 굉장히 까다로운 규정이다.

 

그거, 인권 침해 아닌가요?

 

위수지역의 도입자체는 비상상황에 대한 빠른 대처를 하기 위함이다. 6.25 전쟁 발발일에 출타자가 너무 많아 초기대응에 실패했다는 교훈에 착안해 유사시 대응력을 높이겠다는 것이다물론 중요하고 현실적인 이유로 차용되는 규정이다. 그러나 여기서 필자는 몇가지 의문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취지가 좋은 것은 알겠는데, 빠른 대처라는 것은 얼마나 빨리,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 6.25가 몇 년이더라. , 1950.

 

1950년대에 빠른 대처란 몇 시간안에 부대 안에 인원을 총 소집하는 것이다. 아니라면 최소한 부대의 모든 기능을 몇시간 안에 가용할 수 있도록 태세를 갖추는 것이다. 그 때의 입안자들 기준으로 1950 6 25일의 실패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란, 장병들을 내보내지 말아야겠다거나 보내더라도 근처에 둬야겠다는 것 정도다. 해서 생긴 위수지역이다. 당시 우리나라 군대는 거의 육군 보병이라 봐도 무방했으니 군을 나눠 고려하고 자시고도 없었다. 사람이 없어 실패했으니 가까이에 두겠다. 이것이 기본 골자였다.

 

이 규정이 (물론 정식 입안과 수정 절차를 거쳤다 치더라도) 지금에 와서도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놀랍도록 시대착오적이다. 먼저 6.25 발발일과 같은 비정상적 사고율(총인원 중 부대 내에 없는 자의 비율)은 군에 이제 일어나지 않는다. 애초에 사고율을 고려하여 영외활동을 계획할 수 있는 행정력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오늘 날의 군은 부대를 운용할 수 있는 최소인원을 고려하여 외박 및 휴가를 보내기 때문에 사고자로 인한 부대운용 실패는 있을 수 없다.

 

, 같은 시간에 갈 수 있는 거리가 다르다. 1950년의 한국에서 장병들이 휴가나 외박을 나와 집을 가면 그 집은 대부분 농사를 짓는 에 있다. 특정 지역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길이 잘 닦여 있을 리 만무하고, 일상이 농사인 그런 곳, 한국의 대부분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상황이니 집에서 부대까지의 긴급복귀는 어불성설이었고, 위수지역은 당위성이 생겼다. 지금은 다르다. 군사도시와 주요도시를 잇는 교통망은 촘촘히 깔렸고 (아니라면 이것 대로 문제가 아닌가?) 한 두시간 안에 도달할 수 있는 거리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서울-양양 고속도로의 개통으로 서울에서 속초까지 안 막히면 90분 안쪽으로 걸리는 지금이다. 당일치기 속초여행 포스트가 네이버 블로그를 도배하는 마당에 장병들이 부대 옆 동네에 묶여 있어야 할 이유는 많이 약해 보인다.

 

마지막으로 정보력이다. 6.25발발일과 같은 깜깜이 공격을 안 당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우선이지만, 습격을 가정한다고 해도 정보의 확산은 당시보다 압도적으로 빠르다. 열악한 연락망에 의존하던 당시와 달리 핸드폰을 통해 비상경보 전파가 실시간으로 가능한 지금 철원의 군인이 왜 부대 앞에서 모텔을 잡아야 하는지는 설명하기 애매하다.

 

길게 풀어 말했지만 요지는, 위수지역 도입의 취지를 고려할 때 더 이상 같은 의미를 가지는 규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군사적으로 절대적인 필요성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우리 장병들의 영외활동을 제한하는 이 침해규정을 손봐야 마땅하지 않나필자가 떠올릴 수 있는 것을 인권 전문가들이 모를 리 없다. 실제로 2 21일 군 적폐청산위원회의 권고 사항에 위수지역 제도 폐지가 담겨 있고, 군 역시 이에 착안해 폐지안을 꺼내 든 것이었다. 군인들은 물론, 시민들 역시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모든 당위성과 시대의 흐름이 변화를 촉구했고, 군이 변화하나 싶었다.

 

호갱아 서울로 가지마오

 

그런데 뜬금 없는 사단이 났고, 변화는 흐지부지 됐다. 명확한 것은 아니지만 송영무 국방장관은 일단 발을 뺐고, 임기 말 손보겠다는 얘기가 나온다. 많이 듣던 이야기고, 욕 안 먹고 안 하겠다는 뜻 역시 읽을 수 있다.

 

접경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그 사단인데, 워낙 강력한 탓에 최문순 강원도지사도 발벗고 나서게 되었고, 거센 반발에 군이 결국 말고삐를 돌린 것이다. 여기서 실망스러운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가장 기본은 지역주민들이 반발하는 이유다. 위수지역이 해제되면 군인들에 의존하는 지역경제가 붕괴한다는 것이다. 최 지사는 주민들이 휴전 이후 70여 년간 각종 군사규제에 의한 지역개발 제한, 토지 강제증발 등 재산권 침해등을 견디며 희생을 감내해왔고, 때문에 그들의 경제를 보호해야 한다고 전했다. 절망적인 발언이다.

 

양구, 철원 등의 접경지역의 본질은 군사도시다. 농업을 하든, 관광을 키우든, 그 지역에 지금과 같은 규모의 도시가 있는 것은 군대가 있기 때문이다. 6.25 이후 황폐화 된 곳에 전략적 필요에 의해 부대가 들어섰고, 그 부대의 수요가 군사도시의 성립을 이끈 것이다. 그런데 마치 수백 년 내려오는 기름진 땅에 군대가 난입한듯 70년의 희생을 견뎠다니, 말이 지나치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위수지역 폐지는 외박 나온 군인들이 다른 곳으로 갈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지, 부대 근처에 있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시간이 짧아 졌다 한들, 강원도에서 수도권까지는 빨라야 편도 90, 즉 왕복 3시간이다. 장병들의 비상소집차원에서는 괜찮은 시간일지 몰라도, 장병들에게는 소중하고도 소중한 영외활동시간이다. 특별한 볼일 없이 게임을 하거나 밥을 먹고 싶다면 부대 근처에서 하는 게 길바닥에서 몇 시간씩 버리는 것 보다 당연히 낫다. 위수지역을 푼다고 해도 어지간하면 수요충격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런데도 악을 쓰며 법으로 묶어 놓으라는 것은 둘 중 하나 밖에 될 수 없다. 단 한 푼도 손해를 볼 수 없다는 욕심이거나, 평소의 영업이 어지간하지 않아서 진짜 불안하거나. 물론 필자는 둘 모두 긍정할 수 없다.

 

아닌 게 아니라 접경지역들의 물가는 해당 지역의 경제규모나 위치적 특성을 고려할 때 지나치게 비싸다. 강원도 양구군 같은 경우는 강원도 최북단의 위치와 2 4천 정도되는 인구규모에도 불구하고 군인들에게 서울 도심수준의, 혹은 그보다 비싼 수준의 결제를 요구한다. 피씨방 1500~2000, 모텔 5만원 이상, 음식점 가격 등, 서울 시내와 하등 다를 것이 없다. 물론 시설과 지대의 차이를 계산하면 기형적인 수익률이다. 주민들은 이 상황을 이해하기에, 그리고 군인들의 불만을 인지하기에 그들을 달래기보다 자신들의 상권에 가둬 놓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런 뻔한 논리를 희생이라는 단어까지 붙여가며 구구절절 변명해야 했던 도지사의 사정 역시 뻔하다. 6월 지방선거가 이제 3달도 안 남았다. 지역 경제를 어떻게 살리겠다 피를 토하며 부르짖어도 모자랄 타이밍에 위수지역을 풀겠다니, 안될 말이다. 장병들의 바람과 시대의 변화가 폐지를 부추기는 것을 모를 사람들이 아니지만, 당장 100일뒤의 표보다 중요한 것은 없는 것이다. 군인들이나 서울 사람들이 자기를 뽑아주는 것은 아니니까. 주민들과 하나 다를 것 없는 이기주의이자 보신주의다. 이런 이익집단들의 목소리가 모든 장병들의, 그리고 그들과 생각을 같이하는 시민들의 발언을 모두 덮을 수 있다는 것이 끔찍하게 사실적이다.

 

마치며

 

접경지역에 군사지역 특수의 규제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상업 건물 층수 규제나 토지사용과 관련하여 특수한 규제가 있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다만 그것이 부당하거나 보상을 해야 하는 계제가 된다면 그것의 주체는 군, 혹은 군을 운영하는 중앙정부여야 한다. 일선 장병들의 주머니가 아니라.

 

군 위수지역 제도는 본질적으로 군사적 필요성에 의해 장병들의 인권을 제한하는 규정이다. 때문에 그 도입과 폐지에 있어 주요 쟁점은 당연히 군사적 필요성이 얼마나 무거운지, 그 무게가 인권을 제한할 만큼 가치가 있는 것인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지금처럼 주민들의 경제적 이권이나 정치인들의 이해관계가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현실이 바뀔 수 있었으면 한다. 최소한 6월 지방선거의 급한 불이라도 끄고 나면 다시 진척이 생기기를 미련하게 바라본다.

 

수도권에서 복무해 서울이 위수지역이었던 필자는 이번일에 있어 접경지역 군인들에게 직접적으로 공감하긴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쾌함을 느끼며 같이 절망했던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을, 그걸 알기에 바꾸겠다 발표까지 했던 것을 관행이라는 이유로, 혹은 경제논리의 이유로 무마하려는 일련의 행동들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그것과 닮았기 때문이리라.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변화의 필요성이 있는 영역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촛불민심으로 집권한 이번 정부의 당위성과 순수성이 이어지는 스캔들과 함께 무뎌지고 있는 요즘이다. 이럴 때일수록 변화의 물결을 한번 만들어 크게 나아가는 사회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한 발 앞으로 점프하듯.


이미지 출처:

[1] http://news.sbs.co.kr/news/endSlideIframe.do?id=10000160033&tagId=&page=5&news_id=10000160033

[2] http://www.segye.com/newsView/20180312014807

[3] http://gadgetstory.tistory.com/126


내용 참조:

[1] https://namu.wiki/w/%EB%AC%B4%EB%8B%A8%EC%9D%B4%ED%83%88

[2] http://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31379

[3] http://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3271630&memberNo=2993146&vType=VERTIC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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