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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문화 & 예술 :: Culture & Art

숫자 23의 법칙

[커버포토]




작년 어느 날, 필자는 본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완전히 바꿔놓는 영화를 마주하게 됐다. <넘버 23>이라는 이 영화는, 배우 짐 캐리가 연기하는 월터 스패로우라는 주인공이 자신의 삶을 담아놓은 듯한 책 한 권을 발견하며 숫자 23에 집착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영화 속 캐릭터는 23이라는 숫자 때문에 자살을 하고, 사람을 죽이고, 미쳐가는 등 거대한 영향을 받게 된다. 이토록 작은 숫자 하나의 파괴력이 필자의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그 덕에 이 영화의 기반이 되는 법칙에 대해 더 알아보게 됐다.

이 영화는 ‘숫자 23의 법칙’을 주제로 하고 있는데, 이는 바로 세상의 모든 사건 사고들이 다 숫자 23과 연관이 되어있다고 주장하는 법칙이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이 세계가 그 숫자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이론이다. 좋은 사건이든 좋지 않은 사건이든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가진 사건이었다면 모두 그 숫자에 관련이 된다는 것이다.

해당 법칙은 로버트 안톤 윌슨이 영국 잡지 포틴 타임즈에 발표한 기사를 통해 처음 소개됐다. 이 기사에서 작가는 윌리엄 S. 버로우의 사연을 공개하는데, 버로우가 알게 됐던 한 배의 선장이 자신의 23년 무사고 항해 경력을 자랑한 바로 다음 날 사고를 당해 배에 탔던 모든 사람이 죽는 사건이 발생했으며, 버로우가 이 사건을 돌이켜 보던 순간 라디오에서 비행기 불시착 사고를 발표했고, 그 비행기 번호가 Flight 23이었다는 사연이다. 물론 그 비행기에 타고 있던 전원이 사망했다.

이 법칙이 발견된 후, 많은 대중이 이 숫자와 관련된 다른 사건들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줄리어스 시저가 23번 칼을 맞아 사망하게 됐다는 역사적 사건과 더불어, 첫 23개의 소수를 더한 답이 876이라는 사실과 이 숫자 역시 23으로 나뉘어진다는 수학적인 사실이 그 예다. 정확히 숫자 23과 관련이 되지 않더라도, 사건과 관련된 숫자들이 어떤 식으로든 그 숫자를 만들어내는 경우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유명한 9/11 테러 사건 같은 경우, 이 법칙이 다양한 방면에 해당되는 사실을 알아볼 수 있다. 먼저, 사건이 발생한 날인 2001년 9월 11일에 등장하는 모든 숫자를 더하면 2+1+9+11=23.  테러의 타겟이었다고 알려진 뉴욕 비상대책반은 빌딩 7의 23층에 자리하고 있었다고 한다. 또한, 빌딩은 BBC 중계가 시작된 지 23분 후에 무너져 내렸다. 무너져 내린 세계 무역 센터 빌딩은 WTC라고도 불리는데, W는 23번째 알파벳이고, T는 20번째, C는 3번째다. 이렇듯, 그저 우연으로 치부하기엔 이상하리만치 많은 사건들이 이 숫자와 관련된다.

반신반의 하던 와중, 필자가 직접 법칙을 적용할 수 있던 사건을 마주하기도 했는데, 바로 한국어 수업 시간을 통해서였다. 한국 역사에 익숙지 않은 필자는 이 수업 시간에 많은 역사적 사건을 처음 접하게 됐는데, 이를 통해 알게 된 것이 4/19 혁명이나 8/15 광복을 모두 그 숫자와 연관 지을 수 있다는 것이다. 4+19=8+15. 둘의 합 모두 23이 된다. 직접 많은 예시를 찾을 수 있던 건 아니지만, 어느 샌가 일상 생활 중 자연스럽게 이 법칙을 적용해 보고 있는 자신을 보며 그 영향력에 놀라기엔 충분한 사건이었다.

이 밖에도 간단한 검색을 통해 이 법칙의 수많은 적용 가능 예시를 발견할 수 있는데, 그 중에서 필자를 가장 흥미롭게 했던 몇 가지를 더 나눠보겠다.

  • 미국은 비키니 환초에 핵 실험을 할 당시 총 23번의 원자 폭탄을 날렸다.

  • 히로시마 섬 폭격 날, 원자 폭탄은 아침 8:15분에 떨어졌다 (8+15=23).

  • 고대 마야 문명이 예견한 지구 멸망의 날짜는 2012년 12월 23일이었다.

  • 셰익스피어가 태어난 날짜와 사망한 날짜는 모두 4월 23일이다.

  • 타이타닉 호가 가라앉은 날은 1912년 4월 15일이었다 (1+9+1+2+4+1+5=23).

  • 트랜스 월드 항공의 비행기 Flight 800이 추락한 날, 총 230명이 사망했으며, 좌석 23J, 23K에서 첫 폭발이 일어났다.


이 법칙의 신빙성을 떠나서, 도대체 왜 사람들은 작은 숫자 하나에 이토록 큰 의미를 부여하며 법칙을 만들어 낸 것일까? 필자가 이 법칙의 예시를 다양하게 정성 들여 소개한 이유는, 물론 독자들이 필자가 느낀 놀라움을 함께 경험하길 바래서이기도 하지만, 이 점을 눈치채 주길 바랬기 때문이다. 이 법칙의 예시는 대부분 부정적이거나 충격적인 사건을 다루고 있다. 그런 경향에서 우리는 이 법칙이 생겨난 이유를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보통 사람들이 힘든 일을 겪고 나서 무너지는 순간은 그 사고를, 그 사건을 내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혹은 왜 내가 그 때 함께하지 못했을까 라는 후회와 자책이 들 때다. 안타까운 사건을 돌이켜보던 중 그런 감정이 찾아올 때면, 이런 법칙을 적용해서라도 그 일에 대한 책임감과 힘듦을 덜어보고자 한 발버둥이 아니었을까? 나약한 인간의 존재로는 맞설 수 없던 운명 같은 힘에 의한 현상이었다고 믿고 싶은 사람이 만들어 낸 허상 아닐까?

어떤 이에게는 그저 가십거리일수 있지만, 어떤 이에게는 감히 부정할 수 없는 진리로 받아들여질 숫자 23의 법칙. 이 법칙을 믿고 안 믿고는 접하는 사람이 자유롭게 결정할 문제지만, 이런 법칙을 가볍게 무시해버리기 전에 한번쯤 세상을 받아들이는 한 가닥의 끈으로 이 법칙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는 건 어떨까.





사진 출처:

[커버포토] http://listafterlist.com/top-23-facts-about-the-number-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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