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에게는 노을이 필요하다

Posted by 희씨
2018.10.10 03:36 EDITORIAL/문예 :: Literature





다른 곳, 혹은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을 우리는 이방인이라고 부른다.

공간이 주는 정의뿐만 아니라 살아감에 있어서 우리는 시시때때로 모든 것에 이방인이 되곤 한다.

반갑지 않은 이 나라의 정책에, 낯선 나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이해타산이 밝은 사람들과의 겉핥기식의 관계가,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의 나만 모르는 낯선 이야기를 들을 때.

그들과의 보이지 않는 선을 느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유난히도 쓸쓸하다.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사 먹는 떡볶이와 순대, 단돈 삼천 원에 나눌 수 있는 취중 진담 같은 그런 소소한 것들이 그리울 때면

고독하고 치열한 삶에 갈 곳을 잃은 듯한 눈동자와 힘없이 흔들리는 내 정체성을 지켜보다가 끝내는 눈시울이 붉어진다.

어제와 오늘의 나에게도 느끼는 이방인의 감정은 나를 한곳에 두지 못하고 이리저리로 헤매게 했다.

소외가 주는 멀어지는 듯한 느낌과 그 수그러든 마음에 혼자가 되는 시간을 자처해 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무리에 잘 섞이기 위해 집을 나선다.

부디 서로에게는 서로의 이방인이 되지 않기로 하며 다시 누군가를 향해 가고 있었다.

서늘한 일상에 잠시 멈춰서 분홍빛 노을을 즐겼다. 그것의 영향력이 주변의 것들을 아련하고 은은하게 물들였다.

왠지 모를 슬픔일 수도, 따듯함 일지도 모르는 그 날의 노을엔 필요했던 안도감이 묻어 있었다.


문득, 마음을 쉬이 내려놓을 수 있는 노을 같은 사람이 그리워졌다.



내가 자라온 곳의 노을은 주황빛에 그을린 노랗고 빨간 가을을 닮은 모양이다.

이곳의 해 질 녘은 어느 가을에 꺼내온 봄처럼 분홍빛으로 구름을 감싸고 있었다.


매일 마주하지만 해가 지는 풍경은 어째 눈이 부시지도 않아, 마냥 보고 있을 수도 그리 지겹지도 않았다.

무언가 소중한 걸 잊고 산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을 때, 꼭 너만 그런 것은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무수히 많은 서러움에 부딪히는 가녀린 외로움에 위로가 되어주고 있었고,

편안하고 흐르는 듯한 그 넓은 기운은 결코 산만하지 않았다.


평범하지만은 않은 지금의 삶을 선택한 것이 비정상이 아닌 특별함으로 비춰지면 좋겠다.

가지고 있지 않은, 못한 것들에 대해서도 서운한 감정을 느끼거나 사소한 것에 동요되지도 않았으면 한다.

끊임없는 경쟁과 자극이 한숨을 부르고, 점점 다가오는 한해의 끝과 흘러가는 시간들이 야속하지만

그리 불안해하지도, 조급해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때로는 불완전이 완전함을 선사해 주기도 하니까.


모두의 진부함이 나만의 특별함으로 너의 세계를 스칠 때를 주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상황으로 인한 허전함과 불안감이 나를 집어삼킬 듯하더라도,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흐르는 빛과 분위기에 잠시나마 마음을 녹였으면 한다.


나에게 아직도 차가운 밤공기가 낯설기만 한 버클리에서, 잔잔하게 퍼지는 듯한 매일매일은 다행이다.

내가 스쳐온 수많은 해 질 녘 중엔 빠르게 달리던 고속도로, 그 옆 지평선 위의 분홍빛 노을이 기억에 남는다.

눈부신 아침의 해보다는 저녁의 노을이었으면 좋겠다.

무력감에 시달리는 날들이더라도 계속 나른한 오후의 두근거림으로 삶이 포근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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