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동산 바위

Posted by 희씨
2018.10.31 03:01 EDITORIAL/문예 :: Literature


예전에 여느 때와 같이 인터넷을 보다 가슴 한편을 괜히 묵직하게 만들어주는 한 어린아이의 시를 보았다.

엄마가 있어 좋다

나를 이뻐해 주어서


냉장고가 있어 좋다

나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


강아지가 있어 좋다

나랑 놀아주어서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순수한 아이의 시선과 언어에는 진솔함이 가득 묻어 나오기에, 가정에서 보이는 우리네 아버지의 모습을 정갈하게 나타내주는 시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의 어린 시절을 꺼내놓고 보았을 때, 그때의 나는 저 아이와 달랐을까라는 질문에 자연스레 고개가 저어진다. 참 아이러니한 것이 분명 아버지 삶의 중심은 자식의 행복이라며 자신을 희생하고 허구한 날 일하고 또 일하는데, 정작 그들의 가슴팍에 돌아오는 것은 위로가 될 만한 자식들의 따뜻한 품이 아닌, 전혀 예상치 못했던 차가운 비수와도 같은 무언가가 날아와 꽂힌다니. 더 안타깝게는 이러한 애처로운 상황이 이제는 아버지들의 숙명이라고 치부될 정도로 당연스러워지고 있다는 것.


왜 어렸을 때의 우린 아버지의 사랑을 미처 알지 못 했던 걸까. 그것은 마치 어렸을 적 거실에 있던 아버지의 안경을 무심코 써본 것과 같지 않을까. 하얗고도 뿌연 것이 앞을 보기 어렵게 하는, 그리고 그렇게 스치는 깨달음. 아, 나는 아버지의 눈으로 아무것도 바라볼 수 없구나. 그리고 아버지를 알 수 없겠구나. 그래서인지 아버지를 보고 있자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나에게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지 절대로 속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저 아버지는 별말 없이 우리 자식들을 관조할 뿐이고 그런 아버지의 표정이나 행동에선 늘 그늘만 보일 뿐 생각의 저변을 알 수 없다. 그렇기에 아버지는 깊이를 헤아리기 어려운 어느 산 골짜기 같은 침묵이라고.


그렇다면 이런 묵묵한 아버지가 우리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까. 내가 클 때는 아버지와 사랑한다는 말을 주고받은 적이 없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말로 주고받아야 하는 표현이라고 생각조차 못 했던 거 같다. 지금도 서로 직접 주고받는 일이 없지만, 아버지와 나 사이에 사랑이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다. 다만 대놓고 눈에 보이지 않았을 뿐. 하지만 그 보이지 않던 것들을 무방비 상태에서 확인하게 되는 순간, 코끝이 시큰해지고 눈앞의 시야가 흐릿해지는 걸 경험하게 될 테니.


나에게는 그러한 순간이 있었다. 아버지가 나에게 잊지 못할 순간을 선사해 주신, 그런 소중한 기억이라 아직도 머릿속 한편에 또렷이 자리를 잡고 있는. 때는 어느 여름 날 스물둘 언저리였을 당시. 친구들과 방 안에서 소소하게 맥주 한 잔들을 들이키고 있을 때였는데, 아버지가 무턱대고 들어오셔서 인생 이야기를 해주겠단다. 아버지들이 주로 하시는 세상 물정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평소에 나 또한 듣지 못했던 험난했던 회사생활 이야기를 하심에 우린 귀를 쫑긋 그리고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이어가는 찰나, 본인이 왜 그렇게 새빠지게 일만 하는지 갑작스레 두 가지 이유를 말해주었다.



그리고 나서 나는 방을 뛰쳐나와 급하게 화장실로 향했다. 비어있는 변기물을 내리고 수도꼭지를 틀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쥐 죽은 듯이 흐느꼈다. 오랜만에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거대한 감정 북받침에 나도 모르게 돌발행동을 해버렸던 것인데, 혹시나 들키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에 최대한 빨리 해결하고 나왔다. 때 마침 이야기가 끝났는지 아버지도 나오셨었고, 나와 마주쳤을 땐 아무 말 없이 내 어깨를 한 번 두 번 토닥이시고 가셨다.


아버지 말하시기를.

첫 번째,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그리고 두 번째,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받기 위해서.


항상 무덤덤해 보이는 아버지였는데, 가족에겐 무관심한 아버지인 줄 알았는데, 아내와 자식의 사랑에 목말라했을 아버지를 생각하니 한없이 가여웠다. 그리고 미안했다. 그런 마음을 알아주지 못해서. 그동안 가정적이지 못했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다 용서가 되는 그런 순간이었다.


그날에는 아버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지난날의 아버지가 했던 사소한 행동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어렸을 적 매주 손톱을 깎아주던, 매달 목욕탕에서 때를 밀어주던, 매년 생일을 챙겨주던, 생선 가시를 발라주던, 잠자리에서 무서운 이야기를 해주던, 그런 당연한 것들이 아버지만의 사랑방식이었던 것을. 모두가 잠든 그날 밤, 나는 다시 거실에 있는 아버지의 안경을 써 보았다. 어렸을 적 흐릿했던 것들이 조금은 선명해져 있었음을 느꼈다.


아버지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와 감정은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 현재 본인의 나이에 따라 아버지라는 단어가 주는 깊이도 다를 것이다. 나처럼 20대 중반에 접어들어 사회로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는 대학생들에게 아버지는 어떠한 모습일까. 세월이라는 무게 앞에 늙어 가는 아버지의 모습이 확연히 보이는 때인 거 같다. 두툼하고 널찍했던 아버지의 어깨가 이젠 너무 좁아 보이기도 한다. 가장으로서 그동안 느꼈을 책임감과 중압감을 떠올려 보며 고마움과 미안함의 감정도 교차한다. 한편으로는 아버지에 대한 이러한 감정을 더 늦기 전에 가질 수 있어 안심이 되기도 한다.


어느 늦은 밤 터벅터벅 집에 돌아가는 길에, 이런 옛 생각들에 빠져 있다가도 문득 아린 감정들이 솟아나곤 한다. 아버지를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고 듣고 싶을 때 들을 수 있다는 참 간단한 사실 앞에, ‘아버지가 이 세상에 없다면’ 이 붙는다면 모든 게 간단하지 않아졌다. 문득 오늘은 그랬다. 아버지가 이번 생에 건강한 귀로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건강한 정신으로 나에게 진심 어린 조언들을 전해주실 날이 앞으로 얼마나 주어졌을까. 아버지의 축 처진 어깨 생각에, 덥수룩해져 가는 흰머리 생각에, 괜스레 마음 한쪽이 뭉클해진다.


아아 생각만으로도 목울대를 뜨겁게 하는 사람.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당신은 나에게 아련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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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상
    • 2018.11.01 19:57 신고
    아버지에 대한 생각에 눈물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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