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

Posted by 희씨
2018.11.27 17:35 EDITORIAL/문예 :: Literature



반쯤 열려있는 창문을 넘어 불어온 가을의 청명한 새벽바람이 좋아 별 이유 없이 몇 잔 커피에 기대 밤을 새울 때가 있다. 깨끗하다고 해야 할까. 고요한 가운데 옅게 흘러나오는 케이블 채널 속 유명인들의 웃음소리가 새벽의 적막 속 특유의 이질감을 주고, 비어있는 아파트 단지 거리에 이따금 들려오는, 취객의 공허한 노랫소리라든지 하는 것들의 메아리들이 세상이 조금 더 커진 것 같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혼자뿐인 적적한 집안의 그것과 가족이 곤히 자고 있어 되도록 소리 없이 움직일 때의 그것과는 미묘한 차이가 있고, 나 또한 사람인지라 아무래도 후자 쪽을 선호해 이따금 들려오는 잠꼬대 같은 것에 혼자 웃다가는 일종의 안도감 또한 느끼고는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시간의 감각을 지배하는 것은 하루치 휴식의 부재로부터 오는 나른한 피로감이다. 손끝에서부터 전해져오는 둔탁해진 감각에는 그것만의 질감이 있고, 일말의 피곤함에 불필요한 생각이 제멋대로 머릿속이 헤집고 다니는 일이 없어 여러모로 평온한, 그런 새벽을 나는 좋아한다.

 

크지 않은 아파트 안 나름의 창고로 사용하는 베란다에는 걸터앉기에 편안한 나무의자가 하나 있다. 이런저런 핑계로 아직 끊지 못했던 담배 한 대를 물고 그곳에 걸터앉아 달을 바라보는, 크게 특별할 것 없는 습관이 있었는데, 동경이던 북경이던 밤이면 어김없이 뜨는 달이 저것이라는 생각에 아주 어릴 적부터 매료돼 달을 볼 때면 알 수 없는 향수에 사로잡히고는 했었다. 아마 그새 모두가 나이 먹는 동안 달은 세월을 느끼지 않았기에, 변화라는 것에 도통 적응하지 못하던 어리고 미숙한 나에게 어느 정도 삶에 대한 통일성을 주었었지 싶다. 손가락 마디 정도의 담뱃재가 위태롭게 담배에 붙어있어 젖은 휴지를 깔아 놓은 재떨이에 털어 넣었다. 내가 적응하던 그렇지 못하던 바쁜 개인의 일상 속에서 세상은 변화하고 진화하는 것이다. 지당한 그 사실이 그리도 상처가 되던 시절이 있었고, 그런 두려움을 함께 마주해 주었던 삶에 몇 없는, 달이라던가 오래된 친구라던가 하는 통일성은 내게는 어린 시절 누구에게나 있던 유치하지만 대단히 중요한, 그런 것이었다.

 

김성호 화가. 새벽-남산에서 본 명동

 

바람이 들던 베란다에서 나와 다시 들어온 따뜻한 거실에 왠지 나른한 기분이 들 때면 선반에서 원두가루가 든 봉투를 꺼냈다. 아무리 마신 들 커피 맛 같은 것은 잘 몰라서 인지 나는 휴양지의 허름한 호텔에서 볼 법한 작고 사용하기 쉬운 커피 머신을 좋아하는데, 아버지의 취향이 영 달라 거름종이에 데운 물을 따라 커피를 내리는 수고를 항상 고집하셨었다. 어찌 되었든 가족과 공유하는 이 공간에는 아버지가 사놓은 핸드드립 세트뿐이었고,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수동으로 커피 내리는 법을 배워야 했었다. 작은 포트에 물을 데우는 동안 계란 두 개를 꺼내 삶기 시작했다. 물이 끓는 것을 기다리는 동안 식탁에 걸터앉아 한낮 중 옛 친구와 문자로 나눴던 안부 인사를 다시 읽어보았다. 만나는 사람은 있느냐. 취업 준비는 시작하였느냐. 뻔한 인사치레의 수면 아래에는 나는 지금 잘하고 있는가에 대한 약간의 불안과, 일관된 서로의 달을 찾는 해묵은 외로움이 있다. 인간관계에서의 노력과 기대라는 것에 조금의 염증을 느낀 스물의 가운데에 있는 나와 친구의 관계를 이끄는 것은 이런 새벽녘의 두려움과 동지애이다. 곱씹음 이란 이렇듯 한 발 뒤로 물러나 보다 넓어진 시야와 같을 때가 있다.

 

여과기에 커피가루를 올려놓고는 끓던 물을 조금씩 원을 그려가며 부어주었다.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는 검은 커피에서 흙냄새 같은 고소한 향이 풍겼다. 계속해 들고 있던 포트에 오른팔이 아려올 때쯤 적당한 양의 커피가 여과기 밑의 머그컵을 채웠고, 반숙이 되었을 계란 두 개를 찬물에 식혀 종지 그릇에 담아 식탁 위에 올렸다. 다소 찬 공기에 목까지 올라오는 회색 스웨터를 입고는 식탁 앞 나무의자에 앉아 김이 올라오는 검은 커피 한 모금을 들이켰다. 체온이 내려갔을 때 마신 따뜻한 커피의 첫 모금은 노곤한 몸을 금세 달래 주었다. 한 여름의 뙤약볕 아래에서 마신 시원한 물 한잔 마냥 오랜 시간 나와는 맞지 않는 장소에 있을 때면 이따금 현재와 반대되는 무언가를 소비해야 적정한 체온을 유지할 수 있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 해가 뜬 후의 복잡한 세상이 나와 맞는 장소라고 여겨본 기억이 나는 없었던 것 같다. 춥거나, 덥거나. 바깥에서 누군가가 작별 인사를 하는 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시계는 새벽 네시를 가리키고 있다.

 

네시. 오랜만에 가지는 혼자만의 시간에 약간은 들떠 있던 마음이 가라앉고 조금은 적적해지는 시간이다. 새벽이라고 항상 고독해야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누군가와 새벽을 공유해 본 기억 또한 많지는 않지 싶다. 스쳐 지나간 연인. 맥주병 넘어 밤새 미래를 이야기하던 친구. 그 상대가 누가 되었던 지붕 아래 공유된 적막 속의 새벽은 모두가 잠 속으로 사라진 세상 속에 상대와 나 뿐 이라는 인상을 주어서인지 우리를 지키던 무언가를 내려놓고 상대방에게 기대고 싶어 하는 어린아이 같은 욕구를 숨김 없이 드러내게 되는 시간인 것 같았다.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타인과 있을 때의 어른이 아닌 홀로 있을 때의 한없이 실없고 무방비한, 본질에 가까운 모습이 되어 불완전한 서로에게 안도하고 애정을 품었었다. 빈 커피잔과 계란껍질 같은 것들을 바라보며 잠시 옛 생각에 빠져 있었다. 다시금 담배 생각이 간절해 꺼낸 하얀 담뱃갑 속은 비어 있었고, 한숨 속에 모자를 걸쳐 쓰고 대문을 나서 밑을 향하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오래된 철제 버튼의 빨간 불빛이 외롭게 빛나며 올라오는 승강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걸어서 십분 정도 거리의, 대로변을 마주한 한 세븐일레븐의 유리 문을 젖히며 계산대로 향했다. 여느 날처럼 편의점을 지키고 있던 아르바이트생이 보이지 않아 주위를 둘러보다 가게 뒤편 창고에서 나오는 주인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쳐 고개를 조금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중학생 시절부터 안부 인사를 주고받던 인연 있는 사이였고, 담배 한 갑 달라던 내 말에 총각도 이제 끊어야 하지 않겠냐는 아주머니의 핀잔이 이어지기에 끊어야죠, 하며 기분 좋게 웃었었지 싶다. 담배 한 대를 꺼내 필 요량으로 가게를 나섰을 때 들이쉰 새벽 공기가 깨끗하고 좋아 하얀 말보로 갑을 도로 주머니에 넣었고, 대로변을 따라 약간 우회해 집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고는 왔던 길의 반대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눈을 감아도 보이지 않을까 싶은, 각자 나름의 추억들이 배어있던 콘크리트 건물들이 마치 내 것인 양 비어있는 거리에 옹기종기 서있었다. 하늘이 서서히 밝아지며 아침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새벽의 수없는 색 중에서도 나는 이 어두운 하늘색의 색채를 가장 좋아했다. 크게 숨을 들이쉬면 차갑게 식은 공기가 가슴을 가득 채우던, 어딘가로 떠나던 날 일찌감치 집을 나설 때면 나를 맞이하던 해가 뜨기 직전의 하늘. 그렇게 점차 기지개 펴는 도시를 알리는 것은 멀찌감치 들리는 쓰레기차의 후진 경고음 이라던가 횟집에 생선이 든 스티로폼 박스를 내리는 파란색 봉고트럭 같은 것 들이었고, 아직은 거리에 인적이 드물어 조그마한 짐승들이 부지런히 먹을 것을 찾아 주위를 배회하고는 했었다. 그렇게 세상은 다시금 더 복잡하고, 은은한 그늘이 사라진 여실한 것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여실한 것.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명함 짙은 일상 속 현실을 가끔은 두려워할 때가 있었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자꾸만 뒤처져가던 나를 원망하던 때가 있었고, 떠나는 이들에게 마음을 거두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던 때가 있었다. 아이 같은 미숙함을 드러내는 것이 창피해 조용히 자리를 피한 적, 나에 대한 타인의 부정이 너무도 겁이 나 무언가를 마음에서 지웠던 적 또한 헤아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새벽의 적막이 그토록 보드랍게 우리를 품어줄 수 있었던 이유는, 그토록 차갑고 덥기만 했던 세상 또한 인적 드문 삶의 한 모퉁이에서 지긋이 우리를 바라볼 수 있음을 깨닫게 해주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홀로 마주한, 아무 말이 없던 그것은 지붕 아래 둘뿐이던 새벽의 어떤 장소에서 일시적이지만 소망 비슷한 것을 품게 했었지 싶다. 연인이나, 친구처럼. 밤새 내가 기다렸던 것은 긴 어둠이 끝난 후 찾아오는 여명이었다. 동쪽에서 서서히 오르는 해를 보며 아파트 앞 주차장에서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였다. 조금 전까지 내가 있던 15층 집 거실에 어느새 불이 켜져 있었다. 항상 잠을 설치시던 어머니가 일어나 아침을 만들고 있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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