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 그는 조선의 야누스인가?

Posted by 박희원
2011.09.08 09:06 EDITORIAL/사회 :: Current Iss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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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공주의 남자>가 연일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조선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시나리오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늘 대중하게 어필할 수 있는 비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비극성은 주인공 커플의 두 아버지인 수양대군(훗날의 세조)과 김종서로부터 비롯된다. 그리고 수양대군의 이중성은 이러한 비극성을 배가시킨다. 세조, 그는 다정한 아버지이자 잔인한 군주였던 조선의 야누스였는가?

드라마 속에서 김종서는 선왕(문종)의 유지를 받들어 어린 왕(단종)을 보필하는 충신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에 반해 수양대군의 정치적 신념은 하나부터 열까지 권력투쟁으로 얼룩져 있으며, 왕권수호라는 대의를 앞세워 자신의 야욕을 채우려는 야멸찬 대군으로 그려지고 있다.

과연, 大虎 김종서는 조선의 둘도 없는 충신이었으며 수양대군은 권력에 눈 먼 파렴치한이었을까?

권력다툼이라는 거대한 게임에서 둘은 대척점에 서있는 장기 말들이었고, 왕권과 신권이라는 각기 상충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수양대군은 누구보다 이러한 대립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왕자였다. 자신의 할아버지 태종 이방원이 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켰을 때부터 왕권과 신권의 대립은 잔인한 도륙으로 항상 그 끝을 맺어왔기 때문이었다. 이 제로섬 게임에 대한 수양의 공포는, 적자가 아닌 왕자인 그의 위치를 고려해 봤을 때, 생사여부와 직결된 어마어마한 것이었으리라. 수양의 김종서에 대한 반감과 경계는 그의 공포감에서부터 이해되어야 할 것인데, 김종서에게는 수양과는 달리 선왕의 유지를 받들어 행한다는 정통성과 정당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수양의 공포가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정통성과 정당성을 교묘히 가로챈 신하(김종서)의 제거 이후 멈춰졌어야 한다. 수양은 끝내 칼을 내려놓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당당해질 수 없었다. 그가 적법하게 왕위를 계승한 단종을 몰아낸 순간, 그는 인간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이해 받을 수 없는 음험한 군주가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한편, 인륜을 저버린 숙부였을 지라도 세조는 제법 훌륭한 정책을 폈던 임금이었다. 6조직계제를 통해 왕권을 강화하였고, 중농정책(둔전 증설)을 펴서 백성들을 배불리 하였으며, 상평창을 개창한, 조선의 국가체제를 완성시켜간 임금이었던 것이다. 혹자는 왕으로써 수양의 업적들을 고려하여 그에게 정당성을 부여해주었고, 그리하여 정통성 대신 정당성을 획득한 세조는 일부 역사가들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조선의 국가체제는 과연 세조와 김종서의 운명의 대결로부터 비롯되어야만 했던 것일까? 조선 초 왕과 신하의 위계구조를 감안해보면 제2, 제3의 계유정난은 필연적으로 일어났을 것이라고 세조를 옹호하는 것이 합당한 것일까? 필자는 이러한 관점에 수긍할 수 없다. 계유정난, 즉 수양이 일으킨 亂은 성리학의 나라인 조선의 관점에서 보면 용서받을 수 없는 쿠테타에 불과하다. 만약 조선이 춘추전국시대의 한 국가였다면 세조는 조선의 마키아벨리였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의를 최우선시 하는 조선에서 수양은 조카와 형제, 수많은 공신들을 무참히 살육한 냉혈한에 더 가깝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를 인륜을 저버린 숙부가 아니라 냉혹한 카리스마를 지닌 군주이며, 시대적 상황이라는 미명 하에 그의 패륜을 어느 정도 정당화 해주기까지 하는 걸까?

흔히들 정치는 포용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성군은 관용을 베풀 줄 아는 도덕군자여야 하지, 세조처럼 권력상실의 공포에 시달리는 편집증적 환자여서는 안 된다. 그러나 현실에서 정치적 포용은 서로의 생존이 보장되는 정상적인 상황 하에서만 가능하다. 정치에서 정상적인 상황이란 정통성을 가진 자가 집권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문제는 이러한 정통성 없이는 정당성을 획득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세조는 기존의 헌정질서를 전복시킴으로써 정통성을 얻을 수 없었고, 그의 대안은 새로운 헌정질서를 통한 왕권강화였다. 그러나 정통성과 정당성 없는 왕권강화는 이루어질 수 없는 미몽이자 국가발전을 위시한 세조의 개인적인 권력욕에 지나지 않는다. 군주는 정치가이다. 권력만을 쫓는 자는 모리배이지, 정치가가 아니다.

군사독재 시절 헌정질서의 파괴로부터 비롯된 정통성의 부재를 오늘날 우리는 대한민국 정치사의 가장 큰 오점이라 여기고 있다. (헌정질서파괴는 배타적 특권층 형성으로 귀결되었다는 점에서 세조와 군사독재자는 매우 닮은 듯 보인다.) 그렇다면 세조의 헌정질서파괴 역시 군사독재보다 하등 나을 것 없는 조선역사의 오점이지 않을까? 실제로 훈구파 라고 불렸던 기득권층은 자연히 부패해졌고, 이러한 기득권층의 부패야말로 조선을 병들게 했던 사화와 붕당의 근본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일반적인 정치에 대한 정의, 누가 무엇을 언제 어떻게 가지느냐, 에 따르면 세조의 계유정난은 그의 재위기간(1455~68)동안 일어난 무력을 통한 권력다툼으로 종결된다. 정통성의 부재는 세조를 편집증적인 환자로 만들었고, 그가 정통성을 획득하고자 했던 모든 시도들은 무위로 돌아갔으며, 왕권을 강화시키겠다는 그의 정치적 정당성 역시 유약한 예종이 즉위하면서 산산조각 나버렸다. 그런데 왜 우리는 아직도 이 반란의 수괴를 뛰어난 국가 지도자로 바라보곤 하는가?

겨레의 작가 김동인의 소설 <대수양>을 한 번 보자. 소설에서 단종은 나약하고 무능한 왕, 즉 구한말 조선인들을 상징하고 수양은 이들을 구제할 수 있는 메시아로 그려지고 있다. 그렇다. 우리는 수양에게서 난세를 타개할 강력한 리더를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평가를 더 이상 허용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는 너무도 쉽게 세조의 정통성의 부재를 눈감아 주고 있다. 이 이야기를 민주주의 시대로 옮겨와 보자. 민주주의에서 정통성은 국민들로부터 비롯된다.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 선출된 자가 집권하여 국가를 운영할 때에 비로소 민주주의적 정통성과 정당성 모두 만족시킬 수 있다. 선거의 사대원칙을 무시한 선거나 군사 쿠테타로 집권한 정부는 정통성의 부재를 가시적인 사회복지의 개선이나 경제성장으로 얼버무려 스스로에게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이 얼마나 세조와 흡사한 모습인가.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면서, 비록 소수라 할 지라도, 누군가의 행복과 삶을 짓밟는다면 그 기틀은 리더가 바뀌는 순간 곧바로 무너질 것이다. 리더는 만인을 이끌어야 하며 그 과정에서 단 한 사람이라도 고의적으로 도태시켜서는 안될 일이다. 리더의 제일목표는 국가 혹은 사회발전이어야 하며, (자신의 권력을 위협할 지라도) 국가에 헌신할 수 있는 자들이라면 포섭하여 함께 발전을 도모함이 마땅하다. 이것이 리더가 행해야 할 정치인 것이다.

그러나 세조는 자신의 반대파라면 여과 없이 모두 숙청해버렸다. 세조의 정치, 즉 공포정치에는 역사가 증명하듯 한계가 있다. 리더가 공포정치를 행함에 따라 그는 점점 더한 공포감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 그 한계이다. 이러한 공포감은 어느 한계치에 도달하게 되면 혁명의 씨앗을 잉태하기 마련이다. 결국 리더는 사회안정이라는 그 자신의 정치적 목표에서 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점에서 필자는 세조를 오늘날 우리가 추구해야 할 참된 리더도, 조선이 원했던 군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형수의 무덤을 파헤쳐 부관참시까지 저지른 세조의 모습은 정신병을 앓고 있는 환자를 연상케 한다. 정녕 우리는 그를 조선의 야누스라 부르며 떳떳해질 수 있는가? 세조가 강요한 희생, 수많은 살인과 협잡, 은 발전을 위한 필연적인 것이었다, 라고 천명하는 순간 우리는 일제시대와 군사독재 시절 일구어진 피 비린내 나는 경제적 성장을 국가발전이라 여기게 될 것이다. 누군가의 친구와 가족의 목숨을 볼모로 한 경제성장은 국가발전이 아니지 않는가. 대한민국이 고도로 다원화되고 절차적인 민주주의의 원칙을 진정으로 고수하는 사회라면, 이제는 그 역사관을 바꾸어 새로운 리더상을 성립해야 할 때이다.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은 너무도 오랫동안 정의를 갈망해왔다. 정의로운 리더를 고대해왔다. 지금 대한민국이 필요로 하는 것은 야누스가 아니라, 정당성과 정통성이라는 천칭을 가진 유스티치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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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글 잘 읽었습니다. 사실 제가 역사에 흥미가 없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재밌게 읽었어요!
  2. 세조의 업적을 찬양하는 글을 보면... 학살자로 대통령이 된 그 누군가를 옹호하는 것 같아
    가끔 기분이 참 좋지 않습니다..
    역사에 감정이입을 해서는 안되겠지만...
    한 사람의 공을 평가하자면 그의 정체성도 동등한 무게로 평가해줘야하는게 아닐까 싶어요
    양반 특권층을 만든 수양대군을 옹호하는 역사가 슬픈 현대사를 만든 건 아닐지
    여러 의미가 있는 역사 속 사건이에요..
    • Yull addioson Lee
    • 2011.09.08 22:12 신고
    근무 중 몰래몰래 다 읽어내렸습니다. 한국사극에서 문-단-세로 이어지는 조선초기 정正사는 우려내고 또 우려내진만큼 빈번히 드라마화되었었는데, 이번만큼 노골적으로 수양대군의 권력욕을 표현한 사극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나뉘어진 선악의 대척점에서 김종서가 선을 대표하는 것으로 그려진 건 의문을 표할만 하나 수양대군만큼은 역대사극들 중 가장 객관적으로 잘 그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저자 박희원씨가 이 글에서 주장하시는 바와 같이, 세조에 대한 평가를 내리고 있어 읽는내내 많은 공감을 했습니다.
  3. 세조와 박정희 대통령 사이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는 것 같기도 하네요. 하지만 조선조 초기 태정태세문단세로 따진다면 세조의 시대적 입장이 세조를 우리가 알고 있는 세조로 만들 수 있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우선 건국 초기는 왕권이 약한 상태였고, 신권은 조선왕조 500년 동안 약한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세조가 권력상실의 공포에 시달리는 편집증적인 환자라는 점에서는 저는 동의할 수 없는게, 우선 태조 이성계부터가 새로운 왕조를 만들었고, 공정왕이었던 정조도 장남이 아닙니다. 태종도 물론 아니고 세종도 아닙니다. 직계 체제로 이어진 것은 그나마 문종과 단종 대였는데, 문종은 세종 말기부터 이미 왕권을 대행하고 있었고 단종은 너무 어렸기 때문에 저는 계유정난 자체는 필연적인 사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김종서나 황보인이 아무리 단종파라고 할지라도, 그 후에가면 퇴색될 수밖에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그 다음 세대에서는 필연적으로 김종서나 황보인 등 세종파 신하들의 신권이 강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이고, 이는 역사에 딱히 가정을 붙이지 않더라도 고종 시대의 민씨가문이나 그 전의 김조순부터 시작된 안동 김씨, 그리고 풍양 조씨 가문의 행태들만 봐도 알 수 있죠.

    또한 세조 자체도 왕으로서만 본다면 대단한 사람이었지만, 바로 전 세대의 태종이나 세종의 업적들에 비해서는 경색되어지는 감이 있죠. 이건 아마 세조와 박정희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세조를 오늘날 우리가 추구해야할 참된 리더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당시 조선에서 필요로했던 철권 통치의 군주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시대적인 문제일듯 하네요.

    하지만 세조의 정통성 확보를 위한 철권통치에 대한 필연성을 식민지근대화론과 연결지어서 생각하는 것에는 좀 무리가 있습니다. 또한 현대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좋지 않은 점이라면 신군부와 연결지은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덕분에 정말 많은 공부를 했습니다.
    • 행인
    • 2011.09.10 02:52 신고
    글 잘 읽었습니다. 평소에 공주의 남자를 재밌게 시청하고 있던터라 더욱 와닿는 글이네요.

    세조가 훌륭한 정책을 폈던것은 사실이나 당시 태종-세종-문종으로 이어지는 막강한 정치적 인프라가 구축되어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연산군급으로 망나니만 아니면 망치기도 힘든 시대였습니다. 세조를 보좌했던 신하들은 전부 세종이 양성했던 당대 최고의 유학자들입니다. 그가 벌였던 사업들 대부분도 선대왕들로 부터 이어지던 것들을 물려받아 진행했던 것이구요. 단종은 비록 어렸으나 세종의 칭찬이 자자했을만큼 영리했습니다. 정치적 실세였던 황보인, 김종서 뿐만이 아니라 충신 불사이군이라는 명목아래 거열형을 당하면서까지 충절을 지켰던 사육신, 벼슬을 버리고 평생을 재야에서 숨어지낸 생육신과 같은 신하들의 보필을 받으며 성장했더라면 세조보다 더한 태평성대를 구가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왕권강화라는 미명아래 세조의 반란이 정당화되려면 당대에 왕권의 존립자체를 좌지우지하는 실질적인 위협이 구체화되어 나타나야 합니다. 결국 세조의 반란은 권력욕과 생존욕이 복합적으로 결합되서 일어난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후대에 일어난 인조반정과 중종반정에 의해 폐위된 연산군과 광해군은 그래도 천수는 누리고 죽었습니다. 어린 조카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무고한 생명들을 죽이면서까지 등극한 세조는 어떠한 방식으로도 그 정통성을 인정받을 수 없을것입니다.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이콘
    • 2012.08.29 21:45 신고
    정말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다시한번 이광수의 "단종애사"와 김동인의 "대수양"을 읽어봐야겠네요 ㅎㅎㅎ
    그리고 스프링데일님한테 궁금한게요 ㅜ 어떤 공통점인가요 박정희와 세조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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