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대 포장된 우상 - 백범 김구

Posted by OSKi
2012.06.24 23:30 EDITORIAL/사회 :: Current Issues

대한민국의 국부는 누구일까? 국부라는 칭호는 일반적으로 전 국민적인 존경을 받으며 국가의 형성에 노력했거나 그에 상응하는 업적을 이룬 인물을 칭한다. 미국의 예로는 조지 워싱턴, 토마스 제퍼슨, 벤자민 프랭클린, 제임스 매디슨, 알렉산더 해밀턴 등등을 위시한 ‘건국의 아버지들’이 국부라는 칭호를 얻고 있다. 중국의 경우에는 중화민국을 세운 사람은 장개석이며,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운 사람은 모택동이지만, 국민당과 공산당 할 것 없이 존경받는 손문이 국부로 여겨진다. 터키의 경우에는 터키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자 근대화와 세속화를 실시한 케말 아타튀르크가 국부로써 존경을 받는다. 남아프리카의 경우에는 통합, 화해, 평등, 개혁 등등을 상징하는 최초의 흑인 대통령 넬슨 만델라가 국부로써 널리 존경받고 있다.위의 예들을 살펴 보았을 때 대한민국에서 ‘국부’ 칭호로 불리우는 사람을 꼽자면 많은 사람들은 김구를 꼽을 것이다. 일부 보수층은 이승만을 국부로 뽑기도 하겠지만, 일반적으로 보수와 진보를 떠나서 존경을 받으며, 널리 알려진 행적과 사상 등으로 인해 가장 많은 사람들의 머리 속에 국부로 인식되어 있는 것은 명실상부히 백범 김구이다. 얼마 전, 최고액권인 10만원권의 도안에 넣을 초상화의 주인공으로 선택받기도 했다는 사실이 그것을 드러내준다.

백범 김구

하지만 그가 과연 국부로써 존경을 받을 만한 인물인가에 대해서도 논쟁이 없는 것만은 아니다. 최근에는 뉴라이트를 위시한 극우파 세력에게 ‘빨갱이’ 소리도 듣고 있으며 테러리스트였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하지만 김구에 대한 이러한 비판에 관해 대다수의 국민들은 불쾌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으며 ‘김구는 좌/우를 가리지 않는 진정한 민족 지도자였으며 그가 테러리스트라는 주장은 일본 제국주의의 시선에서 바라본 결과’ 라는 여론이 굳게 형성되어 있다. 하지만 필자는 이러한 견해에 상당한 거부감을 느낀다. 비록 뉴라이트 세력의 주장은 진지하게 들을 가치가 없는 궤변이라고 생각하지만 김구라는 인물의 과도한 신격화는 엄연히 경계해야 할 일이며, 그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보는 견해도 허용이 되는 본질적인 논쟁이 더 필요하다고 믿는다.

왜 국민들은 유난히 김구를 비판하는 것에 대하여 깊숙히 내재된 거부반응을 보일까? ‘나의 소원’ 에 나타난 좌우를 가리지 않는 민족주의에 감흥을 받은 것일까? 그의 사진에 나타난 자상하고 유순한 미소와 두꺼운 안경을 보며 ‘이렇게 자상해 보이는 사람이 테러리스트라니!’ 라는 생각을 하는 것일까? 확실히 그의 사진을 보면 친절한 학자풍의 인물로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그가 폭력행위들을 주도한 폭력무장단체의 수괴였다는 것은 부인할 수가 없는 사실이다. 그는 일제에 무력으로 맞서 싸웠으며, 해방 후의 혼란된 정국에서도 무장 단체를 이끌었다. 그는 테러리스트인가? 테러리즘의 사전적 정의는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폭력을 사용하는 행위’ 이다. 그는 ‘대한 독립’ 이라는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장으로써 무장독립단체를 이끌었고 해방후에는 ‘임시정부 법통성’이라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백의사를 조직하여 활동하였으므로 사전적인 의미의 테러리스트가 맞다. ‘김구가 테러리스트였는가’ 라는 주제로 국민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논쟁은 사실 그가 테러리스트였나 하는 토론이라기보다는 그의 테러리즘의 당위성을 따지는 토론이라고 봐야 한다.

위에서 정의된 테러리즘의 의미 자체에는 전혀 아무런 가치판단의 여지가 없다. 물론 최근에는 ‘테러리즘’ 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터번을 두르고 턱수염을 길게 기른 남자들이 AK-47소총을 들고 민간인을 납치하여 처형하거나 민간시설에 자살폭격을 가하는 장면을 흔히 생각하기에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인류 보편의 가치를 위해 제대로 쓴 폭력의 경우에는 많은 경우 정당화되기도 하며 ‘옳은 테러’로써 지지받아 마땅한 일이다.

일제에 대한 무장 저항 운동은 위에서 말한 지지받아 마땅한 ‘좋은’ 테러리즘의 예이다. 일제의 불법 합병, 수탈, 억압, 인권침해 등등에 대해 저항한 것은 인류 보편의 가치인 ‘자유’를 위해 싸운 훌륭한 행위이다. 물론 무고한 일본 민간인들을 경우에 따라 잔인하게 죽인 행위는 비판을 피할 여지가 없지만 ‘일제’라는 세력의 압제에 적극적으로 무장투쟁을 한 것은 존경받아야 마땅할 일이다. 하지만 해방 후 김구의 행각에는 문제점이 많다. 백범일지 뒷편의 ‘나의 소원’ 혹은 ‘내가 원하는 우리 나라’를 읽은 사람들은 흔히 해방후의 김구는 마치 간디와 같이 평화롭게 민족통일국가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그들의 착각은 그저 환상일 뿐이다. 김구는 사실은 맹목적인 극우 반공 이념에 깊이 매몰되어 있는 사람이었으며, 좌파들, 좌파들과 협력하는 우파들, 자신의 노선과 맞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서슬퍼런 폭력을 가했다. 이 행위들은 나쁜 테러리즘의 예이다.

몽양 여운형

김구의 행각을 이해하려면 해방 당시 남한 내의 정치 이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가장 흔히 벌어지는 좌우논쟁 외에도 신탁통치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 통일정부를 수립하느냐 단독정부를 수립하느냐를 놓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던 때였다. 이승만을 위시한 대한독립촉성국민회와 김성수의 한국민주당은 우파, 반탁론자로써 남한만의 단독 정부를 꾸리기를 원했다. 김구가 이끌던 대한민국임시정부 계열의 한국독립당은 우파 반탁론자로써 남북통일정부를 꾸리기 원했다. 박헌영을 비롯한 조선공산당과 남조선로동당 세력은 좌파 찬탁론자였으며 역시 남북통일정부를 꾸리기 원했다. 이들 외에 여운형, 안재홍, 김규식 등등의 중도파세력이 있었으며 이들은 통일정부를 지향하되 신탁통치에 대해서는 통일정부 수립 후에 중지한다는 신중론을 폈다. 존 하지 사령관의 미군정은 초창기에는 한민당 세력을 적극 지지하고 한독당 계열을 어느 정도 지원해주다가 이들이 한계를 나타낸 후에는 우파 세력에게 거리감을 두기 시작하고 여운형에게 총리직을 제안하고 김규식, 안재홍 등등에게도 요직을 제안하는 등 중도파를 지원하였다고 한다.

이승만, 김구, 존 하지

김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법통론을 굳게 믿었으며 그것을 반대하는 세력들은 모두 적으로 간주하였다. 해방 직후에는 좌파 세력들을 주적으로 간주한 결과, 친일 성향의 인사들이 상당수 자리하고 있던 한민당과 연대하게 되어 친일파 청산을 회피하며 미루는 근시안적인 행각도 보였다. (대표적으로 조선일보 사장이었던 친일파 방응모를 본인의 한국독립당 재정부장에 앉힌 일을 들 수 있다.) 한민당 계열과 의견이 갈라지기 시작하자 ‘백의사’라는 정치테러단체를 지휘하여 자신의 노선과 반대하는 인물들을 제거해 나가기 시작했다. 중도좌파 여운형, 한민당 계열의 보수우파들이었던 송진우와 장덕수 등등이 백의사 관련 인사들에 의해 암살당했다.

결국 이승만의 심복 장덕수를 암살하고 난 후에는 이승만과의 사이도 완전히 틀어지고 권력에서 밀려나게 되자 중도파와 좌파와 힘을 합쳐 반탁 통일 운동을 하고 친일파 청산을 외치기 시작한다. 이 모습이 바로 국민들에게 익숙한, ‘삼팔선을 베고 죽겠다’는 말을 남긴 김구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왜 그의 단점들은 묻혀버린 채 국민들 사이에 철저히 신격화 되어 있는 것일까? 일단 분단 당시 그의 행동이 국민들 사이에 깊이 각인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삼팔선을 베고 죽겠다는 말을 남기고 마지막 순간까지 김일성과 이승만 사이를 오가며 협상을 하던 장면은 국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으며 분단에 대한 아쉬움을 김구에 대한 그리움과 경외심으로 표하는 현상이 벌어졌을 것이다. 또한 그의 수려한 필력도 그의 위상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백범일지의 부록으로 작성되어 있는 ‘나의 소원’, ‘정치 이념’, ‘내가 원하는 우리 나라’는 민족주의와 독립운동, 좌우통합이라는 측면에서 흠잡을 면이 없는 문서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준 그의 글들이 결론적으로 그의 평가를 높인 셈이다. 또한 5/16 군사정변으로 권좌에 오른 박정희가 자신을 이승만과 구분짓기 위하여 이승만을 격하하는 과정 중 그의 대안으로써 적극적으로 그의 위상을 드높였다는 이론도 있다.

38선을 넘는 김구의 모습

결론적으로 독립운동을 지휘한 공로는 인정받아야 마땅한 업적이지만 김구는 무분별하고 막연한 극우 반공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있었던 사람이다. 자신의 이데올로기와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근시안적인 판단을 내리기도 했다. 그는 ‘내가 원하는 우리 나라’에서 ‘우리의 적이 우리를 누르고 있을 때에는 미워하고 분해하는 살벌, 투쟁의 정신을 길렀었거니와, 적은 이미 물러갔으니 우리는 증오의 투쟁을 버리고 화합의 건설을 일삼을 때다. 집안이 불화하면 망하고 나라 안이 갈려서 싸우면 망한다. 동포 간의 증오와 투쟁은 망조다.’ 라는 말을 남겼지만 결국 증오와 투쟁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섰으며 단순히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수많은 이들에게 폭력행위를 가하고 암살하였다. 이것은 결코 정당화 될 수 없는 폭력이며 테러리즘이다.

김구 본인이 쓴 ‘정치 이념’ 에서는 ‘나의 정치 이념은 한마디로 표시하면 자유다. 우리가 세우는 나라는 자유의 나라라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자유주의자를 자처하는 필자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훌륭한 말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의견에 타인이 반대할 자유를 인정하지 않고 타인의 생명을 앗아가는 악행들을 저지른 결과, 자신의 이상에 못미치는 사람으로 남고 말았다. 결국 이승만과 사이가 틀어지고 나서야 진정 좌우를 아우르는 민족주의를 주창하기 시작하였지만, 이 때는 너무 늦어서 결국 남북이 단독정부를 수립하기 이르렀다. 조금만 더 일찍 각성하였다면 국가의 운명이 바뀌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백범 김구 주변을 감싼 거품이 걷히고 그에 관한 객관적인 평가를 마음 놓고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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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꺼져대만화교
    • 2015.02.17 11:16 신고
    이 새끼 대만화교 출신 한국에 귀하한 놈인데 상대 ㄴㄴ 왜 그렇게 좋은 일본 안 가고 한국에 붙어사니 기생충같은 새끼야
    • 버클리역사학도
    • 2015.02.23 21:50 신고
    잘 읽었습니다. 5.18 민주화운동처럼 수차례 검증된 역사적 사례들과는 달리 백범선생에 대해서는 아직 연구의 공간이 남아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이 달려있는, 욕부터 하는 리플들에 마음 많이 상하셨을거라 생각듭니다. 이 분들은 백범선생이 성웅 이순신처럼 털어 먼지 한올 나오지 않을 사람인것이 객관적인 사실이라고 생각하고 계신듯합니다. 하지만, 분명 역사에는 '객관적' 판단이라는것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사설에 실리는 사실관계들의 선택부터가 주관적인 판단입니다. 만약 그 사실관계들이 왜곡되었거나, 그에 반증되는 다른 사실관계들을 무시한채 그 주장만을 강조한다면 분명 잘못된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제가 판단하기에는 이 글은 충분히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본인의 주장을 확실히 근거로 뒷받침했다 보여집니다. 다만, 다음에 이러한 글을 쓸때는 조금 더 공간의 제약을 벗어나 다른 학자들 그리고 원문기록들(primary resource)들을 인용해 쓰신다면 이런 감정적인 비판들을 덜 받지 않을까 생각듭니다. 또한, 마찬가지로 좀 더 공간을 들여 반박하는 측의 주장들에 대해 재반박을 하면 더 모양새가 다듬어지지 않을까 생각듭니다. 주제넘게 제 소견을 말씀드린점 양해부탁드립니다. 그럼 건승하십시오.
  2. 글의 본지를 모르고 인신공격하는 사람들은 다 좌편향의로 찌들었나요?
    정말 한심하게 짝이없네요.
    뉴라이트니 알바니 생각하는 수준이 그사람들의 인격이 얼마나 작은가 잘 비춰주는 것 같네요.
    • 지나가다가
    • 2015.03.28 07:42 신고
    처음에 글을 읽으면서 '신격화'라는 단어가 조금 과장됐다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는데 다 읽고나서 댓글들의 과격한 반응을 보니 어느정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나름 중도 우파라고 생각해서, 좌측의 생각도 맞는 것은 받아 들이고 우측의 생각도 틀린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좌우가 너무 선명하게 갈라져 있고 또 서로를 눈꼽만큼도 인정하지 못하는 댓글들을 보며 마음이 아픕니다. 사실 김구 선생님을 '테러리스트'라고 정의하는 것에 논리적인 헛점은 없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는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지요. 저 또한 어쩔수 없는 한국사람이니 김구 선생님에 대해서는 좋은 부분만 바라보고 싶습니다. 결국은 우리나라가 정신적으로도 발전하려면 이렇게 서로에게 날을 세우는 것이 사라져야 할텐데... 언제쯤 그런 날이 올까요?
  3. 잘 읽었습니다. 5.18 민주화운동처럼 수차례 검증된 역사적 사례들과는 달리 백범선생에 대해서는 아직 연구의 공간이 남아있다고 생각합니다.

    518이 더 연구를 해야지. 김구 선생을 연구한다? 난 다른건 몰라도 야당 지지자들이 떠들어대는 김구 연구가 젤 좃이던데? 김완섭의 518행적은 문제 없다며? 왜 숨기냐?
    • gray
    • 2015.07.24 08:04 신고
    통일을 바라는 민족의 염원에 응답하는 정치인들의 마지막 불꽃은 단언컨대 '좌우합작운동'이고, 민족에게 제대로 된 통일조국을 선물해 주려는 정치인은 여운형과 김규식 뿐이었다. 독립운동가들 운운하지 말라. 임시정부 중심의 역사관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의열단원이 자신의 공적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지 털끝만큼이라도 아는가? 임시정부 요인만 독립운동가인가? 자칭 진보라는 인간들이 임정 중심의 역사관에 동조하고 자서전에 불과하는 백범일지에 동조하고 김구를 신격화하는데 동조하니 참으로 우스울 뿐이다. 김구는 철저한 반공산주의 우파 정치인 중에서 리더가 될 만한 사람. 그 정도이다.
    • ㄷㅅㄹ
    • 2015.08.12 07:34 신고
    해방은 미국이 쨉스를 박살 냄으로서 이루어진거지 김구선생이 해낸게 아닌데 물에서 건져준사람 드립치는 인간은 뭐여 ㅋㅋㅋ 비교적 객관성있게 잘 정리한 글이고만, 인간과 그사회의 속성을 이해한다면 위인전에나 나올법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걸 알텐데 ㅉㅉ
    • 오며가며
    • 2015.08.27 20:32 신고
    잘 봤습니다. 요즘 시대에 꺼내기 힘든 담론인데 용기 있으시네요. 비단 김구뿐 아니라 우리나라 교과서가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고 모든 공로는 다 한민족이 했으며 모든 잘못은 외세책임이라는종교 비슷한 서술을 합니다. 6.25도 우리 혼자가 아니라 자유진영 수십개 나라가 도와줬는데 얼마전 박통 연설에서는 독립운동의 결과로 8.15 광복을 맞았다는 소리를 하고...뭔가 수출 무역대국 6위 개방형 국가의 품격에 안맞는 폐쇄적 사고가 횡행하는 것 같아요.
    • 노답이네
    • 2015.11.02 22:19 신고
    김구선생이 왜 한인애국단을 조직했는지 그들의 행위에 대한 결과가 우리 독립운동사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에 대한 배경 설명 하나 없이 그냥 사전적 의미의 테러라고 하면 되는거냐? 그냥 단순히 일본에 대한 분노로 도시락 던져대고 그런거로만 보이냐? 국내에서 활동 못해 타국에서 어렵게 독립에 대한 실천을 보인 분한테 말 '버릇'이 없다고 본다.
    책상이 앉아서 펜대나 굴릴줄 알지..ㅉㅉ
  4. 아니, 이 글을 이루고 있는 사실에는 눈감고 일베충이니 뭐니 하는 당신들, 생각 좀 하고 삽시다. 김구를 부정하면 사실관계가 어떻든 욕부터 하고 봅니까? 김구 찬양이 절대 진리인가보죠?
    • ㅇㅇㅇㅇ
    • 2015.11.03 04:25 신고
    막대한 양의 정보가 수 없이 많은 통로로 쏟아져나오는 이 시대에 모든 글은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성을 띄게 됩니다. 사실은 찾기 힘들며 각자가 주장하는 진실이 만연할 뿐이죠. 그래서 글쓴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김구의 해방 후 행적들 특히 백의사와 그로 인해 세상을 뜬 중도파 인물들에 대한 1차 자료나 정보의 출처를 여쭤보고 싶습니다.
    • 거위
    • 2016.01.05 06:37 신고
    사람의 편견이란 정말 무섭다는 것을 밑의 댓글들을 보고 알았다. 자신이 모르던 정보면 절대 인정하려 하지않는것이 인간의 본성인듯하다.
    김구의 독립운동에 대해 높이 평가하는것은 좋으나 해방 후의 백의사 활동등의 사회주의자에 대한 무자비한 테러는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역사를 제대로 알고싶으면 최소한 위키백과정도는 보고오자.
    팔레스타인 무장독립단체 하마스가 학교에 폭탄을 던져도 기뻐할것인가??
    • 거위
    • 2016.01.05 06:37 신고
    사람의 편견이란 정말 무섭다는 것을 밑의 댓글들을 보고 알았다. 자신이 모르던 정보면 절대 인정하려 하지않는것이 인간의 본성인듯하다.
    김구의 독립운동에 대해 높이 평가하는것은 좋으나 해방 후의 백의사 활동등의 사회주의자에 대한 무자비한 테러는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역사를 제대로 알고싶으면 최소한 위키백과정도는 보고오자.
    팔레스타인 무장독립단체 하마스가 학교에 폭탄을 던져도 기뻐할것인가??
      • 지나가던 선비
      • 2016.04.05 14:56 신고
      우리나라의 민족주의 이데올로기가 심각하다는 것을 아셨으리라 봅니다
      사실 위에 댓글에도 나왔던 것처럼 인간세상의 속성을 안다면 위인이라는 것은 철저히 정치적인 목적으로 후대에 '창작 윤색된' 존재임을 알게 되죠. 이러한 정치적인 목적이 한 인물에 대한 비판과 칭찬을 어느 한쪽만으로 하게 만듭니다. 둘 다 하는 게 쉽지 않죠. 물론 저는 김구라는 존재가 지나치게 과대평가된 사람이라고 봅니다.
    • gogogo
    • 2016.02.26 15:13 신고
    김구는 박정희 때부터 이승만의 안티테제적 존재로 띄워진 것이다. 그의 아들 김신이 박정희 정권 때 요직을 맡았던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사실 무장독립 운동이나 테러리즘 투쟁이 우리나라 독립에 기여했다는 것은 정신승리이고, 우리를 독립시켜 준 것은 싸울 상대를 잘못 고른 일본제국의 오판과 미국의 군사력이었다.
    • 지나가던 선비
    • 2016.04.05 14:54 신고
    백범일지는 오류와 자기미화가 심각해서 사료로 쓸 수 없는데 지금 김구에 대한 세간의 인식은 이 백범일지가 한몫하고 있다.
    참고로 이 백범일지를 윤문-글 다듬고 퇴고하는 것-한 사람은 친일파의 수괴라고 불리는 이광수이다.
    • ㅇㅇ
    • 2017.01.03 11:14 신고
    나라에 독립 얘기하는데 사전적 의미는 무슨이라는 새끼는 아마 박정희 졸라 싫어하겠지?
    근데 그런 논리라면 나라 살리려고 했다던 박정희는 왜 까냐 졸라 모순 아니냐
    민족주의자 새끼들아 너네가 뒤져야 나라가 산다.
    김구가 개인주의 좌파를 다 족쳐놔서 이 나라엔 민족주의 파시즘만 남았지 ㅉㅉ
    • 오픈
    • 2017.01.06 06:31 신고
    김구 선생이 위대한 독립영웅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나, 김구 선생도 완전무결의 성인이 아닌 하나의 인간이었으니 과오가 있으면 비판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백색테러에 대해선 의문이 많은 게 사실입니다. 백의사같은 경우에는 이승만보다는 김구 선생에 조금 더 가깝긴 했죠. 그러나 백의사를 주도적으로 이끌었거나 정치인에 대한 암살을 사주했다는 것은 굉장히 의문스럽습니다. 백의사같은 경우에는 임정 시절 내무부장이었던 신익희가 창설한 정치공작대 등에 그 기원을 두고 있었고, 해방 이후 백색테러에도 백의사는 신익희 주도로 CIC 방첩대, 정치공작대와 함께 활동을 벌였습니다. 1947년 무렵이면 김구와 신익희는 사실상 결별하게 되구요.

    당시 미군정과 김구 선생 사이의 관계가 매우 나빴던 것도 백의사의 수장이 김구 선생이었단 것에 의문을 품게 합니다. 만일 송진우, 여운형, 장덕수 암살 때 김구 선생이 관여를 했다면 미 군정 측에서 가만 냅뒀을 리가 없었을 겁니다. 실제로 미군정 측에서도 백의사가 관련된 걸로 추정된 암살 사건에서 김구가 관여했다는 실증적 증거가 없다고 판단을 했고요. 소련에서 만든 기밀 문서에서 백의사가 김구의 휘하에 있다는 내용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 문서같은 경우에는 월북한 공산주의자와 좌익 단체의 증언을 바탕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색깔론이 덧붙여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당시는 테러와 폭행이 난무했던 시기였고, "폭력을 불사해서라도 의견을 관철시키는 것이 정의"란 인식이 있었으니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 이해가 안 가는 것이 사실입니다.

    박정희가 김구를 띄웠다...라는 말도 있던데, 이건 비약이 너무 심하다고 봅니다. 임시정부 개선대회에서 김구 주석을 비롯한 임정 요인들은 전국 각지에서 수십 만 민중의 환영을 받았고, 미군청 하의 여론조사에서도 김구 주석은 여운형에 이어 높은 지지를 받고 있었습니다. 암살 이후에는 200만 명 가량이 조문에 참석했고, 서울 각지에 조기가 내걸리고 상점들이 일제히 철시했다는 신문 기사도 있었죠. 이걸로 보건대 환국 당시부터 김구 선생은 민족의 영도자 중 한 분으로 추앙받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당장 백범 김구 선생의 일대기를 다룬 최초의 영화인 <아아 백범 김구 선생>이 제작되어 상영된 것도 윤보선 정권 때인 1960년이었으니 말이죠.

    세상에 완전무결한 인물은 없습니다. 김구 선생도 완전무결하지 않으니 과오가 있으면 비판받아야 마땅합니다. 다만 독립영웅으로서의 존경받을 면모는 높이 추앙하되 과오는 과오대로 비판하는 것이 역사를 바라보는 올바른 관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정신차려
    • 2017.02.03 14:58 신고
    글쓴님은 마치 자신이 아주 냉철하고 객관적인 사고를 하고 있는 줄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님의 주장이 신빙성을 얻으려면 님 주장에 대한 증거 자료가 필요 합니다. 그리고 단순 증거뿐 아니라 다각도의 검증이 필요 합니다.
    증거와 검증없는 주장은 그냥 주장일 뿐입니다.
    현재 존재하는 여러가지 정황증거들은 님의 주장에 대하여 '과연 정말 그럴까?' 하는 의문을 주는 군요.
    본인은 균형잡힌 사고를 하고 있는데 다른 대다수의 국민들은 잘못된 판단을 하고 있다는 오만한 판단은 삼가하시기 바랍니다.
    님보다 많이 배우고 똑똑한 사람 쎄고 쎘어요.
    당시 있었던 사건들의 증거자료가 명백히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것들의 이면을 확실히 안다 말 할수 없습니다.
    정신차리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백범 김구를 모릅니다.
    • 당신 생각과 다르면 증거도 없고 멍청한 사람인가 보죠?

      그럼 미군정의 기록들은 뭐고 커밍스나 로빈슨 스칼라피노의 연구는 뭐며 그런것을 인용한 국내 교수들은 멍청하거나 아무것도 몰라서 그런 자료를 내놓은 줄 아십니까?

      당신은 일본의 어떤 해군장군이 한 말부터 생각해봐야 되겠습니다.

      인간은 신이 되어서는 안된다. 신은 비판받지 않기 때문이다.
  5. 오영섭의 한국 근현대사를 수놓은 인물들 1편에는 어떤 내용이 나오는지는 아는것인지
    백범일지에 김립이 중국여자 첩으로 사서 사치를 부렸다지만 사치부린 증거는 있는지?

    한사람의 자서전만 믿는 사람들이 교수들의 연구나 군정 당시 기록은 왜 찾아보지도 않고 이 글에 흥분만 하는가 모르겠다. 한국의 민족주의가 유대인들 선민사상이나 독일 나치즘과 다른점이 뭘까?
  6. 이미 읽어보셨으리라 짐작하지만요.

    군정기 관련 문서들

    브루스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 리처드 로빈슨의 미국의 배반, 그밖에 강준만의 한국현대사산책:1940년대편 1권, 2권

    정병준교수 논문 미국 자료를 통해본 백범 김구 암살의 배경과 진상

    등을 출처로 제시하는 편이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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