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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사회 :: Current Issues

민주주의, 그 길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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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달은 필자에게 악몽 같은 나날들이었다. 그리고 필자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같은 생각을 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19년을 지내온 모국에서는 헌정 사상 초유의 정치적 스캔들이 터져 온 나라가 열병을 앓고 있고, 꿈을 가지고 넘어와 공부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나라가 두 동강이 난 채 대립하고 있다. 이런 일련의 사태를 지켜본 많은 이들은 배신감, 허탈함, 안타까움, 분노 등의 여러 가지 복합적인 감정들에 휩싸인 채 답답한 마음을 감출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사단이 터질 때까지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우리는 대통령 뒤의 한 개인이, 그것도 자격도 권리도 없는 일개 한 사람이 3년 넘게 나라를 쥐락펴락하고 있을 동안 눈치 하나 채지 못했었다. 또한, 인종차별, 성차별 등 사회적 대립을 조장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하는 대통령 후보에게 290표의 선거인단 표를 안겨주며 당선시키고 말았다. 여기서 감히 필자는 이 문제들의 근본적 원인 중 하나로 사회 전반에 만연한 정치적 무관심과 책임감 결여를 꼽으려 한다. 한국과 미국. 각기 다른 사회에서 수많은 국민의 생각과 반하는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너무도 많은 사람이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우리 사회를 너무 오래 내버려 두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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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미국은 세부적인 사회구조는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민주주의 이념을 수호하는 민주국가이다. 그리고 모두가 알다시피 민주주의의 근본은 국민이다.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서 나옴을 알고 국민을 위해 정치를 펼치고 사회를 구성해야 하는 것이 민주주의 국가가 항상 이행해야 할 가장 최소한의 의무이자 존재 이유다. 그런데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국민’들이 사회에 무관심하다면 어떨까? 우리의 주권을 맡겨놓기만 한 채 제대로 행사를 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이양한 그 힘은 모여서 어떻게 쓰이게 될까? 권력을 넘겨주기만 한 채 어떻게 써달라고 우리의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그 사람들이 눈앞의 권력에 대한 욕심을 버린 채 올바르게 행동해주기만 바라는 것은 너무 큰 욕심이다. 내가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권리를 행사하지 않으면서 남이 내 생각을 대변해주기만을 바라는 것은 텔레파시가 통하는 기적을 바라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으로서 우리가 보여온 행보를 수치상으로 확인해보자. 먼저 한국의 경우를 보자면, 2012년 대선 기준 75%의 투표율을 보였다. 얼핏 보면 높아 보이는 수치이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4명 중의 1사람꼴로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았다는 소리이다.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 같은 경우는 가장 최근 선거였던 20대 총선을 기준으로 58%의 평균 투표율을 보이며, 대선보다도 훨씬 더 낮은 수치를 보인다. 미국의 경우 역시 이번 2016 대선 투표율이 약 55%로 낮게 추산되고 있다. 이 말은 트럼프가 투표자 중 47%의 지지로 당선되었으니, 정확히 따져보면 오직 25.8%의 국민의 지지만으로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 선출이 된 것을 뜻한다.


투표는 단순히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권리를 행사한다는 의미만을 지니고 있지 않다. 그를 넘어서 국민이 넘겨준 권력이 얼마나 잘 쓰였는지 평가하고 앞으로 견제하겠다는 우리의 목소리를 정부를 향해 가장 합법적으로, 그리고 효과적으로 낼 소중한 기회이다. 그래서 필자는 투표는 설령 기권표를 찍는 한이 있더라도 꼭 행사해야만 하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국민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책임과 의무라고 여긴다. 그런데 투표일마다 수많은 국민들이 이런 책임을 저버리려만 한다면 어느 정부에서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 노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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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에서 ‘최순실 게이트’ 혹은 ‘박근혜 게이트'로 불리는 국정농단 사태에 자격도 없는 최순실이라는 인물에게 국민이 준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권한을 준 대통령의 잘못, 받은 권력을 사리사욕을 채우는 목적으로 이용한 최순실의 야망, 그리고 그 권력에 달라붙어 혜택을 보고자 했던 많은 이들의 비뚤어진 출세욕이 주요 원인이라는 사실에 필자 역시 강력하게 동의하는 바이다. 다만 이 사단에 대하여 대중의 정치적 무관심이 미친 영향도 있다고 보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대통령과 정부가 ‘국민 무서운 줄을 몰랐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지난 3년간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렇게 맘 편하게 나라 이곳저곳을 누비면서 최순실이라는 사람이 활개를 칠 수 있었던 데는 어차피 국민이 지켜보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있었다고 본다. 설령 들킨다 하더라도 시위 몇 번만 넘기면 시간이 다 해결해 줄 거라는 생각, 국민 대부분은 곧 흥미를 잃고 관심을 돌릴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이렇게 자신감 넘치게 3년 동안 잘못된 줄도 모르고 마음껏 횡포를 부릴 수 있지 않았을까? 실제로, 여태 우리나라에는 사회적 문제가 생길 때마다 적극적으로 시위나 캠페인 등의 방법으로 의견표출을 해온 시민들도 있지만 다른 한편에는 낮은 투표율과 더불어 나선다고 뭐가 달라지느냐는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수많은 국민 역시 있었기 때문에 최순실이 맘 편히 3년간 사리사욕을 채워왔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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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경우는 한국보다도 정치적 무관심과 방심이 선거 결과에 더욱 직접 영향을 미쳤다. 선거 직전까지만 해도 대다수의 언론매체나 사회 전반적으로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차기 대통령으로 선출될 것이라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11월 8일 저녁 개표가 진행되기 시작하며 빨갛게 채워진 미국의 지도가 모두의 예상이 빗나갔다는 것을 증명했다. 민주당 우세 지역으로 점쳐졌던 미시간, 위스콘신, 펜실베이니아, 그리고 플로리다 주가 선거 당일 모두 공화당에 넘어가면서 힐러리는 트럼프에게 승리를 넘겨주어야 했다. 심지어 힐러리는 약 60만 표를 더 받고도 선거에서 패배하게 되었다.


민주당의 전략실패, 선거인단 제도 자체의 근본적 모순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이 이번 선거에서 이변을 만들어내는 변수로 작용한 것도 사실이지만, 개인적으로 필자는 50%대의 매우 낮은 투표율을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미국은 일반투표 (popular vote) 수가 아닌 선거인단 (electoral college) 표 수로 대통령이 선출되기 때문에 실제 득표수는 더 높더라도 선거인단 표 수로 인하여 패배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실 득표수가 많아도 질 수 있다는 점은 아예 예상 밖의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다만 낮은 투표율이 더 직접적인 변수로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밖에 없는 지점은 많은 주에서 힐러리가 아주 근소한 차이로 선거인단을 번번이 놓쳤기 때문이다. 특히 플로리다 같은 경우는 1%의 표 차이로 힐러리는 전체 538표의 선거인단 표 중에서 29표를 눈앞에서 잃고 말았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내 주위에 힐러리를 지지하는 사람이 많다고 해서 결코 미국 전역에 그런 사람만 있을 거라고 예상하는 단순한 행동을 보여선 안 됐다. 개인의 가치관에 부합한다면 누군가에겐 분명 트럼프가 좋은 대선후보일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미국 대선에서 경합 주 (swing state)들에서 높은 투표율을 보이는 동시에 대부분의 경합 주에서 실제로 트럼프가 승리를 거두었다는 사실은, 공화당 지지자들은 방심하지 않고 선거에 참여했음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상대적으로 힐러리가 승리한 주들에서는 전 대선 대비 낮은 투표율을 보인다. 언론이 경합 주에서조차 민주당의 우세를 점쳤다고 한들, 내가 스스로 투표장에 나가 그를 입증해 내지 않으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예측이고 가설에 불과하다. 이 사실을 간과하고 승리를 예상한 채 집에서 방심하고 있던 수많은 유권자로 인하여, 힐러리는 패배의 쓴맛을 맛봤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반면 공화당 지지자들은 경합 주에서 투표수로 그들의 힘을 명확하게 드러내며 지지 후보에게 승리를 안겨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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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한국의 국정농단 사태나 미국의 대선 결과나 수많은 원인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사태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모든 국민이 적극적으로 국정과 사회에 관심을 지속해서 기울였다면 충분히 다른 결과를 우리가 지금 마주하고 있지 않았을까? 한국의 경우 국민이 보다 강력한 메시지를 정부를 향해 끊임없이 던져왔다면 이렇게 한 사람의 개인에게 철저하게 농락당하는 일은 없었을 수도 있고, 미국에서는 언론의 예측대로 그리고 민주당 지지자들의 소원대로 힐러리가 손쉽게 대선에서 승리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어찌하겠는가. 오히려 지금 눈앞에 놓인 이 사태들을 기회로 삼아 지금과는 다른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것이 현명할 수도 있다. 지금 한국과 외국에서 시위, 시국선언 혹은 그 외의 방법들을 통해 많은 대한민국 국민이 한마음으로 그들의 목소리와 힘을 정부를 향해 표출해 내고 있다. 우리가 오늘의 이 비참한 국정 사태를 절대 잊지 않고 앞으로 계속 정부를 견제하고 적극적으로 국민의 목소리를 낸다면 적어도 제2의 최순실 사태는 막아볼 수 있지 않을까? 미국에서도 민주당 지지자들이 2016 대선의 실패를 잊지 않고, 다음 대선에는 더 적극적으로 투표장에 나간다면, 70% 이상의 예상 승률을 뒤로한 채 실패를 맛보는 일은 피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민주주의 국가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는 나라를 원한다면, 앞으로 우리 모두 민주주의의 근본이 우리 국민 스스로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새기자. 그리고 우리 사회에 더욱 깊은 관심을 가지고 행동을 보이며 국민의 존재 이유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책임감 있게 증명하고 지켜나가길 바라본다.


덧붙이는 말:


11월 12일 민중 총궐기를 타국에서 바라보는 동안 필자는 희망을 보았다. 100만 명이라는 엄청난 규모에도 불구하고 큰 문제 없이 성공적으로 집회를 마감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 그 자리에 나온 국민들의 투철한 시민의식 덕분이었다. 앞으로 그 백만 명의 시민들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더라도 그날 보여주었던 훌륭한 시민의식으로 다른 이들에게 본보기가 되어준다면, 민주주의의 가치 위에 새로운 한국 사회를 충분히 세울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모두가 바라는 정의로운 사회를 우리 손으로 일구어 나갈 수 있도록 같이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보길 소망한다.








출처:

[1] http://blog.jinbo.net/pulip41/8425

[2]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ss_pg.aspx?CNTN_CD=A0002256066&PAGE_CD=&CMPT_CD=

[3]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06607
[4] http://www.dt.co.kr/contents.html?article_no=2016110902109919040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