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급할수록 천천히

Posted by 희씨
2017.03.17 17:55 EDITORIAL/사회 :: Current Issues



지난 2017년 3월 9일. 수개월 동안 대한민국을 열병에 앓게 했던 국정 농단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물어 헌법재판소가 헌정 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에게 탄핵 선고를 내린다. 선고 직후 있었던 일련의 유혈사태를 제외한다면, 성숙한 시민의식을 가진 우리 국민이 몇 달에 걸쳐 헌법이 보장하는 범위 내에서 평화롭고 이성적으로 시위하며 마침내 얻어낸 민주주의의 승리였다. 이 승리는 여러 외신에서 놀랄 만큼 너무도 값진 성취였고 이를 통해서 앞으로 대한민국은 더 나은 미래를 모두 함께 만들어 갈 수 있으리라는 확신에 기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기쁨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은 5일 후 3월 14일, 갑작스럽게 정치권에서 자유한국당, 국민의 당, 바른 정당 간의 야 3 당 회동을 통해 개헌을 국민투표로 대선과 함께 진행하겠다는 결정을 내려버리게 된다. 이들은 흔히 ‘제왕적 대통령제’로 불리는 현행 대통령제를 개정하기 위해 4년 중임제가 핵심이 되는 ‘분권형 대통령제', 즉 내각제를 주장하고 있다.이로 인해, 더 나은 대한민국을 위해 다 함께 노력하려 했던 수많은 시민은 다시 한번 찬성과 반대로, 찬성 내부에서도 세부 합의사항에 대한 이견으로 인하여 우리는 크나큰 정치적 혼란을 마주하게 되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필자는 개헌이라는 중차대한 정치적 카드를 탄핵 직후 꺼내 들어 다시금 큰 사회적 혼동을 일으킨 야 3 당이 크게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



[1]



사실 개헌은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처음 언급되는 일은 아니다. 현재 우리가 따르고 있는 헌법 역시 9차 개정안으로서 수차례 변화를 거쳐왔고, 본디 헌법 자체가 시대가 변하고 국민의 의식이 바뀐다면 그에 상응하게 바뀌어야 하는 것이 맞는 우리 사회의 산물이다. 실제로 4·19 혁명, 5.16 군사정변, 12.12 군사 반란, 그리고 6월 민주화 항쟁 등 굵직한 사회적 격동기를 거치고 난 후에 헌법이 여러 차례 개정됐다는 점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방금 겪은 최초의 현직 대통령 탄핵이라는 사건이 충분한 역사적 의미가 있고 새로운 세상을 시작해볼 수 있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개헌 이야기가 나오는 것 자체는 어찌 본다면 당연하다고 생각된다.


다만 굳이 지금 이 시기에 이제 채 두 달도 남지 않은 대통령 선거일에 개헌이라는 너무도 중요한 사안을 국민투표에 꼭 부쳐야 하는지에 대해서 필자는 절대 이해할 수 없다. 국정농단 사태에서 탄핵이 차지하는 비중은 작지 않을지는 모르겠지만, 결코 국정농단 사태의 끝은 아니다. 오히려 앞으로 철저하게 진상 규명되며 밝혀져야 할 수많은 조사를 위한 하나의 초석일 뿐이다. 결국, 우리는 이제야 겨우 첫걸음을 내디뎠을 뿐 어느 방향으로 가는 것이 더 나은지 알지 못하는 상황이다. 어느 쪽으로 가는 것이 좋은지에 대한 충분한 토의 없이 무작정 아무 방향이나 선택만 해서 가게 된다면 누가 그 길이 옳은 길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아직 모든 국정 농단 사태에 대한 조사 결과 그리고 책임이 밝혀지지 않았는데, 지금 우리가 혹여나 섣부른 판단을 한다면 그로 인해 우리가 잃어버릴지도 모르게 되는 몇 년 혹은 수십 년의 대한민국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 걸까?





[2]




일각에서는 개헌이 제법 오랫동안 논의되어왔고 다양한 측면들이 검토되었기 때문에 국민투표에 부치는 것이 그리 성급한 결정은 아닐 거라고 야 3 당의 결정을 두둔한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는 오랜 시간 동안 논의되었을지는 몰라도 아직 국민투표를 할 만큼 범국민적 토의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본다. 1987년 제6공화국이 9차 헌법개정과 함께 선포된 이후로 개헌 이야기는 지속해서 존재해왔다. 1990년 3 당 합당 당시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 등 당수들이 모여 의원내각제를 비밀리 합의한 것을 시작으로, 참여 정부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제안한 4년 대통령 연임제,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 역시 4년 중임제를 주장하면서 여러 가지 개헌에 대한 시각들은 존재해왔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국민적인 지지를 얻었다고 할만한 확실한 개헌 합의사항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옳은 형국이다. 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국민 중 30%는 현행 헌법 지지, 30%는 대통령 중임제, 나머지 30%는 대통령 내각제를 선호한다고 한다. 20여 년에 걸친 개헌에 대한 여러 정치적 토론들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국민 절대다수의 지지를 받는 개헌 방향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남은 2달여의 시간 동안 국민적 합의를 끌어내서 개헌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설령 투표에 부친다 한들 51%가 지지하고 49%가 반대하는 결과가 나왔을 때 51%의 다수를 위한 개헌을 한다면 대한민국이 분열 없이 제7공화국으로서 새로운 출발을 안정적으로 진행할 수 있을지 아니면 또 다른 분열이 시작될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그뿐만 아니라 아직 야 3 당내에서도 대통령 4년 중임제와 국회 중심의 내각제를 제외한 나머지 세부 개헌 사항에는 조율이 되지 않은 상태인데, 본인들도 아직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헌할지 합의도 못 본채로 과연 무엇을 국민투표에 부친다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설령 국민투표가 된들 야 3 당끼리 합의하는데 대략 한 달이라는 시간이 걸린다면, 나머지 국민은 남은 고작 한 달 동안 이들이 합의한 사항을 판단하고 투표해야 한다는데, 이는 너무 조급하지 않은가.



[3]




무엇보다도 필자가 지금 개헌을 성급히 고려하는 것을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정치적으로 개헌 카드가 우리의 미래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로 인하여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대통령을 선출하는 데 심혈을 기울여야만 한다. 누가 뽑히든 간에 여태까지의 사회적 폐단을 강력하게 엄벌하고, 다시 우리 사회를 하나로 아울러서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해 나아갈 수 있도록 함께 우리 사회를 치료해 나아갈 수 있는 그런 지도자가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이렇듯 다가올 5.9 대통령 선거에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집중하면서 더 나은 지도자에게 표를 행사할 수 있도록 모두 노력해야 할 이 시기에, 개헌이라는 논점은 우리의 생각과 눈을 분산시켜 대통령 선거에 우리가 온전히 집중하는 것을 방해할 수밖에 없다. 개헌으로 인해 헌법에 변동 사항이 생기게 되면 차기 정부가 정책을 수행하는 과정에 있어서 여러 가지 제약들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는데,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국민으로서는 개헌과 대통령 후보 두 사항에 대해서 어느 쪽도 확신을 가질 수 없는 상태에서 투표권을 행사하기가 전혀 쉽지 않다. 가령, 내가 지지하는 후보와 내가 지지하지 않는 개헌 방향이 대다수의 지지를 얻었다고 하자. 비록 나는 후보 A가 최선이라고 믿었을 기라고, 개헌 후 새롭게 설립된 헌법 아래에서는 후보 B가 더 나은 후보였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로, 대통령 선거와 함께 개헌 국민투표를 추진하는 것은 국민이 최선의 후보를 선출하는데 큰 제동을 걸게 된다.


또한, 지금 야 3 당이 주장하는 ‘분권형 대통령제'는 결국 내각제를 의미하는데, 이는 국회의 권력을 더 강화하려는 뜻으로 해석될 소지가 다분하다. 문제는 작금의 정치 상황을 보면 수많은 사람이 더불어민주당의 후보가 대통령으로 선출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데, 이때 민주당을 제외한 야 3 당에서 대통령의 권력을 끌어다가 국회의 힘을 더 강력하게 만드는 쪽으로 개헌을 추진한다는 것이 순수하게 국민을 위한 개헌을 생각했다고 보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되려 대통령이 우리 당에서 나오지 않을 것 같으니 대신 권력을 미리 국회로 옮겨놓고 차후를 논의하자는 태도로 비친다. 이 지점에서 야 3 당이 오히려 이런 오해를 피하고 싶다면 먼저 나서서 개헌을 대선 일정 이후에 더 심도 있게 토론하는 방향으로 정치권을 이끌어 나가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생각된다.




[4]




결론적으로, 필자가 보기에는 야 3 당이 5.9 개헌 국민투표를 정치권의 주요 과제로 들고 나온 것은 정치적 악수를 둔 것으로밖에는 생각되지 않는다. 이는 아직 수습되지 않은 위태한 정국 위에서 다가올 대한민국을 위한 섣부른 청사진을 그리는 것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간과하고 아직 범국민적 토의와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점을 인지하지 못한 채 오히려 국민에게 정치적 중압감만 더하는 결정이다. 또한, 국민보다는 야 3 당의 이익 추구를 위해 결정된 정치공학적 판단으로 충분히 보일 수 있는 사항이다. 지난 수개월 동안 국민이 힘을 모아 힘겹게 적폐 청산을 위한 한 걸음을 내디딘 만큼 정치권에서도 끝까지 수많은 사회적 폐단을 제거하는 데 함께 힘을 보태야 할 것이다.


원래 건물이 무너지면 지반부터 다시 탄탄하게 다지고 건물을 올려야 한다고들 하지 않는가? 괜히 급하게 짓는다고 부실한 지반 위에 건물을 쌓아 올리면 다시 무너질 날만 세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대한민국 현대사의 또 하나의 오점을 찍고 싶지 않다면, 조급해하지 않고 하나하나 확실히 따져가며 새로운 대한민국을 그려나가는 게 바른 자세라고 믿으면서 글을 마친다.




출처:

[1] http://cfile8.uf.tistory.com/image/262F0E4358C210AE01E522

[2] https://mn.kbs.co.kr/data/news/2017/03/15/3445984_110.jpg

[3] http://cfile4.uf.tistory.com/image/270AA04B562641120273E8

[4] http://monthly.chosun.com/upload/0807/0807_290.jpg






저작자 표시
신고
이 댓글을 비밀 댓글로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