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ERIALS/신입생이 되고 싶었던 편입생 - 完 -

신입생이 되고 싶었던 편입생 :: 三, 이해하고 사랑하기





2부, 서론을 제외하고 3번 째 글을 쓰고나서 나에게는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다.  하루빨리 이 시리즈의 완결을 이끌어내고 싶었건만, 올해 여름이 내가 태어나서 보낸 최고의 여름이었다고 자신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원하는 것들을 모두 다 이룰 수는 없었다.  수업을 듣느라 바빴고, 그 수업들이 끝나고 새 학기가 찾아오기까지 남은 시간은 2주.  그 2주 동안 나는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하였고, 새 학기를 준비하였으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가는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기에 이 연재글을 미뤄놀 수 밖에는 없었다.


자, 판도라의 상자는 열렸다.  처음 나에게 이 글을 쓰기를 강요한 어느 익명의 신입생이 일으킨 사건은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를 신경쓰이게 만들었고, 결국 나는 지금도 글을 쓰고 있다.  하지만, 이제 그 상자의 뚜껑이 열린 이상 상자 속에 무엇이 있었는가는 글을 읽는 독자들이 판단할 일이다.  나는 내가 찾은 것들에만 근거해서 게을렀던 스스로를 다시 한번 채찍질하며 새 글을 써보고자 한다.  먼 옛날 어딘가의 신화에서 판도라가 제우스로부터 받은 상자의 뚜껑을 열었을 때 마지막 남았던 것은 희망이었다.  그리고 나의 상자에 남은 것도 희망이었다.


나기사 카오루는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타인들의 모습들을 정의하며 이런 말을 했다.


"희망인 거야, 사람은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희망.  좋아한다는 말과 함께 말이지."


나는 희망을 가지고 이 글들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이 시리즈의 마지막까지 이 희망을 가지고 글을 쓸 것이다.  모든 과정이 끝났을 때, 현실은 나의 희망과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때가 되면 나는 내 나름대로의 해답을 찾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지금까지의 글들에 적은 내용들과 모순된다고 생각할 독자들도 있겠지만, 나는 내 방식대로 희망을 가지고 이 글을 써보고자 한다.


미국의 편입은 한국의 그것에 비해 제도적으로 훨씬 쉽게 구성되어 있고, 또한 편입생의 숫자도 적지 않다.  필자를 포함한 많은 학생들이 이 시스템을 이용하였고, 일부에게는 인생의 새로운 기회가 되기도 한다.  또한 경험자의 말에 따르면 한국처럼 알게 모르게 차별을 하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실제로 나 자신은 편입생의 신분으로 이곳 버클리에 있으면서 단지 편입생이기 때문에 차별을 받아본 적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미묘한 차별, 아니 최소한 구별은 존재한다고 말하고 싶다.  현재 버클리에는 속성을 불문하고 10개가 넘는 한인 학생회가 있다.  음악이나 방송, 매체 등 어떤 지극히 특정한 목적 의식이 있는 동아리들이 아니고서야 타 학교에서의 학생회 역할을 하는 동아리들이 이 곳에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읽는 사람들은 다들 알테니 직접적인 언급은 하지 않겠음을 미리 밝힌다), 필자는 이런 이유들이 한국인들의 소속감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들, 필자처럼 중고등학교 때 이민이나 조기 유학을 온 사람들, 타 학교에서 편입해서 들어온 사람들이 서로 문화적, 경제적, 또는 소속적인 이유로 친밀해질 수 없으니 복수의 한인 학생회들이 존재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UCLA는 다른 지역의 학교보다 각 그룹간의 구분이 뚜렷해 연합활동이 더욱 어려운 상황이다.  이들 단체들은 공동으로 취업 박람회를 개최하기도 했지만 단체간에 알력이 발생하자 결국 행사를 중단하고 말았다.  지난 2월 KASA가 주최한 마이클 조(경찰총격으로 사망) 추모 촛불집회에는 다른 단체의 협조가 이뤄지지 않아 참석자 수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일도 있었다."


출처: 유학생-2세들 '우린 남이다' 한 대학서 단체 따로 만들어…'한 핏줄인데 왜그래' 조롱도


필자 개인적으로는 이 기사의 진위여부는 둘째치더라도 (일단 글을 쓴 기자새끼가 사실 여부만 확인한 채 별로 조사를 안하고 쓴듯 하다) 어느 정도는 한인 학생들의 문화적 차이에 따른 소속감의 차이에 대해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차이에서 나오는 다름, 그 다름에서 나오는 적대감과 견제.  그런 것들이 있었기에 그렇게 서로를 비난하는 일부 신입생들과 편입생들이 이 곳 버클리에 있어왔던 것이 아닐까.  나는 그들을 이해하고 싶었다.  내가 사랑하는 그들의 슬픔을 느끼고, 설령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들을 사랑하고 싶엇다.


# 외로웠던 편입생


같은 곳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들이 친하게 지내는 것은 분명히 좋은 것이다.  자신의 곁을 지켜주는 친구들이 있어 홀로 외로워 할 필요도 없고, 환경이 바뀌어도 자신과 함께해온 사람들이 있다면 새로운 곳에서도 두려움과 긴장감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도 그런 것을 원했다.  하지만 편입생인 필자의 학교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SMC나 DVC 같은 학교들과는 달리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상당히 마이너한 학교였고, 처음 버클리에 왔을 때는 학교에 대한 도움도 받을 수 없고, 친구들도 만드는게 수월하지 않았다.  외로운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시작한 자취는 외로움만을 만들어줄 뿐이었고, 학교 관련 서류들의 절차에서 궁금한 것들이 있어도 이곳 저곳 물어보기가 수월하지 않았다.  나와 같은 입장의 편입생들도 분명히 있었겠지만 내가 언제 그들의 입장까지 신경쓰고 있을까, 그리고 실제로 그런 편입생들이 있어도 어떻게 그들과 만나 친구가 된단 말인가.  마이너리티가 마이너리티를 만나면 그냥 마이너리티 리그가 생길 뿐이다.


그래도 처음 한 두달은 너무나 외로웠다.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도서관에 가도,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해도, 연락처를 받아도 내가 처음 만난 사람들은 그저 아는 사람들이었다.  반갑게 인사는 할 수 잇을지언정 그들과 심리적으로 친해지는게 너무나 힘들었다.  옆에서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이 잘 가지 않아도 이 곳 생활에 익숙해지려고 발버둥쳤다.  물론 친구가 없어 학교에서 30분 정도 되는 거리를 운전하며 차에서 외로움에 너무나 많은 눈물을 흘리곤 했었다.


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운이 좋았던 것 같다.  기대하지 않았지만 미국에서 같은 고등학교나 옆 고등학교를 친구들을 버클리에서 발견했던 것이다.  그 친구들은 오랜만에 만난 나의 편입을 축하해주었고, 자신들의 친구들을 소개시켜 주었다.  그래도 그 사람들과 사무적인 대화 이상의 것을 기대하기는 힘들었다.  결국 여기서부터는 내가 스스로 헤쳐나가야할 일이었다.  좋은 녀석들을 만나 동갑 친구들의 사교 모임에 들어갔고, 좋은 녀석들을 만나서 버클리오피니언을 만들었고, 좋은 녀석들과 친해지기 위해서 KUNA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녀석들은 지금까지도 나와 가장 가까운, 내가 사랑하는 녀석들이다.


# 인복이 많았던 편입생

 

혁기, 우찬, 경선이라는 세명의 친구에게 이 글을 빌어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KUNA와 버클리오피니언에서 활동하며 나는 많은 친구들을 만들었다.  이 클럽들에서는 너무나 많은 즐거운 일들이 있었기에 이 글에 쓰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많은 일들이 있었고 나는 내가 친해지고 싶었던 녀석들을 내가 사랑하는 녀석들로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역으로 말하면 그 녀석들이 처음 나에게 보여주었던 어색함들은 단지 내가 처음 보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지, 내가 편입생이기 때문에, 내가 못생겼기 때문에, 내가 차가워 보였기 때문에 보여준 것은 아니었다.  좀더 확장해서 말하면 내가 개인적으로 느끼기엔 신입생들과 편입생들 사이의 벽이 그렇게 높지는 않았다.  사랑하는 동생들이 나를 편입생이라고 한다면, 그건 내가 나이가 많은데 아직도 학교를 다니고 있기에 군대를 갔다왔거나 제대를 했거나로 생각했던 것 같다.  이런 좋은 녀석들과 만날 수 있었기에 나는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고, 이는 나중에 익명성을 믿고 선동하는 녀석들을 일망타진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쓸데 없는 정의감에 빠진건지 한가해서 그런건지.


# 편입생인줄 모르는 편입생


나를 처음 아는 녀석들은 내가 편입생처럼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내가 봐도 그렇다.  내 주변에 편입생 친구들은 별로 없는 편이다.  그리고 나는 딱히 편입생이 아닌척을 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기회가 되면 열심히 내가 편입생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런 말을 할 때 "편입생 안같은데요" 라는 말을 듣고 싶어서 더더욱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친구가 적다.  양쪽의 입장을 모두 이해해보려고 하는 나는 친구가 적다.  건방지게도 나는 그렇게 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에게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또한 지금의 시점에서는 편입생 친구들도 어느정도 있는 편이다.  물론 어느 쪽도 내가 사랑하는 녀석들임에는 변함이 없다.  서로에게 불만이 있다면 그들의 불만들을 모두 이해하고 싶었다.  그런 것들을 모두 이해하고, 그들의 갈등을 주제넘게 해소해주고 그들 모두를 사랑하고, 또한 그들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었다.


신입생들과 편입생들의 갈등은 이곳 버클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마도 전세계 어디서도 (적어도 한국과 미국에서는) 얼마든지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편입생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소속의 차이와 상관없이 이 곳에서 좋은 녀석들을 많이 만났고, 그들과 마음을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케이스는 나 혼자만이 아니다.  그렇다면 편입생들은 신입생들과 어울리기 힘들 것이라는 고정관념이나 어색함을 버려야 하지 않을까.  이곳의 신입생 녀석들은 대부분 충분히 깨어있는 녀석들이다.  만약 그들이 당신들을 싫어한다면 당신들이 인격적으로 무언가 문제가 있거나 다른 문제점들이 있었기 때문이지, 적어도 당신이 편입생이기 때문에 당신이 미움받는 일들은 없을 것이다.


반대로 신입생 녀석들도 그렇다.  이곳의 편입생 녀석들은 대부분 충분히 깨어있는 녀석들이다.  저마다의 사정이 있어 바로 대학교에 오지 못하고 편입을 했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의 일에 바쁜 사람들이다.  만약 그들이 당신들과 친해지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았다면, 그건 그들이 이 글을 쓴 나처럼 친구가 없지는 않기 때문이고 따라서 내가 그랬던 친구가 없어서 생긴 절박감 같은 것들을 느끼는게 아니었기에,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며 자신들의 생활을 하다보니 새로운 신입생 친구들을 만날 필요가 없었던 것이었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상대방이 편입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신입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싫어하는 케이스는 거의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런 소속의 차이에서 기인해 상대방들을 비난하는 인간쓰레기들이라면 나는 언제나 그들을 단죄할 준비가 되어있다.  이는 나의 정의감에서 나오는 행동이 아니다.  나는 그저 쓸데 없는 문제를 일으켜 주변에 민폐를 끼치는 녀석들이 싫을 뿐이다.


# 결론


결국 중요한건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물론 이해하지 않아도 좋다.  이 글이 전혀 도움이 안되었기에 상대방을 비난해도 좋다.  다만 당신이 만약 그럴 것이라면, 당신 자신도 상대방들에게 이해를 받거나 그들의 비난에서 자유로울 것이라는 헛된 기대는 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피를 마시는 새에 나오는 틸러 달비와 정우 규리하의 대화를 인용하면서 이 글을 마무리 하려한다.


"그게 누구라도 그 사람을 알면 그 사람을 이해시킬 수 있다고 믿으세요?"


정우는 틸러가 왜 웃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어진 도깨비들이 흔히 그렇듯 그녀는 상대가 웃으니 덩달아 웃으며 외쳤다.  바로 그때 팡탄의 계명성이 끝났다.  그래서 갑작스럽게 찾아온 고요 속에 정우의 외침이 크게 울렸다.


"믿고 싶어요!"


피를 마시는새 4장. "묻은 것과 믿은 것" - 이영도 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