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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문화 & 예술 :: Culture & Art

태양의 후예는 '국뽕'인가


최근 가장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드라마를 꼽자면 누구나 이견 없이 "태양의 후예"를 선택할 것이다. KBS2에서 2016년 2월부터 방영을 시작한 "태양의 후예"는 매회 폭발적인 시청률 증가를 보이며 현재 30%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무엇보다 "태양의 후예"는 특전사 대위와 여의사, 또 특전사 부사관과 군의관 사이의 사랑이라는 남녀노소 모두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주제를 다루는 만큼 폭넓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회를 거듭하고 인기가 늘어감과 동시에 여러 문제점이 드러나며 일부 시청자들과 평론가들의 비판 역시 늘어가고 있다. 자주 언급되는 문제점들로는 과다한 PPL (Product Placement: 드라마 혹은 영화 속에 소품으로 등장하는 상품을 일컫는 것으로 간접적 광고마케팅 전략 중 하나)와 먼지투성이 재난 현장에서의 개복 수술과 같은 비현실적 설정이 있다. 물론 이러한 문제들이 시청자들의 몰입도를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에 비판받을 수 있지만, 다큐멘터리가 아닌 드라마이다 보니 극적 전개를 위해 비현실적인 연출을 하고, 업체들로부터 협찬을 받다 보니 예산을 위해 광고도 해주어야 한다는 점에서 생각해볼 때 이런 것들은 충분히 웃어넘길 수 있는 사소한 문제들이다. 하지만, 일부 언론에서는 그보다 핵심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바로 "태양의 후예 국뽕 논란"이다. 

"국뽕"이란 국가와 히로뽕의 합성어로 무조건적인 국수주의와 자국 우월주의를 비꼬는 신조어이다. 즉, 일부 언론에서는 "태양의 후예"가 자극적인 설정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국수주의적 사고를 주입한다는 주장을 한 것이다. 우선 이러한 비판을 제기한 언론사들의 주장을 알아보자. 한겨레 신문의 이승한 TV 칼럼니스트와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는 "태양의 후예"가 "국뽕" 혹은 "군국주의"를 옹호한다는 내용의 칼럼을 작성한 바 있다. 두 칼럼을 요약하자면, 함께 연합작전 훈련 중 주인공이 미군 델타포스 팀 소속 대위와 한바탕 싸움을 벌이는 장면은 미군에 대한 열등감 표출이고, 극중 배경인 '우르크'라는 가상 국가에서 빈곤층 아이들을 돕는 장면은 한국 전쟁 당시 한국의 상황을 망각한 (혹은 망각하기 위한) 아제국주의적 사고라는 논지이다. 한편으로는 흥미로운 지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과대해석이라는 생각이 든다.

*원문 참고: 

"'태양의 후예'에는 자부심이 아닌 열등감만 있다", 이승한 (http://www.huffingtonpost.kr/2016/03/12/story_n_9449062.html)

"태양의 후예, 왠지 군국주의 냄새가..", 황진미 (http://www.hani.co.kr/arti/culture/entertainment/734388.html)



우선, "태양의 후예"는 정치적 혹은 사상적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선전물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영화 "26년"이나 "화려한 휴가", "연평해전"과 같이 명백한 정치적 성격을 띠고 있는 영화들과는 달리, "태양의 후예"는 전적으로 멜로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시놉시스 역시 유시진 대위와 강모연 의사, 그리고 서대영 상사와 윤명주 중위 간의 멜로를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짜여 있다. 그 과정에서 이 네 주연의 능력이나 성품을 강조하기 위한 전개가 있는 것이다. 유시진 대위와 미군 델타포스 대위와의 몸싸움을 한국군이 미군에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굳이 연출하고자 하는 열등감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시점일지, 아니면 유시진 대위의 카리스마와 유능함을 강조하기 위한 과장된 묘사로 보는 것이 일반적 관점일지는 독자들의 판단에 맡긴다. 강모연이 우르크에서 빈곤한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주는 것이 정말 대한민국의 경제적 우위를 암시하는 "자위"일지, 아니면 강모연의 인성과 캐릭터를 보여주기 위한 장면일지 역시 한 번 생각해보길 바란다.

가장 큰 관점의 차이는 이러한 설정과 사건들이 "국가" 혹은 "군인"을 치켜세우기 위한 장치인지 극 중 캐릭터를 시청자들에게 어필하기 위한 장치인지를 해석하는 과정의 문제이다. 주인공이 군인이라는 설정상, 어느 정도의 보수적 정치관이 반영되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이를 국뽕이나 아제국주의와 연관 짓는 정도의 해석이라면 도대체 어떤 영화 혹은 드라마가 그 비판의 화살을 피해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007 시리즈와 같은 스파이물은 정부 비밀 요원에 대한 미화이고 "국가대표"나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과 같은 스포츠 영화는 애국심을 자극하기 위해 감성에 호소하는 국뽕 영화인가? 미디어의 해석은 시청자의 몫이니 그렇게 해석한대도 누구도 비난할 권리는 없다. 그저 일반적인 대중의 한 사람으로서 위의 평론가들이 걱정하는 만큼 "태양의 후예"가 정치적인 선동력이 있는지 의심스러울 뿐이다.

한국 전쟁을 겪고 분단국가로 남아 있는 대한민국의 상황 때문인지 전쟁, 군대, 남북 관계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사용되는 단골 소재이고 많은 시청자들이 이에 흥미를 느낀다. 이러한 주제들을 연출하는 과정에서 완벽하게 정치적 중립을 지키기란 불가능하다. "태양의 후예" 역시 군대라는 극보수적 집단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편향이 발생했음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이를 군국주의나 국가적 열등감과 연관 짓는 것이 오히려 더욱 정치적으로 편향된 시선이 아닐까? "태양의 후예"가 대중에게 널리 노출되는 드라마인 만큼 과도한 정치적 성향을 띄는 것은 주의해야겠지만, 평론가들 역시 많은 대중에게 노출되는 평론을 작성하는 사람들로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시각에서 작품을 평가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