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포트라이트>로 본 현실성과 예술성의 경계

Posted by #252636
2016.04.17 22:27 EDITORIAL/문화 & 예술 :: Culture &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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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말,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기다리고 기다리던 남우주연상 수상 외에 대중의 이목을 끈 이슈가 또 있었다. 바로 최우수 작품상을 받은 영화 <스포트라이트><어벤저스>의 헐크로 잘 알려진 마크 러팔로와 <노트북>에서 열연한 이후 멜로퀸으로 자리매김한 레이첼 맥아담스가 예상치 못한 조합으로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실제로 미국 보스턴에서 수십 년간 감춰져 왔던 천주교 사제들의 아동 성폭행 사건을 이를 파헤치는 언론의 입장에서 재해석한 실화 바탕 스릴러 드라마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이니만큼 실제 사건과의 유사성을 유지하되 예술로서의 감각적인 연출력도 그대로 담아내는 것이 관건이었는데, 이 과제를 훌륭하게 수행했다는 평을 받으면서 많은 이들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우선 간단히 줄거리부터 살펴보자. 스포일러를 다수 포함하고 있으니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한 독자라면 다음 한 단락을 넘겨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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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오래전 한밤중에 희끗한 머리의 한 가톨릭 신부가 대여섯 살 정도로밖에 안 보이는 아이들과 함께 경찰서에 있는 장면으로 처음 막을 연다. 곧바로 변호사 한 명이 경찰서에 급히 찾아오고 사건은 재판도 거치지 않은 채 마무리된다. 경찰서에서 근무 중이던 다른 사람들 또한 그리도 선하게 생긴 신부가 어린아이들을 상대로 성추행을 했으리라고는 믿지 못하는 눈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보스턴의 유명 언론사 '보스턴 글로브'에서 새롭게 부임한 편집장의 지시에 따라 특별 취재팀을 꾸려 이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하면서부터 상상치 못한 진실이 여실히 드러나 취재 팀원들을 충격에 빠뜨린다. 보스턴 전역에 걸쳐 셀 수 없이 많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고, 더욱 충격적인 것은 레이첼 맥아담스가 직접 나이 들어 은퇴한 가해자 중 한 명을 인터뷰하러 갔을 때 그의 반응이 너무나도 태연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엄연히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후에 등장하는 공범들뿐만 아니라 이 문제를 더 일찍이 해결할 수 있었던 영향력 있는 개인과 조직들을 봐도 모두 이 문제를 얼마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분위기였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취재팀은 관련자들의 은근한 합력과 본인들이 그동안 취재를 미뤄왔던 것에 대한 자책 등의 시련을 겪으면서도 성공적으로 첫 기사를 발행하고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 일으킨다. 그렇게 미국 전역에서 가톨릭 교회의 무책임한 윤리의식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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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면서 일어나는 감정은 절대 단 한 단어로 표현할 수가 없다. 공포와 안도, 분노와 이해, 연민과 고통 등 수많은 감정이 뒤섞여서 눈물과 웃음이 동시에 터져 나오기도 하고 안쓰러움에도 불구하고 환호할 수밖에 없는 순간들도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데에 크게 기여한 것은 다른 무엇보다 감독의 연출법이다. 분명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을 받았고 아동 성폭행이라는 잔인한 소재를 주제로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특하게도 이 영화에 폭력적인 장면이라고는 마크 러팔로가 당장 기사를 발행할 수 없다는 팀장의 말에 크게 실망하고 화를 내며 사무실 문을 세게 닫고 나가는 한 장면밖에 없다. 증거를 파헤치는 동안에도 그 흔하디흔한 플래시백 장치도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취재에서 얻는 모든 자료는 피해자의 울분 섞인 증언과 가톨릭 교회의 행정 문서들이 주를 이룬다. 과거의 모든 진실을 조명하고 이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방법이 꼭 직접적이지 않더라도 충분히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자극적인 장면이 등장하지 않는다고 해서 긴장감이 줄기는커녕, 당시의 고통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피해자들의 생생한 표정과 취재진의 끓어오르는 열정과 함께 변해가는 눈빛에 몰입도는 높아져만 가고 충격에 충격을 거듭하며 관객을 더욱 깊은 광란의 나락으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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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도 몇 년 전에 이런 사회 고발성 영화가 개봉하고 크게 히트를 친 적이 있었다. 바로 공지영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둔 영화 <도가니>. 광주 인화학교에서 실제로 5년 간 일어났고 경찰과 사법부 모두에게 외면당했던 청각 장애 아동 성폭행 사건을 다룬 또 다른 실화 바탕 영화이다. 더 어린 연령층도 볼 수 있게 하도록 여러 번 재편집해서 연령등급 재심의 신청을 했으나 승인되지 못하고 끝내 <스포트라이트>처럼 청소년 관람 불가 판정을 받았다. 실제로 영화를 본 후 다소 직접적인 아동 성폭행 장면 묘사 때문에 크나큰 충격에 휩싸인 관객이 많았다. 인터넷은 충격에 이어 분노로 가득 찼고, 이 사건은 다시 여기저기에서 조명받으며 처벌 여론이 높아지자 검찰에서 재수사를 확정하기까지 했다. 실제로 성폭행에 대해 법원이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 기존보다 훨씬 널리 알려지면서 성폭행에 관한 공소시효 폐지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결국 인화학교는 완전히 폐교되었고, 인화학교의 재단이었던 우석재단도 해체 압박에 못 이겨 자진 해산했다. 안타까운 것은 재수사에도 불구하고 증거 불충분으로 피해자에 대한 손해 배상 소송이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말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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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큰 파급력을 지닌 작품에 대해 원작 소설가 공지영 씨는 "인화학교 사건을 책에 그대로 담으면 소설이 너무 야만적일 것 같아 수위를 반으로 낮췄는데, 영화 감독님은 소설의 수위를 또 반으로 낮췄다"고 말한 바 있다. [6] 그렇게 낮추고 낮췄음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던 데에는 화제의 성폭행 장면이 그 중심에 있다. 가해자의 일거수일투족이 눈앞에 그대로 보이고 피해자의 울부짖음이 생생하게 들리는 그 장면은 어디까지가 사회 고발 취지로서의 현실성이고 어디부터가 영화로서의 예술적인 장치였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던 건 필자뿐일까. 어디까지가 알리기 위함이고 어디부터가 엔터테인먼트를 위함이었을까. 어디까지가 필수적이고 어디부터 불필요했을까. 이런 질문들에 대한 분명한 해답이 없어서 그 장면을 보고 난 후 관객들의 반응이 단순한 충격에 그치지 않고 지나치게 징그러웠다거나 본의에 충실하게 사실적이었다는 등 엇갈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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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는 그저 수위를 논하는 사항이 아니다. 사실 <도가니>는 다른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의 영화들과 비교했을 때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면에서는 분명 덜하다. <300>이나 <쏘우>를 비롯해서 흔한 멜로 영화들만 봐도 그건 자명한 사실이다. 문제는 이 영화가 모두 허구가 아닌, 현실의 한 조각을 반영하는 실화 바탕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피해자들과 피해자의 가족들 그리고 친구들까지 이 영화를 접하게 될 것을 생각하면 과연 그들이 이 영화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 걱정이 밀려온다. <도가니>를 영화와 소설책 모두로 접한 필자가 감히 단언하자면 이 장면의 묘사 수준은 분명 지나쳤다. 영화에는 시각적이고 청각적인 요소가 빠질 수 없어서 더 그렇다. 특히 <스포트라이트>를 보고 <도가니>에서 느꼈던 것보다 더 큰 내면의 동요를 경험 한바, 단지 있는 그대로를 하나부터 열까지 보여준다고 해서 현실성이 높아지는 것도 예술성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라는 결론에는 한 치의 의심도 들지 않는다. 

관객영화를 통해 받아들일 수 있는 정보와 감정의 형태는 인물이나 사물과 대사에만 제한되지 않고 언어의 뉘앙스나 전개방식, 잠깐의 정적, 화면의 구도 등 세심한 디테일의 종합적인 산물로 결정된다. 특히 영화라는 장르로 볼 때 다큐멘터리도, 증거 물품도, 조사서도 아닌 대중이 소통하는 예술과 미디어의 한 종류로서 사실성에 과하게 치중하는 것이 영화 자체의 발전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렇다고 <스포트라이트>가 실화 바탕 영화의 완벽한 예시라는 것은 더더욱 아니며, <도가니>처럼 실제 사건이 반영하는 사회의 문제점을 꾸밈없이 고발하고자 하는 의지도 없어서는 안된다. 다만, 적어도 영화가 고발하고자 하는 바를 영화라는 틀 안에서 더 창의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실험하고 연구했다는 점에서 <도가니>와 구별되는 <스포트라이트>만의 가치 한 가지를 발견했다고 본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눈앞에 떡하니 보여줘야만 깨닫는 바보 군단이 아니라는 것을 더 많은 예술가가 염두에 두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1] http://www.ew.com/article/2015/08/19/spotlight-poster-exclusive

[2] http://www.delmarvalife.com/delmarvalife/the-m-report/movie-review-spotlight/

[3] http://www.hollywoodreporter.com/sites/default/files/2016/02/screen_shot_2016-02-02_at_5.12.19_pm.png

[4] http://pds.exblog.jp/pds/1/201404/20/84/d0151584_604061.jpg

[5] http://imgmovie.naver.net/mdi/mi/0754/75413_S33_180209.jpg

[6] http://www.readers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8719

[7] https://pmcvariety.files.wordpress.com/2015/10/spotlight1.jpg?w=670&h=377&cro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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