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벗에게, 너의 친구가

Posted by 레오정
2017.03.10 18:00 EDITORIAL/문예 :: Literature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리고 칼바람이 부는 추위에 길고양이마저 저 멀리 구석으로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게 하는 새벽, 여느 때와 같이 고된 하루를 보내고 터덜터덜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잠깐이나마 일상의 분주함에서 벗어나 이런저런 잡념에 빠져 걷던 그때, 두 손을 푹 찔러넣은 주머니에서 전화기가 울렸다. "뭐하냐?" 무심한 듯 툭 던지는 너무나도 익숙한 안부 인사에 나 역시 아무런 고민조차 없이 습관처럼 "집 가는 중. 넌?" 하고 답장을 보냈다. 자연스레 새어 나오는 새하얀 입김 때문인지, 인적 드문 거리에 수명을 다해가는 가로등의 깜빡이는 전등 때문인지, 전화기의 밝은 불빛을 우두커니 서서 멍하니 오래 바라보았다. 10년이라는 시간을 지나 이제 여느 평범한 친구들과 그저 다를 것 없는 대화에 각자 그리고 함께 세월을 보내고 있는 너와 나의 기억을 떠올려 본다.




[1] 출처: 연합뉴스



지금은 까마득한 기억의 저편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싱그러운 봄바람이 기분 좋게 내 뺨을 간지럽히던 3월의 봄날, 아직 불편하기만 한 짙은 청록색 교복 재킷을 어쭙잖게 걸치고 그렇게 갓 중학생이 된 나는 낯선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그렇게 너를 보았다. 어색한 공기에 다들 삼삼오오 모여앉아 서로의 이름을 묻고 짤막한 자기소개를 나누던 그 시간에 너는 창가 자리에 숨듯이 앉아 무슨 이유인지 책 한 권에 고개를 묻고 열심히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었다. 입학 첫날부터 공부라니, 나도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무언가에 홀린 듯이 너에게 말을 걸었다. 친구가 되는 데에 무슨 이유가 필요하고 특별한 계기가 필요할까. 우리는 "첫날부터 뭐하냐?"는 나의 한 마디를 통해 친구가 되었다.

그 시절 우리는 주체할 수 없는 젊음의 에너지를 이유없이 여기저기 흩날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자마자 운동장으로 뛰쳐나가 그토록 짧은 10분이 마치 1시간인 양 열심히 축구를 하며 땀을 흘렸고, 시험 기간이면 학원 자습실에 머리를 맞대고 앉아 경쟁하듯이 책에 형형색색 밑줄을 그으며 공부에 몰두하기도 했다. 주말이면 학교 운동장, 공원에서 PC방까지 동네 방방곡곡을 쏘다니며 우리는 온종일을 함께 붙어 다녔다. 같은 것을 듣고, 같은 것을 생각하고, 같이 웃으며 우리는 순수하게 반짝이던 어린 시절을 그렇게 함께 보냈다.



출처: lets080.co.kr



하지만 돌이켜보면 우리가 매일 얼굴을 보며 지낼 수 있었던 시간은 우리 인생에 고작 3년, 그게 다였다. 서로 멀리 떨어진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내가 미국 대학에 진학하면서 너와 나 사이의 물리적 거리는 멀어져갔다. 그렇게 멀리 떨어져 보내는 시간이 하루 들이 쌓여 한 달, 일 년이 되고, 10년 가까이 되는 오랜 시간을 지나며 너는 네가 되었고 나는 내가 되어버렸다. 각자의 길을 걷던 너와 나는 갈라진 길을 걸으며 점점 멀어지고 있었고, 서로 다른 것을 보고 듣고 느끼며 너는 모든 걸 다 아는 사람에서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갔다. 오래간만에 만나 자신의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해야 하는 부연설명의 시간이 점점 길어져만 가는 우리의 모습에 문득 서글펐지만, 또 그 모습은 너무나도 푸근했다.

사람에 상처받고 힘들어하던 , 태평양 너머에 있는 너에게 전화를 걸어 술에 취해 펑펑 눈물을 흘렸었다. 막상 정신을 차리고 나서는 멋쩍은 마음에 아무렇지 않은 전화를 끊었지만, 이후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렸을 적부터 너는 너와 다른 나의 모습을 이해해주던 따뜻한 사람이었다. 감정에 솔직하고 내 온갖 생각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던 나를 별다른 많은 말없이 그저 고요히 들어주던 너였던 같다. 비록 멀리서 서로 다른 길을 가지만 어렸을 번은 만들어봤을 종이컵 전화기를 우리는 손에 쥐고 걷는 기분이다. 벨 소리도, 진동 소리도 없이 스스로 컵을 귀에 대야만 실을 통해 목소리가 들리는 그런 전화기 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혼자만의 고민은 늘어가고 속에 쌓여만 가는지, 때로는 아무 이유 없이 종이컵을 입에 대고 너의 이름을 소리치고 싶어진다.



출처: https://www.pinterest.com/edna_bowen/quotes/



남들에게 말할 없는 너만의 삶의 무게를 견디며 서 있는 너임을 알기에, 나도 무게를 나눠서 지며 너를 응원하고 싶다. 사랑에 관한 노래는 수도 없이 많은데 친구, 우정에 관한 노래는 손에 꼽을 정도 밖에 없는 것인지. 꾸밈없이 솔직하게 서로의 진실한 모습과 마음에 가까이 가는 것이 우정이라면, 우리는 잘하고 있는 것일까. 입대하여 몸과 마음이 고달프던 훈련소 시절 어느 너의 아버지로부터 편지 통을 받았다. 벗이 있으면 세상은 밝게 보이게 마련이라고, 우리는 그냥이유 없이 서로를 좋아하고 있기에 좋은 친구가 것이라고 아버지는 써주셨다. 그렇게 누군가 우리의 우정을 지켜봐 주고 있다는 사실에 힘든 와중에도 가슴 한 편이 따스해 왔던 기억이 난다. 종이컵 전화기처럼 저 멀리 전해지는 우리들의 말과 안에 담긴 마음을 생각하며 나도 오늘 너에게 뭐하냐?” 하고 물어보련다. 너의 아버지가 응원하는 마음으로 나에게 써주신 글귀를 이번엔 내가 마음을 담아 하루를 마칠 즈음의 너에게로 보내며 글을 마친다.

 


"청소년의 어리숙함에서 청년의 능숙함으로

방황과 무계획에서 지향하는 삶의 자세로

부정과 혼돈에서 긍정과 체계의 확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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