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벚꽃 그리고 우리

Posted by 슈여니
2016.03.04 14:23 OFFICIAL PRESS/콜라보 인 더 한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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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벚꽃. 그 이름만으로도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봄날의 분홍빛 축복은 금방 또 다시 바람에 휘날려 사라지겠지만, 그 잔상만은 늘 우리의 기억에 남아 봄을 추억하게 만든다. 매년 따뜻한 바람이 불어 올 때 즈음 화사하게 피어나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하던 그 벚꽃은 야속하게도 사랑했던 옛 연인처럼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라져 가지만,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이라는 무언의 약속을 잊지 않기라도 한 듯 돌아오는 그 모습을 볼 때면 우리 마음 속에 왠지 모를 설렘이 피어나곤 한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 완연하게  벚꽃들 사이를 걸어 봤던 건 고등학교를  입학했을 즈음의 봄이었다깊은  중턱에 위치해 그만큼 계절의 변화가 선명하게 드러났던 우리 학교는 특히나 3월이 되면 여느 유명한 거리들 못지않게 따뜻하고 아름다운 벚꽃색으로 가득했다사귄지    되지 않아 아직까지는 어색함이 솔솔 느껴지는 새로운 친구들과 함께 등하굣길에 거닐었던 기숙사  작은 공원은 유난히도  크고 풍성했던 벚꽃 나무  그루로 아직 열일곱이던 여학생들의 마음을 연한 분홍빛으로 물들였다. 지금의 감성지금의 행복이 가장 중요했던  시절의 우리들은 점심시간이 끝나가는 줄도 모르고 그것들을 매일 사진으로 남기는 데에 바빴다때때로 시험 공부를 하다가 혼자 나와 이어폰을 꽂고  느낌 나는 노래를 들으면서 이리저리 걸어 다닐 때면, 벚꽃이 내게 안겨주는 - 좋아하는 사람과 손을 잡고 벚꽃으로 가득 찬 거리를 걷는다던가 하는 그런 소소한 로망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아이처럼 설레하기도 했다온통 벚꽃 향이던  포근함 속에서 나는 '열여덟열아홉'처럼 분위기가 예쁜 영화  주인공이   같기도 했고불편하기만 했던 교복이 새삼 가장 내게  어울리는 옷처럼 보이기도 했다.

 

          내게 가장 어색하면서도 잘 어울리던 군복을 입었던 그 시절에야 나는 불어오는 봄바람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벚꽃은 늘 그 자리에 있었고, 나 역시 늘 그 자리에 있었다. 고작 스무 몇 년 간을 살았던 나임에도 벚꽃은 지나간 해 만큼 돌아오곤 했다. 다만 내가 태어나서 처음 그 완연하게 핀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었던 순간은 2014년 봄이었을 뿐이다. 태어나서 21년이 지나서야 나는 화사한 벚꽃과는 너무나도 대비되는 군복을 입고서 만개한 벚꽃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법을 배웠다. 누군가에겐 사진으로 남길 수도 있는 아름다운 풍경, 혹은 사랑하는 사람과 잊지 못할 추억으로 뇌리에 각인할 수도 있는 그 벚꽃나무의 자태는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나의 모습앞에선 잔혹하리만치 황홀했고, 나는 잡히지 않을 안개를 잡아 담으려는 소년 마냥 떨어지는 벚꽃에 아쉬워했다. 정말 그 아쉬움만이 내가 가지는 처음이자 마지막 특별한 기억일까?


          어쩌면 때의 기억이 내가 벚꽃에 대해 가지는 처음이자 마지막의 특별한 기억일지도 모른다. 2학년이 되면서부터는 기숙사와 학교를 왔다 갔다 하면서 잠시 벚꽃 나무를 스쳐 지나가는  정도로 만족했고, 3학년  벚꽃을 보러 가는 것이  이상 우리에게 휴식이 아닌 시간 낭비일 뿐이었다결국 졸업을 하고 나서미국에 가기 전까지  번쯤은 벚꽃 구경을 가봐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에 잔뜩 설레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향했던 서울의  벚꽃 거리도, 3  나의 세상 전부와 마찬가지였던 작은 공원보다 훨씬 예쁘고 화려했음에도 불구하고 때의 꾸밈없고 순수했던 감정을 다시 느끼게  주진 못했었다그건 당연한 거였다시간이 흐른 만큼나도 계속해서 열일곱살 아이의 감정에 멈춰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지금 만일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벚꽃 내음 물씬 풍기는 거리를 다시   함께 거닌다면예전과는  다른 새롭고 기분 좋은 추억을 쌓으며 여느 때보다 훨씬  행복해할지 모른다그치만 봄이라는 건그냥 그런 게 있지 않을까내가 봄에 가장 어울리는 사람일 때에만 느낄  있는 그런 아늑함이나간질간질한 풋풋함 같은 것.


          간질간질한 풋풋함이 내 마음 속에 피어나기도 전에 나는 얼마나 내가, 나의 처지가 봄과 어울리지 않음에 괴리를 느꼈다. 2014년 봄의 낭만과는 또 다르게, 2015년의 봄은 단순히 시간이 빠르게 지나길 바라는 말년 병장의 현실 부정과 맞물려 사라져갔고, 벚꽃 향기를 음미할 시간도 없이 나의 봄은 저물어 갔다. 2014년의 봄에도, 2015년의 봄에도 벚꽃은 그 자리에서 세상을 아름답게 물들였지만, 그 황홀경을 나눌 사람 없는 자리에서 아름다움은 오히려 잔인했다. 역시, 그런게 있지 않을까. 봄바람보다도 따뜻한 손을 잡고 걷는 벚꽃 거리에서 흩날리는 꽃잎을 보며 문득 떠오를 만한, 그런 짧지만 가득한 말이. 그 말을 떠올리기도 전에 2016년의 봄은 다시 찾아오고 있다.

  

          겨울이 지나고, 어느새 봄이 찾아오고 있다사람들에 비해 유독 손발이 쉽게 얼음장처럼 차가워지곤 하는 나는모순적이게도 사계절  겨울을 가장 좋아하지만따뜻함을 아는 여느 사람들처럼 어서 봄이 시작되기를 한없이 기다리고 있다아마 겨울이라는 계절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도추운 공기에 시렸던 세상을 녹이기라도 하듯 따뜻하게 피어날 꽃과 나무들에 대한 기대가 아닐까가끔씩 캠퍼스를 걸어 다니거나 차를 타고 어딘가를 지나가다 이름 모를 누군가가 심어 놓은 벚꽃 나무를 발견하면마음 한편에 어린 내가 벚꽃을 보며  빠졌었던 수수했던 감정을 희미하게나마 떠올리려 노력하곤 한다. 그것은  시절에 대한 단순한 그리움일까아니면 때와 같은 감정을 또 한번 느낄  있을지도 모른다는 작은 소망일까. 올해의 봄은 그 어느 때보다 따스한 햇살로 가득하기를. 그리고 그보다 더욱 따스하고 부드러운 봄바람이 우리들의 마음속에 불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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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th_Regiment
    • 2017.09.11 05:08 신고
    제가 살면서 블로그에서 봤던 그 어떤 글들 중에서도 단연 최고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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