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Aubergine" ㅡ 음식에 담긴 진정한 의미와 사랑

Posted by 데미안
2016.03.09 14:10 OFFICIAL PRESS/콜라보 인 더 한칼



저녁노을이 지던 다운타운 버클리. 우연히 초청받아 오게 된 본 공연의 윌콜에서 우리의 티켓을 찾은 뒤 객석을 비집다 무대와 가까운 두 좌석을 발견해 착석하고 아직 입장 중이던 다른 관객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한국계 이민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는 연극임에도 관객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희끗희끗한 머리의 백인 노부부들은 각자 관련 팸플릿을 손에 쥔 채 무언가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그렇게 시끌시끌한 분위기 가운데 좌석이 꽉 찰 때 즈음, 소리 없이 무대 위로 걸어 나온 한 여배우는 말없이 무대의 중앙에 털썩 앉았다. 조명이 어두워졌고, 순간 숨을 죽인 관객들 앞에서 그 배우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버지가 만들어 주시던 샌드위치에 관한 이야기였다. 아버지가 평소에는 딸에게 쉽사리 표현 못하던 사랑을 어느 날 밤 정성 들여 만드신 샌드위치를 통해 전달하셨다고.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자신과 함께 쌓아온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듯한 그 바삭한 빵이 눈물지을 만큼 감동적이었다고...


연극 Aubergine의 두 주인공은 2세대 한국계 이민자이자 전직 요리사인 레이(Ray)와 위의 기능이 점점 퇴화해 음식을 먹을 수 없는 불치병을 앓고 있는 1세대 한국계 이민자 레이의 아버지이다. 레이는 사랑하는 연인 코닐리아(Cornelia)와의 인연까지 끊어가며 아픈 아버지의 간호에 몰두하지만, 결국 시한부 선고를 받은 아버지를 위해 다시금 자신보단 한국어가 능숙한 코닐리아의 도움을 받아 한국에 있는 삼촌에게 난생처음 연락을 하게 된다. 이렇게 시작되는 네 사람의 어색한 관계는 한국을 떠나기 전 맛본 어머니의 뭇국을 아직까지 잊지 못한다는 아버지의 이야기가 삼촌으로부터 레이에게 전달되며 진전을 보이기 시작한다. 레이는 접어두었던 요리를 아버지를 위해 다시 시작하게 되고, 자신의 요리에 담을 수 있는 진심과 사랑에 대해 깨닫는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레이는 코닐리아와 함께 사람들의 잃어버린 순간을 되찾아주는 음식점을 열어 계속해서 그의 진심을 담은 요리를 선보인다. 연극은 다시 제1막에서 아버지가 만들어주신 샌드위치의 맛을 잊지 못한다던 눈물겨운 독백의 주인공으로 돌아가, 그녀도 레이의 음식점에 들려 '그때'의 그 맛, 아버지의 사랑이 담긴 맛의 샌드위치를 음미하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마음의 허기를 달래주는 새로운 이야기"라는 슬로건을 건 Aubergine은 두 시간에 걸쳐 사랑과 가족애부터 죽음까지 다양하고 진중한 주제들을관객들 앞에 한꺼번에 선보이는 밀도 높은 연극이다. 자칫하면 정신없거나 과할 수 있었던 무거운 주제들의 연결과 조화가 Aubergine에서만큼은 자연스러울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의 단일된 테마 아래 개성이 넘치는 주제를 하나하나 자연스레 연결하였기 때문이지 않을까. 연극으로부터 큰 감동을 받은 관객으로서 우리가 강조하고 싶은 이 "단일된" 테마는 바로, 그 속에 담긴 의미로 관객들의 "마음의 허기"를 달래주기도 하고, 눈과 귀를 즐겁게 하며 관객들의 배를 곯게 하는 진정한 허기로 이끌기도 하는 '음식'이다. Aubergine은 이미 제목부터 요리의 재료로 자주 사용되는 '가지'를 뜻하는 만큼 극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까지 모두 음식과 관련된 맛있는 연극이다.




무대 위에는 식탁과 의자가 놓여 있고, 그 왼쪽으로는 병든 아버지가 얕은 숨을 쉬며 미동조차 없이 하얀 간호 침대 위에 누워있다. 아버지의 수발을 들다 지친 레이는 의자에 앉아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게되고, 그런 레이를 지켜보던 아버지의 간호인 루시엔(Lucien)은 오히려 밝은 표정을 보이며 특별한 선물이라는 보라색 가지 하나를 건넨다. 그리고 난 뒤 루시엔은 그 가지를 그저 별 볼 일 없는 'Eggplant'라 칭하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레이를 향해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젓는다. 다소 강한 억양으로 이것은 'Aubergine'이라며, 같은 채소라도 조금 더 "맛있는" 이름으로 부르자고 말한다. 이렇듯 연극은 바람직한 태도의 루시엔을 통해 조금 더 긍정적인 삶에 대한 시각과 방향을 제시하기도 한다. 조금 더 구미가 당기는 이름으로 부르면, 그저 조금 더 가볍게 여기면 되는 것이다.


음식은 그렇다. 음식에 대한 평가는 매우 주관적이며 상대적이다. 음식의 이름이 어려우면 거리감이 느껴짐과 동시에 조금 더 고급스러워 보일 수도 있으며, 아무리 같은 음식이라도 좋아하는 사람이 해준 요리와 좋지 않은 감정이 있는 사람이 해준 요리는 전혀 다른 맛을 이끌어 낸다. 때로는 거창한 안부 인사보다 "밥 먹었어?"라는 말 한 마디에 그동안 사람과 사람 사이에 쌓여온 시간의 공백으로 생긴 거리감이 눈 녹듯 사라져 버리듯이, 음식은 우리의 인생 또는 우리들의 관계 속에 '정'이라는 것을 넣어준다.

음식에는 요리하는 사람의 정성과 시간이 담겨 있으며, '나의 요리를 맛있게 먹어줬으면...' 하고 생각하는 요리사의 특정 대상에 대한 감정이 담겨 있다. 보통 우리가 "어머니의 손맛"이 담겼다며 칭찬하는 요리들이 우리에게 그토록 와 닿는 이유는 - 음식의 맛도 당연히 한몫하겠지만 - 우리의 어머니가 그 요리 안에 담아주던 사랑 또는 모성애를 다시금 되새길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음식을 통해 진심을 전달하던 레이의 친할머니와 그 사랑을 전달받은 레이의 아버지,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거나 고인이 전해주던 진실된 감정을 되찾고 싶은 사람들에게 음식을 통해 다시금 그 순간을 선물해주는 요리사가 된 레이. 이렇듯 연극 속 인물들은 모두 자기 자신만의 방식으로 요리하고 음식을 통해 추억과 정을 선물한다.




힘들게 연락이 닿은 레이의 작은 아버지는 곧바로 미국에 와 위독한 형을 마주하고는 레이의 친할머니 이야기를 전달한다. 소싯적 그의 어머니는 대단한 손맛으로 위상을 떨치며 유명한 식당을 운영하셨지만 정작 그녀의 큰아들, 그러니까 레이의 아버지는 그 음식에 한 치의 관심도, 애정도 없었다는 것이다. 세월이 지나 어른이 된 그 아들은 어느 날 갑자기 미국으로 이민을 가겠다는 결정을 내리고, 그렇게 떠나려는 자식을 살아생전 다시 만날 수 없을 것을 직감한 어머니는 아들이 떠나던 날 그에게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차린 진수성찬 대신 그저 푹 곤 사골국과 밥 한 그릇을 건넨다. 그리고 그 아들은, 소박한 밥상 위에 올려진 어머니의 깊은 정성과 사랑을 느끼며 어머니 앞에서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마치 연극의 도입 부분에서 아버지의 정성이 담긴 샌드위치를 추억하며 눈물 흘리던 그 여배우처럼 말이다.


가족이란 언제 어디서든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는 존재처럼 느껴진다. 언제나 곁에 있을 것만 같고, 언제나 서로를 사랑하며 기다려줄 것만 같은 존재. 따라서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우리의 가족에게 소홀해지곤 한다. 각자의 삶을 사느라 잠시 잊고 있었던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지금이라도 가볍게, 하지만 진실되고 소중하게 "밥은 먹었냐"며 안부 인사를 전해보는 건 어떨까.



**참고**

연극 Aubergine 은 3월 27일까지 Berkeley Repertory Theater에서 연장 공연 중이다! 독자들도 연극을 통해 마음의 허기를 달래 보기를 적극 추천한다. 

http://www.berkeleyrep.org/season/1516/9312.asp?gclid=CIyQ6aaNs8sCFQJsfgodN_kDMQ&gclsrc=aw.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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