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빵과 별사탕

Posted by 희씨
2017.11.01 19:22 EDITORIAL/문예 :: Literature


[cover]




언제부터인가 내 옆자리에 네가 있는 것은 당연했다. 부스스한 머리로 잠에서 깼을 때, 누가 더 많이 먹는지 내기를 하고 올챙이처럼 볼록 나온 배를 두드리며 한숨지은 후 격한 운동으로 죄책감을 달랠 때, 끊임없이 몰아치는 과제와 시험의 파도 속에서 허우적댈 때 그리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종일 잠만 잘 때. 그 모든 순간에 언제나 나는 너와 함께였다. 그리고 언제까지고 변함없이 우리 두 명은 서로의 4년간의 대학 생활을 가득 채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순진했던 걸까 멍청했던 걸까. 언제나 너로 가득 차 있던 내 옆자리가 공허해진 요즘, 그 텅 빈 자리를 바라보며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한숨을 쉬고 있는 나 자신을 매일 마주하고 있다. ‘롱디’ 그리고 ‘고무신’이라는 단어들을 별것 아니라고 생각해서였는지, 하루하루 다르게 늘어나는 두 단어의 무게를 배로 체감하면서 우리의 관계는 점점 무겁게 느껴지기 시작했고, 너를 향한 알 수 없는 원망도 같이 자라났다. 당장 내 옆에 없는 네가 밉고, 그리울 때 얼굴을 볼 수도 목소리를 맘껏 들을 수도 없는 게 다 너 때문인 거 같아서 어쩌다 한번 하는 전화조차 점점 늘어나는 나의 투정으로 채워만 갔다.


결국, 여느 연애 스토리의 주인공들처럼 우리는 지극히도 평범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생각했던 것만큼 내가 장거리의 벽을 거뜬하게 감당해낼 정도로 강하지 못했다. 처음 네가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내게 조심스럽게 꺼냈을 때, 나는 세상에서 제일 쿨한 여자친구인 마냥 2년 반쯤은 쉽게 기다릴 수 있다고, 기다릴 테니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라며 애써 웃음 지으면서 너를 떠나보냈다. 솔직히 아주 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4학년은 취업하느라, 졸업 후에는 1년 차 직장인으로서 정신없이 보내다 보면 너를 다시 만날 날이 순식간에 올 것이라 진심으로 믿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생각과 현실의 괴리는 분명 존재했다. 네가 입대를 한 후, 너는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나 없는 삶을 시작했지만, 나는 어디를 둘러봐도 둘이 함께였던 공간 속에 혼자 갇혀버렸다. 같이 밥을 먹던 식당, 같이 공부했던 도서관, 서로의 손을 잡고 거닐던 캠퍼스 앞 길거리. 사방 그 어느 곳을 둘러보아도 같이 했던 추억들로 넘쳐나는 공간 속에 홀로 덩그러니 남겨져 너의 부재를 받아들이기란 절대 쉽지 않았다. 단순히 네가 내 옆에 없어서 외로운 건 아니었다. 그 추억 속 장소들에서 나는 너와 함께였던 순간들을 잊지 않으려 발버둥 쳐봐도 결국 그 추억들이 모두 지나간 하룻밤의 꿈처럼 자꾸만 희미해져갈 때, 흐릿해져버린 캔버스 위를 더 이상 함께 새로운 추억들로 덧칠 수 없음이 자꾸만 떠올라 마음 한편이 까맣게 물들어 버렸다. 그리고 그럴 때면 나는 어김없이 가시 돋친 말들을 퍼부으며 너에게 상처를 줬다.  




[1]




그렇게 계속되는 나의 짜증으로 인한 다툼 그리고 마지못한 화해의 반복되는 일상에 둘 다 지쳐가던 셀 수 없이 수많았던 그 어느 날이었다. 내가 너를 똑바로 마주한 건. 갑자기 성큼 다가온 겨울을 대비해, 두꺼운 옷들로 옷장을 채워 넣다 깊은 한구석에 놓여있는 우리의 추억이 모여있는 상자를 얼떨결에 발견했다. 이사 후 너무 정신이 없어서 마땅히 놓을 곳을 찾지 못해서 잠시 넣어 둔다는 것이 아예 까먹고 지낸 지 몇 주째였다. 그 하얀 종이 상자 안에는 서로 주고받았던 소소한 선물들, 같이 갔던 여행들의 입장권과 기념품들, 우리 둘이 행복하게 웃고 있는 사진들, 그리고 네가 나에게 써준 편지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상자 안에 모든 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찬찬히 살펴보면서 내 기분은 걷잡을 수 없이 묘해졌다.


상자 속 우리는 언제나 행복했다. 비록 가끔 다투긴 했어도 같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좋아서 항상 같이 붙어 다니면서 모든 날을 서로로 채웠다. 그 시절, 아무 계획 없이 집에서 온종일 1000 피스 짜리 퍼즐을 맞추며 배달음식을 시켜 먹을 때도, 시험 하루 전에 책상에 마주 앉아 전투적으로 공부만 할 때도, 서툴지만 정성껏 유치원 이후 처음으로 손편지를 나에게 써줄 때도, 그리고 매일 먼저 잠드는 나 때문에 영화 한 편을 채 못 끝냈던 그 많은 밤에도 너는 언제나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상자 밖 너 역시 나를 같은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넌 훈련과 근무가 끝날 때면 페이스북으로 메시지를 남기고, 면회나 외출 때 짧게나마 전화를 걸고, 휴가를 나가서도 가족들과 있는 시간을 빼고는 나에게 집중했다. 몇 달 만에 만나게 될 이번 겨울을 위해서도, 너는 쉬는 날도 추가 근무를 서가면서 하루라도 더 휴가를 받으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너는 변함없이 내 곁에 네가 떠나간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서 그리고 내가 없던 공간에 내 자리를 만들기 위해서 한결같이 나를 바라보며 부단히 너 나름대로 노력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집 앞 놀이터에서 엄마를 잃어버린 꼬마 아이처럼 혼자 주저앉아 울고 있느라 그런 너를 보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철저하게 외면하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네가 빠져나간 자리를 보며 공허한 마음을 가누지 못할 때 너는 나의 흔적조차 없는 곳에서 더 힘들 거라는 사실을. 나는 너를 신경 쓰지 않은 채 한껏 투정을 부리고 너에게 원망을 퍼부었는데, 돌이켜보니 너는 그 순간조차도 참 한결같았다. 좁힐 수 없는 거리를 사이에 둔 채 서로 한없이 지쳐가는 그때에도 항상 우리의 관계를 끝까지 놓지 않고 붙잡아 준 건 너였으니까.


그렇게 나도 결국 너를 다시 마주 보게 되었다.





[2]


누가 그러지 않던가.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아주 다른 말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큰 바다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아무 때나 만날 수 없는 우리 사이는 이미 전보다 확실히 멀어져 버렸다. 다만, 이제 내가 너를 정말 바로 마주했다면, 전보다 조금은 너를 더 이해하게 되었다면, 적어도 더는 너를 가시 돋친 말들로 상처 주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렇게 우리 사이가 더 멀어지지 않도록 서로 노력을 하면서 이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함께 잘 통과하길 소원해 본다.





사진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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