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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

코리안 뉴스룸


국민들은 나라의 일원으로서 한국의 경제, 정치, 사회적 이슈에 대해, 그리고 한국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에 대해 알 권리가 있다. 때문에 기자들은 정확하고 신속한 정보 전달을 통해 국민들의 궁금증을 해소시켜주고 알아야 할 정보를 전해야한다. 그게 그들이 존재하는 이유니까. 


하지만 마땅히 책임을 다해야 할 일임에도 불구하고 눈을 감은 보도를 내는 경우를 너무 자주 봤다잘못된 정보, 과장된 정보 전달로 인해 기사 하나, 뉴스 한 꼭지만 보고서는 정확한 진위판별이 힘든 것이 한국 언론의 현주소인 것이다. 이런 언론의 부주의(혹은 비양심)로 인한 사회적 손실은 사실 항상 존재해왔다. (너그러운 사람들은 '사실'과 '진실'의 괴리로 인해 완벽한 보도는 있을 수 없다고까지 말한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오류를 감안하더라도 한국 언론의 작년 세월호 참사 관련 보도 수준은 후일 자성의 목소리를 불러일으키기에 부족함 없이 어리숙하고, 자극적이고, 불건전했다.


지난 2014년 4월16일, 잊지 못할 비극이 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300여명의 사상자. 승무원들의 치가 떨리게 잔인한 이기심. 어이 없이 놓쳐버린 구조 기회까지 참사 관련 보도가 나올 때마다 국민들은 분노하고 울었다. 다만 참사소식이 가져온 아픔과 충격이 더욱 컸던, 그리고 더욱 해롭게 다가왔던 이유에 한국 언론의 보도방향이 빠질 수 없을 것이다. 


사고 직후 언론(인터넷 찌라시가 아닌 공영 방송사들)은 세월호에 탑승했던 모든 학생들이 구조되었다는 오보를 냈다. 흔치 않은 대형 해상재난 소식에 철렁했던 국민들은 전원 구조라는 희소식에 이내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러나 단 몇 시간 후, 방송과 뉴스, 지상파와 공중파 가릴 것 없이 300 여명 이상의 인원이 탈출하지 못한 채 가라 앉는 배에 남았다는 비극을 전한다. 이 탓에 실종자 가족, 지인, 나아가 일반 국민들까지 순식간에 최고에서 최악으로 바뀌어버린 뉴스에 고스란히 충격을 받아야했다. 사람들은 분노했다. 가족이 찬 바다에 가라 앉을 때 안도의 한 숨을 내쉬어버린 자신에게, 그리고 자신을 그러도록 '속인' 언론에게. 이게 신호탄이었을까. 비뚤어진 보도와 국민분노의 악순환은 사고 첫 날부터 가속을 시작한다. 국민 관심이 쏠리자 뉴스는 다시 검증되지 않은 뉴스를 마구잡이로 냈고, 자극적인 보도를 여과없이 접한 국민들은 더욱 분노했다. 이 아찔한 상황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것은 홍가혜가 민간잠수부라며 뉴스에서 허언을 쏟아내고, 이종인이 깡통 다이빙벨이 전능한 구조장비인냥 떠들어댄지 몇 달이 지나서다.


한국 언론의 부끄러운 밑바닥이었다. 국민들의 탄탄한 신뢰를 양분삼아 발전해 나아가야 하는 언론이 자기의 임무를 수행해 나가기는 커녕 잦은 오보와 실수에 대한 반성 없이 예능국인냥 방송을 틀어댄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언론의 대한 신뢰도는 급속히 하락했다. 한국 언론의 기자들은 팩트가 아닌 임팩트에 집중하며 다소 진부한 정직한 사실보도보다 자극적인 단어 선택에 공을 들인다 하여 기레기 (기자+쓰레기)라는 신조어까지 탄생하게 되었다. 


기자들의 자극적인 단어 선택 과 조회수를 늘리기 위한 수법들엔 다 이유가 있다. 미국의 유명 검색 사이트 “구글”의 웹페이지에 들어가자마자 눈에 띄는 것은 단순한 검색창 하나이다. 미국 시민들은 자신이 원하는 뉴스, 자신이 신뢰하는 뉴스를 자체적으로 찾아 읽는다. 하지만 한국의 “네이버” 또는 “다음”과 같은 인기 검색 포털 사이트에서 제일 눈에 띄는 것은 아무래도 인기 검색어 순위이다. 조회수만큼 돈을 받는 기자들은 국민들의 이목을 끌 만큼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뉴스를 만들기 위해 사실보단 과장되고 포장된 뉴스 기사를 만든다. 


또한, 이러한 기사를 만들기 위해 기자들은 지나친 밀착 취재를 당연시 한다. 다시금 세월호 참사에 대한 얘기를 꺼내자면, 침몰 사고가 이후 팽목항에 시신들이 하나 둘씩 들어올 때 그 자리에서 눈빠지게 기다리고 있던 유가족들보다 시신을 먼저 접한 사람들은 다름 아닌 기자들이었다. 많은 네티즌들과 같이, 필자 역시 지켜야 할 선을 넘은 행동이라 생각한다. 그 누구의 알 권리를 위한 행동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과도한 간접 촬영은 그저 피할 수 있었고 피해야만 했던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감정적 트러블 유발만을 야기했다.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운운할 때와 장소는 분명 아니었으리라. 심적으로 불안한 상태에 있는 생존자들 마저 팽목항에 도착하자마자 가족품에 안겨 심리적 안정을 받지는 못할 망정 때로 들이 닥치는 기자들 덕에 벌벌 떠는 추위와 친한 친구들이 죽을 수도 있겠다는 불안한 마음을 안정시킬 틈도 없이 인터뷰에 응해야만 했다. 이렇게 도를 넘는 언론의 들이밀기식 취재역시 언론의 부주의, 경솔함의 연장선상에 있는 현상이 아닐까. 


다시금 역설하건대 기자들의 역할은 시민들에게 정확하고 신속한 정보를 전해 주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언론은 불투명하고 과대 포장 되어있다. 언론은 사회의 지팡이가 돼서 중심을 잡아주고 사실만을 전해야 하지만 오히려 다른 이를 흠집내는 수단으로 사용이 된다.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뉴스는 한 사람의 선행보단 오히려 한 사람의 실수 또는 잘못에 관한 내용이다. 이런 분야에서 눈길을 끌기 위해 기자들은 끊임없이 다른 이를 깎아 내리기 위한 기사를 내고, 또다시 언론의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렇게 언론의 문제점들은 많고 많다. 언론은 한 나라를 대표하고 한 나라의 정보통으로써의 중대한 임무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 나라는 이러한 중요한 임무를 너무 쉽게 보고 제대로 된 통제가 되지 않는 듯하다. 정확한 사실 확인 조차 거치지 않은 채 수십개의 기사들이 반복되어 보도 되고 시민들은 그걸 의심없이 사실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더욱 큰 문제로 이어진다. 앞으로는 과장되고 자극적인 단어 선택 보단 진심과 팩트에 중점을 두면 한국 언론의 신뢰도 점차 찾을 수 있을 뿐더러 더욱 품위있고 믿음직한 언론이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