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백 마디 대화를 나누는 것 보다 하나의 공통된 감정을 느끼는 것이 훨씬 커다란 유대감을 불러 일으키는 법이다. 월드컵 시즌이 되면 각 나라마다 온 국민이 한 마음이 되어 자국의 이름을 외쳐 대는 것부터, 사소하게는 본인의 학교, 고향, 또는 사는 동네에 대해 가지게 되는 자부심과 소속감까지. 그렇다면 한국인들에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평소에 자주 느끼는 ‘공통된 감정’에 대해 물었을 때 대부분이 꼭 떠올리는 것이 무엇일까? 아마도 독도 분쟁, 위안부 문제, 그리고 일제강점기 시절 조상들이 겪었던 고통들에 대한 분노 – 즉 일본에 관하여 느끼는 감정이 빠질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독도를 이어 위안부 문제가 채 해결 되지 못하고 있는 이 시점에, 또 한 가지 국민들을 울화로 들썩이게 만드는 진실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바로 일본의 나가사키 현 앞 바다에 위치한 작은 섬 ‘하시마’가 가진 비밀이다. 매주 토요일마다 온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가득 안겨줬던 TV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이, 이번만큼은 특별히 하시마 섬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면서 우리를 웃음이 아닌 분노와 울화의 감정으로 하나로 묶어 버렸다.
원래 사람이 살지 않는 작은 무인도였던 하시마 섬은, 양질의 석탄이 발견된 이후 해저 탄광 사업이 자리를 잡으면서 수 많은 군수 기업들의 관심 속에 일본 최초의 콘크리트 아파트, 학교, 공중목욕탕, 수영장, 영화관 등의 건설과 함께 일본의 근대화를 대표하는 산업 시설 중 하나로 성장 하였다. 결국 2015년 5월 초, 아베 정권은 관광 자원 확대를 위해 하시마 섬을 비롯해 일본이 산업화 당시 건설한 건물 7곳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 신청하였다. 그러나, 하시마 섬이 세계문화유산 등재 심사를 받게 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진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논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일본 산업화의 상징으로만 묘사 되고 있는 하시마 섬이, 실제로는 수 백 명의 조선인 노동자들이 강제로 이끌려가 노동 착취를 당하고, 끔찍한 고문 속에서 백 명이 넘는 사망자를 만들어 냈던 잔인하고 추악한 강제 징용의 이면을 담고 있는 곳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밝혀진 바에 의하면, 일본으로의 조선인 강제 동원이 극에 달했던 1940년대 당시, 약 600명 정도가 하시마 탄광에 소속 되어 있었는데, 중, 고층 부였던 일본인 노동자와 간부들의 숙소에 반해, 조선인들은 햇빛이 들지 않아 곰팡이와 습기, 악취로 가득한 저층부의 좁은 방에서 생활해야 했다. 40도까지 올라가는 해저 1000 m의 탄광 속에서 조선인들은 하루 12시간씩 누운 채로 석탄을 캐는 노동에 내몰렸고, 하루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탄갱을 빠져 나오지 못했다고 한다.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 조사위원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하시마에서 사망한 한국인은 122명으로 추정 되는데, 이는 화장 기록을 통해 집계된 최소 사망자 수일뿐, 실제로 총 몇 명이 사망했는지는 정확히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들의 주된 사망 원인으로는 탄광 안에서의 매몰, 출수 사고, 골절과 타박상, 화농성 피부질환, 질식, 구타로 인한 심장마비 등이 대부분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 중 많은 사람들이 노동 착취를 견디기 힘들어 탈출하기 위해 바다에 뛰어 들었으나, 성공은 거의 불가능했고, 그 결과로 돌아 오는 것은 익사, 또는 붙잡힌 후 당하는 가혹한 폭행과 고문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결국, 지난 7월 5일 하시마 섬은 끝내 유네스코로부터 세계문화유산으로써의 등재를 허가 받았다. 일본에서는 이에 대한 축하 행렬이 나라 곳곳에서 이어졌고, 한국에서는 하시마 섬의 유네스코 등재를 반대하던 사람들이 믿을 수 없는 결과에 울화통을 터뜨렸다. 우리 선조들이 겪었던 끔찍한 고통과 아픔의 한이 서려져 있는 하시마 섬이, 일본 산업혁명 근대사의 귀중한 해저탄광 유적이며, 일본 최초 콘크리트 아파트가 세워진 건축 역사의 증거라는 왜곡된 이름만을 가지고 아시아 근대화의 상징물로 둔갑해 버린 것이다.
하시마 섬의 유네스코 등재가 우리를 더욱 화나게 만드는 이유는 당시 존재했던 강제 징용에 대한 사실 그 자체에 대한 것보다도, 현재 일본이 그에 대해 취하고 있는 태도에 있다. 유네스코 등재를 허가 받기 전과 등재가 확정된 직후 일본 외무부 측의 ‘강제 노역'이라는 단어 사용에 대한 어처구니 없는 번복부터, 세계문화유산으로의 등재 대상시기를 1850년부터 1910년까지로, 즉 1910년 우리나라 국권침탈 이전으로 한정해 그 이후에 자행된 가해의 역사에 대해서는 교묘하게 입을 다물어 버린 것까지. 이 뿐만이 아니다. 강제 징용 당시 하시마 섬을 소유하고 관리했던 군수 기업 미츠비시 중공업 역시, 박정희 때 체결했던 한일협정을 교묘하게 근거로 활용하여 당시 노동자로 끌려갔던 한국인 생존자들에게 그 어떠한 보상이나 사과를 일절 하려 하지 않고 있다. <무한도전>에서 방영된 인터뷰 부분 중, 일본이 당시 조선인 노동자들이 하시마 섬에 강제로 이끌려 간 것이 아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PD의 말을 들은 할아버지의 표정을 필자는 잊을 수가 없다. “자원해서 갔다고…? 하시마를?” 어떻게 사람의 얼굴에서 그토록 허무한 표정이 지어지도록 만들 수가 있을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라는 말, 식상한 줄은 알지만 매 해가 지나갈 때마다 더더욱 피부에 와 닿게끔 깨닫는 말이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하시마 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조사를 하면서 느꼈던 감정은 단연 분노 뿐만이 아니었다. 아무것도 몰랐다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 그리고 반성이 있었다. 안타깝지만, 사실 <무한도전>이 아니었다면 앞으로도 하시마 섬의 진실에 대해서 알고 그 아픔을 기리는 사람이 과연 우리나라에 몇이나 되었을까. 심지어 하시마 섬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되었던 당시에만 해도 솔직히 일반적인 사람들 사이에선 그렇게 큰 화제거리가 되지 않았었는데 말이다. 이번 칼럼을 쓰면서 리서치를 하던 도중 내가 가장 놀랐던 사실 중 하나가, 바로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에 나왔던 섬의 배경이 다름 아닌 하시마 섬이라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기숙사 방에서 모여서 밤을 새가면서 다같이 즐겨 봤던 그 애니메이션. 씁쓸하기도, 창피하게도, 또 두렵게도 느껴졌다. 지금에서야 이렇게라도 알게 되었기는 하지만, 만약 <무한도전>이 아니었다면 나는 과연 앞으로 몇 년을, 아니 어쩌면 몇 십년을 하시마 섬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없이 모른 채로 살아갔을까? 그리고 하시마 섬 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알아야 하는 무거운 진실이 어디에, 얼마나 더 숨겨져 있을까? 어쩌면 지금도 그런 장소들을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스쳐 지나가고 있지는 않을까?
이제는, 충분하리만큼 많은 사람들이 하시마 섬의 가슴 아픈 비밀을 알게 되었으니 분명히 달라지는 점도 있어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일본의 잘못은 분명히 말로 설명하기에도 치가 떨릴 만큼 악하고 잔인했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이 해야 하는 것은 가만히 자리에 앉아서 무작정 일본을 욕하고 화만 내는 것이 아니다. 하시마 섬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 된지 두 달이나 지난 지금에서야 그 곳의 진실에 대해 알게 되었다는 것에 대한 반성을 느껴야 한다. 어떻게 보면 일본이 당연히 비난 받아야 마땅한 행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대해 대한민국이 별 다른 조치를 취하고 있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솔직히 평소에 일본이 한국에게 행했던 만행들에 대해 그렇게 책망하면서도, 막상 하시마 섬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었던 사람은 그 중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우리에게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조상들이 받았던 피해, 고통, 이픔에 슬퍼하고 분노하고 그에 대한 진실을 추구할 권리, 아니 어쩌면 의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그 의무는 그 어떠한 다른 나라도 건드릴 수 없는, 우리나라만이 소유하고 관리 할 수 있는 ‘책임감'의 한 형태이기도 하다. 그 의무를 진실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우리부터 우리의 과거를 알고, 진실을 찾아 내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더욱 당당해 질 수 있고, 강해 질 수 있다. 그것이 우리가 판을 뒤집고 이길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다. 불가능해 보이던 것들도 기적처럼 이루어지도록 만드는 힘은 바로 국민들이 ‘공통된 감정’을 가지고 진실된 마음으로 나설 때에 만들어진다. 예전부터 정부나 국가 기관의 시도보다도 더욱 큰 힘과 효과를 불러 일으키곤 했던 것이 바로 국민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만들어낸 노력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어떠한 장애물이 그 앞을 가로막든, 우리 조상들의 아픔은 기필코 보상 받아야 하며, 누군가에게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안겨줬던 가해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죗값을 치러야 한다. 하시마 섬의 은폐된 진실뿐만이 아니라, 일본의 수 많은 정의롭지 못한 행동들에 대해서 우리 모두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책임감을 가지고 그 결과를 바로 잡게 되는 날이 기필고 오기를 바라고 또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사진 출처 : Instragify (mi_one's calligraphy), 조선일보 "조선인들에겐 눈물의 섬...'하시마'를 아시나요?", 다음 블로그 'kimiy050', 네이버 블로그 '승진이의 끄적끄적'
'EDITORIAL > 사회 :: Current Issu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To serve or not to serve? (1) | 2015.10.08 |
---|---|
Donald Trump and American Values (0) | 2015.10.01 |
I Don't Want to Go To Hakwon (0) | 2015.05.10 |
아니, 국민은 멍청하지 않습니다 (2) | 2015.05.08 |
박근혜 정부, 외교마저…. (3) | 2015.04.28 |